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사장들이 못됐다.
헉. 울 신랑도 사장이다.
동포들끼리 서로 도울지도.. 서로 정을 나눌지도 모른다.
그저 싼 값에 많은 일 시킬려고 수준이나 기술은 중요하지 않다.
영주권에 발목잡고 거의 착취의 수준으로 일을 부린다.

한 알라스카 부족의 이야기이다.
추위를 헤쳐가며 바다와 얼음위에서 변변하지도 못한 장비로
그저 서너명 모여 자리를 옮겨가며 사냥을 한다는 것은 거의 목숨을 거는 행위이다.
며칠간 사냥이 끝나 부족이 먹을 만큼의 식량이 모여지면
그들은 그것들을 가지고 부족으로 돌아간다.
얼음 위에 사냥해놓은 것들을 풀은 후 그들은 각자 자기가 필요한 양만큼만 떼어간다.
그러면 부족사람들이 나와 서로 필요한만큼만 가져간다.
몇 명이 사냥해온 고기를 온 부족사람들이 나누어 먹는 것이다.
이것을 본 한 외지인이 물었다.
"목숨을 걸고 한 사냥인데.. 이렇게 그냥 나누기가 아깝지 않습니까?"
그들은 말했다.
"내가 어렸을 때 나 역시 이렇게 부족 어른들이 나누어 준 고기를 먹고 컸습니다.
내가 늙어 사냥을 나갈 수 없으면 그땐 또 마찬가지로 부족사람들이 나에게 고기를 주겠지요.
아깝다니요. 당치않습니다."

한국에서 디자인회사를 다닐때 사장님께서 들려주었던 이야기다.
사장님은 "우리도 그 부족처럼 버는 만큼 똑같이 나누어 가지면 어떨까?" 하셨다.
나는 막내였기때문에 어째도 내가 받는 만큼보다는 많겠다싶었다.
그래놓고 가증스럽게 "저는 좋은데, 다른 사람들은 이해못할 것 같아요." 라는 대답을 했다.

그때는 오래 기억하지 못했다.
이제야 이 이야기가 가끔 떠오른다.
그런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 수는 없을까?
모두가 적어도 남의 것을 부러워하거나 탐하지 않는... 
부족한 내것에 만족하며 그 안에서도 나눌 줄 아는..  
그런 공동체를 만들어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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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의 꿈에 몇번에 걸쳐 방(의식에서는 전혀 알지 못했던)이 나왔었다.
예를 들어 이주미선생님께서 나오셨을 때, '선생님이랑 그 방에 가야 겠다' 했던 일이던지..
진이랑 함께 집의 2층으로 올라가려다가 만난 누군가가 '그 곳에 가면 확 빨려드러가서 나처럼 되...'
하며 목이 휙 360도로 돌아갔던 것이던지... 이전 꿈까지는 그 방이 거의 금기시 되어있었고,
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었는데..
선생님께서도 말씀하셨었다.. "아마 무의식의 층 아닐까? 의식으로 나오고 싶어하는..."
드디어 그 방을 갔다.

집을 정리하고 있었다.
천장에 2층으로 올라가는 곳이 있었는데 사람 하나 겨우 빠져 나갈만한 하얀 테두리의 직사각형의
뚫린 공간을 올라빠져나가면 껌껌한 복도에 쭈욱 방문이 늘어져 있고
내가 들어간 곳은 왼쪽에서 두번째 방이었다.
방문을 열자 의외로 그곳은 꽤 넓었다. 여관마냥 그 안에도 방이 몇개가 더 있었는데
그중 왼쪽방에는 이미 한 식구가 살고 있었다.
내가 열어본 방은 이것저것 유치원에서 쓰면 어울릴만한 물건들이 바닥에 겹겹이 쌓여 누워있었다.
(꿈 속에선 여기가 '내 방'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방밖에는 공통으로 사용됨직한 커다란 마루가 있었는데 
그곳에 살고 있는 아이 엄마가 예닐곱 되어보이는 사내아이를 가리키며
"아무리 정리를 해도 얘가 다 어지를 거에요" 하는 것이었다.
나는 "괜찮아요." 하며 그 방을 나와 1층으로 내려와서는 언니에게 보여줄려고 다시 올라갔다.
언니가 "여기를 밝혀야 겠다. 내가 스탠드 한 두개 사줄까? " 했는데,
"아니.. 이곳을 정리하는 게 목적이 아니야. 우선 1층먼저 정리가 되면 나중에 여기는 따로 정리할거야"
라는 말을 했다.

더 이야기가 많은데 기억을 하지 못하겠다.
하지만 안다. 그곳에 또 가보리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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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크고 예뻤다.
새엄마가 집을 예쁘게 다시 꾸미고 손님들을 초대했나보다.
동생과 앉아 원목에 이렇게 저렇게 올려놓고 꾸며놓은 대리석장식들과
벽에 걸어놓은 것들을 가리키며
"내가 했더라도 저렇게는 못했겠다.. 어떻게 혼자 저 무거운 것들을 다 옮겼을까?"
감탄했다. 새엄마는 김미숙이었다. (요즘 꿈이.. 점점 흥미로와진다.)

손님들은 넓은 집 이곳저곳에서 자유로이 거닐고 구경하고 식사를 했다.
게중에는 직접 설겆이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잘은 기억이 안나지만 희한한 음식들이 많이 있었다.
끓인 오렌지 쥬스탕이라든가.
.
이주미선생님도 오셔서 차를 한잔 마시고 계셨다.
선생님께서는 나에게 "이게 너무 맛있었어"하며 풀뿌리하나를 건네셨다.
얼핏 보기에는 '파' 비슷하게 생겼는데 곁가지가 많고 하얀 밑둥이 샴쌍둥이처럼 엉켜 붙어 있었다.
잔뿌리가 굵게 밖으로 삐죽삐죽 여러가닥 솟아 나와 꼭 오래된 거목을 송두리째 뽑아
잘씻어 거꾸로 든 것 같았다.
"이거 윤정씨한테도 좋을거야. 먹어."
그걸 건네 받았는데.. 그 후엔.. 잘 기억이 안난다.

<무언가 생각해보고 싶은 부분>
1. 새엄마
2. 선생님이 건넨 풀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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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랑이 나왔다. 한번도 학교 꿈에 그가 나온 적은  없었다.
우린 같은 반이었다.
무슨 시험을 본걸까?
같은반 여자아이 하나가 합격을 했다.
급우 여러 명이 둥글게 모여서 무슨 선물을 해줄까 의논을 하고 있었다.
아마도 신랑이랑 나는 공인커플쯤 됐었나보다.
앉아있던 아이들 틈에 혼자 서있던 그가 말했다.
"나는 '000스키팩'을 사줄거야." (000은 생각이 나질 않는다. 글쎄.. 종류쯤 됐던 말이었던거 같은데...)
순간 화가 났다.
그가 그렇게 챙길만큼 중요하다고 생각이 들지 않은데다가 그건 엄청 비싼거기 때문이었다.
점심시간에 밖에서 만나 따졌다. 아이들에겐 선물을 사가지고 오겠다고 하고 지갑을 들고 나왔다.

"나는 이미 대학도 나왔고 고등학교 졸업장이 꼭 필요한것도 아니야.
너랑은 같이 못다니겠으니깐 내가 그만둘께."
(이상하게 꿈 속에서 나는 항상 고등학교만 졸업을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고3을 두번, 그것도 두번때 고3 2학기만, 머리가 거진 대머리인체로 학교를 다녀서 인가보다. 열아홉... 나는 19라는 숫자에 아직도 눈물이 고인다.)

나는 무척이나 화가 나 있었다.
"그게 얼마짜린데?"
"글쎄 한 65만원?"
"우리 돈이 얼마있는데?"
결국 싸움이 됐다.

(장면이 다르다. 중간이 기억이 안나나보다)
나는 아랫층이 내려다보이는 강당 같은 곳에 있었는데... (학교 안은 아니었다.)
그땐 글쎄.. 전화였나.. 텔레파시었나.. 암튼 옆에서 보면 나혼자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고 있는 것처럼 보였을 거다.
왜 그렇게 화를 내는지.. 이성을 잃은 듯 화를 내며 한참을 신랑이랑 싸웠다. 
다음 시간은 음악시간이라고 생각했다.
'음악책 없는데.. 어쩌지?'
그런데 그와 그렇게 싸우고 있는 사이
아랫층에서는 모든 학생들이 체육복을 입고 어디론가 행진을 하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 뒤를 보자 이미 내 뒤쪽에서 초록, 파랑 똑같은 체육복을 입은 아이들이
50명은 되어보이는 그룹으로 4그룹이나 줄을 맞추어 서있었다.
내가 시끄럽게 한 기억이 나서 고개를 숙이자.. 어디선가..
"괜찮어. 이미 알고 있었어."하는 소리가 들렸다.
서둘러 출구쪽으로 나가는데 선생님이 계셨다.
목례를 하고 재빨리 빠져나가 교문으로 뛰어갔다. 선생님은 아무 말씀도 없으셨다.
교문에도 선생님이 지키고 계셨다.
그리고 음악시간이 아니고 전체 메스게임같은 시간이었다.
전교생이 모두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나와 줄을 마추어 서있는데
초록색, 파랑색.. 색깔이 같은 그룹이 아마 학년별로 다른 칼라였나보다.
선생님이 나를 붙잡아 세우셨다.
"이게 모야?"
나는 어떻게 된 일인지 노랑색 체육복바지에 흰색 체육복웃도리 거기에 초록색 조끼를 덧입고 있었다.
대충 얼버무리고는 우리반을 향해 막 뛰어 가는데.. 아이들이 기합을 받고 있었다.
선생님이 커다란 각목을 들고 앙상하게 뼈만 남은 것 같은 아이들을 빳따를 때리는 것이었다.
'나 때문인가 보다'
내가 오자 아이들이 '업드려뻗쳐'를 한 상태에서 일제히 뒤를 돌아보았다.
선생님께선 "너는 체육복 구하러 갔다와서 늦었다며.."
아이들은 내가 선물사러 갔다온다 한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 아마도 나를 도와줄려고 선생님한테 거짓말을 한 모양이었다.
내가 오자 모두 일어나서 달리기 기합을 받았다.
네모모양의 집같은 곳이었는데 곳곳에 문이 있어서 뛰다가 문열고 뛰다가 문 또 열고 하면서 달려야 하는 곳이었는데
시골집처럼 바닥은 흙에 돌로 울퉁불퉁, 문은 정말 무겁고 컸다.
죽어라 달리는데.. 점점 같이 출발했던 많은 아이들이 없어지고 내 앞에는 몸도 정말 작고 약하게만 보이는
여자아이 하나가 뛰고 있었는데 좀처럼 거리를 좁힐 수가 없었다.
어느 문 뒤에 선생님이 숨어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요령을 피울 수가 없었다.
암튼 앞의 아이가 넘 열심히 하니깐 나도 모르게 그 아이만 죽어라 쫓아가고 있었는 데
어느 문을 열자 선생님이 있었다. 나를 보며 끄덕여주셨는데.. 무언가 믿음이 전해졌다.

다음은 잘 생각이 나질 않는다.
다만 신랑이 그런 판단을 내렸다는 게 좀 실망스러웠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던 것이
임신 때 생각이 나서 쫌 찜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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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타.. 항상 학교에 관한 꿈은 시험보는 꿈, 학교에서 친구들이랑 노는 꿈... 이런 종류였는데..
드뎌.. 내 꿈이 학교를 벗어나는가.
며칠전 꿈도 학교를 가는 길에 새서 딴 짓하는 꿈이었는데.. 오늘도 학교를 가는 길에 다시 집에 왔다.

비가 오고 있었다.
친구둘이랑 같이 학교를 가는 길이었는데.. 아마 어디를 들렀다가 가다가 늦은 모양이었다.
친구들을 학교로 먼저보내고 나는 옷이 젖었다는 핑계로 집에 들렀다가 간다고 했다.
그리고는 집으로 가는데... 헝.. 이번에는 가수가 나왔다.
(연애편지에서 장영란 좋다고 하는.. 별로 연예인같이 생기지는 않은 친구. 오죽하문 이름도 모를꼬.)
걔가 나를 좋아하고 있었나보다. 나를 보는 순간부터 이미 따라오고 있었다.
나는 부러 연약한 척 하면서 그가 우산을 들게 했고 같은 우산속에서 집으로 가고 있었다.
옥수동 비스무레한 집이었는데.. 마음으로는 집이 깨끗하게 치워져있고 엄마가 우아한 모습으로
나를 반겨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우리집은 대문을 열자 녹슬은 가스통이 넘어질듯 철사줄에 의지해 겨우 서있고
먹다말은 밥상까지 널부러져 있었다.
문을 열어주는 엄마도 그리 우아한 모습은 아니었다.
가까스로 챙피한 마음을 추스리고 "들어와" 하구는 화장실로 가는 그 녀석을 보았다.
'여기저기 둘러볼텐데... 아긍 모르겠다.'
천장낮은 거실은 한쪽이 전부 창문이었다. 창문 밖으로는 바다?강?이 가득 펼쳐져 있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좋다... 멋있다...라는 느낌이 아니라.. 청색모노톤의 정지되어있는 그림같았다.
넓은 줄 알았던 집도 작게 느껴졌고, 제법 잘 꾸며졌을거라는 상상도 허망했다.
또 아픈척 누워있는 데 그 가수가 옆에 앉아 지켜주었다.

모르겠다. 담부턴 기억이 잘 안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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