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 여행가이며 긴급 구호 활동가인 한비야는 우리 사회의 어떤 면을 읽는
바로미터가 아닐까 싶다. 대학생부터 오십대까지 많은 여성들이 묻지도 않
았는데 뜬금없이 “나는 한비야씨를 좋아해요”라고 말하는 것을 듣곤 한다.
오클랜드에서는 ‘한비야씨처럼 여행하기 위해’ 어학연수를 받는 전직 수학
교사를 만난 일이 있다. 내가 아는 모든 여성은 한씨를 좋아하며, 그 사실을
말할 때 꿈꾸는 듯한, 또 다른 자기에게 말을 거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한비야에 대한 남성들의 생각은 좀 다르다. 우연한 기회에 한 남성이 “한비야에 대해 관심없고, 그녀의 책을 읽은 적도 없고, 앞으로도 읽을 생각이 없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 후 한동안 남성들에게 한비야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재미 삼아 묻곤 했다.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대답이 가장 일반적이었다. 질문을 받은 후에야 잠시 생각해보다가 불편한 낯빛으로 고개 젓는 이가 있고, 아내가 한비야의 책을 읽고 있을 때 ‘바람의 딸’처럼 떠날까봐 불안감을 느꼈다고 말한 이도 있었다. 단 한 사람, 여성 독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어느 주간지의 젊은 기자만이 “나는 아내가 한비야씨처럼 살았으면 좋겠어요”라고 대답했다.
『일곱 가지 여성 콤플렉스』와 『일곱 가지 남성 콤플렉스』는 각각 1992년과 94년에 ‘여성을 위한 모임’의 이름으로 출판된 책이다. 여성을 위한 모임은 숙명여대를 졸업하고 여성 문제에 관심을 가진 아홉 사람의 모임으로, 사회학·정치학·영문학·가정관리학 등 구성원의 전공은 각각 다르다. 90년대 초반은 이 땅에 여성학이 대중화되기 시작하면서 남성학이라는 학문이 처음 소개된 시기다. 그런 배경에서 출판된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여성학을 이 땅에 사는 여성들의 삶에 적용해 자신들의 삶을 성찰하고, 또 동반자로서 남성의 삶을 천착했다는 점이다. 인터뷰와 실제 조사를 통해 한국 사회를 현장감 있게 분석한 뒤 그 구성원인 남성과 여성의 삶을 심도 있게 읽어 한국적 콤플렉스를 한국식 명칭으로 제시한다.
저자들이 뽑은 일곱 가지 한국적 콤플렉스는 사내 대장부/착한 여자 콤플렉스, 온달/신데렐라 콤플렉스, 성 콤플렉스, 외모 콤플렉스, 지적 콤플렉스, 장남/맏딸 콤플렉스, 만능인/수퍼우먼 콤플렉스 등이다. 단독으로 기술된 명칭은 남녀 모두에게 공동으로 적용되는 것이고 빗금을 긋고 나란히 제시한 두 가지 명칭은 외피는 다르지만 성격은 같은 콤플렉스가 남녀 모두에게 동일하게 존재한다는 뜻이다. 똑같이 억압된 환경에서 똑같이 왜곡된 사회화를 거치면서 비슷한 병리적 성향을 갖게 된 후에도 여성과 남성은 자신들이 가진 병리적 특성을 서로에게 투사할 뿐 소통하려 하지 않는다. 상대방에게서 느껴지는 불편한 요소가 곧 자신에게 내재된 성향이기도 하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서로를 용인하기 쉽지 않을까 하는 게 두 책이 나란히 출판된 의의일 것이다.
한비야는 이 남성중심 사회가 여성에게 요구하는 삶을, 거부한다는 의식조차 없이 거부하며 사는 여성이다. 항상 가정에 머무르며 가족을 돌보는 여성, 사회 구성원을 재생산하는 여성, 자기 목소리를 내지 않는 순종적인 여성의 모습은 한비야의 삶과 거리가 멀다. 무엇보다 그녀는 남성의 영역에 도전한다. 낯선 땅을 찾아 떠나는 용감한 모험가나 세상의 정의를 구현하는 영웅의 삶은 남성의 몫이라는 통념을 전복시킨다. 그녀는 남성이 가지고 있는 콤플렉스의 여러 영역을 미묘하게 건드리는 게 틀림없고, 그것이 남성들이 한비야를 ‘생각하지 않는’ 이유일 것이다.
두 책의 저자들은 남성과 여성이 화해롭게 살 수 있도록 몇 가지 제안을 한다. 여성에게는 이 사회가 ‘여성다움’이라고 특징지워 준 미덕들의 환상을 벗을 것, 그런 다음 자신을 사랑하고, 자기를 표현하고, 자기를 존중할 것을 권한다. 한편 남성들에게는 기존의 ‘남성다움’의 신화가 자신들의 삶을 왜곡시켰다는 사실을 정직하게 받아들이자는 것, 남성다움이 만능이 아님을 인식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할 용기를 갖자고 제안한다.
두 책은 정치 사회학적 분석에 치우쳐 심리학적으로 섬세하게 읽어내는 점이 부족하고, 남성과 여성이 똑같이 가여운 존재라는 당위적 결론을 전제하고 쓴 듯 도식적인 면이 없지 않다는 아쉬움이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은 거의 유일한, 한국 사회의 특성에 입각한 한국적 콤플렉스의 정리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김형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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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4.23 17:52 입력
자료출처 : 인터넷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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