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문 정도는 열 수 있어
유키나리 카오루 지음, 주원일 옮김 / 제우미디어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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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키나리 카오루(行成薫)’의 ‘우리도 문 정도는 열 수 있어(僕らだって扉くらい開けられる)’는 특별해 보이면서도 사소한 초능력을 가진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소설이다.

일본 소설에는 지역색이라고 할만한 특징들이 있다.

그 중 하나는 아이디어다. 어떻게 보면 흔한 소재인데도 그것을 작가만의 개성으로 변조하고 비틀어 작품에 담아내어 신선하고 때론 작은 감탄을 자아내기도 한다. 그래서 추리소설처럼 아이디어 그 자체의 중요성이 높은 문학에서 강점을 보인다.

다른 하나는 아기자기함으로, 이건 이야기를 풀어내는 능력과도 관련이 있다. 소소하면서도 마음을 동하게 만드는 이야기들이나 괜히 주인공에 감정이입을 해 응원을 하게 되는 이야기들은 어느새 소설에 빠져들게 만들기도 한다.

이 소설은 내가 생각하는 일본 소설의 그러한 특장점을 모두 갖고있다. 초능력이라고 하는 이제는 다소 뻔한 소재를 다루는 방식 부터가 그렇다. 그 따위로 제한이 있는 힘이라니, 신이 주는 선물이라 하더라도 썩 기쁘지는 않을 것 같다. 심지어 때론 생활에 불편함을 끼치기까지 하는지라 소설 속 주인공들 역시 조금은 계륵처럼 여기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그런 그들이 보여주는 이야기도 현실에서 크게 벗어나는 대단하거나 뻑적지근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소설 속 누군가가 대놓고 말하는 것처럼, 초능력이 없었어도 충분히 해낼법한 소소하고 일상적인 것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거기서 굳이 초능력을?’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을만큼 초능력을 활용하는 시기나 방법을 잘 녹여냈으며, 전체적인 이야기의 흐름 역시 잘 짰다. 이야기는 조금 소년물이나 청춘물을 보는 것 같기도 해서 괜히 잔잔한 미소를 머금게도 한다.

미묘한 초능력을 가진 다섯명의 이야기는 마치 단편처럼 개별적인 완결성을 갖고 있다. 그래서 각각을 따로 떼어놓고 봐도 그 자체로 충분히 볼 만하다. 거기에 ‘축구’와 ‘오른쪽으로 10센치’, ‘미츠바 식당’과 ‘스태정’ 같은 것들을 계속 언급함으로써 묘한 접점을 느끼게 해, 나중에 어떤 이야기로 이어지게 될지 궁금증을 갖게 하며, 마지막 에피소드를 역시 더욱 흥미롭게 만든다. 전체적인 구성도 꽤 잘 한 셈이다.

별개인 것 같은 이야기를 풀어놓다가 나중에 하나의 이야기로 엮는 방식은 의외로 단편집이나 동일세계관을 공유하는 작가의 소설 시리즈 등에서 자주 사용되기도 하는데, 이 책의 것은 ‘초능력’이라는 소재도 있어서 살짝 ‘어벤져스’를 연상케도 한다. 그들이 모종의 사건을 함께 해결하는 것이라서 더 그렇다. 그런 이야기를 통해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 사소하지만 특별한 능력으로 무엇가를 이뤄내는 것도 꽤 잘 그렸다.

여섯편의 이야기를 통해 이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트라우마를 극복해 내는가 하면, 자신감이나 삶의 의의를 되찾기도 한다. 그게 이 소설을 조금은 성장 소설처럼도 보이게 한다.

소재를 다루는 방식이나 구성 뿐 아니라, 이야기 자체도 잘 써서 읽는 내내 재미있다. 라이트노벨이라는 분류처럼 너무 무거운 주제 따위로 흘러가지 않는 것도 마음에 든다. 부답없이 가볍게 읽어보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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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락 댄스
앤 타일러 지음, 장선하 옮김 / 미래지향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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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 타일러(Anne Tyler)’의 ‘클락 댄스(Clock Dance)’는 인생의 또 다른 시작을 잔잔한 문체로 그려낸 소설이다.

대체 어떤 소설일지 궁금했다. 제목인 ‘클락 댄스’는 무엇이며, 수십년의 세월에 걸쳐서 작가가 하려는 이야기는 또 어떤 걸일지 말이다.

두번째 인생을 그리는 많은 이야기들이 그것을 좀 더 확실히 보여주기 위해서 극적인 변화를 선택하는 것에 비하면 이 소설은 점잖은 편이다. 그저 한 인간의 인생을 중요한 부분만 꼽아서 보여주는데 심지어 어디에나 있을법한 흔하고 딱히 두드러지는 게 없는 인물인지라 그의 이야기는 다소 심심하기까지 할 정도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그가 놓쳤던 것이나 왜 그렇게 했는 물론, 늙으막에 이르러서도 다시금 해보고 싶어하는지 역시 꽤 공감이 가게 한다.

생각해보면 소설을 크게 2부로 나누어 이야기를 풀어낸 게 더 그렇게 만들지 않았나 싶다.

소설은 총 4개의 시간대를 다루고 있는데, 주요한 이야기는 대부분 2부인 2017에 담겨있다. 1부인 1967, 1977, 1997은 그걸 위한 밑밥 깔기라고 할 수 있는데, 각각은 이야기가 짧고 시간차고 있기 때문에 이야기가 매끄럽게 연결되지도 않으며 그 덕에 몇몇은 지나친 맥거핀처럼 보이게도 한다. 그게 1부를 ‘굳이 필요했나’ 싶어 보이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게 있었기에 2부에서 보이는 주인공의 행동이나 결정들에 미묘한 개연성을 안겨준다. 대놓고 그리지는 않았기에 똑부러지게 ‘이거다’하는 것은 없지만, 보면 충분히 그럴만도 하지(그럴때도 됐지) 싶게 만든다는 말이다. 이런 점은 참 묘하게 잘 썼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픽션으로서 얼마나 잘 짜여져 있느냐고 한다면 썩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그 미묘함을 쌓기 위해 적당히 버려지는 것들도 많기 때문이다. ‘지나친 맥거핀 같다’고 한 것도 그래서다. 그게 더 현실적인 인생 이야기처럼 보이게도 한다만, 대신 그렇게까지 만족스러움을 남기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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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에 이르는 병
구시키 리우 지음, 현정수 옮김 / 에이치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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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시키 리우(櫛木 理宇)’의 ‘사형에 이르는 병(死刑にいたる病)’은 연쇄살인마와 얽힌 진실을 추적해 나가는 미스터리 소설이다.


소재부터가 흥미를 끈다. 연쇄살인인마라는 것도 그렇지만, 심지어 그가 한 건의 살인사건에 대해서 누명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약간의 접점이 있었을 뿐인 ‘마사야’는 어느날 집을 거쳐 전달된 편지를 통해 감옥 면회실에서 그에 대한 조사를 요청받는다.

어찌보면 어처구니가 없다. 접점이라고 해봐야 빵집 주인과 그곳에 자주 다녔던 손님으로서의 것 뿐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고작 학생에 불과한 마사야가 해봐야 뭘 얼마나 할 수 있을 것이며, 설사 그 사건의 진실을 밝혀낸다고해도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기왕에 밝혀진 살인 건들이 있으니 사형을 무를 수 있는 것도 아니요, 심지어 그게 누명이라는 것을 사법당국을 거슬러 설득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묘하게 자신감을 잃고 실의에 빠져있던 때여서였을까. 마사야는 불쑥 그래도 좋다면 해보겠다고 해버린다.


여기서부터 살짝 기대감이 올라갔는데, 이 과정을 작가가 굉장히 매끄럽게 연결했기 때문이다. 주인공의 심리나 닥쳐있는 환경들이 그러한 방향으로 가도 전혀 어색하지 않도록 잘 담았는데, 이건 그 이후 전개도 마찬가지다.

변호사를 사칭하며 현장조사를 하는 것이나, 그러면서 조금씩 새로운 단서들을 접하고 자신이 모르던 것을 알게 되는 것은 물론, 주인공이 점차 변화하는 것까지 처음 이 사건에 뛰어들게 되는 것을 그릴 때 그랬던 것처럼 정말 그럴듯 하게 잘 풀어냈다.

이야기의 마무리도 꽤 괜찮다. 시작부터 심리적인 면을 꽤 강조해서 그렸었는데, 끝까지 그런 면을 잘 유지해서 전체적으로 완성도를 높이지 않았나 싶다.

심리적인 면을 중시했다보니 생각보다 시원하게 터지거나 짜릿한 장면은 없다. 대신 착 가라않은듯한 잔잔한 느낌이 지속되는데, 그런 점도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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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한잔, 안주는 이걸로 하시죠 - <고독한 미식가> 원작자의 제멋대로 반주 가이드
쿠스미 마사유키 지음, 박정임 옮김 / 살림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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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미 마사유키(久住 昌之)’의 ‘일단 한잔, 안주는 이걸로 하시죠(ひとり飲み飯 肴かな)’는 다양한 음식과 술을 기분에 따라 적어낸 에세이다.


나는 이 책에 상당히 기대를 했었는데, 그건 저자가 그 ‘고독한 미식가’의 작가이기 때문이다.

그가 만화를 통해 보여준 다양한 미식 기행들은 경험이 녹아있는 듯한 맛 표현이 꽤 좋고, 짤을 만들어낼 만큼 인상적인 장면들도 있어 나름 보는 맛도 있었다.

만화를 원작으로 한 TV드라마도 소소해 보이지만 끌리는 맛이 있었는데, 각 에피소드가 끝나고 나면 보너스처럼 나오는 장면도 눈에 뗬다. 보너스 영상에서는 작가가 직접 등장해 작품에 나왔던 가게에 실제로 가서 먹으면서 감상 등을 얘기하는데, 그가 말하는 것이나 표정 등을 보면서 거 참 음식을 맛있게 즐기는 사람이라는 생각도 많이 했다.

그랬기에 이 책에도 기대를 한거다.

특정한 기대를 하고 본 걸로 치면, 어느 정도는 충족이 된 셈이다. 이 책에서도 다양한, 그것도 쉽게 접할 수 있을만한, 음식들을 소개하며 그것의 맛이나 매력 등을 꽤나 잘 풀어낸다. 때로는 시험적인 시도를 하기도 하고, 그 결과로 ‘이렇게는 먹지 않는게..’라는 다소 힘빠지는 결론을 내리기도 한다만 그런 것들도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다만, 말하는 방식은 좀 별로였다. 마치 혼자서 만담이라도 하듯 얘기하다가 딴죽을 걸다가 하는데, 이걸 괄호가 열렸다 닫혔다 하는 글로 보자니 영 익살스럽게 장난치는 듯한 느낌이 제대로 살지도 않고 그저 번잡해 보이기만 했기 때문이다.

저자의 말을 거의 살리려고 해서인지 일본어에서만 있는 반말 존댓말 끊기 등이 섞인 문장들도 거의 그대로 번역한 느낌인데, 이것도 한국어와는 어울리지 않아서 좀 장난하는 것 같기도 했다.

책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1부가 거의 그런 식인데, 확실이 이 쪽은 개인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듯하다.

경험담을 담은 2부와 저자 자신의 생각을 풀어낸 3부는 1부와는 그 분위기가 전혀 달라서 마치 꽤 긴 공백을 두고 글을 쓴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게한다. 1부의 그 까불거리는 점과 대비되어 더욱 진지하고 묵직한 에세이처럼 보이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쪽이 더 취향에 맞았다.

커피로 마무리하며 조금은 들떴던 마음을 가라않힌다던가 하는 이야기도 좋았고, 마지막 한 끼는 무엇으로 하고 싶으냐 하는 것처럼 나 자신과 연결해 생각해볼만한 것도 있어서 마음에 들었다.



* 이 리뷰는 리뷰어스 클럽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고 작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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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베르베르 인생소설 - 나는 왜 작가가 되었나
다니엘 이치비아 지음, 이주영 옮김 / 예미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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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이치비아(Daniel Ichbiah)’의 ‘베르나르 베르베르 인생소설(Bernard Werber, le roman d’une vie)’은 인기 작가 중 한명인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이 책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인생을 담은 일종의 전기라고 할 수 있다. 책은 그의 어린 시절에서부터 최근까지를 순서대로 담았는데, 그게 이제까지는 우리가 알지 못했던 인간으로서의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알게 해준다.

작가가 이미 꽤 나이도 있고 작품도 여럿 낸 인물이다 보니 상당수 사람들은 그의 성공한 작가로서의 모습만 알고 있는 경우도 많은데, 그의 젊은 시절은 성공과는 꽤나 거리가 멀어서 조금 낯선기도 하다.

어린시절에는 과학자를 꿈꾸는가 하면, 성적이 안되서 꿈을 포기하기도 하고,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한다던가, 먹고살기 위해서 일에 부대끼며 살기도 했던 이야기들에선 천상 작가인 줄 알았던 그가 꽤나 흔한 주변인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신문을 내서 인기리에 판매를 한다던가, 비록 인정받지 못하거나 공로를 빼앗기기는 하지만 남들과는 다른 글을 쓰기도 하고, 오롯이 자신의 생각대로 쓴 것은 아니라곤 해도 그토록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을 완성하기도 한다. 이런 점들이 흔해빠짐 속에서도 여전히 눈부신 그만의 무언가를 느끼게 한다.

그렇게 오랜 세월에 걸쳐 완성해낸 소설 ‘개미(Les Fourmis)’가 많은 출판사들로 부터 거절을 당했다는 것은 솔직히 좀 의외다. 출간 후 소설에 많은 칭찬을 받았던 걸 생각하면 더 그렇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해도 되는게, 소설 매니는 그 전까지 (대외적으로는) 전혀 소설과 연이 없던 사람이 심지어 당시 사람들에게는 전혀 흥미롭지 않던 개미를 소재로 쓴 소설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만큼, 나중에 그걸 두고 서로 가져가려고 경쟁을 하는 모습이 조금은 코미디 같기도 했다.

오랫동안 거절당하다가 출간 후 결국 대박을 터트리는 경우가 이 외에도 많은 걸 보면 책 출간이란 단지 작품자체만이 아니라 시대나 작품을 이해해주는 출판 관계자와의 만남 등이 맞아 떨어져야 되는 것 같기도 한데, 작가가 꽤나 많은 버전을 썼었다는 걸 보면 그 때에 이르러서야 개미가 대중성까지 겸비한 작품으로 성숙했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래도 역시, 출판을 위해 줄인 게 아닌, 원래의 장편소설 개미는 어떤 모습이었을지 궁금하다.)

‘인생소설’이라고 했지만, 이 책은 형식 면에서는 인터뷰집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저자가 작가와 지인들의 인터뷰 내용을 모두 소설형식으로 재구성한 게 아니라 그들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비율도 꽤 높아서, 소설과 인터뷰가 반반 섞인 느낌도 든다.

개인적으로는 이게 썩 괜찮았는데, 전기 소설들이 소설적 재미를 위해 가끔 사실을 왜곡하거나 과장하기도 해서다. 이 책은 절반 정도 인터뷰의 모습을 띄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과장이 느껴지지 않는데, 그게 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진솔한 인생을 보여주는 것 같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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