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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시아나로 가는 길
로버트 바이런 지음, 민태혜 옮김 / 생각의힘 / 2024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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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건축 비평가, 역사학자이자 여행 작가인 로버트 바이런은 1933년, 두 가지 희망을 품고 여행길에 오른다. 첫 번째는 페르시아의 기념물을 보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마자르 이 셰리프에 가는 것. 그는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시작해 키프로스, 팔레스타인, 시리아, 이라크를 지나 아프가니스탄에 이르는 여행을 글로 기록하여, 베이징에서 완성한 뒤 1937년 『옥시아나로 가는 길』이라는 제목을 달고 첫 출간했다. 이 책은 30년대에 가장 영향력 있는 여행기가 되었고, 2024년 4월에 생각의힘 출판사를 통해 국내에도 선보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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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스트는 그의 자전적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고장의 이름이 주는 환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때로는 이름만으로 지역에 큰 기대를 품기도 하며...
인터넷도 뭐도 없을 시절에 바이런도 '옥시아나'라는 이름, 그 울림에 어떤 특별한 이미지를 품고 떠나기로 감행한 것일까? 요즘 우리가 여행 가기 전 준비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그의 여행은 다소 무모해 보인다.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수 있는지, 갈 수 없는지, 안전한지, 위험한지... 알 지 못하고 그저 두 가지 희망만을 품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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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라는 형식은 어떻게든 당대성을 띠는 듯하다.
세계 2차대전 당시 유대인의 일상을 담은 『안네의 일기』야 본디부터 유명하고, 최근에 읽었던 다니엘 페냐크의 『몸의 일기』에서도, ─사실 이 책은 소설이지만─, 화자가 자신의 몸에 대해 기록하는 와중에 군데군데 시대적인 이야기가 드러나있었다.
로버트 바이런의 『옥시아나로 가는 길』 역시 시대적인 이야기가 많이 녹아있다. 1933년의 이슬람 문화권을, 간혹 전 세계적인 흐름을 엿볼 수 있기도 한데, 당대적인 요소와 사건들을 곳곳에서 언급한다. 영국과 이라크 간의 외교적 갈등 상황이라던가, 나디르 샤 국왕의 암살 사건, 나치 선전 영화인 「독일, 깨어나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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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나오는 여행기를 포함해 여행과 관련된 서적을 떠올려 비교해 보았을 때, 『옥시아나로 가는 길』은 그림·사진 자료가 현저히 적고 저자가 보고 적은 풍경 묘사가 대부분이다. '살아보지 못한 시대'와 '가보지 못한 곳'이라는 요소 때문에 텍스트가 결코 쉬이 읽히지는 않는다. 나 역시도 많은 부분을 상상할 수 없어 주 무대에서는 살짝 빗겨나있지만 개인적 경험에서 그나마 비슷한 이미지인 인도 배낭여행의 기억에 의지해야 했다.
영국이라는 타 문화권에서 나고 자란 이의 시선으로 이슬람 문화권의 사람들, 문화들 그리고 풍경들을 그려낸다. 당연하지 않기에 눈에 들어오고 글로 쓸 수 있다. 다름을 포착한다. 작가의 날카로운 시선으로.
저자가 사진기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찍을 수 없었다는 것은 294쪽의, 저자가 베르그너를 만나 사진 촬영에 대해 자문을 구하는 몇 줄의 문장들을 통해 알 수 있으니, 독자는 이해하고 감안해야 할 부분이겠지만, 인터넷에 검색해 본 이라크 마을, 마자르 이 셰리프의 풍경이나 술타니야 건축물의 웅장함을 보고 나니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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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배우고자 만들어진 책이 아닌, 한 작가의 여행기이기 때문에 그래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특히, 바이런의 은근한 유머, 여행 도중 일어날 법 한 일상적인 이야기들, 그리고 사진은 못 찍었더라도 나름대로 열심히 묘사하려 애쓴 건축물들에 대한 묘사들. 그냥 일기일 뿐인데, 낯선 곳에 대한 이야기에 힘주고 읽었다가는 금세 나가떨어질 수도 있겠다. 이 나라들에 대해 정보가 많이 부족한 상태라면 다소 도전적이겠지만, 모종의 이유로 이 시대와 이 나라들에 호기심이 생긴 독자라면 바이런의 글에 몸을 싣고 즐기면 좋겠다.
다니엘 페냐크의 『몸의 일기』를 읽고 몸에 관한 기록은 아니지만 그 책에서 일기의 형식에 영감을 받아 나름대로의 기록을 하기 시작했다. 여행기에 대한 영감을 얻고자 한다면 이 책을 읽어 보는 건 어떨까.
본 서평은 생각의힘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