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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마지막 대륙
미지 레이먼드 지음, 이선혜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12월
평점 :
절판


[나의 마지막 대륙] / 미지 레이먼드 지음 / 이선혜 옮김 / (주)현대문학 펴냄
차가운 바닷물 위, 크고 작은 유빙이 흩어져 있다. 시린 하늘 위를 알바트로스가 유영한다. 인간의 개입에 변하지 않는 것을 간직하면서도 끊임없이 달라지는 곳이다. 찰나의 순간에도 놓지 못한 남극에서 이루어진 삶을 향한 사랑이다. "남극 대륙에 온 사람은 두 부류로 나뉘는 것 같아요.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사람과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는 사람으로요." (본문 발췌) 서로를 눈으로 더듬어 쫓는 인간과 남극 펭귄의 삶의 모습은 때로 닮아 있다. 24시간 지지 않는 빛의 시기에 외로움을 어루만진다. 끊임없이 내리쬐는 태양 아래서 누릴 수 있는 삶의 의지를 되새긴다.
200년 전 미지의 대륙이었던 남극은 이제 '여행'이란 목적을 가진 사람의 발길을 받아들인다. 저마다의 삶에서 벗어난 남극의 신비로움은 사람을 매료시킨다. 남극에서 펭귄을 관찰하고 연구하며 크루즈의 안내를 맡고 있는 '뎁'의 시점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크루즈에서 여행객들을 안내하는 뎁은 학자로서 남극에 미치는 사람의 손길이 반갑지 않으나 연구를 위해 서로 상생한다.
이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오스트랄리스 호'의 침몰은 시간의 흐름에 따르지 않는다. 교차 시점으로 주인공 남녀가 만나게 된 우연과 사랑을 보여주고, 부재로 인한 상처와 치유를 풀어내고 있다. 그 후, 많은 사상자를 낸 크루즈의 난파 사고를 중심으로 이 전과 이후로 나누어 뒤섞인 글의 전개가 자칫 복잡하게 느낄 수도 있으나 작가의 담백한 문체와 시점의 정리로 오히려 흥미롭게 읽힌다.
인간의 삶과 사랑 외에도 펭귄의 생의 주기, 남극이 처한 상황 등을 묘사하고 있다. 저자 미지 레이먼드는 펭귄 서식지를 연구하며 느낀 바를 인간의 삶과 어우러진 이야기 [나의 마지막 대륙(My Last Continent)]을 완성했다. 남극이 처한 상황은 남극의 불행에 그치지 않는다. 온난화가 가져온 것은 남극 환경을 파괴하고 동물의 멸종을 야기한다. 결국 높아지는 해수면이 흘러들어 인간의 삶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그럼에도 단지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고, 아직 현실에 미치는 영향이 적다고 안일하게 대처하는 것에 경각심을 일깨운다.
뎁과 켈러는 미국 동부와 서부의 끝에서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각자 안은 상처와 다른 삶의 크기가 온전하게 이루어지는 곳이 남극이다. 긴 시간 분리된 삶은 남극의 태양 아래 마주 잡은 두 손으로 비로소 형태를 찾는다. 억지로 발길을 돌려 문명으로 돌아갔으나 때가 되면 다시금 남극으로 향한다. 떨어진 시간만큼 서로를 향한 갈등과 갈증은 깊어진다. 미국 대륙을 떠나 남극 섬에서 이루어진 이들의 사랑은 눈물이 되어 흐른다. 서로를 끌어안은 품을 더 이상 느낄 수 없다.
거대 크루즈 오스트랄리스 호의 난파 사고는 인간의 자만심과 어리석음이 불러온 결과이다. 피해자로 살아남은 켈러가 다시 구조자가 되어 떠난 바닷길, 남극해는 그를 돌려주지 않았다. 남극을 사랑한 그는 살아남은 것에 안도하지 않고 아직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향해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몸을 돌렸다. 구명조끼도 타인에게 양보한 그는 차가운 남극 깊은 곳에서 안식을 취하고 있을 것이다. 뎁은 그를 잃었다. 그러나 켈러의 온기를 품은 아이와 살아간다.
'나는 생각을 멈춘다. 나는 켈러의 마지막 순간을 차마 생각할 수 없기에, (중략) 나는 다만 마음을 다잡아 생각한다 켈러의 마지막 순간이 평화로웠을 거라고, 바다에 빠졌어도 고통스럽지 않았을 거라고, 그가 사랑하던 호기심 많은 펭귄들을 만났을 거라고, (중략)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삶을, 나를, 우리를 떠올리는 그의 마음은 희망으로, 심지어 행복으로 가득했을 거라고. 그는 마침내 집에 돌아온 듯 편안함을 느꼈을 거라고.' (본문 발췌)
부서진 태양 아래, 뎁은 여전히 켈러의 흔적을 찾아, 켈러의 그리움을 찾아 남극으로 향한다. 생명을 향한 희생이 머문 차가운 남극해 아래 서로의 꿈을 응원한 켈러의 사랑을 간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