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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 질문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논쟁기술
코자이히 데노부 지음, 김현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3년 10월
평점 :
절판
"훗!" 이 책의 첫 장을 여는 나의 심정이었다. 교수님께서 추천해 주신 3가지 책- 독서의 기술, 질문의 힘, 논쟁 기술- 중에서 나의 흥미를 끄는 것은 단연 논쟁 기술이었다. 말을 그리 잘 하는 편이 아닌 나는 항상 말을 하는데 무척 조심스럽고 나름대로는 신중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러한 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생각만큼 논리적이고 설득력있는 발언을 하지 못한 것 같다. 특히 즉각적인 답변을 요구하는 논쟁에서는 항상 진땀을 흘려왔다. '글'이라면 어느 정도 내 생각들을 정리하여 글로 표현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수정할 수 있는 시간이 확보되지만 '대화'에서는 상대방이 여유롭게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래서 조급한 마음에 언어가 사고를 따라가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한다. 그럴때면 발화의 속도를 늦추거나 제스쳐 혹은 표정으로 잠시 대화의 흐름을 정지시켜 다음 발언에 대한 준비 시간을 벌곤 했다. '말하기'는 언제나 나 자신과의 싸움이고, 우호적이든 적대적이든 관계없이 내 대화의 상대라면 누구나 나에게는 도전 상대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말을 잘 한다는 것은 나의 영원한 화두였다. 그런데 이 책의 제목을 듣는 순간 나는 천군만마를 얻은 듯한 기분이었다. 논쟁, 말하기의 최고 수준의 단계라고 할 수 있는 그 논쟁에서 상대방을 제압할 수 있는 기술이 적혀있는 이 책이야말로 나의 투쟁에 종지부를 찍어 줄 master key라고 생각했다.
잔뜩 부푼 마음으로 첫 장을 여는 순간, 이게 왠일인가? 머리말에서 필자는 '부담없이 일어 내려가기만 해도 논쟁에 대한 인식이 풍부해지고, 감각이 살아나고, 논쟁에서 이기는 사람이 된다.'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더불어 나 역시 이 책을 읽게 되면 논쟁의 달인으로 거듭 태어날 것이라고 확신해 마지 않았다. 나는 속으로 외쳤다. '너희들에게 경고한다. 이 책을 읽은 내 앞에서 함부로 논하지 말라. 나와 논쟁을 하게 된다면 그대는 내 질문에 침묵하게 될 것이고, 선택하기 싫은 양자 택일을 어쩔 수 없이 하게 될 것이며, 진위를 알 수 없는 주장에 설득당하게 될 것이다.'
필자는 논쟁을 제압하는 기술로 먼저 질문을 소개하고 있다. 질문만 잘 해도 논쟁에서 거의 이긴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논쟁에서 쓰이는 질문은 몰라서 물어보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이 때의 질문은 질문을 받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적절한 대답을 하지 못하도록 당황하게 만들어 논쟁에서 우위를 점하고 청중들을 설득할 수 있는 논거의 성격이라고 할 수 있다. 질문하는 사람은 자신에게는 유리하고 상대방에게는 불리한 말을 선택하여 질문을 만들기 때문에 상대방으로서는
한정된 내용의 범위 안에서 대답을 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대답의 내용 역시 수세에 처한 본인에게 그리 도움이 되지 못한다. 게다가 선택이 불가능한 양자택일 질문은 어떠한 대답을 하던간에 질문자가 원하는 답을 할 수밖에 없는 극도로 폐쇄적인 질문이므로 상대방의 딜레마를 잘 이용하여 질문을 던지게 되면 상대는 울며 겨자를 먹는 형국이 된다. 또한 질문이 가진 무서운 힘은 질문 그 자체의 형태이다. 질문이란 기본적으로 대답을 요구하는 물음이기 때문에 불리하다 싶으면 침묵해 버리는 여타의 다른 공격적 발언과는 달리 질문의 받은 사람은 반드시 대답을 해야 한다는 부담을 갖게 된다. 만약 적절한 대답을 생각하느라 무언의 시간이 지속되거나 질문의 내용이 좋지 않다는 판단 아래 대답하지 않게 되면 그것은 곧 패배를 의미한다. 물론 당사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지만 적어도 구경하는 청중들 입장에서는 침묵이란 승패를 가름하는 편한 도구가 된다. 이와 같은 이유로 질문은 논쟁에 있어서 무서운 무기가 된다.
그렇다면 반대의 입장에서 생각했을 때 우리가 그와 같은 질문을 받았을 경우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이 책의 궁극적인 목표의 하나는 '언론(言論)으로서 자신을 지키는 것'이다. 말로 공격을 당한다면, 그것이 논리적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우리는 당당하게 말로써 자신의 정신과 마음을 보호해야 한다. 상대가 교활한 궤변으로 타인을 속이려고 한다면 그것은 논쟁의 기술과 논리적 사고력을 가지고 대처해 나가야 한다. 상대방이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던졌을 때 우리는 대답이 아닌 '항변'을 해야 한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질문은 하는 쪽에서 유리하도록 만들어지기 때문에 그에 대한 대답을 한다는 것은 곧 상대방의 의도대로 행동하는 것이다. 따라서 질문에 답을 하는 것보다는 그 질문을 정확히 분석하여 논리적인 허위를 전문 용어로 지적해야 한다. 자신에게 유리하게끔 만들어진 질문은 그 작성 과정에서 반드시 논리적인 허위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를 정확히 간파해내기만 한다면 교활한 질문에 당황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허위론에 대한 공부가 필수적이다.
논쟁에서 쓰이는 또 다른 기술로는 '논점 바꿔치기'가 있는데 읽어보면 그리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 내용이다. 그리고 'tu quoque'라는 기술이 있는데 고등학교에서 배운 논점일탈의 오류와 유사하다. 문제의 초점이 내게 집중될 때 가령 '너 왜 그래?'라고 추궁을 받게 되면 '그러는 너는?'이라고 대답하면서 상대방에게 잘못에 대한 입증을 책임지도록 한다. 얼핏 비열하게 들리지만 개인적으로 일상에서 아주 유용하게 쓰고 있기 때문에 윤리적 심의는 거치지 않도록 하겠다. 필자
역시 대외적인 논쟁에서 'tu quoque'를 '반드시' 쓰도록 강조하고 있다. 그외에도 발언의 순서 조절,진짜처럼 하는 거짓말, 강조 부분 생략, 적절한 예시의 선택적 활용 등도 설명하고 있다. 특히 강조 부분 생략은 참 유용한 전략같다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내가 어떤 사람을 요직에 추천했는데 그 추천에 대한 설명을 요구받게 되다면 '이분은 어느 분야의 훌륭한 전문가로서 이분의 연구 업적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입니다. '라고 말한다. 그렇게 되면 사실 별 특별한 것이 없는 업적도 생략을 하므로써 내막을 자세히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대단한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물론 그 영향력은 한계가 있지만 어느 정도 가치있는 전략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기술을 이용하여 내 측근들을 주요 요직에 배치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좀 황당한 상상을 해본다.
필자가 머리말에서 말했듯 매우 편한 마음으로 한 권의 책을 다 읽었다. 그리고 필자의 확신처럼 내 자신이 논쟁에서 이기는 사람이 되었는가 확인하고 싶어서 친구 한명을 붙잡아 괜한 트집을 잡고 논쟁을 시작했다. 150분 간의 독서, 그 성과는? 목소리 큰 친구의 승리였다. 아무래도 말 잘하는 필자의 상업성에 현혹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으나 부족한 나의 역량에 이내 고개가 숙여진다. 첫 술에 배부른 생각을 했다. 많은 공부가 필요할 것 같다. 인간이 가진 언어라는 소중한 도구, 그 무한한 활용법에 대한 나의 투쟁은 계속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