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자 : 주진우의 정통시사활극
주진우 지음 / 푸른숲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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活劇이란 싸움, 도망, 모험 따위를 주로 하여 연출한 영화나 연극, 격렬한 사건이나 장면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주진우 기자의 성향과 잘 어울리는 적절한 제목 선정이다.

주진우 기자, 김어준 총수, 김정운 교수와 같은 사람들은 모름지기 남자라면 멋지게 살다가 가야한다는 생각에 올인하는 분위기다. 김정운 교수가 도취적이고 사적인 멋에 공을 들인다면 김총수나 주기자는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멋인 정의로움을 찾는 데 몰입되어 있다. 후자가 김총수의 논리대로 정치가 편해야 결국 자신의 생활이 편해진다는 假定이 사회적 동참을 요구하고 있다고 해서, 김정운 교수와 완전히 등을 돌린 것은 아니다. 개인적 취향을 발견하고 그것에 매진하는 것을 권장하는 것 또한 그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것의 밑그림이 용기인지 풍요인지는 지켜보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분명하게 다가온다. 또한 일부가 의심하는 것처럼 그들은 약장사 아닌 책장사일 수도 있을 것이고, 더불어 그들이 부르짖는 진실이 그들만의 진실이거나 취향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책들을 통해 우리는 다른 존재와 그 존재 뒤에 감춰진 배경들을 관전하고, 이를 통해 닫혀있던 인식의 틀속에 살아있는 그들을 추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주기자의 시선과 생각을 쫓다보면 미흡한 더듬이와 정보로 인해 보이지 않았던 死角들이 깨알처럼 쏟아진다. 검경, 삼성, 종교, 언론, MB, 노무현, 친일파와 빨갱이 등 群盲評象한 존재들이 귀신 시뮬라시옹이 아니라 실체로서 눈 앞에 살아 꿈틀대기 시작한다. 그것들은 상식을 파먹고 우리의 몸과 정신에 구멍을 내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患部 깊은 병자를 대하는 닥터 주진우의 생각들은 용기있고 진솔하게 들린다. 단지 누님들(신정아와 에리카김)과 자신과 친분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자의적인 메스를 가하는 듯하며, 책의 중간 중간에 나오는 정의감의 과잉은 새벽의 연애 편지쓰기처럼 憫惘하다.

다음은 주기자를 움직이는 동력원이다. 이를 이해한다면 굳이 그 정도를 물고 늘어질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이를 도구 삼아 누굴 죽이든 돈키호테나 산초라고 불리지 않는 기자가 되길 기대해본다.

 

 

괴테는 역사의 의무는 진실과 허위, 확실과 불확실, 의문과 부인(否認)을 분명하게 구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p.263)

 

과거의 범죄를 반성하지 않는 것은 미래의 범죄를 용인하는 것이다. 프랑스의 대문호 알베르 카뮈의 말에서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인명사전>의 발간 의의를 찾았다.(p.265)

 

그리고 나는 오늘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말을 새기고 있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다. 용기는 모든 덕 중 최고의 덕이다. 사람들이 나쁜 신문을 보지 않고, 또 집회에 나가고 하면 힘이 커진다. 작게는 인터넷에 글을 올리면 된다. 하다못해 담벼락을 쳐다보고 욕을 할 수도 있다.(p.294)

 

권력에 붙어먹은 비열하고 이기적인 사람들은 대를 이어 잘산다. 아이들에게 무엇을 보고 어떻게 살라고 해야 하는가?(p.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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