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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 토리노 - Gran Torino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서울극장, 혼자
원래 다른 영화 보려고 나선 길인데, 시간이 늦어 급변경
종로3가에서 극장을 헤매다 '그랜토리노'를 보기로 결심했다
1호선을 타고 가는데 이런 일이 있었다
음악 들으며 휴대폰 게임을 하는데, 객차 사이 문이 열리며 한 아저씨가 들어왔다. 노숙자 비슷해 보이는 분이라서 그냥 신경 안 썼는데, 이분이 글쎄! 앉아 있는 승객 중 여자 승객 앞에서만 욕을 하면서 걸어가는 것이었다. 처음엔 몰랐는데 나와 내 옆의 여자 사이에 서서 뭐라 욕을 뱉고 건너자리 여자 승객에게 다가가서 또 욕을 하고. 뭐냐...
어른들 말씀이 나이가 들면 남는 건 성격 밖에 없다고 한다
그 아저씨가 무슨 이유로 여자에게만 욕을 하는 지 모르겠지만, 고정관념처럼 꼬장꼬장한 할아버지나 할머니들은 자신들의 삶을 근거로 편견을 가지고 그것을 고집하며 산다.
그랜토리노는 그런 한 할아버지의 이야기이다.
1. 이야기
사실, 나쁘게 말하면 신파야, 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짜임이 뻔하다. 그런데도 빠질 수 밖에 없는 이건 뭐지? 원석처럼 세련되고 매끈하진 않지만 끌어들이고 빠져들게 만드는 뭔가가 있다. 그것을 굳이 '마음'이라고 불러도 될까?
월트(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안주머니에서 총을 꺼내지 않을 걸 알면서도 조마조마 하고, 곧 몽족 갱단이 쏘는 총에 맞을 것을 알면서도 아니길 바라고, 결국 겁먹은 총알이 월트를 향해 무수히 쏘아질 때 나도 모르게 '안돼-'라고 소리치고 싶은 걸 꾹꾹 참으며 끅끅 울고 또 우는.
아, 이번엔 내가 눈물이 많은 게 아니라 정말 슬펐다.
아저씨 관객들과 함께 봤는데, 그들도 울었다.
2. 비난
월트의 비난은 타민족에게만 향한 게 아니다. 그냥,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 곧 삶이 모두 비난 거리인 것이다. 무엇하나 마음에 드는 게 없다. 투덜투덜 불평투성이지만, 누구보다 아내를 사랑했고, 도움을 청하면 언제든 도와주었다.
비난과 으르렁 거리는 표정에 가려 아무도 그에게 도움을 청하지도, 인사를 건네지도 않았을 뿐이다. 그는 그저 상처받은 한 사람이었고, 그래서 그것을 감추려 으르렁 거리며 할퀴고 다닌 것이었다.
원래 겁이 많은 개가 더 크게 짖는다고 하지 않던가.
3. 겁쟁이
갱단과 타오, 둘 중 누가 겁쟁이 일까?
갱단이 일하고 돌아오는 타오를 린치 한 것은, 그렇게 타오가 정말 반듯한 청년으로 성장하여 잘 살게 될까봐. 그게 두렵고 그렇게 되지 못할, 감옥이나 들락거릴 자신의 미래가 겁나서 그런게 아니었을까.
4. 클린트 이스트우드
'더 레슬러'도 그렇고, 이 영화도 그렇고 정말 배우와 역할이 딱 맞았다. 이보다 더 나을 순 없다. 정말 반해버렸다.
우선, 나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한창 날리던 서부극을 단 한 개도 보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특유의 표정과 말투는 헐리우드 영화에서 자주 패러디되어 알고 있다. 카리스마 넘치던 그 표정과 말투가 월트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마치, 젊은 시절 그렇게 카리스마 넘쳤을 한 젊은이가 늙어서 이제 그 성격만 남은 듯 했다.
터프하고 절도 있는 말투와 표정이, 불만에 가득 찬 고집스러움으로 남았다. 특히 갱단의 청년을 때려눕히고 그 청년의 시선으로 잡은 월트의 표정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그의 서부극을 찾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5. 월트 코왈스키
한국전에 참전하고 포드 자동차 회사에서 일하고, 은퇴하여 한때는 백인만 가득했지만 이제는 유색인종의 마을이 된 곳에서 고집스레 살고 있는 노인.
그의 차고에는 1972년 조립된 그랜토리노가 아직도 멋진 모습으로 잘 관리되어 있고, 또 50년이란 시간동안 모은 연장이 벽마다 가득하다.
자식에게서 정을 느끼지 못하고, 이웃에게서도 정을 느끼지 못하고, 눈에 띄는 모든 건 비난의 대상일 뿐이다. 못되고 고집스러운 노인.
하지만 그는 아내의 장례식날 식이 끝나고 집에 모여든 문상객들을 공짜음식 먹으러 온 거추장스런 사람들이라고 싸잡아 욕하면서도 지하실에 내려가 의자를 가져와 곳곳에 마련해 둔다. 서 있는 사람이 많았던 것이다. 거의 시작과 함께 등장하는 이 장면은 그가 표현의 방법이 다른 것 뿐이라는 걸 보여준다.
표현의 방법은 모두 다르다. 나와 다르다고 나쁘다, 잘못됐다 할 순 없다. 월트의 모습을 보며 안타까웠던 것은 '수'를 시작으로 한 몽족 가족과 신부님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월트에게 다가와 그를 더 알아보고, 이해하려고 해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콕 집어 얘기하면 그의 아들들) '수'가족과 얼마나 친해졌던가. 한 번 받아들이고 이해하기 시작하면 그 다음은 쉽다. 문은 열기가 힘들 뿐이다.
그래서, 아내의 죽음으로 더 이상 사랑하는 이가 없다는 것이 아쉽고, 가족의 정을 느낀 '수'와 '타오'네에게 닥친 불행이 마치 자신의 성급한 행동 때문이었다는 죄책감이 안쓰럽고, 병든 그의 몸과 한국전 참전으로 인한 살인의 상처-50년이나 안고 있었던 그 상처가 힘겹다. 그 끝을 마치 죄책감과 상처의 속죄인 양 자신을 바친 월트의 선택이 영화관람 도중에 벌떡 일어나 '안돼'라고 소리치고 싶게 만들었다.
그가 고백성사에서 잘못이라 고백한 것은 아내가 아닌 여자와 키스를 나눈 것, 차를 팔고 세금을 내지 않은 것, 그리고 자식들에게 정이 없는 것 뿐이었다.
신부가 걱정하던 몽족 갱단을 향한 총질은 없었다. 월트가 선택한 것은 적의 예상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 갱단의 예상대로 움직인 월트는 갱단의 예상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무방비 상태의 소년병을 쏘고 받았다는 훈장, 월트의 50년의 삶 속에는 무방비 상태로 자신을 바라보던 소년병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타오를 통해 그를 풀어주고, 자신도 해방된 것이겠지.
아, 글을 쓰면서도 영화의 장면이 생각나 울컥울컥 한다.
좋은 영화라 하겠다.
* 영화를 보며 만약 우리나라 배우 중 누군가 월트 역을 맡는다면 어떤 배우가 좋을까, 생각했다. 젊은 시절 카리스마를 뿜었던 배우라면 좋겠지, 일흔이 가까운 나이에도 몸이 좀 좋아야겠지. 누가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클린트 이스트우드만한 배우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