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눈, 동백 문학과지성 시인선 239
송찬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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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시인을 만났다. 그는 내 이름으로, 나에 대해 시를 쓰겠다고 말했다. 그는 취해 있었다.

스물한 살, 나는 밤안개 자욱한 길을 걸으며 한 통의 동백 연서를 띄워 보냈다. 수신인은 없었다. 종내 수신인은 없었다. 이 길 끄트머리에 이르면 누군가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잠겨 있던 무렵이었다.

스물두 살, 하행선 새벽 열차에 몸을 실었다. 여수의 눈동자라 불리는 오동도에서 나는 일 년 전에 썼던 동백 연서에 답장을 받을 수 있었다. 발신인은 붉은 눈, 동백이었다. 깨끗이 세탁한 푸른 군복처럼 빛나는 남해, 그 새벽빛에 젖은 바다의 가슴을 쓰다듬고 싶었다.

스물세 살, 나는 충성에 살았다. 무궁화가 되고 싶진 않았다. 복창 소리 내기 두려운 밤에라도 어디로든 숨고 싶었던 나는 밤에 피는 장미도 아니었다.

스물네 살, 오랫동안 충성에 산 나는 비로소 동백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오월이었다. 동백은 지고 없었다. 마당에 목부러진 동백 시체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시인은 그 빗질을 경을 읊는 것이라 했다.

스물다섯 살,  이제 내가 동백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나는 목부러진 동백 시체일 뿐이었다.

스물여섯 살, 서울에서 동백꽃을 볼 수 없었다. 내 두 발은 언제나 같은 곳만을 오갔고, 동백은 아주 멀리에 있는 것 같았다. 동백을 그리워했다.

스물일곱 살, 그 닥스훈트의 이름은 동백이었다. 모습은 검은 동백이었지만 붉은 눈을 가진 영롱한 개꽃이었다. 검은 동백에게선 늘 흙냄새가 났다.

스물여덟 살, 이제 나는 안다, 나는 언제고 단 한 번도 동백이었던 적이 없다는 사실을. '동백'이라는 이름의 꽃을 발음해보면 아득해진다. 아버지 사후, 홍성에 사는 의사에게 칠십 만원에 팔려간 우리 집 화단의 동백 나무, 그 나무 그늘 밑에 늘 수북했던 지푸라기들, 말라붙은 개똥, 몇 번 쏘인 적 있는 부지런한 벌들이 이제 내 머릿속 동백이다.

사람이 동백이 될 수 있을 거라 믿었던 날은 갔다. '사자야, 그만 나무에서 내려오려무나. 이제 동백으로 돌아가자. 모두 다 산경(山經)에 나오는 이야기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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