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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주기철목사
민경배 지음 / 대한기독교서회 / 1997년 4월
평점 :
품절
“The blood of martyrs is the seed of Christians!”
-Tertullian of Carthage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다”라고 말했던 옛 교부의 명언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 말이 진리요 사실로 증명된 것을 주기철 목사님의 생을 통해 알게 되었다.
지금껏 세계 교회사에서도 드문 한국교회의 놀라운 성장, 그 성장에 숨겨진 비밀이 무엇일까 생각해 볼 때, 사람마다 교회 성장의 원인을 여러 가지로 설명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이 현재 우리의 노력과 열심만은 아니란 점에 이견이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처음 이 땅에 복음의 씨앗을 뿌린 이들이 없었다면 복음의 왕성한 전파도 교회의 성장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암울했던 시대에 끝까지 복음 진리를 수호하여 생명까지 바쳐 지켰던 순교자들이 없었다면 한국교회의 맥도 중도에서 끊겨졌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의 자랑이 무엇인가? 우린 단지 기쁨의 단을 거둘 뿐인데 말이다. 눈물로 복음의 씨앗을 뿌린 건 우리가 아닌데 말이다. 피 흘려 복음 진리를 지킨 건 우리가 아닌데 말이다.
마음의 숙연함이 생기는 건 그 때문이며, 깊은 감사가 우러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는 그때에도 하나님 앞에서 생명 걸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려 애쓴 주기철 목사님과 같은 분이 있었기에 오늘날 한국교회가 든든히 설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 순교자의 피의 강줄기가 흐르고 흘러 나에게 까지 왔고, 나는 바로 그 피의 복음, 예수의 피, 순교자의 피로 전해진 복음으로 구원받았으니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을까.
장차 올 영광, 부활의 영광에 대한 믿음이 없었던들 주기철 목사님이 그토록 모진 고난을 이겨내며 순교의 잔을 마실 수는 없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목회 초년 시절 주 목사님은 초량교회 성도들에게 이런 부활 신앙을 각인시키려 애를 쓰셨다. 마산문창교회로 떠나기 3개월 전 그 해 봄에 잇따른 죽음의 사건을 계기로 많은 교훈을 얻은 주기철 목사님은 죽음만이 승리로 이끌고 부활의 영광을 얻게 하는 것이란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그해부터 성가대로 하여금 부활절날 새벽에 구덕산에 올라 부활의 찬송을 부르게 하였다.
대부분의 사람은 죽음 앞에 무력하게 쓰러지고 두려움과 공포에 사로잡히기 마련인데 주기철 목사님은 죽음을 오히려 부활과 승리로 나아가는 길로 삼은 것이 아닌가. 세상에 태어나서 인간이면 누구나 죽음을 맞이한다. 그러나 일반인과 신자의 차이, 신자 가운데서도 평범한 신자와 순교자의 차이가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죽음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이며, 죽음에 임하는 자세의 차이일 것이다. 물론 모든 신자가 주 목사님과 같은 부활에 대한 소망어린 믿음을 갖고 죽음을 불사할 담대함을 갖고 살아야 하겠지만 실상은 그와 다르다는 사실이 순교자를 바라보는 그런 신자들, 특히 내가 느끼는 부끄러움이다.
주기철 목사님과 같은 순교자의 피를 통해 배워야 할 것은 바로 이런 믿음이 아니겠는가. 누군가의 희생이 그에 따른 열매를 가져다 줄 것을 알고 그 희생의 자리에 자신을 바친 순교자 주기철! 그분은 예수님과 같이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이 땅에 뿌려져 죽었고, 그 고귀한 희생으로부터 오늘 한국교회는 이와 같이 수많은 열매가 맺게 된 것을 생각할 때, 다시 한 번 감사의 마음이 넘쳐 난다.
一 死 覺 悟
예수를 따라서 一 死 覺 悟
남을 위하여 一 死 覺 悟
부활 진리를 위하여 一 死 覺 悟
1935년 12월에 열렸던 평양신학교 학생 부흥회 강사로 초청된 주기철 목사님은 마지막 날 그 유명한 “일사각오”의 설교를 하였다. 당시 신학생들은 물론 교수들까지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하니 이 설교가 얼마나 놀라운 은혜의 통로가 되었던 것인가! 우리에게 전해진 설교문은 당신의 원설교와는 똑같지 않는 것이지만 김린서 목사님이 주 목사님 순교 후 작성한 것으로 나는 이 설교문만으로도 충분히 은혜의 도가니에 빠지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1929년 당시 주기철 목사님은 이미 당시 한국교회를 유혹하며 공격해 오는 신사참배의 문제에 대해서 강경하게 반대하며 노회에 <신사 참배 반대 헌의안>을 제출했다. 주목할 점은 이것이 신사 참배 반대 의지가 대외적으로 표면화된 최초의 일이었다는 사실이다. 블레셋 장수 골리앗 앞에 선 목동 다윗과 같이 누가 보아도 비교가 안 되는 싸움이라 생각되었지만 그 결국은 성경에서 다윗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아가 골리앗을 무너뜨리고 승리의 개가를 불렀던 것처럼 주기철 목사님 또한 그렇게 승리하였다.
일제 치하에서 많은 구국 운동이 일어나고 있던 그 시절에 주기철 목사님은 한국교회를 지키는 사명을 받아 싸운 것이다. 이미 오산학교 시절부터 민족애로 가슴이 뜨거웠던 주 목사님이지만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고 나서 소명의 길로 들어서면서는 한 민족의 범위를 떠나서 지상에 펼쳐지는 사탄의 나라와의 대 결투에서 선봉에 선 용감한 장수로 활약하게 된 것이다. 주 목사님의 1944년 4월에 순교하셨으니, 처음 신사 참배 반대 헌으안을 제출한 날로부터 10년이 훨씬 넘는 세월 동안 순교자로서의 일념이 꺾이지 않은 것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하기 마련인데 이 위대한 순교자의 마음은 요지부동이었다. 그는 믿음대로 살았고, 자신이 설교한 대로 죽었으니 이 얼마나 초지일관된 삶인가!
어떤 사람들은 순교자들의 죽음을 맹목적 헌신으로 말하기도 하지만 주기철 목사님의 삶에는 그런 종류의 맹목성은 찾아볼 수 없다. 평양신학교 사경회 때 한 설교를 보라. “일사각오”에 있어서 그분은 이것이 얼마나 자명한 이치인가를 소리 높여 외치고 있다. 어두운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예수님을 따라 살려 할 때,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짊어짐이 없이 어찌 그분을 따를 수 있단 말인가? 또한 예수님과 같이 자기를 위하여 살거나 자기를 위하여 죽지 않고 오히려 남을 위하여 살고 죽는 것이 신자의 삶일 것인데 주기철 목사님에게 있어 일사각오의 뜻은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란 말씀에 대한 순종이요, 인간으로서 가장 위대한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남을 위해서도 일사각오는 필요한 것이라 말씀한 것이다. 아브라함 링컨의 일생, 리빙스톤의 일생, 허드슨 테일러의 일생, 이 모두는 그렇게 남을 위해 일사각오한 고위한 삶의 표본이다. 그들을 존경해 마지않았던 주기철 목사님도 결국 그렇게 남을 위해, 이웃을 위해, 조국 교회를 위해 일사각오의 일생을 보낸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피로써 전하여 온 부활의 복음을 피로 지키고 전하기 위해 일사각오를 부르짖었다.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부활 진리가 빠져 버리면 그것은 핵심적인 진리가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많은 믿음의 선배들은 목숨을 바쳐 이 고귀한 생명의 진리, 부활의 진리를 지켜왔다. 그런데 일제의 핍박에 못 이겨 이런 고귀한 진리를 지키지 못한다면 이 얼마나 통탄할 일이겠는가? 때문에 주 목사님은 부활 진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생명도 아깝지 않게 바칠 수 있어야 한다고 호소했던 것이다. 이렇듯 주기철 목사님의 순교의 이면에는 예수님에 대한, 이웃에 대한, 진리에 대한 남다른 헌신이 죽음을 각오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들에게 이러한 일사각오의 결심은 어디에 있는가? 주변을 둘러보며 나 자신을 들여다보아도 이런 투철한 신앙을 찾아보기 어려우니 이 얼마나 슬프고 부끄러운 모습인가? 우리가 믿는 예수님과 주기철 목사님이 믿고 따른 예수님이 다른 분이 아니라면 한 주님을 섬기는 종으로, 한 신랑을 받드는 신부로 우리의 충성과 절개는 이 얼마나 형편없는 것인가? 깊이 뉘우치며 반성하고 또 반성해야 할 것이다.
주기철 목사님에게 순교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 온 낯선 손님이 아니었다. 그분은 오히려 항상 죽음을 면전에 놓고 살았었다. 그래서 언제 죽음이 찾아오더라도 그분에게는 전혀 낯설지 않았으리라. 순교는 우연히 일어나는 일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매일의 삶을 죽음을 불사하는 각오로 삶아감이 없이 순교의 영광은 결코 나의 것이 되지 못할 것이다.
주기철 목사님이 외쳤던 일사각오의 신앙에 오늘 나의 삶이 변하기를 소망한다. 그래서 내 삶을 다하여 그 진리를 드높이기를 말이다.
기도의 종
가만히 눈을 감고 마음의 영상을 따라가 본다. 한 밤 중 바스락거리는 나뭇잎을 밝으며 바삐 무학산을 오르고 있는 주기철 목사님. 등줄기에 흐르는 땀을 식히며 부지런히 오르고 또 올라 도착한 그 곳. 어린 아들 영해의 고사리 같은 손을 잡고 올라 온 이 곳에서 엎드려 기도하는 목사님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초량교회 목회 시절에는 구덕산에 올라 기도하며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능력을 구한 주기철 목사님은 다시 목회지를 마산교회로 옮기면서도 산에 올라 기도하기를 쉬지 않았다. 어떤 자잘한 문제에만 얽매이지 않고 늘 나라를 위하여, 섬기는 교회를 위하여,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하여 기도하셨던 주기철 목사님에게 있어 기도는 곧 호흡이었다. 이렇게 줄기 찬 기도가 없었던들 어찌 순교의 잔을 달게 마실 수 있었겠는가.
하나님께서는 준비된 종을 사용하신다. 하나님의 크고 위대한 과업을 위해 그 쓰임에 합당한 일군을 선별하실 때, 어찌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는 사람을 사용하시겠는가? 이런 점에서 주기철 목사님의 순교는 그에 대한 철저한 준비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라 볼 수 있다. 그 준비는 다름 아닌 온 산에 메아리치는 그의 부르짖는 기도였다.
예수님께서 보여 준신 모본을 따라 크고 작은 일에, 하나님께 메어 달리는 기도가 있었기에 인간적인 능력만으로는 결코 감당할 수 없는 고난을 짊어 진 것이다. 순교가 어찌 인간의 힘으로 가능한 것이겠는가? 심지어 예수님조차도 갈보리 산을 오르시기 전 겟세마네 동산에 오르셨다. 고난의 잔을 마시기 위해 피땀 어린 기도를 드리셨다.
주기철 목사님은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붙잡았고 이 좁은 길을 걸어갈 수 있는 힘을 얻기 위해 하늘의 자원을 애타게 구하였던 것이다. 그러했기에 많은 유혹 앞에 넘어지지 않고 모진 고문을 당하면서도 그의 영혼은 흔들림 없이 주님을 따를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 내 삶에는 그런 풍성한 기도가 있는가를 살펴본다. 나는 하나님의 영광스런 일에 쓰임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언제든 하나님께서 쓰시겠다고 말씀 하실 때, 드려질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것이 내가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지 못하는 이유이다.
한국교회의 초석을 놓은 많은 기도의 종들과 달리 지금 우리는 기도하는 일에 얼마나 게으른가?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영적 능력의 결핍을 다른 것에서 메우려 하고 있지 않은가? 이 또한 우리 모두가 깊이 반성하며 돌이켜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평시에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전쟁이 발발하면 훈련되고 준비된 부대와 그렇지 않은 부대는 현저한 차이를 드러내는 것은 자명한 결과이다. 하나님의 영적 군사인 신자와 하나님의 나라를 지키는 군대인 교회도 이와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유능한 지휘관은 그 부대의 사열만 보고도 그 부대의 실력을 판단할 수 있다. 신자에게, 그리고 교회에게 기본 중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기도의 훈련에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것은 큰 문제 중의 문제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주기철 목사님이 기도의 종으로 평생을 살았다는 것은 우리가 본받아야할 귀감이 된다.
중요한 건 오늘 내가 그 모습을 본받는 것이고, 오늘 조국 교회가 그런 모습으로 변화되는 것이리라. 교회의 역사를 보건대 언제까지나 평화가 지속된 것은 아니었다. 평화의 시기가 있었다면 그 다음에는 전쟁의 시기가 있었고, 핍박의 시기가 있어왔다. 평화의 시기에 전쟁을 대비하는 준비가 필요한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 불어 닥칠지 모르는 환난과 핍박 앞에 기도로 준비되고, 기도에 전혀 힘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순교 교향곡을 연주한 오케스트라
주기철 목사님의 순교는 개인의 승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작게는 산정현교회의 승리였고, 크게는 한국교회의 승리였으며, 더 나아가 하나님의 교회 전체의 위대한 승리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승리가 우리 모두의 승리가 될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런 승리에는 뒤에 숨어있는 조력자들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지난 월드컵 때에도 몇 몇 선수들이 눈에 띄는 선전으로 한국 축구사에 길이 남을 명승부가 있었는데, 그 때에도 한국축구의 승리는 비단 몇 선수들의 기량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그들을 노련하게 감독하고 코치한 이가 있었고, 개인적으로 그 선수들을 뒷바라지한 가족들이 있었고, 경기 때마다 붉은 물결을 이루며 응원해준 수천만의 사람들이 있었다.
이처럼 주기철 목사님의 장엄함 순교교향곡도 독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 웅장한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이루어진 것이다. 주기철 목사님이 솔로 바이올린을 구슬픈 가락으로 심금을 울리게 연주하고 있을 때, 바로 곁에서는 오정모 사모가 이를 뒷받침해주는 피아노 반주를 해 주었다. 생각해 보라. 아무리 바이올린의 연주가 훌륭하다 해도 반주가 곁들어지지 않으면 외소해지지 않겠는가? 이렇듯 주기철 목사님의 연주를 더 돋보이고 더 풍성하게 만든 것은 바로 오정모 사모님의 내조였다고 생각한다. 남편을 순교의 제물로 바치려 오정모 사모님이 치러야 했던 희생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니었다. 남모르는 눈물과 뼈를 깎는 아픔을 그 누가 다 알 수 있겠는가. 어디 그 뿐인가? 주 목사님의 곁에서 물심양면 도왔던 많은 성도들 또한 이러한 메인 연주를 완성된 교향곡으로 만든 오케스트라 규모의 협력자들로 그 역할을 다 했다고 말할 수 있다. 산정현교회의 신실한 믿음의 장로님들과 충직한 집사님들을 생각하면 감사한 마음과 그런 재직들과 성도들과 함께 목회를 할 수 있었던 주기철 목사님에 대한 부러움이 함께 한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하나님께서는 주기철 목사님에게 어릴 적부터 수많은 지인들과의 만남과 훌륭한 스승들과의 만남을 맺어주심으로써 주기철이라는 한 사람이 기개 넘치는 믿음의 강한 용사로 설 수 있도록 인도하셨다. 이 얼마나 세밀하고 오묘한 하나님의 손길인가!
찬송가 가사처럼 이름 없이 빛도 없이 돕고 함께한 주기철 목사님의 동역자들 또한 하나님께서 주실 영광의 면류관을 받으리라 믿는다.
현대적 우상숭배의 유혹과 살아있는 순교자로서의 삶
아, 감사하게도 글을 써 내려오면서 처음 책을 읽었을 때 느꼈던 감격과 도전이 밀물처럼 다가와 다시금 내 마음을 잠그고 있다. 도전, 그야말로 도전이다! 과거의 역사를 돌아보는 이유는 현재의 나를 제대로 알기 위함이요, 그럼으로써 미래의 나를 개척해나가는 발판을 마련하기 위함이다. 주기철 목사님의 순교 일대기가 나에게 주는 교훈과 책망을 통해 지금 나는 현재의 나를 다시 보고 있다. 과거와 현재라는 시공간의 차이는 있지만, 주기철 목사님의 신앙적 사명과 그 과업의 완수는 나에게 있어서도 사명자로서 살 것을 촉구하고 있다. 어찌 이것을 외면하랴. 아벨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호소하듯(창4:10) 지금 주기철 목사님의 순교의 피가 나에게도 외치고 있다. 일사각오를 부르짖고 있다.
과거 일제치하의 한국교회가 처한 위기상황이 신사참배의 우상숭배의 문제였다면 오늘날 한국교회 앞에는 다른 모양의 우상숭배 문제가 놓여있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골3:5) “탐심”과 “세속화”라는 우상이 바로 그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게 나라 곳곳에, 각 가정과 개인의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이 문제 앞에 우리 모두가 서 있다. 총칼을 앞세우고 공격해오지는 않는다 해도 똑같은 목적, 곧 우리를 거룩한 믿음에서 넘어뜨리려고 공격해 오고 있다. 탐심이 개인적 차원의 문제라면, 세속화는 교회적 차원의 문제라고 말할 수 있는데 우리는 과연 어떻게 대처하며 이 문제를 풀 수 있을까?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전15:31) 문제의 답이 여기 있으니, 그것은 우리 모두 살아있는 순교자로 사는 것이다! 살아있는 순교자! 그것은 주기철 목사님의 순교정신을 이어 받아 사는 것이고, 일사각오의 다짐으로 사는 것이다. 나의 정과 욕심을 날마다 십자가에 못 박으며 사는 삶이다. 변하는 세상 속에서 물질만능의 세상 속에서, 오늘의 한국교회가 변하지 않는 진리를 붙들고 오직 하나님 한 분 만을 의지하여 살아가는 것이다.
바라기는 주기철 목사님의 하나님께서 오늘 나와 그리고 한국교회 위에 이러한 복된 믿음을 부어주셔서 살아있는 순교자로서, 순교교향곡을 연주하는 오케스트라로서 우리 모두가 존재하게 하시기를……. 오늘 나는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