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구스티누스에게 삶의 길을 묻다 - 교회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철학자이자 신학자
박승찬 지음 / 가톨릭출판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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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가톨릭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나는 성인들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아우구스티누스라는 성인도 사실 처음 들어보았기에, 그가 어떤 삶을 살았고 무엇을 생각했던 사람인지는 더더욱 잘 알지 못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저 소설처럼 편안하게 읽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 책을 골랐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삶을 따라가다 보니, 단순히 한 성인의 생애를 알아가는 것 이상의 질문을 만나게 되었다. 그것은 결국 “나는 누구인가?”,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내가 걸어온 삶 속에서 하느님은 어디에 계셨는가?”라는 질문이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을 찾는 방법으로 자신의 ‘기억’을 되돌아보라고 이야기한다. 여기서 기억한다는 것은 단순히 지나간 일을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살아온 삶을 다시 바라보고 성찰하는 일이다. 내가 어디에서 잘못된 길을 선택했는지, 어떤 순간에 기뻤고 무엇 때문에 아팠는지, 어떤 선택을 후회하는지를 돌아보는 것이다.

하지만 그 성찰은 단순히 과거의 나를 판단하고 잘잘못을 가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과정을 통해 그동안 내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하느님의 이끄심을 발견하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나 역시 살아오면서 많은 일을 경험했다. 당시에는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할 수 없었던 일도 있고, 내가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 생각했던 순간도 있다. 그때는 그저 실패나 후회라고만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 다시 돌아보면 그 경험을 통해 내가 조금 달라져 있음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래서 과거를 돌아본다는 것은 단순히 '나는 무엇을 잘못했는가?'를 묻는 것이 아니라, '그때의 나를 하느님께서는 어떻게 바라보고 계셨을까?', 그리고 '그 순간에도 하느님께서는 나를 어디로 이끌고 계셨을까?'를 묻는 일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생각은 아우구스티누스가 하느님과 창조를 바라보는 방식과도 이어지는 것 같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스스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한 번 창조하시고 뒤로 물러나 모든 것을 지켜보기만 하시는 분이 아니라, 창조된 모든 것이 자신의 모습대로 나아가고 완성을 향해 갈 수 있도록 끊임없이 돌보시는 분이다. 즉, 창조는 한 번의 사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완성을 향해 계속 나아가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이 생각이 지금의 나에게는 특히 의미 있게 다가왔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결코 완전하지 않다. 오히려 각박하고 어렵다. 사회적으로도 많은 문제가 있고, 개인의 삶에서도 설명하기 어려운 불행과 고통이 끊임없이 일어난다. 그래서 때로는 정말 '하느님께서 계시는 것이 맞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 현실 앞에서 하느님을 단순히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아 주시는 분’으로만 생각한다면,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너무 많다. 왜 하느님께서는 이런 일을 허락하셨을까 하는 질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우구스티누스의 생각을 따라가다 보니 하느님을 조금 다르게 바라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신 뒤 뒷짐을 지고 멀리서 바라보고 계시는 분이 아니라, 아직 완성되지 않은 세상과 아직 완성되지 않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계속해서 완성을 향해 이끌어 가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 세상의 모든 나쁜 일을 하느님께서 일부러 주셨다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누군가의 죽음이나 질병, 상처와 불행을 두고 그것이 더 좋은 결과를 만들기 위한 ‘발판’이었다고 쉽게 말하는 것도 조심스럽다. 고통받는 사람에게는 그 고통 자체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하느님께서 고통을 필요로 하셔서 고통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 삶에 일어난 고통과 불완전함 속에서도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계속해서 완성을 향해 이끌어 가신다.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고 해서 하느님의 일이 그 순간 멈추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내가 살아온 삶에는 잘못된 선택도 있었고 후회되는 일도 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일도 있었고, 지금까지도 그 의미를 알 수 없는 일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 모든 일이 반드시 필요했던 것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그 모든 순간에 하느님께서 나를 떠나 계셨다고 단정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물론 내가 버림받았나 라는 생각을 한적도 있긴 하다.)

당시에는 실패라고 생각했던 일이 지금의 나를 만드는 과정이 되었을 수도 있고, 가장 힘들었던 시간이 오히려 나 자신과 삶을 깊이 바라보게 한 시간이 되었을 수도 있다. 그것은 고통이 좋은 것이었다는 뜻이 아니라, 그 고통 속에서도 하느님께서는 나를 포기하지 않으셨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하는 ‘기억’은 나에게 단순히 과거를 돌아보라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살아온 삶을 다시 읽어보라는 초대처럼 느껴졌다.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어디에서 길을 잃었는가.

무엇을 사랑하며 살아왔는가.

무엇 때문에 아파했는가.

그리고 그 모든 시간 속에서 하느님께서는 어디에 계셨는가.

아마 이런 질문을 가지고 내 삶을 다시 돌아본다면, 지금의 나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아직 완성된 사람이 아니다. 내가 살아가는 세상 역시 완성되지 않았다. 그래서 때로는 삶이 혼란스럽고, 무엇이 옳은 길인지 알 수 없으며, 하느님의 존재마저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그러나 아우구스티누스의 이야기를 통해 나는 삶을 조금 다르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삶은 이미 완성된 결과가 아니라 완성을 향해 가는 여정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여정에서 내가 지나온 모든 시간을 다시 바라보는 것은, 단순히 과거의 나를 평가하기 위한 일이 아니라 그 길을 함께 걸어오신 하느님의 흔적을 발견하기 위한 일이 될 수 있다는 것.

어쩌면 내가 나 자신을 발견한다는 것은 결국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결론 내리는 것이 아니라, '나는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왔고, 그 길에서 하느님께서 나를 이렇게 이끌어 오셨구나'라고 깨닫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앞으로 나의 과거를 다시 한번 천천히 돌아보고 싶다.

잘했던 일뿐만 아니라 잘못했던 일도, 기뻤던 순간뿐만 아니라 아팠던 순간도 외면하지 않고 바라보고 싶다. 그리고 그 모든 기억 속에서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발견하고, 동시에 그 시간 속에서 나를 놓지 않으셨던 하느님의 모습을 찾아보고 싶다.

아직 나의 삶은 완성되지 않았다.

어쩌면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어려움과 고민 역시 내 삶의 마지막 모습은 아닐 것이다. 나는 여전히 완성을 향해 가는 중이고, 하느님께서는 그 여정에서 나를 계속 이끌고 계실 것이다.

그것이 내가 아우구스티누스에게서 배운, 삶을 다시 바라보는 하나의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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