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상상의 계보"의 번역 일부 검토.

루쉰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왕후이인데요, 글쎄.. 루쉰의 문체를 배우지는 않았나 봅니다. 글만 놓고 보면 루쉰이라기보다는 양주 선비같다는 느낌입니다(물론 순전히 제 개인적인 느낌입니다.)

전체 총7절로 구성된 논문인데, 창비 책에는 이 중 네 절(1, 4, 5, 7절)이 번역되어 있습니다.
전문을 읽으실 분은 <황해문화>2002년 가을호, 2003년 봄호에 이 글의 초고가 실려 있으니 참고하시길.


애매하지만 딱히 오역은 아닌 문장은 손대지 않고, 내용이 이상한 부분만 손봤습니다. 참고하세요..

[번역수정]

일단, "현대"는 근대(modern), 근대성으로 읽으시면 됩니다.


180쪽; 셋째, 아시아 범주가 자본주의와 식민주의가 전통적 관계를 재구성한 결과라면 식민과 냉전의 부정적 결과라는 새로운 아시아 상상을 어떻게 대하고 처리해야 할 것인가? → 아시아 범주는 자본주의와 식민주의로 전통적 관계를 재구성한 결과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아시아 상상은 식민과 냉전의 부정적 결과를 어떻게 대하고 처리해야 할 것인가?

186쪽; ‘민족국가’와 ‘민족상황이 복잡한 국가’(즉 ‘제국’)는 서로 의미가 다르다. 즉 전자는 자본주의의 ‘일반적 상태’이며, 후자는 오히려 민족국가의 대립축을 구성하였다. → 대비적으로 구성되었는데, 전자가 자본주의의 ‘일반적 상태’라면 후자는 민족국가의 대립축으로 구성된 것이다.
민족자결은 ‘정치적 자결’이며, 이 개념은 민족자결이 간단히 정체성의 정치로 방향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의미에서 자결을 실행하고,... → 정치와의 동일시로 전환되는 것이 아니라

187; ‘완전한 독립이 없는 국가’이자 → ‘완전한 독립국가가 하나도 없는’

190; ‘대아시아주의’ 또는 ‘범유럽주의’ 명제는 → 범아시아주의

193, 아래에서 다섯째 줄; ‘탈민족주의’ → ‘후민족민주(後民族民主)’[177쪽과 용어통일]

197, 아래 여섯째 줄; 정치상에 나타난 야만적 풍속을 → 정치상의 번속관계

207; .. ‘주변’이 잇따라 19, 20세기의 아시아 자본주의의 중심 또는 아시아의 중심지역이 되었고 .. → 중심지역[亞中心區域]이 되었고.. [아울러 괄호 속의 “중국경제의 기원”은 “중국경제가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정도로..]

213; 결코 완전한 유럽세력과 마주친 결과가 아니며 → 전적으로

218; 앞에서 언급한 유럽 사상가들처럼 그렇게 제국[누락], 정치적 전제주의, 농경문명 등의 범주를 사용해 중국을 일종의 자기부정의 목적론적 역사관의 틀 안에 가두지 않았다.

220, ③ ; 일국지배와 동요 → 일극(一極) 지배

222 다섯째, ; 아시아와 유럽, 북아프리카 사이의 종교, 무역, 문화, 군사, 정치관계는 오래되었으면서도 분리하기 어려운 역사적 연계가 있고, 민족국가의 내외모델로 아시아 혹은 미래의 아시아를 하나의 방대한 민족국가로 생각하는 것 역시 적당치 못하다.
→ 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와 아메리카의 종교, 무역, 문화, 군사, 정치관계는 분할할 수 없는 유구한 역사적 관계를 맺어왔으며, 민족-국가의 내외모델(?)로 아시아를 묘사하거나, 혹은 아시아를 하나의 방대한 민족-국가로 생각하는 것은 적당하지 않다.

223 ; 아시아 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은 아시아중심주의에 대한 확인이 아니라 → 유럽 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은 아시아 중심주의에 대한 확인이 아니라..

* (다음줄) 이런 의미에서 ‘신제국’ 내부의 혼란과 다양성은 자명한 유럽개념을 타파하며, 아시아 개념과 유럽 개념을 재구성하는 전제의 하나일 뿐 아니라 ‘신제국논리’를 돌파하는 필연적 경로이기도 하다.
→ 이런 의미에서 ‘신제국’ 내부의 혼란과 다양성을 살펴 자명한 유럽 개념을 타파하는 것은 아시아 개념과 유럽 개념을 재구성하는 전제의 하나일 뿐 아니라 ‘신제국논리’를 돌파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경로이다.

* (단란 마지막 문장) 새로운 개념은 일종의 정치적 아시아 개념이며, → 새로운 아시아 개념은..

225쪽 마지막 단락: (전출된 장이 번역되지 않았으므로 이 단란도 삭제한 듯)
마지막으로 앞장에서 서술했던 말을 다시 한번 되씹으면서 글을 마치고자 한다. 아시아 문제는 아시아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사”적인 문제이다. “아시아史”에 대한 재고는 19세기 유럽의 “세계사”에 대한 재구성임과 동시에 21세기 “신제국”의 질서와 논리를 타파하기 위한 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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