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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레슬러 - The Wrestler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씨네큐브(광화문) 혼자
허겁지겁 달려서 겨우 영화 시작 시간을 맞췄다.
초등학생 때 우리 동네에서 프로 레슬링 경기가 있었다.
초등학교 바로 옆 중학교에서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던 이왕표 선수와 그외 등등의 선수들이 울 동네 와서 경기를 한다고 했다.
무슨 자선 행사였던 거 같은데, 시간은 밤 7신가 8신가였는데
당시 나는 초등학생이었고 6시 넘으면 밖에 나갈 수 없었는데 다행히 이건 허락해줘서 친구들과 보러 갔다.
일요일마다 티비에선 프로레슬링 경기를 방송해줬다.
나는 열심히 봤고, 그게 내 눈 앞에서 펼쳐진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정말 엄청난 충격과 환희 그 자체였다. 이왕표 선수는 정말 거대하고 멋있었고
붉은 피는 진짜 흘렀다. 그것은 정말 거대한 환상 같았다.
영화의 시작과 함께 내 머리 속에선 그 경기가 다시 재생되었다.
미국 프로레슬링은 정말 살벌하다.
어떤 경기는 구급차를 링 밖에 세워두고 둘 중 하나 실려갈 때까지 경기를 하는 걸 본 적도 있다. 뭐 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지만
그래도 그건 싫다.
운동장 한 가운데 세워진 링 위에서 내 눈과 마음과 모든 걸 뒤흔들어 놓은 그 육체의 향연은 다시 볼 수 없는 걸까.
사실 난 미키 루크란 배우에 대해 한때 날린 배우란 것 외엔 잘 모른다. 나인하프위크도 안 봤고, 그렇지만 이 영화에 잘 어울리는 배우란 생각이 든다. 그렇군.
늘어진 피부, 하얗게 죽은 손톱, 자글자글한 주름들 그 위로 눈물이 떨어질 때마다 난 또 같이 울고 말았다.
아 그냥 요즘 내가 눈물이 많다고 해두자.
램 잼(극중 미키 루크의 레슬러로서의 이름)은 링 위에서만 살 수 있다. 그를 링 위에 세운 것도 우리고, 링 위로 몰아간 것도 우리다. 나는 링 아래서 열광했고, 그는 그 열광에 중독되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중독된 것이다. 끊을 수 없는 고리를 만들어 놓고 나는 슬적 발을 뺐다. 링에 남은 그는 우리의 환호가 자신의 피를 돌게 하고 심장을 뛰게 한다고 했다. 그가 일어서야만 우리는 열광하고 우리가 열광해야만 그는 살아 있다는 걸 느낀다. 하지만 이제 그의 몸은 그 순간을 견뎌줄 수가 없다.
어떤 결말이 왔을 지 모르지만
보청기를 끼고 안경을 쓴 식료품 점원 로빈슨
한때 최고의 인기를 누린 아직 선수로서도 당당한 램 잼
한 몸에 놓인 두 사람 모두 참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롭겠구나.
반짝이는 건 순간이고 그 순간을 위해 사는 거구나.
이왕표가 시합을 벌인다면 찾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