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의 생각 - 우리가 원하는 대한민국의 미래 지도
안철수 지음, 제정임 엮음 / 김영사 / 201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대세, 그러나 간철수로 불리우는 그의 출마여부가 궁금했다. 물론 힐링캠프에 나와 일에서 삼까지 손가락 꼽으며 섬세하고 유연한 태도로 범용적 사고의 깊이를 펼쳐보인, 그 마음 속에 무엇인가 꿈틀거리면서도 드러내지 않는 듯한 무엇을 뚫어져라 찾아낸 이후였다. 하지만 그것으로도 대권 문지방 안팎으로 걸쳐놓은 다리 하나를 어찌할 수 없는 속절을 책에서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조그만한 기대심리가 발동했다.

 

책은 방송의 내용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고 독창적인 값어치를 하지 못했다. 제정임과 안철수의 질답으로 이루어진 것이라 필력이나 문체의 아름다움은 배제되어 있었고 오히려 지나치게 원론적인 상식에 삭막함이 묻어나와 깨알을 넘어선 좁쌀이 보였다. 많은 독서량, IT기업 경영의 성공 등 자기자랑과 자신감이 계속해서 중복 강조되었고, 때묻지 않은 정치적 역량의 가능성을 높이 사며, 또한 국민의 함의를 잘 들을 수 있는 대화와 소통, 통섭의 능력을 스스로 부각시켰다.

 

그의 인생사, 가정사 그리고 한국적 상황의 모든 것을 포섭하는 관심과 사고의 종합선물세트, 제정임교수가 말하는 제안서가 아니라 소위 대권주자의 비빔밥 공약이었다. 그냥 읽으라고 나눠주어도 수요일이면 곧장 폐지박스 속으로 수거될 공약을 돈을 주고 구입하고 관심을 가지고 읽게 만든 그의 낚시질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자가 몇이나 되겠는가 말이다. 숙련의 강권과 완력을 가진 정치인들이 똥마려운 영구零狗마냥 그의 출마를 가늠하고 이를 농단壟斷하기 위해 매일 그를 주목하고 까기 위해 많은 술책들을 준비하지만, 발걸음의 진퇴에 따라 그것들은 그냥 잊혀질 수도 있는 괜한 심술이 되어버렸지 않은가.

 

하지만 이제 좁쌀 간잽이 찰스도 마냥 간만 치며 기다릴 수 없다. 11월이 되기전에 화룡점정의 마지막 간을 쳐야한다. 양쪽 모두에게 답을 비공개하며 신중으로 안달구던 시계의 모래도 조금 밖에 남지 않았다. 이 책은 그것의 시작이다. 복지, 정의, 평화, 아주 좋다. 그것을 위한 대화와 과정의 논리와 철학도 훌륭하다. 안철수의 범용확장성, 자신감, 소통가능성, 전문성에 후한 점수는 마땅하다.

 

그래, 국민들 좀 안달구면 어떠하리, 기존 정치인들 흔들어 깨우고, 경제 민주화 실현하고, 복지국가 이룩하고, 사회정의 구현할 수 있다고 저렇게 아마츄어(정성)스럽게 장광설을 품어내는데, 자기자랑 좀 하면 어떻고, 간 좀 잘 치면 어떠하리, 꾸밈화장 좀 하면 어떠하냔 말이다. 감정이 동하지 않은들 어떠하리, 강남좌파인들 어떠하리, 정치경험이 좀 없으면 어떠하리. 세상에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고 자신(정권)이 아닌 발자취 흔적을 남기는 삶을 추구하겠다고 하는데 푸쉬하지 않을 이유가 무어 있겠는가 말이다.

 

다만 교과서적이고 원론적인 풀이법이 정글같은 정치생태계에서 얼마나 통할 수 있는지는 미지수. 그리고 그의 새로운 도전에 대한 결단 모델 [의미 있고, 열정을 지속할 수 있고, 잘 할 수 있는가] 와 같은 것은 범인들에게는 곡해되기 싶다. 보이지 않는 4차원적 이해공간 속에 그가 서있는 것이 아니라면 도전하기 전에 잘 할 수 있는가와 같은 질문을 던지는 자체로 알과 새의 꼬리물기싸움이 시작된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 아닐텐데 말이다. 그러면서도 [성공 가능성은 고려사항이 아니]라고 덧칠을 해댄다. 독서의 폐해 정도는 감수하는 甘受狂 국민이 되어야 하는 것일까. 하나 더 꼬집자면 사회에 있어 무엇이 기본인가 하는 점이다. 그것은 오롯이 법이다. 법은 모든 이에게 공평한 약속이고 그것은 누구나 지켜야할 룰이다. 어떤 약속을 누구는 지키고 누구는 지키지 않는 사건이 하나둘씩 발생하기 시작하면 그것은 불신받게 되고 사회라는 얼개는 줄이 끊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비근한 예로 불법위장전입을 밥먹듯이 해대는 한국의 고위공직자들이 처벌받는 것을 보았는가 말이다. 국가(왕정)에 대한 개인의 자유 보호라는 측면에서 형성된 법치주의가 권력의 방어수단으로 변질 통용되는 마당에 현대복지국가의 이념을 입에 올리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말이다. 복지가 우선이 아니다. 정의가 우뚝서야 사회의 구성원들이 흔들리지 않으며, 그 다음이라야 복지를 불러들일 수도 있고, 평화도 오는 것이다. 정의의 기초부터 다시 세우는 것, 이것이 진정 선행되어야 함을 알아야 할 것이다.

 

분무연출가 안철수가 직접 제정임에게 전화하여 이 대화(책)를 성사시켰다는 점만으로도 그의 의도는 분명하게 보인다. 그가 원하는 것은 변화의 중심에 국민의 움직임, 마음의 이동과 결집을 원하고 촉구하고 있는 것이고 그것이 안철수라는 허상이 아닌 실체로 나타나길 기대하고 잇는 것이다. 약속을 지키는 삶, 좁쌀처럼 꼼꼼한 안철수는 [I may be wrong]를 알기에 가능할지도 모른다. 분무연출 좀 하면 어떠리, 자신이 아닌 사회가 잘 되자고 하는 이쁜 짓(전략)인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주기자 : 주진우의 정통시사활극
주진우 지음 / 푸른숲 / 201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活劇이란 싸움, 도망, 모험 따위를 주로 하여 연출한 영화나 연극, 격렬한 사건이나 장면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주진우 기자의 성향과 잘 어울리는 적절한 제목 선정이다.

주진우 기자, 김어준 총수, 김정운 교수와 같은 사람들은 모름지기 남자라면 멋지게 살다가 가야한다는 생각에 올인하는 분위기다. 김정운 교수가 도취적이고 사적인 멋에 공을 들인다면 김총수나 주기자는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멋인 정의로움을 찾는 데 몰입되어 있다. 후자가 김총수의 논리대로 정치가 편해야 결국 자신의 생활이 편해진다는 假定이 사회적 동참을 요구하고 있다고 해서, 김정운 교수와 완전히 등을 돌린 것은 아니다. 개인적 취향을 발견하고 그것에 매진하는 것을 권장하는 것 또한 그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것의 밑그림이 용기인지 풍요인지는 지켜보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분명하게 다가온다. 또한 일부가 의심하는 것처럼 그들은 약장사 아닌 책장사일 수도 있을 것이고, 더불어 그들이 부르짖는 진실이 그들만의 진실이거나 취향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책들을 통해 우리는 다른 존재와 그 존재 뒤에 감춰진 배경들을 관전하고, 이를 통해 닫혀있던 인식의 틀속에 살아있는 그들을 추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주기자의 시선과 생각을 쫓다보면 미흡한 더듬이와 정보로 인해 보이지 않았던 死角들이 깨알처럼 쏟아진다. 검경, 삼성, 종교, 언론, MB, 노무현, 친일파와 빨갱이 등 群盲評象한 존재들이 귀신 시뮬라시옹이 아니라 실체로서 눈 앞에 살아 꿈틀대기 시작한다. 그것들은 상식을 파먹고 우리의 몸과 정신에 구멍을 내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患部 깊은 병자를 대하는 닥터 주진우의 생각들은 용기있고 진솔하게 들린다. 단지 누님들(신정아와 에리카김)과 자신과 친분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자의적인 메스를 가하는 듯하며, 책의 중간 중간에 나오는 정의감의 과잉은 새벽의 연애 편지쓰기처럼 憫惘하다.

다음은 주기자를 움직이는 동력원이다. 이를 이해한다면 굳이 그 정도를 물고 늘어질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이를 도구 삼아 누굴 죽이든 돈키호테나 산초라고 불리지 않는 기자가 되길 기대해본다.

 

 

괴테는 역사의 의무는 진실과 허위, 확실과 불확실, 의문과 부인(否認)을 분명하게 구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p.263)

 

과거의 범죄를 반성하지 않는 것은 미래의 범죄를 용인하는 것이다. 프랑스의 대문호 알베르 카뮈의 말에서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인명사전>의 발간 의의를 찾았다.(p.265)

 

그리고 나는 오늘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말을 새기고 있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다. 용기는 모든 덕 중 최고의 덕이다. 사람들이 나쁜 신문을 보지 않고, 또 집회에 나가고 하면 힘이 커진다. 작게는 인터넷에 글을 올리면 된다. 하다못해 담벼락을 쳐다보고 욕을 할 수도 있다.(p.294)

 

권력에 붙어먹은 비열하고 이기적인 사람들은 대를 이어 잘산다. 아이들에게 무엇을 보고 어떻게 살라고 해야 하는가?(p.30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동물농장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
조지 오웰 지음, 도정일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조지오웰은 1917년 볼셰비키의 소비에트, 1933년 나찌당의 출범, 1936년 스페인내전의 프랑코정권을 보면서 이들 체제의 어떤 관성적 특징을 발견한 것 같다. 그런데 이들을 풍자하고 만 것이라면 모든 것이 변화한 지금, 동물농장은 구태여 읽힐 필요가 있을까. 그래서 왕정에서 사회,공산으로의 혁명을, 농장의 동물들이 농장주 존즈를 축출하는 과정으로 그려낸 도입부는 풍자라는 말을 입히기에 지나치게 작위적이고 어설프다. 그럼에도 중후반으로 가면 저자의 의도들이 계속해서 관철되고 녹아들어 이 책이 단순히 전체주의나 사회주의, 공산주의 부패와 타락을 나타내려했다는 의도를 뛰어넘는 무언가를 발견하게 된다. 바로 독재의 유혹과 행위들이, 심지어 민주주의 체제하에서도 존재하며, 그러한 프레임과 조작들을 심심찮게 촉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합의된 원칙의 변형 및 무시, 적대세력 내지 반체제세력의 가공, 허위의 사실화, 정권나팔수의 선동, 통치자의 교조화, 과거사의 재해석, 관변단체나 언론의 정권에 대한 지지, 여론과 통계의 조작, 언로의 억압과 통제, 일방적 상의하달, 권력기구를 통한 탄압 및 숙청, 공공사업의 독단적 추진, 경제효과 부풀리기 등등 이것은 과연 동물농장에만 한정된 알레고리일까?

 

p.156~157에서 역자는 "역사상 많은 정치적 사회적 혁명들이 타락하고 이 타락이 인간 사회의 운명적 조건 같아 보이는 상황을 만들어놓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로부터 <모든 혁명은 반드시 타락한다>라는 결론을 끌어낼 수 있을까? 다행히도, 오웰의 비판적 태도는 비관만으로 끝나지 않고 권력의 타락을 막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에 대한 통찰도 동반하고 있다. 동물농장이 함축하는 메시지의 하나는 동물들의 무지와 무기력함이 권력의 타락을 방조한다는 것이다. 독재와 파시즘은 지배 집단 혼자만의 산물이 아니다. 권력에 맹종하고 아부하는 순간 모든 사회는 이미 파시즘과 전체주의로 돌입한다." 며 교과서적인 해설을 곁들인다. 하지만 역사를 통틀어 무지와 무기력을 해소해줄 비가 전국적으로 내린적이 있던가. 2012년까지도 권력의 타락을 지켜보는 무지와 무기력은 무엇인가? 이것은 권력과 체제의 타락에 대한 조지오웰의 답도 아니고, 답이 될 수도 없다고 본다. 동물인 인간이 이미 다른 동물을 가축으로서 구분하고 그들을 지배하려드는 순간 그 차별이 이유가 있어서 그랬던 것인가 생각해보면 나폴레옹도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역사상 많은 정치적 사회적 혁명들이 타락하고 이 타락한 인간 사회의 운명적 조건 같이 보이는 상황을 만들어놓은 것은 사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만과 편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8
제인 오스틴 지음 / 민음사 / 200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결혼하기 1년전만 해도 영화에 관해서 멜로, 로맨틱이라는 단어는 배척을 넘어서 박해의 대상이었다. SF나 고어, 호러, 스릴러 등이 가미되지 않은 것들은 영화의 축에도 끼지 못하는 작품성이라는 주관적 잣대로 난도질 당할 수밖에 없는 오로지 여성전용 킬링물이었고, 그것은 절대적인 왕좌를 지키고 있는 남성이라는 왕의 자존심이었다. 그렇지만 배신만이 냉혹한 현실에서 아름답듯이 서른 다섯이란 나이는 로맨틱 코메디나 멜로 영화를 거부할 상황이 아니었다. 봄바람에 실려온 고요하고 희미한 그녀의 웃음소리는 이제 안팎을 가리지 않는 아줌마의 사자후가 되었다. 그녀의 마약같은 영상 취향이 쥐도새도 모르게 서서히 스며들고 녹아든 어느날, 해품달에 취해 에스트로겐이 분비되고 있는 어떤 남성인 자신을 발견한다. 그녀와 아이가 잠든 밤 오랜만에 남아버린 시간들을 아름답게 채색하고자 돌렸던 영화채널의 태국영화들에 놀라 가슴이 쿵닥거리고 머리가 어질어질하여 리모컨을 찾지 않을 수 없다. 이젠 여성 특유의 감정변화를 읽으며 즐거움에 빠진다. 어떤 남자들이 맨손으로 쇠를 절단하고 유리를 와작와작 씹어먹는 괴력을 가졌더라도 웃음과 눈물의 댐을 마음대로 조절하는 여성들에게 어떤 무기로 빅토리를 환호할 수 있을 것인가. 영화로 미리 경험했던 이 책 『오만과 편견』은 그것보다 10배는 재미있다. 단순히 책의 두께가 읽기의 부담을 가져올 것이란 여행자의 선입관은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 아쉬움으로 돌변한다. 제인 오스틴은 엘리자베스와 아버지 베넷씨을 통해 골계와 해학의 파노라마 보따리를 기지와 위트로 풀어놓는다. 저 멀리 여우비 내린 들판에 흰 드레스를 입은 아가씨들이 옮기는 경쾌한 발걸음을 따라가보자.

 

장자상속이나 한정상속(민법의 개념과는 다르다)이 시대의 조류인 가운데 성인 여자나 장자가 아닌 남자가 취할 수 있는 포지션은 제한적이다. 이를테면 여자는 유산을 물려받은 장자에게 시집간다든지 아니면 가정교사 등이 되어 생계를 해결해야 한다. 그것도 아니라면 친지나 가족에게 경제적 도움을 청하는 비참을 감수해야 한다. 그리하여 과년한 여자들에게 결혼이란 지상 최고의 목적이 된다. 지금의 신데렐라신드롬이 자본주의 시대에 걸맞는 소비생활의 원활에 핵심이 있다면 당시는 생계곤란이라는 보다 본질적인 문제해결과 '사랑하는가' 하는 자의식에 답이 있었다. 역자의 해설대로 샬롯은 사랑보다는 경제적 풍요를 위해 콜린스를 택하고, 리디아는 부를 탐하기 보다 단지 감성적인 사랑에 몰입해 도망친다. 더불어 경제적인 척도와는 보다 무관하게 수동적으로 연인관계를 발전시키는 제인과 빙리가 있고, 그와는 다르게 능동적으로 사랑을 발전시키는 엘리자베스와 다아시가 있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재력이나 가문의 장벽이 문제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일방적이고 가식적인 등반을 통해 사랑과 부를 얻으려했던 빙리양이나 위컴이 추락하고 만 것과 달리 다아시와 엘리자베스는 솔직함으로 서로에 대한 오만과 편견을 인정하며 상기의 것들을 넘어서는 집중력을 선보인다.

 

한편 샬롯의 선택이나 베넷부인의 노력이 천박하다고 생각할 수가 없듯이, 작가는 위선과 허위의 교양을 덮어쓴 다양한 인물들을 배치하고 독자의 입장에서 그것의 선호나 취사선택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는듯하지만, 삶의 방식이나 실존능력은 캐릭터의 중요도와는 무관하게도 삶의 무게가 균형을 이루도록 설계해놓았는 점에서 매우 높게 평가할 수 있다. 부자나 빈자나 교양이 있건 없건 살아감에 희노애락은 그 누구도 피해가지 않는다. 진중한 것만이 위대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그것을 찾을 수 없다는 것도 아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로파간다 - 대중 심리를 조종하는 선전 전략
에드워드 버네이스 지음, 강미경 옮김 / 공존 / 200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891년 11월 22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출생한 에드워드 버네이스는 곡물상이던 아버지의 뜻대로 코넬대에서 농학을 전공하지만, 의학 잡지사에서 기자로 일하며 홍보(PR) 실무를 쌓는다. 1차세계대전 자원이 평발과 시력문제로 무산되자, 전쟁지원업무에 참여해 연방공보위원회에 소속되었으며, 이 곳에서 발군의 기량을 선보인다. 1919년 종전 이후에는 뉴욕에서 최초로 PR전문 사무실을 열어 계속된 성공을 거두게 된다. 삼촌인 지크문트 프로이트의 영향으로 대중심리학에 정신분석학을 결합시켜 이를 선전과 홍보에 활용했으며, 홍보를 과학이자 산업의 반열에 올려놓는 능력을 발휘한다. 

수많은 언론과 지식인들이 PR의 아버지, PR산업의 선구자라고 찬양하기도 하지만 한편, 【정보조작의 아버지, 과대선전의 왕자, 선전의 교황, 민주주의의 암살자】로 비난하기도 하는 선전가 버네이스는, 1928년, 선전이란 단어의 부정적 의미를 일소하여 긍정적 측면의 접근을 가능케하고, 자신이 개척한 PR분야에서의 자신의 성공, 위치를 자신하며 이를 홍보하고자 하는 욕심에서 이 책 『프로파간다』를 출간한 것으로 보인다.

홍보분야에서의 성공에 비하면 첫번째 목적으로서의 책의 사명은 실패했다고 한다. 선전이란 의미가 조작 내지 특정 목적이 숨겨진 홍보라는 인식이 우세한 것은 단순히 1,2차세계대전을 통하여 독일의 선전을 부패와 악행, 기만 등으로 연계시켜 부정적인 선례로 남긴 것 때문만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1916년 반전을 기치로 내건 우드로 윌슨은 대통령에 당선된 후, 사실상 참전을 꾀하기 위해 미국최초의 연방선전기관인 연방공보위원회(United States, Committee on Public Information, 조지 크릴이 수장이어서 크릴위원회라고 불리기도 했음, 버네이스 참여)를 가동하여 국민들을 반독 미치광이가 되도록 선동한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버네이스가 목적했던 첫번째 꿈은, 대중의 의견을 주조鑄造하고 조작造作하는홍보(정보제공)를 통해 원활하고 질서정연하게 기능하는 사회였다. 그런 사회에서 일반은 선량하고 합리적인 엘리트집단이 조작하는 대로 미처 의식하지도 못한 채 안내를 받으며 삶을 영위하도록 하는 것』【p.25, p.61】의 역할 중심에 선전이 있다고 봤다. 버네이스의 지적영웅인 월터 리프먼대 대중 사회의 일원들은 대체로 명쾌한 사고나 인식능력이 부족해 집단본능과 단순한 편견에 사로잡히기 쉬우며, 결정을 내리거나 진지한 담론을 전개할 만한 능력이 부족해 외부 자극에 오도誤導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p.27】이라며 【민주주의는 이룰 수 없는 이상향】이라고 음울한 결론을 내렸는데, 이에 영향받은 것으로 보인다. 엘리트 결정주의가 아니라 대의제 민주주의를 선택한 이상, 사회에 있어 대중의 총의總意가 합리적 대안인 것처럼 여겨지지만, 사회가 질서정연하게 움직이도록 하는데에 그것은 산만하게 기능할뿐 난해한 경제, 정치, 윤리문제를 해결하는 역할을 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러하기에 선출된 권력자나 지배자가 수많은 가치의 우선순위를 매기면, 그 결정에 대한 저항을 희석시키고 자연스럽게 용인되도록 하는 기술로서, 선전을 민주주의의 필수불가결한 요소라고 주창한다.

『대중의 관행과 의견을 의식과 지성을 발휘해 조작하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중요한 요소이다. 사회의 이 보이지 않는 메커니즘을 조작하는 사람들이야 말로 국가의 권력을 진정으로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정부(invisible government)【p.61】, 『대중의 생각을 지배하는 끈을 잡아당기면서 사회의 노후한 힘에 박차를 가하고, 세상을 하나로 묶어 인도할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는 사람들은 바로 이들이다.』【p.62】라고 선전의 위치와 선전자의 역할를 치켜세우며, 하지만 오늘날 또다시 반대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소수가 다수에 영향을 미치는 강력한 수단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즉, 대중의 생각을 조종함으로써 대중이 새롭게 얻은 힘을 소수가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하는 게 가능해졌다. 현재의 사회구조 안에서는 그러한 기술이 반드시 필요하다.』【p.78】며 민주주의를 허위구조로 이해하기 보다는, 소수가 다수의 집단사고를 조직하고 대중의 생각을 단순화시키는 대중大衆민주주의의 단점에 대해 필수적이며 당연한 보완 요소로 생각하는 점은 신선도가 넘친다. 더 나아가서 인간의 자유의지 인식은 완전한 착각이며, 권력을 행사하는 독재자들의 암묵적인 가치 투여로 생각을 주조 당해 선택, 선호, 배척한다는 것이다.

 

선전과 홍보의 기술체계로서 대중심리학과 프로이트 심리학을 끌어들이는데,『인간은 사고 대신 충동, 습관, 감정이 꼭대기에 자리잡고 있어서 결정을 내릴 경우, 집단심리는 대개 믿음이 가는 지도자의 선례에 따르려는 충동을 보인다』p.118】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행동을 추동하는 진짜 원인이 무엇인지 모르며, 사고와 행동의 상당수는 그 동안 억눌려왔던 욕망을 보상하는 성격을 띤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무언가를 희구한다면 그 이유는 그 대상이 지니는 고유의 가치나 유용성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인정하기 수치스러운 욕망의 상징을 무의식중에 보았기 때문』p.121】이라며 이동수단으로써 자동차를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지위나 성공의 사회적 표시 및 상징이기 때문에 구매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①집단화와 제휴에 따른 집단습관, ②심미, 경쟁, 군집, 속물, 과시, 모성동기,  ③계몽선전 같은 교육, ④영향력 있는 인물, 강연, 뉴스, 텔레비젼 등을 이용하여 여론을 조작하는 것이 가능함을 설명하기도 한다.

 

선전 홍보에 있어 실제로 그가 거둔 실적은 어마어마할 정도이며, 직접적인 단순 광고 보다는 식역하<x></x> 지각知覺을 통한 간접광고의 선례를 남겼다. 1920년대 머리망 제조회사의 판촉의뢰를 받아 머리를 길게 풀어헤치고 작업할 경우 위험하다는 사실을 홍보하여 여성노동자의 머리망 착용을 입법화시켰으며, 1924년에는 캘빈 쿨리지 대통령의 재선을 위해 대통령의 차가운 이미지를 탈색시켜 당선시키기도 했으며, 1928년에는 여성 흡연을 자유의 횃불이라는 여권 신장의 상징으로 각인시켜 흡연율을 몇 배로 높였고, 1929년에는 토머스 에디슨의 전구 발명 50주년을 기념하는 빛의 황금 축제를 명목으로 하여 제너럴 일렉트릭과 미국전력협회의 홍보를 기획하였으며, 1930년대에는 도서판매를 위해 붙박이 책장설치를 유행시켰으며, 1935년에는 금주법 하에 맥주가 절제의 음료이므로 과음을 방지하는 예방주사와 같다고 홍보하기도 했으며, 1940년대에는 과일 유통회사인 프루트 컴퍼니가 1945년 과테말라에 민주정부가 들어서면서 바나나 수입에 차질이 생기자 CIA를 움직이도록 해 민주정부를 전복시키기도 하였다.

 

여권 신장의 상징으로 담배피는 것을 홍보하여 흡연율과 판매량을 늘렸지만, 정작 자신은 담배를 절대로 피우지 않았으며, 아내에게도 금연을 강조했다고 하니대중을 바보로 만들거나 속이는 일은 해서는 절대 안된다. 만약 그런 평판을 얻게 되면 그의 직업 생명은 끝나고 만다.』p.111】는 헛구호는 그를 부정적으로 대변하는 말들의 무게에 비중을 싣는다. 다만 자尺의 용도가 사람에게 이를때에는 어느 누구도 떳떳한 자를 돌로 쳐죽일 것이니 그 일은 손이 아니라 계산의 가감산에 의할 것이 아니겠는가.

민주주의를 허위구조라고 단언하지 않았지만, 그의 주장들은 어느새 그곳을 이정하고 있다. 돈과 재물이 본本이 되는 세상이 자본주의고, 이것이 민주주의의 주춧돌이 되었다면, 선전이 간극間隙을 메우는 오늘날의 세상이 좀 보일만도 하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