넉 점 반 우리시 그림책 3
이영경 그림, 윤석중 글 / 창비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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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 점 반

아기가 아기가
가겟집에 가서
"영감님 영감님
엄마가 시방
몇 시냐구요."
"넉 점 반이다."

"넉 점 반
넉 점 반."
아기는 오다가 물 먹는 닭
한참 서서 구경하고.

"넉 점 반
넉 점 반."
아기는 오다가 개미거둥
한참 앉아 구경하고.
(...)

아기는 오다가 분꽃 따물고 니나니 나니나
해가 꼴딱 져 돌아왔다.

"엄마
시방 넉 점 반이래.."


금방 책 받았다. 생각지도 못한 선물은 언제나 즐거워~
잘 볼께.

넉점반 참 재미있더라.. 그냥 한번 주욱 훓어봤는데..
1940년대에는 時를 點으로 불렀나보네.. 중국어는 아직도 點(띠엔)인디.. ^^;;

갑자기 어릴 적 생각이 나네..

울 할배가 아프실 땐데.
갑자기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으시다고,
200원을 주시면서 하나는 너 사먹고 하나는 사와라~ 하셨거덩.

당시 아이스크림 파는 가게는 동네 초입에서 약간 벗어나 외따로 떨어져 있다고 '외말리'라고 불리는 곳에만 있었어.

거기까지 가서 당시로선 흔치않던 콘 아이스크림 두 개 사가지고,,
지나오던 길에 친구 만나서 자랑하고, 한참 놀다가, 어영부영..

머, 넉점반의 애기처럼 해질때까지 있진 않았지만, 여튼 한여름에 어영부영하다보니..
집에 도착했을 땐 아이스크림이 거의 사라져가고 있더라구..

물론 내 껀 친구들 한입씩 주기도 하고, 콘 부스러기까지 벌써 먹어치웠으니 걱정없었지만.

기다리던 할배는 얼마나 안절부절하셨겠어. 안 봐도 뻔하지.

마구 호통을 치시더군.

호통이 무섭기도 하고, 사라진 아이스크림에 당혹스럽기도 하고 머 그랬덩거같애.. ^^;;


엄마
시방 넉 점 반이래..


라면으로 점심 먹기로 하고 물을 올려놨더라구.
만회하려고 물이 끓자마자 라면을 집어넣고 내가 직접 끓였지.
라면 여섯개 넣고 스프 넣고 남비뚜껑을 살짝 덮어놓곤, 기다렸지.
계란은 좀 있다 넣어야지..하면서.

근데, 기다리다 밖에서 친구들 노는 소리 듣고 잠깐 나갔다가 한참을 놀다 왔네. 라면은 머리 속에서 사라져버렸구.. 헤~~ ^^

그날 식구들 모두, 바닥이 약간 타게 눌어붙은 퉁퉁 불은 라면을 먹으면서,

나를 흘깃 쳐다보는데..

어린 나이에도 정말 미치겠더라.. ㅡㅡ;;

알다시피 라면 정도면 특식이었잖아.. 그게 아무나 할 수 있는게 아니더라구.

...
이제는 넉점반은 훨씬 지나 버렸고, 아이스크림은 금방 녹아버린다. 라면도 넣자마자 익어버리구.. 그렇게 길고도 길던 시방이 짧아지고 짧아져,

"지금"라고 말하는 순간 그 지금은 이미 지금이 아닌 세상이렸다..

그래두, 할배와 아이스크림에 대한 내 기억은 여전히 시방이겠지?


엄마
시방 넉 점 반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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