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적으로 무난하지만 읽다가 잘 이해가 안 되는 부분만 새로 고쳐봄.

  #나머지 부분도 시간나면 보충예정.

 

 

 

세계화와 문화적 차이


118쪽.
타지에 근거를 둔 영어 숙련자라고 한다면, 국내의 복잡한 사정에 정통하지 못할 수 있어, 일반적으로 알려진 추상적인 개념에 의거해서 사고하고 표현할 수도 있다. 심지어 무의식적으로 국내상황을 자신에게 익숙한 영어적 문맥으로 치환하여 감각하고 판단해 버릴 수도 있다. [문장추가] 그렇게 되면 국경을 넘나드는 교류가 불가피하게 ‘자유인’에게...

119쪽.
영어의 사용이 초래한 제약 때문에 문화충돌에서 가장 곤란한 부분이 교류의 과정에서 여과되어 버릴 수도 있다. 이 부분은 모국어로만 표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 분석한 것처럼, 다른 문화를 매개로 한 진정한 문화간 교류는 한 문화의 내부에서 발생한다. 모국어에서의 이탈이 초래한 한계는 모국어의 사용이 만들어낸 한계보다 작지 않다. 이론적으로는 영어 사용자가 국내의 복잡한 정황을 전달하는 이상적인 국면을 설정할 수 있겠지만, 이러한 국면은 아직 출현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이러한 고려 때문에 지식공동체 대화에서 반드시 참가자의 모국어로 진행하되 동시통역을 배치하기로 했다.

120쪽. “한국의 사상자원에 대해 안다고 할 수도 없지만,”...  →
반대로 한 가지 재미난 사실은, 한국 지식인의 참가로 인해 한국의 사상 자원에 대한 우리의 안목이 넓혀지지는 않았지만, 그 자리에 있지도 않았던 ‘서양’이 한 번도 결석한 적이 없었음을 깨닫게 해주었다는 점이다.

121쪽.
근대 이래로 동양의 여러 지역과 서양 간에 일어난 문화적인 상호 침투와 그로 인해 동양에 대한 문화적 헤게모니를 서양이 장악하게 되었다는 기본상황을 직시하여, 역사의 표현수단과 현실상황의 분석방법을 사유하는 것을 우리의 과제로 설정할 수 있다. 이 때 우리가 이분법적인 모델을 폐기하고 문제 속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 다음과 같은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데 어려움이 있다. 서구이론을 일종의 보편모델로 상정해 무매개적으로 무한히 적용하는 것을 피하고, 자국의 사상자원의 특수성을 과도하게 강조하여 서구적 근대성 서사를 거부하는 것도 피해야 한다. 이 양자를 연구와 사유에 있어 반드시 동시에 고려하여 논의의 시각과 한계를 형성

이 문제의 지적 위상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를 토론하기도 전에, 지식을 추구하는 객관적 자세로 논의해야 하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둘러싸고 의견이 분분했다. 상술한 것처럼 대다수 일본학자들은 지식의 입장을 고수하고 지식인의 입장은 거절했지만,[문장추가]  중국의 많은 학자들은 지식인의 입장에 서서 지식을 통합하고 주도하고자 했다. .. 2차 회의에서 이 문제가 전면에 부각돼 더욱 많은 문제점을 도출하였다.[문장추가]

122쪽 마지막 단락~123쪽.
처음 두 번의 모임은 서구의 이론적 자원이 “이론의 방식”으로 동아시아 각국의 지식계에 보급된 후 생겨난 가장 기본적인 문제점들을 나름의 방식으로 잘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서구 이론은 추상적인 결론이 아니라 역사적이고 유동적인 것이며, 그 이론이 구체적으로 상대하고 있는 지점이 명확하다. 따라서 서구 이론을 읽어내는 작업은 서양사를 읽을 때와 마찬가지로 추상적인 연역에 기대서만은 안 된다. 서구 이론을 동양의 맥락에서 추상화하거나 심지어 미리 만들어진 방법론이라 여겨 기계적으로 적용할 때 이론의 생명력은 말살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132쪽.
정당한 자기 입장을 확보할 수 없음이 모든 컨텍스트에서 발화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면, 보편성과 특수성의 공모관계를 비판하는 작업은 한층 복잡해지고 역사화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 자기 입장의 정당성이 어떠한 컨텍스트에서도 통용될 수 있는 것임을 확신할 수 없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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