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에 이름 붙이기 - 마음의 혼란을 언어의 질서로 꿰매는 감정 사전
존 케닉 지음, 황유원 옮김 / 윌북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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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영하는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자신의 수업 중에 '짜증 난다'라는 표현을 쓰지 못하게 한다고 이야기했다. '짜증' 속에는 다양한 감정이 뭉뚱그려져 있기 때문에, 내 안의 다채로운 감정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최근 한국의 부모 사이에서는 아이에게 다양한 감정의 표현을 교육하는 육아 활동이 대세이기도 하다.

나, 너, 우리, 그리고 누군가의 마음은 마치 포토샵의 색상 피커처럼 참 다양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동안 내 마음을 얼마나 온전하게 언어로 표현하지 못했는지 곱씹어 보면 참 입 밖으로 튀어나온 말이 색의 삼원색처럼 단순했지만...


누군가는 '말로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을까' 질문을 던지고,
다른 누군가는 표현할 수 없는 것에 이름을 붙여 표현하고자 한다.

2009년, 존 케닉은 불완전한 언어의 빈틈을 메우고 싶다는 생각으로 아직 이름 없는 감정들에 하나하나 이름 붙여 정리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여전히 모호했던 감정은 말로 표현하지도, 아니 되려 인식조차 하지도 못했었는데 저자의 집요함에 마침내 온전한 한 권의 책으로 출간되었고, 국내에서는 윌북 출판사를 통해 『슬픔에 이름 붙이기』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제롬 케이건은 『무엇이 인간을 만드는가』라는 책에서 '말로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을까'라는 제목으로 독자에게 첫 질문을 던진다. 물론 '모든 것'을 표현하기는 어렵다는 게 그 장에서의 주된 골자이지만, 존 케닉은 세상의 언어들을 최대한으로 끌어와 조합해 모호한 감정에 이름을 붙인다. Mamihalpinatapai라는 단어가 한때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적 있는데, 그 단어처럼 어느 나라에서는 보편적으로 쓰이지만 다소 복잡한 무언가에 대한 것을 한 데 모아 엮은 책인 줄 알았는데 직접 만든 단어들이라고 한다. (※mamihlapinatapai: (명) 서로에게 꼭 필요한 것이지만 굳이 스스로 하고 싶지는 않은 일에 대해서 상대방이 자원하여 해 주기를 바라는, 두 사람 사이에서 조용하면서도 긴급하게 오가는 미묘한 눈빛.)

책의 부제인 「마음의 혼란을 언어의 질서로 꿰매는 '감정 사전'」이라는 문장답게 대부분의 텍스트들이 단어와 뜻 설명으로 이루어져 있다. 단어의 뜻을 확인하기 위하여 종이 사전들을 재빠르게 손으로 뒤적거렸던 때가 떠오르지만, 그때와는 달리 한 페이지를 펼쳐놓고 오래 음미하게 된다.

책에 나열된 모호한 감정들. 하지만 텍스트화되어 이런 감정도 있음을 인식하고, 책에 적힌 감정을 읽으며 지나간 세월을 반추해 본다. 나 역시 이 감정을 살면서 한 번쯤 느껴보지 않았던가, 하고.




일부 감정 단어에는 저자가 애정을 담아 쓴 글이 있는데, 스스로와 우리네 삶에 대한 글이라 그런지 나에 대입해 깊게 생각해 보게 된다. 이 책이 그저 단어와 뜻만 있었더라면 분명 아쉬웠을 텐데, 이렇게 중간중간 삽입된 에세이가 책을 더 풍성하게 해준다.





개념을 만들어내는 순간 실재는 방을 떠나고 만다고 말한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의 말이 떠오르지만,
그래도 확인받고 싶고 복잡한 감정을 공유하고 싶은 건 사람의 본성일까?
아니면 나만의 집착일까?

이 책으로 독서모임을 하기에는 좋다 말하기 힘들지만, 그래도 누군가와 이 책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내가 느끼지 못했던 감정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듣고 싶고, 내가 느꼈던 감정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함께 느꼈던 감정에 대해서는 공감하는 그런 대담(對談)을 말이다. 또, 오래 곁에 두다가 앞으로 남은 인생을 살다가 언젠가 느낄 수 있는 새로운 감정을 이 책으로 다시 확인하는 순간이 오면 어떨까, 상상해 본다.





본 서평은 윌북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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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르센, 잔혹동화 속 문장의 기억 Andersen, Memory of sentences (양장) - 선과 악, 현실과 동화를 넘나드는 인간 본성
박예진 엮음,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원작 / 센텐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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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르센, 잔혹동화 속 문장의 기억 | 안데르센 | 박예진 | 센텐스
선과 악, 현실과 동화를 넘나드는 인간 본성



인어공주, 성냥팔이 소녀, 백조 왕자 그리고 미운 오리 새끼. 아주 어릴 때 책으로 접했던 동화들.
이 동화들이 사실은 아주 잔혹했다는 이야기는 조금씩 커가면서 듣게 된 이야기다.
내가 책으로 읽었던 동화는 어린이들이 감당할 수 있도록 매우 순하게 바뀐 내용이었고...


책의 문장을 길어올리는 리텍콘텐츠의 브랜드, 센텐스에서 이번에는 안데르센의 잔혹동화를 소개한다.




안데르센은 덴마크의 대표적인 동화 작가로, 아까 언급했던 인어공주, 성냥팔이 소녀 같은 작품들을 포함해 다양한 동화를 집필했다.  그의 동화는 사실 매우 잔인한 묘사가 있기로 유명한데, 지난 3월에, 덴마크의 철학자 키르케고르에 대해 알아보던 중, 한 기사에서 안데르센(1805~1875)의 생애는 덴마크 역사상 최악의 시기와 맞물려 있다는 문장을 보고, 이 잔혹하고 현실적인 동화의 집필 배경에 그 시기의 영향도 없지는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은 언급했던 유명한 작품들 외에도 비교적 우리에게 덜 친숙하더라도 이야기가 있는 안데르센의 여러 작품들을 욕망, 사랑, 환상, 철학 네 분류로 나누어 소개한다.




원본을 그대로 실은 게 아닌가 싶은 정도로 아주 잘 요약된 동화와, 영어 문장들. 그리고 은유적이어서 이해하기 힘들 수 있는 그 시절 그 나라의 동화에 편역자의 해설이 매우 빛이 나는 책이다. 개인적으로 편역자가 이야기 끝에 달아주는 집필 배경이라던가 작품의 의의 및 해설 부분이 대단히 인상 깊었는데, 어릴 때부터 봐와서 익숙한 이야기의 구조를 어떻게 바라보면 좋을지, 배울 수 있고 작품을 오래 사유할 수 있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작품이지만 <장미의 요정>이라는 작품이 마음에 남는다. 제목만 보면 뭔가 잔혹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장미의 요정>은 여동생의 약혼자가 마음에 안들어 그의 목을 썰어버린 오빠의 복수를 꽃의 요정들이 한다는 내용의 잔혹한 동화다.

이 책을 읽다 보니 잔혹동화를 쓴 안데르센과 절망을 외치던 키르케고르를 만든 그 시절 덴마크는 도대체 어땠길래 궁금해지기도 하고... 또, 소문으로만 듣던 잔혹한 동화에 대해 늘 궁금은 했었지만, 동화가 잔혹해봤자 싶어 미루던 차에 호기심을 해소할 수 있었던, 개인적으로는 좋은 기회가 되어준 책이었다.



본 서평은 리텍콘텐츠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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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시아나로 가는 길
로버트 바이런 지음, 민태혜 옮김 / 생각의힘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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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건축 비평가, 역사학자이자 여행 작가인 로버트 바이런은 1933년, 두 가지 희망을 품고 여행길에 오른다. 첫 번째는 페르시아의 기념물을 보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마자르 이 셰리프에 가는 것. 그는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시작해 키프로스, 팔레스타인, 시리아, 이라크를 지나 아프가니스탄에 이르는 여행을 글로 기록하여, 베이징에서 완성한 뒤 1937년 『옥시아나로 가는 길』이라는 제목을 달고 첫 출간했다. 이 책은 30년대에 가장 영향력 있는 여행기가 되었고, 2024년 4월에 생각의힘 출판사를 통해 국내에도 선보이게 되었다.


프루스트는 그의 자전적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고장의 이름이 주는 환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때로는 이름만으로 지역에 큰 기대를 품기도 하며... 


인터넷도 뭐도 없을 시절에 바이런도 '옥시아나'라는 이름, 그 울림에 어떤 특별한 이미지를 품고 떠나기로 감행한 것일까? 요즘 우리가 여행 가기 전 준비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그의 여행은 다소 무모해 보인다.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수 있는지, 갈 수 없는지, 안전한지, 위험한지... 알 지 못하고 그저 두 가지 희망만을 품고서.





일기라는 형식은 어떻게든 당대성을 띠는 듯하다.


세계 2차대전 당시 유대인의 일상을 담은 『안네의 일기』야 본디부터 유명하고, 최근에 읽었던 다니엘 페냐크의 『몸의 일기』에서도, ─사실 이 책은 소설이지만─, 화자가 자신의 몸에 대해 기록하는 와중에 군데군데 시대적인 이야기가 드러나있었다.


로버트 바이런의 『옥시아나로 가는 길』 역시 시대적인 이야기가 많이 녹아있다. 1933년의 이슬람 문화권을, 간혹 전 세계적인 흐름을 엿볼 수 있기도 한데, 당대적인 요소와 사건들을 곳곳에서 언급한다. 영국과 이라크 간의 외교적 갈등 상황이라던가, 나디르 샤 국왕의 암살 사건, 나치 선전 영화인 「독일, 깨어나다」 등….


오늘날 나오는 여행기를 포함해 여행과 관련된 서적을 떠올려 비교해 보았을 때, 『옥시아나로 가는 길』은 그림·사진 자료가 현저히 적고 저자가 보고 적은 풍경 묘사가 대부분이다. '살아보지 못한 시대'와 '가보지 못한 곳'이라는 요소 때문에 텍스트가 결코 쉬이 읽히지는 않는다. 나 역시도 많은 부분을 상상할 수 없어 주 무대에서는 살짝 빗겨나있지만 개인적 경험에서 그나마 비슷한 이미지인 인도 배낭여행의 기억에 의지해야 했다.


영국이라는 타 문화권에서 나고 자란 이의 시선으로 이슬람 문화권의 사람들, 문화들 그리고 풍경들을 그려낸다. 당연하지 않기에 눈에 들어오고 글로 쓸 수 있다. 다름을 포착한다. 작가의 날카로운 시선으로.





저자가 사진기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찍을 수 없었다는 것은 294쪽의, 저자가 베르그너를 만나 사진 촬영에 대해 자문을 구하는 몇 줄의 문장들을 통해 알 수 있으니, 독자는 이해하고 감안해야 할 부분이겠지만, 인터넷에 검색해 본 이라크 마을, 마자르 이 셰리프의 풍경이나 술타니야 건축물의 웅장함을 보고 나니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무언가를 배우고자 만들어진 책이 아닌, 한 작가의 여행기이기 때문에 그래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특히, 바이런의 은근한 유머, 여행 도중 일어날 법 한 일상적인 이야기들, 그리고 사진은 못 찍었더라도 나름대로 열심히 묘사하려 애쓴 건축물들에 대한 묘사들. 그냥 일기일 뿐인데, 낯선 곳에 대한 이야기에 힘주고 읽었다가는 금세 나가떨어질 수도 있겠다. 이 나라들에 대해 정보가 많이 부족한 상태라면 다소 도전적이겠지만, 모종의 이유로 이 시대와 이 나라들에 호기심이 생긴 독자라면 바이런의 글에 몸을 싣고 즐기면 좋겠다.





다니엘 페냐크의 『몸의 일기』를 읽고 몸에 관한 기록은 아니지만 그 책에서 일기의 형식에 영감을 받아 나름대로의 기록을 하기 시작했다. 여행기에 대한 영감을 얻고자 한다면 이 책을 읽어 보는 건 어떨까.





본 서평은 생각의힘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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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욕 - 바른 욕망
아사이 료 지음, 민경욱 옮김 / 리드비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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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욕 | 아사이 료 | 리드비

바른 욕망

북스타그램 1년차.

어느 정도 책을 읽고 나니 읽어야 할 책, 읽고 싶은 책이 보인다. 그런 연유로 한동안 미스터리·추리 같은 장르물 소설은 조금 우선순위에서 벗어나 있었다.

아사이 료의 『정욕』을 출간한 리드비 출판사는 일본 문학을 주로 수입·번역을 하는데, 그중에서도 추리물이나 미스터리물 같은 장르물을 다루는 듯 보였다. 때문에 이 책도 처음에는 관심이 크게 없었다. 아니, 볼 여유가 없었다고 해야 하나. 하지만, 인스타그램에서 먼저 읽은 사람들의 후기를 보고 호기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난해하다는 의견, 어렵다는 의견에 도전정신이 생긴 것도 있지만, 거기에 나 역시도 보편적인 욕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나름대로의 고집 있는 욕망과 페티시가 있기에 바른 욕망을 뜻하는 『정욕(正欲)』이라는 제목에 끌릴 수밖에 없었다.

옳은 것은 무엇이고 그른 것은 무엇인가?

아사이 료의 『정욕』은 '욕망'에 관한 옳고 그름에 대하여 독자들에게 스스로 의문을 갖게 만든다.

작품은 맨 앞부분에서 하나의 단편적인, 어쩌면 편향적일 수도 있는 신문기사를 먼저 보여주고 우리에게 그 사건에 얽혀있는 세 사람의 사정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스쳐 지나가는 인물 하나조차도 욕망을 위해 무언가 저지르는 모습을 중간중간 삽입하며 우리에게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였던 '욕망'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한다.

드러내도 되는 욕망이란, 보편의 욕망인 걸까, 남에게 폐가 되지 않는 선에서 실현 가능한 욕망이어야 하는 걸까. 그렇다면 남에게 폐가 되지 않는데 숨겨야 하는 욕망은 왜 그래야만 하는 걸까.

세 사람의 사정(事情), 세 사람만의 사정(事情).

우리에게 보이는 신문기사 그 자체만으로 판단하기에는 너무도 복잡한 사정(事情)들이...

독자는 긴 텍스트를 통해 그들만의 사정을 다 알게 되고, 책 말미에 다시 신문기사와 같은 상황이 제시된다.

모든 상황을 알게 된 이상, 독자는 침묵하게 되고 생각은 많아진다.

다수는 이해할 수 없는 페티시즘... 모두를 이해시킬 수 없었다 하더라도, 어느 한 사람─신문기자─은 자신의 욕망을 위해 이들의 복잡한 사정을 면도날로 쳐내 가장 단순하게 만드는 이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칼로 무 썰듯 간단히 해버리면 안 될 누군가의 이야기. 이런 이야기는 이 사회에 참 많지 않은가. 아사이 료의 『정욕』은 '욕망'만 다루며 이야기하지만 신자유주의 시대, 저마다의 개성을 뽐내는 이 사회에서 우리는 오컴의 면도날의 유혹을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

또, 독자는 이 책을 통해 진정한 연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된다. 소수자는 다수자의 편의에 의해 제거되어야 할까? 그게 연대일까? 하는 질문들...

‘욕망’에 관한 옳고 그름은 아니지만, 태어날 때부터 그른 손을 쓰는 사람으로 살아왔다. 그런 삶 덕분에 책을 읽으며 어느 정도 그들이 이해가 갔고, 때론 중간중간 삽입된 문장들에 위로를 받기도 한다. 혼란은 피할 수 없었지만 이 이야기가 나를 기분 좋게 만든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딱 한 가지만을 숨기고 있을 뿐인데 그게 모든 인생과 이어져 있어서 누구와도 대화할 수 없게 된다. 이야기는 나눠도 대화할 수는 없다. - P172

그러다 마음맞는 사람이라도 찾게되면 누구보다 천진해지는... - P180

나밖에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연대한다. - P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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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의 리듬 (알라딘 한정판 표지)
엘라 윌러 윌콕스 지음, 이루카 옮김 / 아티초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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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완전한 인간』이라는 책을 읽었었는데, 너무 당연한 이야기라서 오히려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들, 근데 당연해서 잊고 살기 쉬운 것들...


고독의 리듬 | 엘라 윌러 윌콕스 | 아티초크

엘라 윌러 윌콕스의 시는 우리에게 너무나 유명한 작품, 영화 『올드보이』에 고작 두 줄 인용되었지만, 그 두 줄은 내 마음을 너무나도 강하게 사로잡았다.


웃어라, 그러면 세상이 너와 함께 웃는다.

울어라, 그러면 너 혼자 울게 된다.

_「고독」

따돌림, 괴롭힘의 경험이 있는 나는 이 문장이 주는 풍경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풍경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장례식장에 가기는 여전히 두려운, 철없는 아이러니함도 있지만...


영화의 그 사소한 단서만으로 태어난 온전한 엘라 윌러 윌콕스의 시집 한 권. 시의 언어로 녹여낸 삶, 사랑, 인간관계에 대한 진리들에 반해, 늘 손 닿는 곳에 두고 싶은 시집이 되었다. 머리가 좀 좋았더라면 다 외워버리고 싶을 정도...

당연한 이야기, 하지만 절망따위 없어보이는 인스타그램에서 환상의 범람에 눈이 멀어 우리가 잊기 쉬운 것들, 하지만 잊어선 안될 것들을 엘라 윌러 윌콕스는 시라는 형식의 얇고 투명한 막으로 한 겹 싸 지금에도 여전히 유효한 진리들을 노래한다.

그런 점에서 참 에로틱하다. 노골적으로 보여주지 않으니까.

'진리를 찾아서'라는 의미를 담은 닉네임을 쓰고, 책을 읽기 시작한지 어언 1년째다.

찾았다, 하나의 진리.

그래서 난

이 시집을

정말

사랑한다.





왜 죽은 여름을 한탄하는가─

앞으로 올 여름을 생각하자

장미꽃은 여전히 아름답고 여전히 붉게 다시 피어나리니

앞날을 내다봄은 언제나 유익하다.

_「왜 죽은 여름을 한탄하는가」

이성이 마음의 법정을 다스리는 재판관일 때

우리가 헤어지는 게 낫다는 걸 나는 알아요.

하지만 사랑은 저 따뜻한 반역자 가슴과 결탁하여

모반을 꾀하는 스파이죠.

_「코뮤니스트처럼 미친듯이」

우정 위에 서지 않은 사랑은 전부

모래성과 같다네

_「모래성」

그 한 번의 첫 키스에

내 마음은 가장 깊은 곳까지 떨었어

_「포기」

상처 입은 마음을 안고 고독 속에

홀로 앉아 있는 이 밤은 얼마나 괴로운가

_「유령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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