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면 두 가지 일이 중요하게 다가온다.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일과 한 해를 돌아보는 일! 이 단순한 자각이 가슴을 친다. 혼자서는 온전한 삶을 살 수가 없으며 나에게는 무엇이 중요한지 일깨운다. 고요한 시간을 마련해 독서도 즐기고 싶지만 아무래도 연말엔 감사와 성찰의 실천이 절실해진다.

 

며칠 후면 새해를 맞는다. 연말에 무엇을 해야 할지 분명해졌지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마지막 그날까지 정성을 다함으로 아쉬움을 달래는 길이 최선이리라. 고마운 분들을 찾아뵈련다. 당신이 내어 주신 시간들을 맛난 음식과 따뜻한 대화로 채우고 싶다. 날마다 홀로 성찰해야지. 시간을 넉넉히 마련하여 한 해의 삶이 어떠했는지 돌아봐야겠다.

 

감사를 실천하면서 얻는 결실은 깊고 넓다. 행복에 젖어들 뿐만 아니라 영혼이 고양된다. 모든 감사가 영혼의 성장에 기여하는 것은 아니다. 대개의 감사는 자기만족적인 기쁨에서 머문다. 철학자 김영민은 감사 자체는 영혼과 별 상관이 없음을 통찰했다. 그에 따르면, 누군가에게 베푼 호의를 감사로 되돌려 받지 않아도 괜찮은 마음, 다시 말해 감사의 빈곤을 넉넉히 삼켜서 만들어낸마음이야말로 영혼의 젖줄이다.

 

성찰은 또 어떤가. 성찰을 통해 자신의 과거로부터 배우고 미래의 청사진을 발견하는가 하면 스스로를 엄정하게 성찰하면서 영혼을 살찌운다. 성찰한다고 해서 무조건 배우거나 매번 영혼이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성찰은 자신의 편견을 강화하거나 자기 합리화로 이끌기도 하기 때문이다. 성찰의 유익을 극대화하려면 어떡해야 할까?

 

나는 여기저기서 인생을 성찰하는 방법(역사의식)’을 얘기하곤 했다. 순차적으로 행하면 좋을 세 단계를 적어 둔다. 구체적인 설명은 다른 지면을 기약하면서.

 

첫째,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기술(記述).

둘째, 원인과 결과를 이성적으로 파악하는 해석.

셋째, 자신의 바람과 가치관에 견주어 보는 평가.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기술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자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기억하기 십상이고 실수와 불찰은 감추고 싶어지기 마련이다. 인과관계를 이성적으로 파악하기보다는 변명을 늘어놓는 경우도 많다. 변명을 일삼는 K가 떠오른다. 그의 변명을 들으면 화도 나지만 때론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자신의 과오에 직면하여 성장할 기회를 변명을 늘어놓음으로 놓치는 것 같아서다.

 

저 융숭 깊은 철학자는 변명하는 이들에게 가차 없는 일갈을 날린다. “변명은 해명도 설명도 공명도, 그리고 사람의 숙명도 아니다. 흔한 말처럼 불안이 아니라 변명이 영혼을 갉아먹는다.”(김영민, 자본과 영혼, 글항아리, p.71) 자본주의를 포함한 권력 체제 일반이 변명의 시스템이라는 통찰도 던진다. 덕분에 MB를 비롯한 파렴치한 권력자들의 한 유형을 깨닫는다.

 

선생의 통찰은 절실한 교훈을 안겼다. 나에게 12월이란, 감사를 전하고 성찰을 행하고픈 계절이기에 그렇다. 헤르만 헤세는 어린아이의 특징 중 하나가 감사할 줄 모르거나 감사를 빨리 잊어버리는 모습이라고 썼다. 그가 옳을 것이다. 어른이라면 보답을 의식하지 않고 순수하게 감사하리라. 그런 감사는 드물다. 가끔씩 만나는 어른아이를 넉넉히 이해하는 정신 그리고 자기변명을 삼켜내는 엄정함에서, 영혼이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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