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 롯데 시네마에서
친구의 시사회 초대로 봤다
다 쓰고 생각해보니, 시사회로 본거고
아직 개봉도 안 한 영화다.
근데 몰입해서 좀 자세히 써버렸으니, 영화 볼 사람 보지 마십쇼.
원작 소설을 보지 않아서 뭔내용인지 전-혀 모르고 갔는데
암만 생각해도 그 편이 영화 보는덴 젤 좋은 거 같다
0.
영화가 끝나고 머리속에 든 생각은 딱 하나
-미국판 가시고기, 인류멸망버전-
그렇다고 영화가 별로다, 라고만 할 정도는 아닌데
뭔가 어정쩡한 느낌?
1. 인류멸망
최근에 나오는 종말 영화는 대부분 파괴된 문명을 보여주는데 혈안이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무엇이 지구를 침범하느냐, 가 주된 관심사였다. 혜성, 외계인...근데 이제는 화려한 문명이 얼마나 허무하게 파괴되느냐를 보여주는 거 같다. 보진 않았지만 '2012'도 그런 영화가 아닐까?
사실 그래서 조금 더 무섭다.
혜성이나 외계인은 늘 영웅같은 인물들이 우리의 생활을 침범하기전에 싸워 없애버려서 정말 볼거리로만 존재했는데. 이제는 그게 아니라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아스팔트, 이 빌딩들, 이 전봇대가 파괴된다는 걸 상상하니 좀...무섭...>.<
영화가 끝나고 집으로 가는 전철 안에서 내내 그 생각만 했다.
이 모든게 멈추고 파괴되면 나는 어디서 어떻게 지낼까?
마치 어린 시절 피아노 학원에서 영웅본색을 보고 느릿느릿 걸으며 아파트 상가 계단을 내려오던 그 시절처럼, 나는 영화속 상황을 지금으로 놓고 상상을 했다. 좀...무섭다...>.<
2. 아버지
비고 모르텐? 맞나?
암튼, 이 배우도 서양판 사극에 많이 등장하던 배우였던 거 같은데...아닌가? 잘 몰겠다. 암튼, 점점 병색이 짙어지고 뭔가 앞뒤없이 꽉 막힌 배우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영화속 역할과는 잘 맞았다.
그럼, 그 아버지.
말하자면, 정말 좋은 남편이다. 가족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어떻게든 가족을 지키려고 애쓰고. 근데 뭔가 답답하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지구 멸망의 시대, 모든 건 다 떨어지고 살아남은 인간들은 급기야 서로를 먹어야 할만큼, 벼랑 끝에 선 그 때.
인육을 먹던가, 잿더미 속에서 작은 콩알 하나 찾아 며칠을 헤메던가, 자살하던가. 인간에게 남은 선택은 그 뿐이다.
아내는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린다.
남편은 잡으려 애쓰지만, 보낼 수 밖에 없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누구의 선택도 아니다.
그냥 모든 결정이 그러한 것 뿐이었을 것이다.
아버지에게 남은 건 아들.
그 아들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다 건다.
폐허 속에 잠을 자면서도 동화책을 읽고, 이야기를 들려주고
마음 속 불씨를 꺼트리지 말라는 당부도 한다.
그게 가능할까?
그런, 완젼한 폐허 속에서 아들에게 그런 꿈을 키우는 게 나은 일일까? 영화 결말에서는 결국 그것에 나은 일이라는 듯 말하지만
나는 글쎄...
위기에 처할 때마다 아버지는 아들 머리에 총구를 겨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이 죽어갈 때에는 아들에게 남쪽으로 떠나라고 말한다.
영화 내내 아버지는 마치 자신이 없으면 안될 것처럼 아들을 챙긴다. 의식적으로 아내를 버리려는 듯, 영화에서 아버지는 아내와 행복한 시절의 꿈을 꾸면, 악몽을 꾼 듯 잠에서 깬다. 가족을 버린 나약한 아내는 악몽이다.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아버지의 모습에서 뭔지 모를 답답함을 느꼈다.
3. 마지막에 뭐지?
아버지가 결국에는 병으로 죽고, 아들이 총 한자루 들고 혼자 남는다. 그리고 그 앞에 장총을 든 남자가 나타난다.
우리와 함께 가겠니?
사람을 먹지 않아요?
사람은 먹지 않는다.
불씨를 가지고 있나요?
불씨?
가슴에 불씨가 있냐구요?
그럼 있지.
정확한 건 아니고, 대충 이런 대사를 주고 받고 아이는 남자와 함께 가기로 한다. 그에게는 아내인 듯한 여자와 남자 아이, 여자 아이와 개가 있다.
모든 것이 사라지고 파괴된 시대고 그 시대에 아이 또한 사라지고 없다.
여자는 아들을 보고 말한다.
내내 널 지켜보고 있었단다. 불안해보여서.
역시 이것도 정확한 대사는 아닌데, 암튼 이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그 말이 마치, 아버지의 불안한 양육을 걱정하고 있었다는 말이 아닐까 했다.
과도한 집착과 같은 꽉 막힌 아버지의 양육에 걱정하여 그들 뒤를 따라 다니며 아들을 지켜보며, 아버지의 행동을 감시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영화에서 아들은 만나는 이마다 호감을 주고, 마음을 열고, 나누려 한다. 그러나 아버지는 경계하고 받은 만큼 그보다 더 빼앗는다. 그러면서 보이는 모든 것에 무엇이 있을 지 모른다며 뒤지고 뜯어낸다.
둘다 좀 극과 극인 모습이긴 해서 그리 이해가 잘 가진 않았다.
문명 파괴된 지구의 모습도 그 안에서의 생활도, 물론 영상이나 대화, 사건 등으로 알 수는 있으나 공감은 잘 되지 않아서, 그런 상황에 조금 극과 극인 모습을 가진 인물이 잘 하나가 되지 않아 집중이 잘 안 됐다.
암튼, 글고 여기서 조금 삐딱한 마음이 들었던 하나는
남자와 여자, 남자 아이와 여자아이 거기에 개까지.
마치 이것이 완벽한 가족의 모습이야, 라는 듯 해서 뭐야, 공익광고야, 싶었다.
4. 그래도 영화에서 좋았던 부분
시사회로 영화를 본거라 영화 본 후 설문조사를 해야했는데, 거기서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는데...예로 나온건 다 기억에 남지 않았고.
기억에 남는 부분은 맹인 할아버지와 만난 장면이었다.
아버지와 아들이 지하 벙커에 숨겨둔 엄청난 양의 통조림과 깨끗한 물을 발견하고 천국과 같은 생활을 하다, 누군가 왔다는 위기감에 결국 챙겨서 길을 떠나는데.
맹인 할아버지를 만난다.
그냥 가자는 아버지와 먹을 것을 주자는 아들.
결국 아들 말대로 먹을 것을 나누어 주고, 하룻밤을 함께 한다.
아들이 먼저 자고.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대화를 나누는데.
그냥 평범한 대화였다.
어린 아이를 만날줄 몰랐다, 그래서 천산 줄 알았다.
나도 아이가 있었지만, 어떻게 됐는지 묻지 마라.
이제 어떻게 할꺼냐.
대화 중에 아버지는 슬적 장전된 총을 할아버지 곁에 둔다.
자살.
쇠약한 몸과 잃어가는 시력은 먹을 것을 찾기는커녕, 자살이 나은 선택이라 말한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 할아버지는 길을 떠난다.
살아있는 한 계속 가겠다는 것이다.
나는 이 장면이 젤 좋았다.
그런데 짧아서 아쉬웠다.
5. 영화에서 인육을 먹는 것에 관한 잔인한 장면들...
이 있지만 그냥 끔찍할 뿐이고, 또 영화에서 그리 자주 보여주지 않아서 패스-
영화 전반에서 인상깊었던 것은,
멸망한 지구의 모습을 새롭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느꼈는데
죽은 시체나 자살, 인육을 먹는 것에 대해
아무렇지 않게 표현하고 말하는 것이다.
한 두 번 본게 아닌 시체들, 마치 너 돼지고기 먹어? 라고 물어보듯, 사람을 먹어? 라고 묻고...
6. 덕분에.
최근에 친구들 덕분에 시사회 구경을 자주 간다.
신기하게도 시사회 영화들은 대부분 내가 별 관심없어하는 영화라 뜻하지 않게 다양한 영화를 보게 되어 난 좋다.
친구들아, 나를 자주 시사회에 데려가 주렴..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