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 - 서울 하늘 아래
J.M.G. 르 클레지오 지음, 송기정 옮김 / 서울셀렉션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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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_서울 하늘 아래] / J.M.G. 르 클레지오 지음 / 송기정 옮김 / 서울셀렉션(주) 펴냄 



서울 도심 곳곳, 밝은 태양 아래 활기, 달빛에 숨어든 온기,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걸음이 뿜어내는 체온이 머무는 그림자는 이곳에 있다. 삶이 있기에 수반되는 죽음은 그늘에 숨어들었으나 그것을 끄집어내니 그 또한 삶의 한 부분이다. 뒤를 돌아볼 새도 없이, 한눈팔 세도 없이 내가 살고 있는 '서울'은 무심하다. 바쁜 일상을 핑계로 타인에게 무관심으로 일관하다 가끔 들려오는 뉴스거리에 귀 기울인다. 그제서야 비로소 누군가 지독한 외로움과 공허함에 가냘픈 몸짓을 퍼득이고 있었음을 안다. 그마저도 시간이 흐르면 그저 흘러간 이야기로 희미해진다.


[빛나]를 집필한 저자는 프랑스인이다. 한국에 적을 두고 있지 않음에도 그가 쓴 [빛나]의 서울 도시 곳곳은 그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휘황찬란한 도심의 불빛이, 경사진 골목 끝에 위치한 어둠을, 유유히 흐르는 한강이 품은 시간의 흐름이 표현되어 있다. 서울 지하철을 따라 만나는 동네와 그 안에 살아가는 소시민의 삶이 있다. 하루하루를 유심히 살펴 무심하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삶이 있다. 윤동주의 [별]을 노래하고, 섬집아기의 악보가 그려진 정서는 저자가 타국인이라는 사실을 잊게 한다. 


가난은 빛나'의 삶을 옭아맨다. 전라도 어촌의 정적인 미로를 빠져나왔으나 서울은 녹록지 않다. 우연한 기회에 몸을 움직일 수 없어 죽음을 기다리는 '살로메'에게 이야기를 해주는 아르바이트를 한다. 액자 형식으로 이어지는 소설은 빛나의 현 이야기와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로 분류된다. 살로메는 오로지 빛나의 이야기를 통해서 휠체어에 얽매인 자유를 푼다.


살로메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고통의 억압을 벗어나 자유를 향한다. 하늘을 누비는 비둘기의 눈으로, 골목골목을 스치는 고양이로, 자신의 모습을 찾아 결국 스스로 버린 한 소녀와, 부모에게 버림받은 갓난 아이의 모습을 통해 자유와 생명의 경중을 이야기한다. 

이것은 빛나의 이야기이며, 살로메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제 곧 해방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더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현재만 중요하고 산 사람만 중요한 이 큰 도시에서, 이제는 나 자신을 위해 살 수 있을 것이다.'(p187 본문 발췌)


환한 빛에 둘러싸인 도시가 품어내는 온기는 차갑다. 그 속에서 많은 인생이 도시를 밝힌다. 서로를 향한 작은 관심이 온기를 퍼지게 한다. 우리의 이야기, 삶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은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는 이야기이지요."(p190 본문 발췌)

나에게 들려주는,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빛나, 서울 하늘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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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의 고구려 - 이정기와 제나라 60년사
지배선 지음 / 청년정신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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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의 고구려] 지배선 지음 / 도서출판 청년정신 펴냄 



중국 15개의 주를 다스린 '제'나라의 흥망성쇠를 통해 고구려의 정신과 기개를 살펴본 [제3의 고구려]는 60년이 채 안 되는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일까, 우리나라의 역사를 배울 때 '제'의 존재는 드러나지 않는다. 이번 책을 통해 그저 중국의 운주 절도사의 반란 정도로 치부되는 '제'를 면밀히 살펴보는 계기가 되었다. 


<구당서 : 이정기 열전>을 통해 분석하고 역사를 찾아가는 각고의 노력이다. 고구려의 재건을 막기 위해 끌고 간 우리 민족이 살아온 그림자이다. '당'을 향해 굽힐 수 없어 부러진 긍지이다. '제'의 시작과 부흥, 멸망은 각 시대별로 정리되어 있다.


1. 이정기 시대- 운주 절도사로 독립 왕국의 기틀을 마련하다.

2. 이납 시대 -'제'의 국호를 선포하다. 

3. 이사고 시대 - 강력한 통치로 이끌다 

4. 이사도 시대 - 당과 전면전을 펼치다. 

5. 제나라의 최후 - 내부의 배신으로 결국 멸망하다. 


운주와 그 주변 주를 나타낸 지도와 운주 절도사 계승도를 통해 '제'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확인할 수 있다. 이정기가 절도사로 전면에 나서게 된 계기와 당의 견제, 통치 이념 및 세금 제도 등을 잘 풀어놓았다. 다만 발해와 동시대의 국가임에도 고구려를 계승했다고 인지하지 못한 국가였기에 낯설다. 우리의 역사서에서 다루고 있지 않았기에 더 그렇다. <구당서>를 통해 고구려 민족의 성정을 이해해야 하기에 아쉬움이 많다. 


중국의 동북공정 프로젝트는 고구려를 중국에 복속시키는 것이 주된 골자이다. 고구려를 인정하지 않고 부속 국가로 격하하는 것은 앞으로의 세계 흐름에 있어 우위를 선점하고자 하는 중국의 야심이다. 빼앗길 수 없는, 잊어서는 안 되는 역사이기에 편견 없이 역사를 바라보고 진실을 이끌어내는 학자의 노력은 귀하다. 글 한 줄, 행간에 담긴 역사를 매의 눈으로 살피는 학자의 열정이 귀하다. 


어느 곳보다 강했던 고구려였기에 그 정신을 이어받은 우리의 민족은 쉽게 아스러지지 않는다. 힘에 굴복했을지라도 그 정신만은 꼿꼿하다. 다만 내부의 분열과 흩어진 민족의 상처로 당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정세가 안타깝다. 이정기와 그 자손은 짧은 인생을 살았다. 그러나 '제'의 통치는 강력했다. 신라, 발해와 활발한 교역의 거점으로 운주는 성장했다. 독립왕국으로 통치했으나 관직 세습의 인정으로 당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했다. 그것은 비단 '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당, 제, 발해, 신라의 정세와 이해관계가 얽히고설켜 있다. 역사서를 기록하는 역사가로서 편견 없이 연구해야 함에도 우리 민족의 정신을 깎아내리는 역사가들의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제'를 평가함에 있어 폄하하는 그들의 의견을 역사에 남은 문건과 자료를 통해 지적하고 있다. 고구려의 부흥을 억제하기 위한 견제로 패망했으나 민족의 기개는 지속된다. 역사를 역행하는 어리석은 행보에 일침을 가한다. 


마지막 장에서 '제'의 패망 원인을 살펴보고 있다. 지휘관인 유오의 배신이 가져온 결과는 참혹하다. 내부를 뒤흔들어 분열을 일으킨 심리전이 운주성의 마지막을 불태웠다. 잔존 세력을 철저히 지워나간 당의 잔혹함도 한몫했다. 잊혀진 왕국 '제'를 통해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를 지켜야 할 것이다. 비록 중국에 비해 작은 나라이지만 우리 민족의 정신은 드높다. 


저자가 전하는 우리 역사의 중요성, 동북공정의 논점과 의견으로 '고구려'와 '제'가 갖는 역사적 의의를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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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발견한 오탈자는 다음과 같다.


_이른바, 동국공정 프로젝트를 국가적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는 현실에서는 더욱 그렇다(p.13)
동국공정-> 동북공정


_한 가지 특이한 것은 유오가 이사도의 아들인 이명안을 낭주사호참군으로 임명하도록 힘썼다는 점이다.(p. 203)

이사도 -> 이사고

(이명안은 이사고의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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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진 사다리 - 불평등은 어떻게 나를 조종하는가
키스 페인 지음, 이영아 옮김 / 와이즈베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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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진 사다리] 키스 페인 지음 / 이영아 옮김 / (주)미래엔-와이즈베리 펴냄 



심리학자 키스 페인의 [부러진 사다리_불평등은 어떻게 나를 조종하는가?]는 불평등이 초래하는 부조화를 향해 불만을 토로하기에 앞서 시각을 넓혀보고자 선택한 책이다. 불평등의 은유적인 표현인 '부러진 사다리'는 계층 간의 불평등이 초래하는 사회 현상뿐만 아니라 개개인이 느끼는 부조리를 심층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사회 곳곳에 만연해 있는 불평등은 소득에 따른 상대적 지위 체계와 박탈감 / 인종 우월주의로 야기되는 인간 존엄성 / 보수, 진보 간의 정치적 이념의 확립과 대립 / 일터의 공정한 경쟁 등에서 나타난다. 사람 심리에 따른 불평등이 어떤 과정을 거쳐 스며들고 우리의 생각에 끼치는지 다각적인 영향을 실험을 통해 확인한다.


체계적이고 예측 가능한, 통제 가능하다 여겨지는 사회에서 불평등이 초래한 문제점을 살핀다. 주관적인 사회의 지위를 보여주는 계층의 사다리에서 내가 위치한 곳은 어디인지 생각해본다.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타인과 상대적 비교를 한다. 사다리에서 자신이 처한 위치에 따른 소득 간의 비교는 경쟁심 유발로 이어진다. 사회에서 자신의 위치를 평균 이상으로 생각하는 '워비곤 호수 효과'에서 보듯이 스스로 중산층 이상이라 생각하는 것은 주관적 과대평가의 맹점이다. 사회적 지위가 미치는 성공 인식의 영향에 따른 것이다. 


계층 고착화와 더불어 사회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현재의 사회에서 내가 가지는 가치는 무엇이며 충분히 역량을 다 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과연 '불평등'하다는 것이 '공정'하다는 것과 대척점에 있는 것인지, '평등'의 본질적인 물음을 깊이 생각해본다. 


가난으로 인한 불평등을 푸념하기보단 기회의 결핍을 안타까워해야 한다. 가난이라는 환경에 따른 행동의 제재는 있을 수 있으나 기회를 갖기 위해, 한 계단 오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도 있다. 상대적 박탈이 야기하는 개인과 사회의 취약점은 '가난'이 이유가 아닌 '정신'이다.  


인종 차별로 대표시 되는 백인과 타 민족, 종교에 따른 기독교와 타 종교, 소득에 따라 나뉘는 빈부의 불평등 외에도 진보와 보수의 차이로 대립되는 정치 이념도 불평등으로 대표된다. 이 책에서 여러 사회 현상과 인간의 모습을 다양한 '실험'으로 다루고 있다. 실험 목적과 환경, 방식을 염두에 두고 그에 따라 어떤 결과가 도출되었는지 서술되어 있다.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극단적으로 부촌과 빈촌이 나뉘는 곳이 존재한다. 일반 아파트와 임대 아파트 간의 진학을 둘러싼 학교 문제도 있다. 같은 사회를 살아가는 통념의 개념을 벗어나 인격을 배척하는 사회 계층 간의 간극은 쉽게 해소되기 힘들다. 수저론으로 대표되는 사다리의 간격은 사람을 무력감에 빠져들게 한다. 그러나 금수저가 아닐지라도 내 자리에서 어떤 모습으로 어떤 마음가짐을 갖느냐에 따라 자신의 위치를 변화시킬 수 있다. 


'부'가 주는 풍족함이 삶의 전부가 될 수는 없다. '부'로 인해 가질 수 있는 기회는 더 많을지라도 그것이 '행복'의 위치를 지정하진 않는다. 행복의 척도를 10이라 여겼을 때 10을 채우고도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다. 행복을 느끼는 크기에 따라 만족도는 달라진다. 내게 있어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내가 지향하는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인식하고 채울 수 있다면 사다리 높이에 연연하지 않을 것이다. 삶에서 진정으로 누릴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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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끝에서 나눈 대화 - 귄터 그라스, 파트릭 모디아노, 임레 케르테스… 인생에 대한 거장들의 대답
이리스 라디쉬 지음, 염정용 옮김 / 에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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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끝에서 나눈 대화] 이리스 라디쉬 지음 / 염정용 옮김 / (주)푸른책들-임프린트 에스 펴냄 



삶과 죽음의 성찰, 인생의 격변기를 지나 비로소 두려움을 벗어나 생각해보게 되는 이름, "죽음은 무엇인가. 삶은 충만했는가." 

유럽 문학을 이끌어 온 19인의 인터뷰가 담긴 [삶의 끝에서 나눈 대화]는 이리스 라디쉬의 거침없는 필체로 대담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1990년부터 2015년까지 문학의 거장들을 두루 만나며 지난 온 삶의 이야기를 듣고, 문학을 토론하며 생의 마지막에 바라는 마음가짐을 이야기한다.


누구에겐 죽음이 오색 찬연한 삶의 일부이며, 누구에겐 두려움과 경이로움의 대상이다. 죽음을 앞둔 노년의 삶 앞에서 갖추어야 할 마음이란 무엇일까. 닿아야 하지만 언제 닿을지 모르는 것이 죽음이기에 그 앞에서는 늘 숙연해진다. 삶의 미련은 죽음을 밀쳐내지만 생을 이룬 모든 것은 언젠가는 반드시 사그라지니 그 순간을 초연하게 맞이해야겠다며 마음을 다잡는다. 


삶을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시대정신을 이어가는 신념은 기쁨이다. 나에겐 낯설지만 유럽의 한 시대, 문학의 일부로 대변되는 19인의 인터뷰는 고집스럽다. 그들이 살아온 시대가 평탄치 않았기에 삶은 치열하다. 전쟁을 겪으며 비틀린 사회에서 살아가야 했고, 급변하는 사회에서 자신의 신념과 문학을 지켜내야 했다. 충분하다 여기지 않고 늘 자기 성찰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그들의 이야기는 따뜻한 울림으로 마음을 흔든다. 


노년의 지혜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한다. 듣는 이가 있으니 소신을 펼치는 것이 어렵지는 않다. 다만 인생의 아집으로 과거에 머무르는 것은 경계해야 할 것이다. 격동의 시절을 지나 조심스레 지내온 삶의 변화에 필요한 지혜이다. 18인은 인생 최후를 맞이한 70세 이상의 고령 때 인터뷰를 진행했지만 이탈리아 작가인 '안토니오 타부키'의 인터뷰는 정치적인 이유로 이루어졌다. 그 인터뷰가 유증으로 남을 것을 예상하지 못했으나 앞날에 대해 묻는 질문에, "마지막 과업은 완수되었다"로 답변한 그의 대담도 함께 실리게 되었다. 


삶의 끝을 조심스레 기다리고, 기억을 되살려 삶을 재구성하며 침묵 속에 삶의 온전함을 맡긴다. 정치적, 문학적 신념이 이루어낸 쾌거를 다시금 살펴본다. 익숙하지 않은 유럽 작가들의 생애를 다 짚어볼 수는 없으나 책 말미에 수록된 <작가 정보>를 통해 19인의 약력을 살펴볼 수 있다. 그 외에도 거론된 용어나 작가들은 주석을 통해 책 하단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다. 


'유리판 너머에, 셀로판지 아래에, 당신의 마지막 여름이 남아 있다. 달콤하고 무의미한,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여름이.' _필립 라킨 (본문 발췌) 내가 누구인지 돌아보는 시간, 삶의 참 뜻이 살아가는 것이라 말한 '루트 퀼뤼거'의 말로 마지막 장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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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마지막 대륙
미지 레이먼드 지음, 이선혜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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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마지막 대륙] 미지 레이먼드 지음 / 이선혜 옮김 / (주)현대문학 펴냄 



차가운 바닷물 위, 크고 작은 유빙이 흩어져 있다. 시린 하늘 위를 알바트로스가 유영한다. 인간의 개입에 변하지 않는 것을 간직하면서도 끊임없이 달라지는 곳이다. 찰나의 순간에도 놓지 못한 남극에서 이루어진 삶을 향한 사랑이다. "남극 대륙에 온 사람은 두 부류로 나뉘는 것 같아요.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사람과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는 사람으로요." (본문 발췌) 서로를 눈으로 더듬어 쫓는 인간과 남극 펭귄의 삶의 모습은 때로 닮아 있다. 24시간 지지 않는 빛의 시기에 외로움을 어루만진다. 끊임없이 내리쬐는 태양 아래서 누릴 수 있는 삶의 의지를 되새긴다. 


200년 전 미지의 대륙이었던 남극은 이제 '여행'이란 목적을 가진 사람의 발길을 받아들인다. 저마다의 삶에서 벗어난 남극의 신비로움은 사람을 매료시킨다. 남극에서 펭귄을 관찰하고 연구하며 크루즈의 안내를 맡고 있는 '뎁'의 시점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크루즈에서 여행객들을 안내하는 뎁은 학자로서 남극에 미치는 사람의 손길이 반갑지 않으나 연구를 위해 서로 상생한다.


이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오스트랄리스 호'의 침몰은 시간의 흐름에 따르지 않는다. 교차 시점으로 주인공 남녀가 만나게 된 우연과 사랑을 보여주고, 부재로 인한 상처와 치유를 풀어내고 있다. 그 후, 많은 사상자를 낸 크루즈의 난파 사고를 중심으로 이 전과 이후로 나누어 뒤섞인 글의 전개가 자칫 복잡하게 느낄 수도 있으나 작가의 담백한 문체와 시점의 정리로 오히려 흥미롭게 읽힌다. 


인간의 삶과 사랑 외에도 펭귄의 생의 주기, 남극이 처한 상황 등을 묘사하고 있다. 저자 미지 레이먼드는 펭귄 서식지를 연구하며 느낀 바를 인간의 삶과 어우러진 이야기 [나의 마지막 대륙(My Last Continent)]을 완성했다. 남극이 처한 상황은 남극의 불행에 그치지 않는다. 온난화가 가져온 것은 남극 환경을 파괴하고 동물의 멸종을 야기한다. 결국 높아지는 해수면이 흘러들어 인간의 삶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그럼에도 단지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고, 아직 현실에 미치는 영향이 적다고 안일하게 대처하는 것에 경각심을 일깨운다. 


뎁과 켈러는 미국 동부와 서부의 끝에서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각자 안은 상처와 다른 삶의 크기가 온전하게 이루어지는 곳이 남극이다. 긴 시간 분리된 삶은 남극의 태양 아래 마주 잡은 두 손으로 비로소 형태를 찾는다. 억지로 발길을 돌려 문명으로 돌아갔으나 때가 되면 다시금 남극으로 향한다. 떨어진 시간만큼 서로를 향한 갈등과 갈증은 깊어진다. 미국 대륙을 떠나 남극 섬에서 이루어진 이들의 사랑은 눈물이 되어 흐른다. 서로를 끌어안은 품을 더 이상 느낄 수 없다. 


거대 크루즈 오스트랄리스 호의 난파 사고는 인간의 자만심과 어리석음이 불러온 결과이다. 피해자로 살아남은 켈러가 다시 구조자가 되어 떠난 바닷길, 남극해는 그를 돌려주지 않았다.  남극을 사랑한 그는 살아남은 것에 안도하지 않고 아직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향해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몸을 돌렸다. 구명조끼도 타인에게 양보한 그는 차가운 남극 깊은 곳에서 안식을 취하고 있을 것이다. 뎁은 그를 잃었다. 그러나 켈러의 온기를 품은 아이와 살아간다. 


'나는 생각을 멈춘다. 나는 켈러의 마지막 순간을 차마 생각할 수 없기에, (중략) 나는 다만 마음을 다잡아 생각한다 켈러의 마지막 순간이 평화로웠을 거라고, 바다에 빠졌어도 고통스럽지 않았을 거라고, 그가 사랑하던 호기심 많은 펭귄들을 만났을 거라고, (중략)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삶을, 나를, 우리를 떠올리는 그의 마음은 희망으로, 심지어 행복으로 가득했을 거라고. 그는 마침내 집에 돌아온 듯 편안함을 느꼈을 거라고.' (본문 발췌)


부서진 태양 아래, 뎁은 여전히 켈러의 흔적을 찾아, 켈러의 그리움을 찾아 남극으로 향한다. 생명을 향한 희생이 머문 차가운 남극해 아래 서로의 꿈을 응원한 켈러의 사랑을 간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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