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에서 걸려온 전화
고호 지음 / 델피노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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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에서 걸려온 전화’는 북한과 이산가족의 이야기를 판타지적인 설정을 통해 흥미롭게 그려낸 소설이다.

어느 날 걸려온 전화가 평양에서 온 것이라며 흥미롭게 이야기를 시작하는 이 소설은 사실 소재만 보면 기존의 다른 이야기를 배낀 것에 가깝다. 사소한 동작오류 등이 겹쳐 전화가 잘못 연결된 것이 아니라 무려 시공을 초월한 것임이 곧 밝혀지는데, 이런 설정은 이미 영화 ‘프리퀀시(Frequency, 2000)’에서 똑같이 선보였던 것이기 때문이다.

재밌는 것은 이야기의 배경 연대가 이 후 해당 영화를 리메이크한 CW 드라마 ‘프리퀀시(Frequency, 2016~2017)’와 똑같이 1996년과 2016년이라는 거다. 방영일에 맞춰 현재를 2016년으로 설정한 드라마와 ‘고난의 행군’ 등 굵직한 사건을 담기위해 과거를 1996년으로 설정한 듯한 소설은 딱히 연광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만, 년도 뿐 아니라 20년 차이라는 것까지 똑 같아서 일부러 그렇게 설정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단지 설정 뿐 아니라 장면 역시 기존 작품에서 거의 그대로 가져온 것이 있는데, 어쩌면 이런 것들은 저자가 일종의 오마쥬로써 넣은 것이 아닌가 싶다.

기왕에 만들어진 설정을 답습한 작품은 더욱 조심해야 하는데, 그건 잘못하면 소위 아류작이나 표절작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야기 못지않게 아이디어도 중요하다는 건데, 다행히 이 소설은 그 나머지 부분인 이야기가 상당히 준수한 편이다. 소위 말하는 ‘현존하는 유일한 분단국가’라는 것을 살려서 북한의 실황이나 이산가족의 아픔을 잘 담았으며, 무엇보다 이야기 속 인물들의 서사나 그걸 풀어내는 방식도 좋다.

현재와 과거 이야기를 번갈아가며 풀어 놓음으로써 두 이야기가 동시에 진행되는 느낌을 살리는 한편, 각각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는 부분도 서로 보완하도록 잘 짰다. 현재의 주희가 ‘새터민 동지회’에 올렸다는 소설을 연상케하는 과거이야기나 마치 영호화의 대화를 녹취록처럼 적은 주희의 이야기도 각각의 이야기에 잘 어울렸다.

소설은 살짝 미싱 링크를 깔아두고 전개된다. 그래서 이야기를 읽는 중에는 ‘왜?’라는 의문과 마뜩잖음을 느끼게도 하지만, 마지막에는 그걸 멋지게 해소해서 작은 감탄을 이끌어 내기도 한다.

실제 있는 인물이나 일어났던 사건을 소설에서 인용하기도 했는데, 그것들도 꽤 잘 어울렸다.

담아낸 메시지도 좋다. 단지 이슈들만 담아낸 게 아니라 왜 이산가족이나 통일 문제가 중요한지도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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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이여트
오마르 하이염 지음, 최인화 옮김 / 필요한책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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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르 하이염(عمر الخيام / Omar Khayyám)’ ‘로버이여트(رباعيات الخيام / Roba’iyat-e Khayam)’는 외국에서는 이미 꽤 유명한 시집이다.

19세기 중반 유럽에 소개되면서 많은 시인들에게 영향을 끼친 이 시집은, 한국에서도 벌써 네차례나 영어 중역본으로 소개된 바 있다. 그걸 이번에 처음으로 페르시아어 원전을 기반으로 번역한데다, 원문까지 같이 수록해서 여러모로 소장가치를 높였다.

제목인 ‘로버이여트’는 ‘로버이’의 복수형으로, 로버이가 ‘4행시’를 의미하므로, ‘4행시집’ 정도의 뜻이라고 보면 된다. 그래서 각 시는 짧고, 그만큼 함축적인 내용들이 많다.

게다가 일부에는 중세 페르시아의 감성이 들어 있기도 하다. 우리가 속담을 인용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안그래도 썩 보기 편하지 않은 글이 더 어렵다. 고어와 같은 문체에 시라는 문학의 형태, 거기에 문화차이까지 겹쳐져서다. 그래서 일부에는 시만큼이나 긴 주석이 달려있기도 하다.

주석이 많아서인지 개중에는 잘못 될 것도 있었는데, 112번 로버이에 달린 “케이고버드에 대한 설명은 20번 로버이 참고.”라는 것이 그거다. 막상 20번에 가보면 그런 주석은 안달려 있거든. (케이고버드에 대한 주석은 52번 로버이에 달려있다.) 오타라고 보기엔 너무 다른데, 편집 과정에서 입력이나 치환을 잘못 한 게 아닌가 싶다.

시집 치고는 꽤 주석이 달린 편이다만 그렇다고 하나하나에 대한 의미를 확실히 알 수 있을만큼 세세하거나 충분히 달린 것은 아니어서, 생각보다 갸우뚱하게 되는 시도 많다. 몇몇 해주가 달린 걸 보면 상당히 심오한 고찰을 담고있는데, 그걸 미처 알아채지 못하는 게 아쉽다. 책 중에는 ‘주석판’이라고 하여 이야기의 배경이나 숨은 뜻이나 비유 등을 상세하게 풀이해 담은 것도 있는데, 기왕 할거 그렇게 더 확실하게 했으면 더 좋았겠다.

무려 178수나 되는 시들엔 꽤나 짙은 허무와 냉소가 들어있다. 하지만, 그렇게 우울하지만은 않은데, 저자가 그걸 뱉어낸 방식이 해학적이어서다. 한국 사람에게 익숙하게 바꿔보자면, ‘인생 뭐 있어?’라거나 ‘술이나 마셔!’라는 식이거든. 속된말로 ‘술과 여자(남자)는 인생의 의미’라고도 하는데, 그걸 철학자 식으로 토해낸 취중진담 같기도 하다.

심지어 몇몇은 술을 마시는 변명을 장황하게 주저려 논 것 같다. 어렵거나 곤란한 일이 있으면 ‘됐고, 술이나 마셔!’하고, 슬프고 괴로운 일이 있으면 ‘그러니까, 술이나 마셔!’한달까. 그게 묘하게 이 시집을 철학적인 시의 모양새를 한 애주가(愛酒歌)처럼 보이게도 해 보다보면 슬며시 웃음도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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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맨은 어떻게 돌연변이가 되었을까? - 대중문화 속 과학을 바라보는 어느 오타쿠의 시선 대중문화 속 인문학 시리즈 3
박재용 지음 / 애플북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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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맨은 어떻게 돌연변이가 되었을까?’는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여러 설정들을 과학적으로 풀어본 책이다.

책에서 다루는 이야기는 총 19가지로, 서로 다른 영화에서 가져온만큼 그 분야도 다양해서 흥미롭게 볼 수 있는 것들이 많다.

저자가 주제를 많은 사람들이 본 유명한 영화에서 가져와서 더 그렇다. 그 뿐 아니라 각 주제를 열때 영화썰로 시작하기도 하는데, 이게 앞으로 무슨 이야기를 할지 짐작케하는 한편 영화의 장면(또는 배경)을 떠올리게 해서 그걸 어떻게 풀어냈을지 더 관심을 갖게한다.

뒤에 이어지는 과학적인 내용들도, 그것만을 기술했을 때와는 달리, 계속 영화와 연결해서 생각하게 되므로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영화가 과학적인 사실과 다른 부분을 꼽거나, 그럼에도 왜 영화에서는 그런 모습으로 그렸는지 얘기하기도 하고, 그 후에 새로운 발견을 통해 알게된 수정된 이론은 무엇인지를 알아보는 것도 그와 비교하며 볼 수 있는 영화라는 대상이 있기에 더 흥미롭다. 어렵게 느끼기 쉬운 과학 이야기를 참 괜찮은 방식과 구성해 잘 풀어낸 셈이다.

다루는 주제가 영화를 보면 한번쯤 해볼만한 의문을 담고있어서 그것을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다는 것도 좋다.

그 중에는 진지하게 생각하면 어려운 것들도 있다. 그러나 책의 방향성이 쉽고 재미있게 읽는 것에 있다보니 전체적으로 짧고 가볍게 다룰 뿐 깊은 내용까지 들여다보지는 않는다. 그래도 어설프게 해서 중간에 애매하게 걸쳐있는 것보다는 나은 것 같기도 하다.

특이한 것은 이론이나 가설을 얘기할 때도 마치 그게 증명된 이야기인 것처럼 단정적으로 말한다는 거다. 이렇게 뒤를 두지않는 화법은 상황을 단순화하여 그 한가지에만 더 집중할 수 있게 하기도 하지만, 그게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 만큼 과학을 담은 책으로서는 좀 그렇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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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밥 자작 감행 - 밥도 술도 혼자가 최고!
쇼지 사다오 지음, 정영희 옮김 / 시공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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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지 사다오(東海林 さだお)’의 ‘혼밥 자작 감행(ひとりメシの極意)’은 소소한 일상의 먹거리에 대해 썰을 풀어놓는 음식 에세이다.

책에는 딱히 거창한 이야기가 없다. 먹는 음식도 (물론 일본 기준이기는 하지만) 대게 흔하게 볼 수 있는 것들이며, 가격도 부담없는 수준이다. 가끔 무리해서 먹는다고 하는 것도 2~3만원 정도에 그친다. 그런 점이 묘하게 서민적이어서 친근한 느낌을 준다.

저자는 그런 것들을 무엇 하나 습관적으로 먹어 넘기지 않고, 그 음식이 담고있는 맛이나 매력을 한껏 받아들인다. 보고있으면 참 어떻게 그런 소소한 것들을 저렇게까지 즐기고 또 행복해 할 수 있는건지 새삼 놀랄 정도다. 단지 이야깃거리를 꺼내기 위해서 쥐어 짜내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그 음식들을 즐기고 있다는게 느껴지는지라 읽고있는 나 자신도 제법 훈훈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저자는 그런 자신의 행복을 위해 때로는 일반적으로 하지 않는 방식으로 먹기도 한다. 조리를 조금 다른 방식으로 하거나, 먹는 방법을 바꾸거나, 때로는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기도 한다.

그것들은 어떻게 보면 ‘굳이?’ 싶은 작은 차이기도 한데 또 보고있으면 묘하게 흥미롭기도 하다. 다음에 나도 그 음식을 먹게된다면 한번 시도해볼까 싶어진달까. 이야기 뿐 아니라 그걸 어떻게 전달할지도 생각해서 담아야 하는 만화를 그리는 사람이라 그런지 확실히 이야기를 풀어내는 재주가 좋은 듯하다.

이 책은 당초 주간지에 연재했던 글들을 발췌해 엮은 것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각각의 이야기들은 짧고 읽기에도 편한 편이다. 편집도 거기에 한몫해서, 국립국어원의 외래어 표기법만을 따르지 않고 널리 쓰이는 용어를 병기 한 것이나, 조금 생소할 수 있는 것들에 주석을 달아둔 점 등이 센스있다.

연재글이었던 만큼 때때로 그 시기의 화두거리로 이야기를 시작하기도 하는데, 그에 대한 정보는 없어서 언제적에 있었던 무슨 일을 두고 꺼낸 얘기인지는 알기 어렵다. 주석 달기가 여의치 않았다면, 검색이라도 해보게 원 연재일이라도 표기해줬으면 싶어 괜히 아쉽다.

책 제목이 ‘혼밥…‘이고, 저자 자신도 그런 말을 하기는 한다만 딱히 혼밥에 매여있는 책은 아니다. 음식을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 그런 경험을 나누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든 재미있게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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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업 - 하 - 반룡, 용이 될 남자
메이위저 지음, 정주은 옮김 / 쌤앤파커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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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위저(寐語者)’의 ‘제왕업(帝王業) 下’는 제왕의 패업을 이뤄 나가는 이야기의 완결편이다.

역사소설이라고는 하지만, 처음부터 거의 끝까지 한 사람의 시점으로 그리기 때문에 조금은 무협지같은 느낌도 있다. 주인공들의 위업을 보여주기 위해 이들을 상당한 능력자로 그리기 때문에 더 그렇다.

그래서 주인공인 ‘왕현’은 때때로 시대와 어긋난 느낌을 주기도 한다. 나쁘게 말하면 시대를 읽는 능력이 떨어지는 것인데, 반대로 좋게 말하면 시대를 앞서 간 것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그녀에게 다행인 것은 자신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해줄 권력도 있었다는 거다.

어쨌든 그런 그녀이기에 더욱 기왕 주인공인 그녀가 이야기의 주축에 서있지 않다는 것은 조금 아쉬웠다. 이는 특히 상권에서 두드러졌었는데, 성장하면서 나아지기는 한다만 그래도 여전히 ‘소기’라는 주인공의 옆에 선 인물이라는 느낌이 가시지는 않는다.

당연히 ‘남편을 패왕으로 세우는 이야기’라고 보는 관점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기엔 소기 그 자신이 너무나도 뛰어난 무력과 지략, 정치력을 갖고있어 패왕으로서 충분하다는 것을 여러번 보여주기 때문이다.

역사적인 이야기 뿐 아니라 둘의 로맨스에도 꽤 분량을 할애해서 그런지 인간적으로도 크게 그릇됨이 없고 남자로서도 매력적인 것으로 그렸는데, 정략결혼으로 시작했음에도 호감을 갖게 하기 위해서 붙인듯한 그런 묘사들이 반대로 더 왕현의 존재감을 작게 만들기도 한다.

남성을 주인공으로 그리자니 좀 식상하고, 그렇다고 여성인 왕현을 패왕으로 그리기엔 시대와 너무 맞지 않고, 어쩔 수 없이 절충해서 나온 게 지금같은 모습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내용만 보면 전쟁에서부터 정치, 음모, 사랑까지 상당히 많은 것들을 잘 담았다. 하지만 그런 방대함에 분량이 못미치는 면이 있어 때때로 허전함도 느낀다. 그게 이 소설을 조금은 십수권짜리의 축약판처럼 보이게도 한다.

제목이 ‘제왕업’이지만 왜 제왕의 패업을 이루어야만 하는가도 그렇게까지 설득력있게 보여주지는 못한다. 작중에서 언급하는 이상이나 긍정적인 모습들이 그에 대한 해답이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다만, 그건 정복자의 입장에서나 통하는 말이지. 그 때문에 멸망당한 나라와 민족들에게도 과연 그들의 패업이 그렇게 긍정적으로 보였을까.

평소에도 ‘하나의 중국’이라는 것은 일종의 제국주의 사상이라고 생각하여 썩 좋지 않게 생각했었는데, 이들의 제왕업도 그와 유사한 면이 있어보여 좀 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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