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 ㄱ ㄴ ㄷ
박은영 글.그림 / 비룡소
1권 가격 : 5,250원
마일리지 : 1,050원
나의 색깔 나라 - 어린이중앙 작은세상 4
로레타 크루핀스키 그림, 마거릿 와이즈 브라운 글, 이상희 옮김 / 중앙M&B
1권 가격 : 5,250원
마일리지 : 1,050원
두드려 보아요! - 보아요 시리즈 1
안나 클라라 티돌름 글 그림 / 사계절출판사
1권 가격 : 2,800원
마일리지 : 560원
세밀화로 그린 보리 아기그림책 1 - 전3권
이태수 외 지음, 편집부 엮음 / 보리
1권 가격 : 9,450원
마일리지 : 1,890원
아기 오리는 어디로 갔을까요? - 비룡소의 그림동화 51
낸시 태퍼리 글 그림, 박상희 옮김 / 비룡소
1권 가격 : 4,55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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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를 "킁킁" - 비룡소의 그림동화 39
루스 크라우스 글, 마크 사이먼트 그림, 고진하 옮김 / 비룡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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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세어 보아요 - 마루벌의 좋은 그림책 12
안노 미츠마사 지음 / 마루벌
1권 가격 : 5,46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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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을 해요 - 0.1.2. 그림책
다카코 히로노 지음, 엄기원 옮김 / 한림출판사
1권 가격 : 3,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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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때문에 살 마음이 생겼고, 제목 때문에 책을 샀다. 앤서니 기든스의
『노동의 미래』(을유문화사, 2004)가 그 책이다. 원제(Where Now For
New Labour)를 보고 내용이 토니 블레어 주연의 영국 ‘신노동당’모험담
임을 알았다. 보수당의 마거릿 대처 치하 11년, 존 메이저 집권 7년 동안
노동당은 철저하게 깨졌다. 그러니까 이 책은 1997년 정권을 쟁취한
노동당의 승리 교본이다. 그렇다고 절치부심(切齒腐心)이나 와신상
담(臥薪嘗膽)의 비장감이 전편에 흐르는 것은 아니고, 주조는 오히려
블레어의 얼굴 같이 ‘두루춘풍’이었다.

우파 학자가 ‘사민주의 세기의 종언’을 고하고, 좌파 지식인들마저 고개를 끄덕인다. 이런 시대에 영국 노동당이 보여준 18년 만의 집권 시범은 그야말로 ‘사민주의의 마술적 복귀’라고 할 만하다. 그 마술은 손수건을 흔들어 비둘기를 만들어내는 따위의 눈속임이 아니라, 기든스에 의하면 노동당 지도부가 취한 철저한 ‘실용주의적 쇄신’의 결과였다. 거기까지는 그런가 보다 했는데 “클린턴식 미국 민주당이 영국 신노동당의 모델이었다”(28쪽)는 설명에는 갸우뚱하고 고개가 돌아간다. ‘클레어’니 ‘블린턴’이니 하며 양자가 짝꿍처럼 지낸 것은 사실이지만, 누가 무어래도 클린턴이 사민주의자는 아니지 않은가?

기든스는 ‘제3의 길’ 전도사이고, 블레어의 노선 코치이다. 제3의 길은 심각할 때도 나오고, ‘심심할’ 때도 나와 다소 식상한 메뉴가 되어 버렸다. 1945년 종전 이후 제3세계 지도자들이 자본주의도 아니고 공산주의도 아닌 제3의 길 건설을 외쳤고, 1960년대 동유럽에서 시장도 아니고 계획도 아닌 제3의 길 꿈을 가꾼 적이 있었다. 그 뒤에도 모방 간판들이 속출했다. 책에 붙은 ‘사회민주주의의 쇄신’이라는 부제로 미뤄 기든스의 제3의 길은 자본주의와 ‘낡은 사민주의’틈새에서 어떤 출구를 찾으려는 노력인 듯하다. 그러나 사민주의가 벌써 고전적 좌파 이념을 탈색한 것이니 그의 ‘새로운 사민주의’는 고전의 재탈색이 된다.

변신은 집권을 위한 긴급명령이었다. 당헌에서 공적 소유 조항을 폐기하고, 당내에 노조의 영향력을 축소한 블레어는 전통적인 노동 계급을 넘어 다양한 직종의 중간 계급에 의지했다. 승리를 위해 이념과 계급을 ‘쇄신한’ 노동당은 정부 서비스의 민간 개방, 평등 대신 기회의 평등 보장, 사회 정의보다 경쟁력 향상이 앞선 조세 정책, 역기능 방지를 위한 복지 축소 개혁 등 ‘노동당의 뉴딜’을 약속했다. 이렇게 되면 사민주의의 성형 수술이 아니라 유전자 조작이다. 이것을 왜 제1의 길이 아니라 제3의 길로 불러야 하는지 나로서는 적잖이 의문이다. 아무튼 이를 바탕으로 기든스는 2001년 중임에 이은 블레어의 3기 연임을 자신한다.

발은 우향우로 돌면서도 입으로는 ‘새로운 중도 좌파’라니 미칠 노릇 아닌가. 그러니 반대파에게―예의 ‘낡은 중도 좌파’에게―쇄신은 전향으로 비칠 수밖에 없을 터이다. “좋은 사회란 국가가 지배적인 역할을 하지 않는 사회이다”(75쪽), “평등은 이뤄질 수 있는 것을 제한한다”(79쪽), “세금 인상은 성공에 대한 체벌로 널리 인식된다”(82쪽), “가난한 사람들의 참여는 경제 성장을 통해 이뤄진다”(133쪽) 등등의 대목은 그 전향의 물증이 될 만하다. 우파가 들으면 무릎을 치며 지당한 말씀으로 모실 것이기 때문이다. 하기는 블레어가 대처 스쿨의 우등생으로 대처의 신임을 받는다는 소문도 있었으니….

그의 비판자들이 야유하듯이 확실히 기든스는 ‘적이 없는 정치’를 설교한다. 그러나 내부에 적을 만들고 있다. 이를테면 “의심할 여지없이 좌파의 일부는 좌파가 정권을 잡았을 때보다 우파가 정권을 잡았을 때 더 행복해 한다”(33쪽)고 해당(害黨) 발언조차 서슴지 않기 때문이다. 우파가 정권을 잡아야 공격이 쉽고 좌파의 결속이 잘된다고 믿는 당내 ‘불평 분자’들에게 엿이나 먹으라는 말인데, 이거 좀 심한 것 아냐? 그러니 좌파보고 어쩌라는 거야? 스스로 불행을 참고라도(?) 좌파가 이기도록 하라는 거야, 좌파의 행복을 위해서(!) 우파가 이기도록 하라는 거야?
천사의 세계가 아닌 인간의 정치에는 적이 있다.

19세기 중엽 『공산당 선언』은 자본주의를 적으로 겨냥했다. 그러나 20세기 말기의 ‘노동당 선언’은 고전적 사민주의, 전통적 중도 좌파 겨냥에 힘을 빼고 있다. 밖의 적이 비키는 대신 안에서 적이 자란다면 그게 무슨 소용인가? 승리를 위해 한발 물러서느냐, 장렬한 전사를 무릅쓰고 신념을 지키느냐? 역사는 항상 문제만 제기할 뿐 그 대답은 사람이 찾아야 한다. 노동당 간판을 앞세운 정당이 단군 이래 처음으로 의회에 입성한 즈음 이 책은 8000원 본전의 몇 곱이나 되는 교사의 지혜와 반면교사의 경고를 우리에게 선사한다.

2004.04.16 17:36 입력 / 2004.04.16 17:43 수정
 
자료출처 :인터넷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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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풍진 세상을 만나서 그런지 지난 연말부터 ‘수 틀리는’ 일들이 부쩍 잦았다.
장창 꼬나들고 풍차로 달려드는 400년 전의 짓거리를 다시 써먹기도 뭐하고,
그러니 스스로 화를 달래는 수밖에 없었다. 그 어름에 지고의 선은 물과 같다는
노자의 상선여수(上善如水) 훈도가 다가왔다.

그래 물처럼 살자! 이 판에 누가 책을 한 권 보냈는데, 아 글쎄 거기 “물 흐르듯
산다는 것은 쉬워 보이지만 그것만큼 어려운 일도 없습니다”(139쪽)라고 했더
라니까. 토머스 머튼의 『장자의 도』(은행나무, 2004)가 그 책이다.

장자 독법은 여럿이다. 1960년대의 김동성은 “이와주자(以瓦注者)는 교(巧)하고
이구주자(以鉤注者) 탄(憚)하며 이황금주자(以黃金注者)는 혼( )하다. 기교일야
(其巧一也)이나 이유소금(而有所衿)이면 즉중외야(則重外也)라. 범외중자(凡外重者)는 내졸(內拙)이라” 식으로 유장하게 읽었다. 이를 김달진은 “기와 쪽을 걸고 내기 활을 쏘면 용하게 맞고, 허리띠 장식이라면 마음에 걸려 조금 덜 맞고, 황금을 걸면 마음이 어지러워 맞지 않는다. 그 기술은 다 같지만 마음에 아끼는 것이 있으면 바깥을 중하게 여기게 된다. 밖을 중히 여기면 대개 속은 보잘것없는 법이다”라고 단아하게 풀었다.

그리고 머튼 식이 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활을 쏘면/ 재능을 한껏 발휘하지만/ 놋쇠고리를 바라고 쏘면/ 이미 긴장한다/ 금상을 걸고 활을 쏘면/ 눈이 흐려져/ 과녁이 두 개로 보이니/이미 제정신이 아니다// 그의 기교는 변함이 없지만/ 상이 그의 마음을 갈라놓는다”(163쪽). 그러니까 이 책은 동양 사상에 심취한 영국인 사제가 장자에 나오는 숱한 해학·우화·경구 가운데 그 정수를 가려내 62편의 시로 번안한 ‘시편’이다. 그는 무엇에 취해 장자를 영어로 옮겼고, 벽안의 독자들은 또 무엇에 반해 지난 40년 동안 25쇄나 찍어가며 이 책을 읽는 것일까?

역자 권택영 박사는 영문학 전공의 여교수다. 장자-영문학-여교수의 조합에 따르는 행여 어떤 삐뚜름한(?) 선입관일랑 붙들어매시라. 각 편에 역자의 단상이 딸렸는데 이것이 심상찮다. 예컨대 “왕십리역에서 국철을 갈아타지 않으려고 슬피 울 까닭도 없고, 왕십리역에 미처 다다르지 않았는데 먼저 내려서도 안 될 것입니다”(64쪽)라는 삶의 관조라든지, “만가(輓歌)도 시도 없고, 슬픔조차도 없이 그저 하얀 돈 봉투만 있습니다. 그리고 이유 없이 목을 잘린 수많은 국화송이들이 슬픔을 대신합니다”(58쪽)라는 장례식 소묘는 그야말로 장자의 경지 아닌가. 게다가 “텔레비전의 9시 뉴스는 스포츠 뉴스나 다름없습니다. 온갖 분쟁을 보여주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31쪽)라니. 어허, 이 책은 탄핵 소추와 촛불 시위 전에 나왔으니 그냥 넘어가자고.

누구나 한번쯤 들었으리라. 장자가 냇물에서 헤엄치는 물고기의 기쁨을 안다고 하자, 혜자는 네가 물고기가 아닌데 어떻게 아느냐고 물었고, 장자는 ‘어떻게 아느냐’고 물었으니 이는 내가 알고 있다는 것을 너도 안다는 뜻이 아니냐고 대꾸하는 그 유명한 얘기를. 이 논쟁에서 머튼은 물론 장자 편이다.

그러나 역자는 “장자는 기표(記表)와 기의(記意)의 틈새가 무한히 열려 있음을 아는 포스트모더니스트요, 혜자는 하나의 기표가 하나의 기의만을 지니고 있다고 믿는 리얼리스트이다”(148쪽)라고 풀이함으로써 기원전 4세기의 장자한테서 포스트모던 징후를 읽어낸다. 그러니 이 책은 장자와 저자와 역자의 공저(!)라고 해야 옳으리라.

고백컨대 나는 이 책의 ‘부실 독자’다. 먼저 “장자의 시는 하루에 아무리 많아도 두 편 이상 읽지 못합니다”(35쪽)라는 역자의 경고를 이 글을 쓰느라 어겼고, 또 “나는 그저 스스로 평화롭기 위해 장자를 읽고”(9쪽)라는 역자의 평화가 대체 내게는 언제 오느냐고 계속 보채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두가 장자 말씀대로 살려고 하면 나라는 어쩌고 경제는 어쩐다지? 김갑수 교수는 『장자와 문명』(논형, 2004) 서문에서 장자 독서에서 무위의 자연 못지않게 유위의 문명에 주목하라면서, 장자는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현실을―이 풍진 세상을―고민한 실천적 지식인이라고 해석했다. 그렇다면 마음놓고 책을 읽자!

*** 정운영

서울대 상과대학을 졸업했으며, 벨기에 루뱅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경기대 교수이며
중앙일보 논설위원을 겸하고 있다.
2004.04.10 14:33 입력

자료출처 : 인터넷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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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가지 여성 콤플렉스

여성을 위한 모임 지음, 현암사, 252쪽, 4800원

일곱 가지 남성 콤플렉스
여성을 위한 모임 지음, 현암사, 244쪽, 6500원

오지 여행가이며 긴급 구호 활동가인 한비야는 우리 사회의 어떤 면을 읽는
 바로미터가 아닐까 싶다. 대학생부터 오십대까지 많은 여성들이 묻지도 않
았는데 뜬금없이 “나는 한비야씨를 좋아해요”라고 말하는 것을 듣곤 한다.
오클랜드에서는 ‘한비야씨처럼 여행하기 위해’ 어학연수를 받는 전직 수학
교사를 만난 일이 있다. 내가 아는 모든 여성은 한씨를 좋아하며, 그 사실을
 말할 때 꿈꾸는 듯한, 또 다른 자기에게 말을 거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한비야에 대한 남성들의 생각은 좀 다르다. 우연한 기회에 한 남성이 “한비야에 대해 관심없고, 그녀의 책을 읽은 적도 없고, 앞으로도 읽을 생각이 없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 후 한동안 남성들에게 한비야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재미 삼아 묻곤 했다.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대답이 가장 일반적이었다. 질문을 받은 후에야 잠시 생각해보다가 불편한 낯빛으로 고개 젓는 이가 있고, 아내가 한비야의 책을 읽고 있을 때 ‘바람의 딸’처럼 떠날까봐 불안감을 느꼈다고 말한 이도 있었다. 단 한 사람, 여성 독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어느 주간지의 젊은 기자만이 “나는 아내가 한비야씨처럼 살았으면 좋겠어요”라고 대답했다.

『일곱 가지 여성 콤플렉스』와 『일곱 가지 남성 콤플렉스』는 각각 1992년과 94년에 ‘여성을 위한 모임’의 이름으로 출판된 책이다. 여성을 위한 모임은 숙명여대를 졸업하고 여성 문제에 관심을 가진 아홉 사람의 모임으로, 사회학·정치학·영문학·가정관리학 등 구성원의 전공은 각각 다르다. 90년대 초반은 이 땅에 여성학이 대중화되기 시작하면서 남성학이라는 학문이 처음 소개된 시기다. 그런 배경에서 출판된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여성학을 이 땅에 사는 여성들의 삶에 적용해 자신들의 삶을 성찰하고, 또 동반자로서 남성의 삶을 천착했다는 점이다. 인터뷰와 실제 조사를 통해 한국 사회를 현장감 있게 분석한 뒤 그 구성원인 남성과 여성의 삶을 심도 있게 읽어 한국적 콤플렉스를 한국식 명칭으로 제시한다.

저자들이 뽑은 일곱 가지 한국적 콤플렉스는 사내 대장부/착한 여자 콤플렉스, 온달/신데렐라 콤플렉스, 성 콤플렉스, 외모 콤플렉스, 지적 콤플렉스, 장남/맏딸 콤플렉스, 만능인/수퍼우먼 콤플렉스 등이다. 단독으로 기술된 명칭은 남녀 모두에게 공동으로 적용되는 것이고 빗금을 긋고 나란히 제시한 두 가지 명칭은 외피는 다르지만 성격은 같은 콤플렉스가 남녀 모두에게 동일하게 존재한다는 뜻이다. 똑같이 억압된 환경에서 똑같이 왜곡된 사회화를 거치면서 비슷한 병리적 성향을 갖게 된 후에도 여성과 남성은 자신들이 가진 병리적 특성을 서로에게 투사할 뿐 소통하려 하지 않는다. 상대방에게서 느껴지는 불편한 요소가 곧 자신에게 내재된 성향이기도 하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서로를 용인하기 쉽지 않을까 하는 게 두 책이 나란히 출판된 의의일 것이다.

한비야는 이 남성중심 사회가 여성에게 요구하는 삶을, 거부한다는 의식조차 없이 거부하며 사는 여성이다. 항상 가정에 머무르며 가족을 돌보는 여성, 사회 구성원을 재생산하는 여성, 자기 목소리를 내지 않는 순종적인 여성의 모습은 한비야의 삶과 거리가 멀다. 무엇보다 그녀는 남성의 영역에 도전한다. 낯선 땅을 찾아 떠나는 용감한 모험가나 세상의 정의를 구현하는 영웅의 삶은 남성의 몫이라는 통념을 전복시킨다. 그녀는 남성이 가지고 있는 콤플렉스의 여러 영역을 미묘하게 건드리는 게 틀림없고, 그것이 남성들이 한비야를 ‘생각하지 않는’ 이유일 것이다.

두 책의 저자들은 남성과 여성이 화해롭게 살 수 있도록 몇 가지 제안을 한다. 여성에게는 이 사회가 ‘여성다움’이라고 특징지워 준 미덕들의 환상을 벗을 것, 그런 다음 자신을 사랑하고, 자기를 표현하고, 자기를 존중할 것을 권한다. 한편 남성들에게는 기존의 ‘남성다움’의 신화가 자신들의 삶을 왜곡시켰다는 사실을 정직하게 받아들이자는 것, 남성다움이 만능이 아님을 인식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할 용기를 갖자고 제안한다.

두 책은 정치 사회학적 분석에 치우쳐 심리학적으로 섬세하게 읽어내는 점이 부족하고, 남성과 여성이 똑같이 가여운 존재라는 당위적 결론을 전제하고 쓴 듯 도식적인 면이 없지 않다는 아쉬움이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은 거의 유일한, 한국 사회의 특성에 입각한 한국적 콤플렉스의 정리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김형경 소설가
2004.04.23 17:52 입력
 
자료출처 : 인터넷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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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인 유전자
리처드 도킨스 지음, 홍영남 옮김.을유문화사, 432쪽, 1만2000원
이타적인 유전자
매트 리들리 지음, 신좌섭 옮김.사이언스 북스, 394쪽

 
인간 정신을 연구하는 이들이 더러 인용하는 사례 중에 테레사 수녀의 꿈 이야기가 있다.


“천사의 손에 쥐어진 황금빛 창의 단단한 끝이 불타고 있었다. 그가 긴 창으로 내 가슴을 몇 차례 찔렀고 끝내 나의 내장을 뚫었다. 그가 창을 뽑았을 때 나는 창자가 모두 달려나오는 듯했고 마침내 신의 사랑에 온몸이 타버렸다. 나는 고통스러워 신음했지만 고통은 끝없는 감미로움을 가져왔고 ….”

20세기 숭고함의 표본인 테레사 수녀는 이 꿈을 종교적 신성 체험이라고 말했지만 정신분석의들은 그것이 다만 억압된 리비도의 표출이라고 해석한다. 마찬가지로 테레사 수녀의 지극한 이타심에 대해서도 또 다른 해석이 가능하지 않을까 의심해 보는 건 나의 외람된 생각이다.

옥스퍼드대 출신의 동물행동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1970년대 중반에 발표한 『이기적인 유전자』는 사회생물학계에서 혁명적인 책으로 꼽힌다. 도킨스에 의하면 어떤 개체의 행동을 결정하는 일관된 기준은 그 소속 집단이나 가족의 이익이 아니며, 그 개체 자신의 이익도 아니고, 오로지 유전자의 이익이라는 것이다. 유전자가 자신의 생존 기계인 생물들에게 주는 단 하나의 지침은 이것이다.

“유전자를 생존시킬 수 있는 최선의 결정이라고 생각되면 무엇이든 하라.”

책은 처음부터 생물이 갖고 있는 희생이나 헌신·본성을 결정하는 데 교육이 미치는 영향을 논외로 하겠다고 선언한 후 일관되게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론의 관점에서 유전자가 어떻게 냉혹하게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행동해 왔는지를 차근차근 밝혀 나간다. 결과적으로 살아남은 유전자만이 길이 후손에게 전달되었기 때문에 그 이기적인 유전자의 집적인 생물들이 어떤 본성을 갖고 있을 것인지를 유추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이기적인 유전자』가 나온 지 20년쯤 후 영국의 과학 저널리스트 매트 리들리가 출간한 『이타적인 유전자』는 『이기적인 유전자』가 끝나는 지점에서 시작한다. 『이기적인 유전자』의 마지막 장에는 인간에게는 ‘문화’가 있어 다른 생물과 구별되며, 순수하고 사심없는 이타주의라는 또 다른 특성이 있다는 데 동의한다는 말로 끝맺고 있다.

매트 리들리는 마치 아버지의 영광에 복무하는 아들처럼 리처드 도킨스의 이론을 인간의 영역까지 확장시키고 사회생물학·경제학·게임이론 등을 동원하여 인간의 이타성을 입증하기 위해 초지일관 정연한 논리를 편다. 인간 정신이 비록 이기적인 유전자에 의해 만들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동시에 인간 정신은 사회적 협동성·신뢰성 등을 지향하도록 진화되어 왔다는 것이다. 주의할 것은 ‘이기적인 유전자’라는 용어와 달리 ‘이타적인 유전자’라는 과학 용어는 없으며, 이 책의 원제는 ‘선행의 기원’ 이다. 결국 인간의 선행이나 관용·희생은 사회적으로 좋은 평판을 얻기 위한 행위이며, 좋은 평판은 그의 사회적 거래에 유익하고, 궁극적으로 자기 이익에 부합한다는 설명이다. 즉 이기적인 유전자가 선택하는 가장 고도의 생존 전략이 이타성이라는 것이다. 그 결론은 인간 정신을 연구하는 이들의 이론과도 일치한다. 자살자의 진정한 욕망은 타인에 대한 살해 욕구이며, ‘너를 사랑한다’는 말은 ‘너의 사랑을 받고 싶다’는 의식의 뒷면이라는.

앞의 책은 과학자의 책이고, 뒤의 책은 과학 저널리스트의 책이다. 앞의 책은 사회생물학 분야의 이론만을 외곬로 칼칼하게 전개해 나가는 데 반해 뒤의 책은 폭넓은 시각으로 다양한 이론을 동원하여 지금 이곳의 인간을 설명하기 위해 애쓴다. 책을 읽고 나면 테레사 수녀의 숭고하고 이타적인 생에 대해서도 심리학적·사회 생물학적·경제학적 이론을 적용하여 분석해 보고 싶은 불경한 욕망이 생긴다. 아무래도 세상을 알아간다는 것은 곧 환상을 벗는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 김형경

1960년 강원도 강릉 태생. 본명 김정숙. 82년 경희대 졸업. 83년 『문예중앙』에 시 당선. 85년 『문학사상사』에 중편 ‘죽음 잔치’ 당선. 대표작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세월』.
2004.04.10 15:26 입력 / 2004.04.11 16:04 수정
 
 자료출처 : 인터넷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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