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열기자의 오답노트
박재역 지음 / 글로벌콘텐츠 / 2017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평---------------------------------------

 

교열 기자의 오답노트_박재역 지음(글로벌콘텐츠)

 

  하나의 글을 쓴다는 것은 많은 과정을 거치게 된다. 생각을 메모를 해두고 정리하고 한 권의 책이 완성되기까지 작가의 많은 노고가 필요하다. 독자가 책을 받기 전에 반드시 거쳐야 할 것이 있으니 그것이 '교열'이다. 때로 오타가 보이고, 맞춤법과 띄어쓰기 등 아쉬운 부분이 보이는 책이 있다. 이렇듯 교열은 책을 발간함에 있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랜 기간 신문사에서 교열을 담당하며 쌓아온 자신의 노하우를 독자들에게 아낌없이 펼쳐 보인 책이 있다. 박재역님의 [교열 기자의 오답노트]이다.

  본문은 총 3부로 나뉘는데 1부에서는 자신의 걸어온 인생에서 교열기자로 겪어왔던 에피소드를 소개하고 있고, 2부는 교열을 배우려는 이들에게 교열 과정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마지막 3부에서는 글을 쓰고 바르게 다듬기 위한 어문법과 오류 해결을 위한 팁을 제공하고 있다. 바른 글쓰기가 중요한 만큼 이 책은 많은 도움이 되었다.


  교열기자라는 직업에 대해 처음 알았다. 언론인, 기자는 누구나 글을 잘 쓸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신문이라는 매체는 교열을 거쳐 완성되는 것이었다. 그렇다 보니 교열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낀다. 요즘 인터넷 기사를 보면 오탈 자는 기본이고 어문법을 무시한 채 빠르게 기사를 올리는데 급급하다. 과연 그 기사를 작성한 기자가 제대로 된 내용을 알고 쓰는 것인지 의심이 가는 기사도 많다. 내용 짜깁기, 베끼기 등으로 눈살 찌푸려지는 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인터넷 매체의 빠른 속성상 이슈를 '독점'이라는 이름으로 빠르게 수면 위로 드러내는 것이 중요해진 만큼 내용 구성면에서 아쉬운 부분들이 사실 많이 보인다. 그 기사를 읽는 네티즌들이 오탈자를 지적하고 기사에게 쓴소리를 하는 댓글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이 책의 내용은 '아하'라는 감탄사를 내뱉게 한다. 독서를 꽤 많이 했다고 자부하는데도 책을 봄에 있어 미처 알지 못했던 오류를 알게 해준 고마운 책이다. 나는 작가는 아니지만 때로 블로그 등에 글을 써 놓고 후에 다시 읽어보면 오탈자와 내용의 연결성의 오류가 보여 수정하곤 한다.


  글을 잘 쓰는 사람에게 느낄 수 있는 공통된 모습은 '겸손'이라고 작가는 말한다.(p28) 자신의 글에 대한 완곡함보다는 수정의 필요성도  중요하다. 물론 자신만의 느낌을 가지고 글을 쓰고 그 글에 대한 자부심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완벽하다는 생각보다는 완벽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저자는 '왜'라는 현답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우리도 '왜'를 찾기 위해 인생을 걷고 있다. 스스로 해답을 찾기 위해-어느 인생이든 정답은 없다.- 무수히 많은 생각을 한다. 저자는 교열기자라는 노하우를 활용해서 은퇴 후 자신의 인생을 찾았다. 살아갈 날이 길어진 만큼 은퇴 후의 인생은 분명 현재와 다를 것이다. 끊임없이 '왜'를 향해 앞으로 나가야 한다.


  교열을 전문직으로 삼고 싶은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20년 경력의 저자는 자신의 딸에게 가르쳤던 마음으로 독자들에게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교열시 중요한 검토와 프로그램 사용법 그리고 우리나라 언어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어문법 등을 알려준다. 미처 몰랐던 언어와 헷갈렸던 언어들을 예시문을 통해 쉽게 접할 수 있게 한다. 신중함과 예의를 기본으로 끈기를 가지고 교열을 해야 한다고 저자는 글을 다루는 자세에 대해 이야기한다. 


  교열은 전문적으로 이 일을 하는 사람에게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늘 쓰는 언어이기에 쉽게 생각하고 내뱉지만 무엇보다 생각에 생각을 더하는 신중함이 필요하다. 말이라고 다 같은 말은 아니며 글이라고 다 같은 글은 아니다. 쉽게 sns에 툭 내뱉듯 올리는 글이 타인을 향한 화살이 되기도 하고 자신을 향한 비난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그렇기에 '생각'의 신중함과 자신의 글을 되새겨 읽어보는 '교열'이 중요하다 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인 미디어 당신의 콘텐츠를 캐스팅하라! - 콘텐츠 기획, 제작, 수익 모델, 비즈니스, 마케팅 노하우
김건우 지음 / 인포더북스 / 2017년 2월
평점 :
품절


1인 미디어에 대한 정의부터, 콘텐츠 개발과 영상제작 등에 대한 입문서이다. 개인 크리에이터 외에도 MCN 기업의 콘텐츠 양상과 제작 환경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서평----------------------------------------------------


 

1인 미디어 당신의 콘텐츠를 캐스팅하라_미디어자몽/김건우 지음(인포더북스)

 

   매체는 단순히 보는 것에서 벗어나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 등 변화하고 있다. 주요 정보를 신문과 TV를 통해 습득하던 시대는 지나고 보다 쉽게 미디어를 통해 각 분야를 접할 수 있게 되었다. 방송은 방송사만의 소유라는 시각에서 벗어나 개인이 만들어가는 다양한 콘텐츠로 발전하고 있다. 개인 콘텐츠는 방송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화, 산업화의 가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저자는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는 '1인 미디어'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총 6 파트로 나뉘며 1인 미디어와 콘텐츠 설정 및 제작, MCN 기업과 개인 크리에이터 간의 상생관계를 모색하고 있다. 저자가 말머리에 밝히듯이 이 책은 입문서로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크리에이터를 꿈꾸는 이들에게 찾아봐야 할 정보들을 한 곳에 모아 알기 쉽게 풀어놨다.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들어봤을 내용이지만 관련 분야에 대해 전혀 몰랐다 하더라도 이해하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다. 단원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본문과 구성도 트렌디하게 디자인되어 있다.


  1인 미디어의 지속 가능한 콘텐츠 개발은 곧 미디어의 변화에 발맞추고 있다. 기존 매체의 붕괴는 곧 1인 미디어의 성장으로 나타났다. 과거 미디어가 소수 집중적이고 권력화로 대중에게 정보 전달자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편향적 정보를 제공하였다면 1인 미디어는 다양한 분야의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많은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다. 현시대의 양방향 소통을 통한 미디어 발전은 개인 크리에이터의 등장과 함께 다양한 분야를 개척하게 되었다. 인터넷 보급과 스마트폰의 대중화로 멀티 콘텐츠가 가속화되고 있다. 이로 인해 개인 방송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세계적인 크리에이터들의 등장과 함께 우리나라도 개인들의 특성을 살린 콘텐츠가 방송되고 있다. '대도서관', '양띵' 등의 크리에이터들이 높은 수익을 내는 만큼 개인 크리에이터를 향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양질의 콘텐츠는 곧 투자로 직결된다. 시장의 변화는 투자를 이끌어내서 크리에이터의 획기적인 미디어를 개발하게 되고 이는 개인과 기업 간의 상생으로 수익을 창출되고 있다. 1인 미디어의 주요 수익은 광고이다. 광고 시장은 이미 인터넷을 통한 미디어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빈번한 노출이 곧 수익이 되는 만큼 많은 독자층을 거느리고 있는 크리에이터에게 광고가 집중되는 것이 현실이다. 플랫폼 사업자들은 유료 콘텐츠를 출시했으나 수익 창출의 성공사례는 거의 없다.

  미디어 방송은 개인을 넘어 대기업의 진출을 도모했다. CJ E&M의 다이아 TV 등의 체계적인 지원을 받는 크리에이터들이 콘텐츠 향상을 위해 발전하고 있는 추세이다. 전문 스튜디오의 등장으로 보다 좋은 환경에서 방송을 제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미디어가 발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소비하는 주 층이 '연결된 행동'의 생활 패턴을 보이기 때문이다. 멀티 모바일 기기에 익숙한 세대가 주 소비층으로 대체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변화였다.


  1인 미디어의 파급력이 큰 만큼 크리에이터들의 도덕성이 문제점으로 대두되고 있다. 참신한 콘텐츠를 개발하기 위해 점점 자극적인 행동과 노출을 감행하고 불필요한 언행으로 높은 수익에만 급급한 크리에이터들을 종종 볼 수가 있다. 자극적인 소재가 아닌 양질의 콘텐츠로 승부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MCN 기업과 협업하는 개인 간의 문제점은 높은 비용 책정에 있다. 이는 시장 성장을 저해할 수 있고 개인과 기업들의 통제 없는 성역이 될 수도 있어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견제를 통한 발전을 위해 독자뿐만 아니라 크리에이터들의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본문에서는 1인 미디어의 정의와 각 용어를 쉽게 정리하고 있다. 영상 편집과 방송 제작 등의 환경과 설명은 저자의 의도대로 독자에게 다가간다. 쉬운 설명과 사진을 통해 이해를 돕고 있다. 넘치는 정보 속에서 쏙쏙 골라 담았으니 이런 친절한 책 한 권은 많은 도움이 된다. 1인 미디어라는 전문성을 가지기 위해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선택함에 있어 제시한 예시를 살펴볼 수 있다. 영상과 오디오, 콘텐츠의 분야 등을 설명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표로 정리하여 보여주고 해당 콘텐츠의 대표격인 크리에이터에 대해 얘기하고 있어 쉽게 접근 가능하다.


  각 방송매체의 특성과 콘텐츠의 유형을 파악하여 마케팅을 수립한다면 보다 높은 수익 창출에 도움이 될 것이다. 다양한 분야에서 미디어 방송이 활약하고 있는 만큼 마케팅의 필요성과 전략이 중요해진다. 앞으로 1인 미디어가 나가야 할 방향은 무엇인가, 수많은 정보 속에서 나만의 독창적인 콘텐츠를 찾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이제는 양방향 소통의 시대이다. 라이브 방송에 적합한 콘텐츠를 확보해야 할 것이다. 빠르게 소비되는 콘텐츠이기에 1인 미디어의 '거품론'이 제기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마셜 맥루한의 '미디어는 메시지다'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는 확실하다. 그만큼 미디어는 '의미'를 보다 빠르게 전달하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주 긴 변명
니시카와 미와 지음, 김난주 옮김 / 무소의뿔 / 2017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의 '아주 긴 변명'을 들을 준비가 되었다. 어디 해보라는 식으로, 들어줄 터이니 어디 그 '변명'을 해보라며, 어떤 온갖 색색의 변명을 늘어놓을지 궁금했다. 그러나 그의 변명은 무색이다. 화려한 색으로 자신을 감춘 뒤 늘어놓는 변명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까지도 무심할 정도로 그는 자신을 대변할 변명을 늘어놓지 않는다. 그랬던 그의 무색 인생이 점차 색을 찾아간다.

 

 

 

아주 구차한 변명일 줄 알았던 나의 생각을 뒤집은 [아주 긴 변명].

 

서평----------------------------------------------------

 

아주 긴 변명_니시카와 미와 지음, 김난주 옮김(도서출판 연금술사_무소의 뿔)

 

   ‘아주 긴 변명’을 들을 준비를 했다. 아내의 갑작스러운 교통사고 후 그때부터 시작되었다는 사랑, 누구를 향한 변명인지 모를 긴 변명을 들을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다. 그의 독백처럼 흘러나오는 변명에 실망하고 아내의 죽음 앞에 담담하다 못해 무덤덤한 그의 내면을 보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도대체 언제 ‘다른 사랑’을 위해 변명을 시작할 거야?" 그러나 이내 그 사랑이 남녀의 사랑이 아님을, 주인공인 사치오의 심경을 변화시키는 사랑의 실체 앞에서 나는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

 

   ‘나’ 기누가사 사치오의 중심에는 아내 나쓰코와 주변 인물들이 있다. 아내는 자립심이 강한 여성으로 사치오가 직장을 그만두고 작가로서 성공하기까지 10년 동안 가정의 경제를 책임진다. 사치오도 그런 아내가 고맙지만 어느샌가 그들은 서로에게 마음을 닫는다. 한 사람의 독자로 남편의 작품을 냉철하게 평가하는 안목을 지녔지만 감동받은 부분을 애써 칭찬하지 않아서일까, 매너리즘에 빠질까 염려해서일까, 어느새 그의 작품을 읽지도 않게 되었고 그도 더 이상 권하지 않는다. 그렇게 서로의 생활에서 한 발짝씩 뒤로 물러나 방관하게 되는 두 사람. 자신은 결코 좋은 독자가 아니였다며 서로의 인생을 무관심으로 애써 돌리는 나쓰코.  ‘코를 훌쩍거리는 소리가 나지 않게 참은 것은 지금 생각하면 무슨 오기였을까.’(본문 발췌 p28)

 

   아내는 떠났다. 처음에는 사치오의 마음에서- ‘나는 안도를 얻은 대신 내가 사는 의미를 완전히 잃어버렸다.’(본문 발췌 p31)- 떠났다. 남편이 작가로 성공할수록 자신이 머물러야 할 마음은 어긋났다. 그리고 나쓰코는 친구와의 스키여행에서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났다. 사치오와 나쓰코의 마지막은 잘 다녀오라는 인사가 아닌, 의미 없는 서로의 눈빛이었다. 나는 누군가와의 마지막이라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늘 하는 인사가 마지막이라 생각지 않으니 사치오와 나쓰코도 그랬을 것이다. 어긋난 마음이지만 그것이 서로에게 건네는 마지막이라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떠나보낸 아내에게 사치오는 어떤 마음일까. 아내의 죽음을 애도하는 마음보다 자신의 추도사에 더 신경을 쓰고 애써 괜찮은 척하는 것이 아니라 아내의 죽음에 무덤덤한 사치오를 보며 곧 그가 얘기할 ‘사랑’을 외면하고 싶었다. 얼마나 대단한 사랑이길래 아내가 죽고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던 그가 다시 시작된 사랑을 얘기하고 싶을까, 그래서 난 그렇게 떠난 나쓰코를 향해 사치오 대신 눈물을 흘렸다.

 

   나쓰코와 함께 돌아올 수 없는 친구의 유가족을 만난 사치오는 자신의 생활에 틈을 내어준다. 남겨진 이들이 함께하는 생활이 시작된다. 누군가 자신의 생활을 침범하는 것을 정색하고(그것이 나쓰코였을지라도) 자신도 누군가의 삶에 관여치 않았던 사치오에게 시작된 변화를 ‘사랑’이라 한다면 기꺼이 그 사랑을 응원하겠다. 처음엔 다시 시작되었다는 사랑을 남녀간의 사랑이라 단정 지었다. 아내가 죽고 난 뒤 찾아온 사랑을 삐뚤어진 마음으로 사치오의 변명을 듣기 위해 난 책을 읽어내려 갔다. 그러나 나쓰코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여행을 떠난 유키의 아이들을 돌봐주기 시작하면서 그가 쌓아올린 굳건한 내면의 성은 작은 변화와 함께 개방된다. 그 속에서 발견한 천국을 그는 잃어버리고 싶지 않다. 아내가 죽은 뒤에도 눈물 흘리지 않았던 그가 그 아이들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우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그들의 추억 속에 있던 아내 나쓰코의 다른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자신은 몰랐던 낯선 아내의 모습이 당황스럽지만 그런 아내의 삶을 거부한 것은 정작 본인이었다. 아내에게 무관심했던 것이 아니라 표현 방법이 서툴렀던 것은 아닐까, 이미 떠나버렸다 생각했던 사랑이 마음 한편에 가려져 있던 것은 아닐까.

 

   ‘사랑해야 할 날들에 사랑하기를 게을리 한 대ϻ가’(본문 발췌 p323)를 사치오는 깨닫는다. 소소한 일상이 날마다 빛날 수 있음을 알게 된 사치오는 철저하게 방관자였던 아내의 삶을 조금씩 들여다보게 된다. 그녀의 웃음이 어떠했는지, 그녀의 목소리가 어떠했는지 기억조차 희미해진 그녀의 삶에 조심스레 발을 들인다. 사치오를 만난 나쓰코의 독백-이 사람의 ‘아직’에는 ‘드디어’가 따라붙을까, 아니면 영원히 ‘아직’으로 끝날까(본문 발췌 p20)-에 대한 사치오의 대답을 충분히 들었다. ‘그리고 기누가사 사치오는 처음으로 다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또 회한 때문이 아니라 그저 아내를 생각하고, 울었다.(본문 발췌 p329)

 

  살아있는 시간의 상실감을 만남과 공존으로 치유하고 아내에게 붙이지 못할 편지를 쓴다. 엄마의 고집이 담긴 생활의 기억은 아이들에게 그리움으로 다가와 그들만의 생활을 만들 것이다. 사치오와 요이치 가족에게 유키의 자전거 페달은 멈추지 않고 언덕을 오를 수 있는, 살아야 하는 이유가 될 것이다.

 

   영화는 보지 않았다. 10여 일 전에 개봉한 영화, 감독 겸 작가 니시카와 미와의 작품을 그린 [아주 긴 변명]의 여운을 남기고 싶다. 애당초 책 표지에 설정되어 있는 배우들에게 이미지를 맞추고 싶지 않아-그렇게 이미지를 각인시키다 보면 내가 느끼는 사치오, 아카리와 신페이 그리고 요이치를 국한되게 생각할 것이고 그 틀에 맞추게 될 것이다. 그래서 반들반들하게 컬러 인쇄된 표지는 벗겨냈다. 그리고 담백하게 써진 [아주 긴 변명]을 들여다봤다. 처음에는 변명을 듣고 싶었는데 종국에 나는 그의 대답을 듣고 있었다. 그의 마음을 들었다. 그가 사랑하지 않은 것은 아내가 아니라 자신이었다고. 그랬기에 그렇게 세상사 모든 일이 시큰둥해 보였을 뿐이라는 그의 마음을 들었다.

 

   잔잔한 바람이 한 차례 불었다. 남겨진 그들의 인생에 지난 간 바람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애써 만들지 않아도 ‘살아야 할’ 그림은 그려진다. ‘없을 때’라는 건 언젠가는 돌아온다는 뜻으로 하는 말이잖아.(본문 발췌 p11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뫼르소, 살인 사건 - 카뮈의 <이방인>, 살아남은 자의 이야기
카멜 다우드 지음, 조현실 옮김 / 문예출판사 / 2017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언제 읽었던 [이방인] 인가, 20년도 더 넘은, 오래전에 읽었던 이방인은 위대한 작가 알베르토 카뮈의 작품이었고, 한 살인자의 독백처럼 기억될 뿐이었다. 그렇게 기억 한 편에 머물렀던 작품을 다시 끄집어낸 신간이 있다. [뫼르소, 살인사건]

 

 

살인자의 독백 속에 툭 하고 이름도 없이 머무른 '아랍인'의 남은 가족이 씁쓸한 긴 세월을 되씹어 내뱉는 이야기다. 양장본으로 표지 디자인은 뫼르소를 나타내고 있다. 1942년 2월, 단지 '태양'에 어지럽고 눈이 부셔서 살인을 저지를 수밖에 없었다며 항변했던 뫼르소는 이제 태양을 등지고 있다.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허무함일까, 자기로 인해 삶이 져버린 '아랍인'에 대한 후회 때문일까...

 

 

카멜 다우드는 알제리에서 태어난 작가이다. 그렇기에 알제리의 독립과 이슬람 종교에 대해 보다 더 깊게 생각해봤을 것이고 감히 이방인을 비틀어서 그 속에 숨어 있는 이야기를 끄집어 낼 수 있었을 것이다. 카뮈도 알제리 태생이다. 또한 기자이며 글을 쓰는 작가라는 공통점을 지닌 두 사람이다. 다만 카뮈는 프랑스 지배령의 알제리에서 태어났다면 다우드는 독립 알제리에서 자랐다. 다우드는 [이방인]을 뒤집어 보면서도 그 플롯을 그대로 따라가는 이야기 구성을 통해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오늘, 엄마는 아직 살아 있네'(본문 발췌), 첫 문장부터 이방인과 대립된다. 이 강렬함은 읽는 내내 지속된다.

 

 

너무 오래전에 읽었던 터라 다시 [이방인]을 펼쳤다. 카멜 다우드의 [뫼르소, 살인사건]을 읽기 전에 다시 사건을 재구성하고 싶었다.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아랍인'에 대한 기억을 되살릴 필요가 있었다. [뫼르소, 살인사건] 덕분에 [이방인]을 다시 보게 되었으니 참으로 고마운 책이다.

 

 

 

서평----------------------------------------------------

 

 

 

뫼르소, 살인사건_카멜 다우드 지음, 조현실 옮김(문예출판사)

Meursault , contre-enquête by Kamel Daoud

 

 

'오늘, 엄마는 아직 살아 있네'(본문 발췌)로 시작하는 첫 문장의 강렬함은 [이방인]의 첫 시작 '오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를 연상케 한다. 두 문장의 대립은 궁금증을 일으켜 얼른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지 않고는 못 배기는, 더 이상의 지체는 허용하지 않는 매력을 보여준다. [이방인]이 뫼르소의 사건을 독백처럼 자신이 처한 상황을 사회의 부조리에 빗대었다면 [뫼르소, 살인사건](이하 살인사건)은 죽은 자에 얽매인 산 자의 삶을 찾으려는 내면을 보여준다.

 

 

살해된 '아랍인'에 대한 의문에서 이 소설은 시작되었을 것이다.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던, 이름조차 없었던 '아랍인'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그에 대한 궁금증이 소설의 바탕이 된다. 여기서 살아있는 엄마는 죽은 자의 모친이다. 죽은 아들을 찾아, 그 시체를 찾아 한없이 떠돌아야 했던 그의 어머니와 동생, 남겨진 가족의 삶에 대한 것이다. 그의 이름을 아는가, 그의 이름을 알려준 것은 화자인 그의 동생 '하룬'이다. 하룬은(자신의 이야기 속에서만 존재하는) '아랍인 무싸'의 그림자를 뒤쫓아 사건을 재구성한다. 책을 읽다 보면 어느새 '무싸'를 찾아 나서는 여행에 동참하게 된다. 어떤 의미도 없이 죽어간 이름 없는 '아랍인'에게 '무싸'라는 이름을 부여하여 살아 있었던 인물로 그에게도 인격이 있었음을, 한 명의 존귀한 생명이 있었음을 주지시켜 준다. 책을 읽다 보면(이야기를 듣다 보면) 하룬과 함께 와인 바에 앉아 떫고 시큼한 와인 한 잔에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착각에 빠진다.

 

 

[이방인]이 뫼르소의 살인과는 무관하게 어머니의 죽음 이후 보인 무관심의 행동을 이유로 '사형'을 구형한 인간의 부조리와, 기독교와 반기독교로 대변되는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살인사건]에서는 죽은 자와 그 그림자를 쫓는 산 자의 삶을 증명해야 하는 부조리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룬은 '무싸'에 파묻혀 있다. 그들의 어머니는 살아 있는 아들보다, 살아있었던 아들을 찾는 일에 몰두한다. 끊임없이 '무싸'를 찾는 '오늘, 살아 있는' 어머니를 통해 '나'의 존재를 확인받아야 하는 부조리를 보여주고 있다.

 

 

어디에도 '무싸'는 존재하지 않는다. 살인자의 독백에도, 태양이 작열했던 1942년 바닷가에도 무싸는 없다. 영원히 사라졌다. 하룬은 살인자의 독백에 따라 그 바닷가에서 형의 그림자를 찾는다. 처음 살인사건에 대한 책을 마주했을 때(사형을 구형 받았으나 뫼르소가 출소하여 그때의 살인사건을 책으로 펴낸 것으로 가정하고 있다.) 그 어디에도 그의 형에 대한 이야기가 없었던 것에 분노했던 하룬은 결국 뫼르소와 같아진다. 프랑스인 뫼르소를 살인의 순간 자기변명만을 위해 미사여구를 늘어놓은 파렴치한 인물로 매도했음에도 자신이 살해했던 프랑스인 조제프에 대한 죄책감은 없다.

 

 

뫼르소에 대한 복수가 완성되었다고 생각해서일까, 프랑스에 대한 복수였을까, 그 후 하룬과 그의 어머니는 묵혀왔던 '살인사건'에서 해방된다. '드디어 살인을 저지를 운명에서 해방되었다.'(본문 발췌)고 살인의 순간을 묘사하며 묵은 세월을 떨쳐버린다. 그러나 알제리 독립 때의 혼란하던 시기의 이방인(프랑스인)으로 대변되는 타인에 대한 살인은 용납되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점을 제시한다. 프랑스령 시대의 아랍인에 대한 압박이 해방 후 어떻게 표출되었는지 보여준다.

 

 

프랑스 지배령의 알제리가 궁금하고 독립 이후의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싶어졌다. 뫼르소를 '이방인'으로 규정한 카뮈와 뫼르소를 이방인에 앞서 '살인자'로 인지한 카멜 다우드의 '알제리'는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못내 궁금하다. 작가는 프랑스인으로 대변되는 지배자들과 피 지배인인 알제리 국민들의 대치 상황을 [살인사건]에서 다루고 있다. 식민시대의 국민이 그러했듯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살해되었으나 시체조차 찾을 수 없을 만큼 관심 밖이었던 그들이 처한 그 시대를 대변하고 있다. 또한 작가는 카뮈의 작품을 곳곳에 배치하여 부조리에 대해 암시하고 있다.

 

 

단지, 이름 없이 사건 이름으로만 불리던 아랍인의 죽음 전 삶을 찾는 과정이 아니라 지배자와 피 지배인에 대한 대립과 백인과 비(非) 백인의 대면이 가져온 사회 현상을 비꼬고 있다. [이방인]에서 레몽에게 구타를 당한 여인은 식민지하에 있던 알제리 국민의 고통은 아니었을까. 뫼르소의 여인이었던 마리는 프랑스를, 구타당한 여인은 알제리를 대변하게 된다. 그 여인을 지키기 위한 '아랍인'은 해방을 위한 투사는 아니었을까. 태양의 작열에 밀려 총을 쏘고 말았던 뫼르소는 단지 한 사람이 아닌 알제리의 해방을 방해하는 정치적 요인은 아니었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한 사람의 인생이 얼마나 긴 역사인지(본문 발췌)-132년 동안 프랑스의 그림자에 묻혀 있던 알제리인들의 포효는 1962년 독립까지 지속된다. 우리나라 또한 35년간의 일제 강점기에서 수많은 부당함을 겪어 왔다. 그보다 100년은 더 지배하에 있던 알제리 국민들의 고통은 어찌 말로 할 수 있을 것인가. [이방인]의 카뮈도, [뫼르소, 살인사건]의 카멜 다우드도 알제리 태생이다. 그런 만큼 '이방인'인 타인을 향한 시선과 타인이 보내는 눈길을 하나의 작품으로 승화시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식민자들은 자기들이 길들인 것들에는 이름을 주고, 자기들을 괴롭히는 것들에게선 이름을 빼앗으면서 재산을 늘려왔다네.'(본문 발췌, 25~26page)

 

 

[살인사건]은 [이방인]의 장면이 곳곳에 오버랩된다. 뫼르소의 기독교에 대한 반감과 하룬의 이슬람교에 대한 비판은 죽음은 종교와 무관하다는 점을 이야기한다. 살인을 저질렀다고 종교에 용서받을 수 있을 것인가, 신이 용서를 대신할 수는 없는 것이다. 살인은 추억이 아니다. 단죄 받아야 할 죄인 것이다.

 

 

뫼르소의 마지막 독백은 '나에게 남은 소원은 다만 내가 사형 집행을 받는 날 많은 구경꾼들이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아주었으면 하는 것뿐이다.'(이방인 발췌), 하룬 또한 '나도 역시 구경꾼들이 많았으면 좋겠네. 또 그들의 증오가 맹렬했으면 좋겠고.'(본문 발췌)로 1962년 살해했던 프랑스인 조제프-평생 자신을 쫓아다니는 유령에게 하듯이 독백으로 마무리한다. '법정의 정의가 아니라 균형의 정의를 찾고 싶은 거야. 그리고 또 다른 이유가 하나 있지. 유령에게 쫓기지 않고 떠나버리고 싶은 것.'(page 15)

 

 

뫼르소는 카뮈가 매혹되었던 mer(바다)와 soleil(태양)을 의미하는가, 바보처럼 죽는 다는 뜻의 뫼르(meurt) 소(sot)인지 아니면 아랍어로 발음되는 엘 메르술(사자_使者, 전령_傳令)이란 뜻인가. 하나의 작품을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실존주의의 대표작이라 일컫는 [이방인]을 같은 언어로 쓰되 다른 방향으로 써 내려간 작품이기에 의미가 있다 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울지 마! 제이
김재원 지음 / 행복에너지 / 2017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울지 마! 제이, 김재원 지음(도서출판 행복에너지)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는 신념, 강한 의지와 인내로 나의 길에 들어설 청년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로 시작한다. 현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을 'J(제이)'로 칭하며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를 친근한 문체로 다가오고 있다.

 

  좋은 친구를 얻기 위해 내가 먼저 좋은 친구가 되는 것, 옛 친구를 소중히 여기는 것이 곧 나의 자산이 될 것이라 경험을 이야기하듯 풀어간다. 작은 행복을 커다란 기쁨으로 누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내게는 소소한 일상이 누군가에겐 소중한 하루였을 수도 있다. 무심코 흘려보낸 시간이 조금 더디게 흘러가길 바라는 삶도 있다. 행운은 찾아야 하는 것이라면 행복은 늘 곁에 있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기에 오히려 그 소중함을 잊고 사는지도 모른다.

 

  "버림으로써 얻으리라" (본문 33page)ϻ, 우리는 살아가면서 늘 '선택'이라는 기로에 서게 된다. 식사를 하기 위해 메뉴를 고르는 것부터 수많은 선택을 하게 된다. 그렇게 얻은 것이 최상의 것이기를, 선택에 후회가 없기를 바라지만 모든 것에 완벽을 추구하기엔 무리가 있다. 다만 최선을 다해 우리는 노력할 뿐이다. 이런 고민조차도 인생의 일부분이다. 복잡한 삶 속에서 조금만 걱정을 덜어낸다면 '선택'이 쉬워지지 않을까?

 

  온갖 풍파 속에서 굳건하게 버티기 위해서는 [나]를 인정하고 사랑하는 것이다. 자존심을 내세우기 보다 자존감을 회복시키는 것이 예상치 못한 일에 직면했을 때 무너지지 않을 수 있는 버팀목이 되어 줄 것이다. 내가 존중받기 위해서는 타인에 대한 배려가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이기심은 서로를 향해 날을 세울 뿐이다. 타인에게 받은 작은 친절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감사'를 표현해야 한다. 작은 감사들이 모여 나를 변화시킬 것이다. 때로는 감사를 표현해도 못 받아들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쑥스러워서, 답할 순간을 놓쳐서 얼버무리게 되는데 오고 가는 감사와 미소는 신뢰를 형성할 수 있다. 미소 짓는 표정이 여유롭고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일이다. 건강한 나에게 감사하고 포기하지 않는 나에게 고마워하라. 함께 살아가는 주변인들에게 감사하라. 살아갈 수 있는 환경에 감사하라. 건강함의 기준은 개개인마다 다를 것이다. 자신이 세운 목표에 다다르기 위해 노력하는 삶, 땀 흘리는 삶이 아름답다. 감사함은 삶의 즐거움으로 연결된다.

 

  삶의 다양성을 인정하면 비로소 삶의 단순함을 깨닫게 된다. 많은 변수를 예측하고 헤쳐 나갈 수 있는 것은 '삶의 지혜'에서 비롯된다. 10년을 살아온 소년은 5세의 유아에게, 20년을 지내온 청년은 10대의 소년에게 건네줄 말이 있을 것이다. 30, 40년을 지나 50년의 긴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은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경험과 지혜를 전해 줄 수 있는 것이다. 인생이 짧다고 느껴질 만큼의 내공이 전해질 수 있는 여유가 있었으면 한다. 후대에게 충고를 하기 위해 내 삶을 올바르게 살아야 할 것이다.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되기 위해 오늘도 최선을 다한다.

 

  10대의 내 아이에게 하루의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기쁨이 내 안에 있다. 'J(제이)'에게 삶의 귀중함이 담긴 내 마음의 한편을 들려주고 싶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 많은 사람들이 성공하기 위해 실패한다. 성공한 사람들도 그전에 많은 불행을 경험한다."(본문 296page), 마이클 조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