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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끝에서 나눈 대화 - 귄터 그라스, 파트릭 모디아노, 임레 케르테스… 인생에 대한 거장들의 대답
이리스 라디쉬 지음, 염정용 옮김 / 에스 / 2018년 1월
평점 :
절판


[삶의 끝에서 나눈 대화] / 이리스 라디쉬 지음 / 염정용 옮김 / (주)푸른책들-임프린트 에스 펴냄
삶과 죽음의 성찰, 인생의 격변기를 지나 비로소 두려움을 벗어나 생각해보게 되는 이름, "죽음은 무엇인가. 삶은 충만했는가."
유럽 문학을 이끌어 온 19인의 인터뷰가 담긴 [삶의 끝에서 나눈 대화]는 이리스 라디쉬의 거침없는 필체로 대담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1990년부터 2015년까지 문학의 거장들을 두루 만나며 지난 온 삶의 이야기를 듣고, 문학을 토론하며 생의 마지막에 바라는 마음가짐을 이야기한다.
누구에겐 죽음이 오색 찬연한 삶의 일부이며, 누구에겐 두려움과 경이로움의 대상이다. 죽음을 앞둔 노년의 삶 앞에서 갖추어야 할 마음이란 무엇일까. 닿아야 하지만 언제 닿을지 모르는 것이 죽음이기에 그 앞에서는 늘 숙연해진다. 삶의 미련은 죽음을 밀쳐내지만 생을 이룬 모든 것은 언젠가는 반드시 사그라지니 그 순간을 초연하게 맞이해야겠다며 마음을 다잡는다.
삶을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시대정신을 이어가는 신념은 기쁨이다. 나에겐 낯설지만 유럽의 한 시대, 문학의 일부로 대변되는 19인의 인터뷰는 고집스럽다. 그들이 살아온 시대가 평탄치 않았기에 삶은 치열하다. 전쟁을 겪으며 비틀린 사회에서 살아가야 했고, 급변하는 사회에서 자신의 신념과 문학을 지켜내야 했다. 충분하다 여기지 않고 늘 자기 성찰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그들의 이야기는 따뜻한 울림으로 마음을 흔든다.
노년의 지혜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한다. 듣는 이가 있으니 소신을 펼치는 것이 어렵지는 않다. 다만 인생의 아집으로 과거에 머무르는 것은 경계해야 할 것이다. 격동의 시절을 지나 조심스레 지내온 삶의 변화에 필요한 지혜이다. 18인은 인생 최후를 맞이한 70세 이상의 고령 때 인터뷰를 진행했지만 이탈리아 작가인 '안토니오 타부키'의 인터뷰는 정치적인 이유로 이루어졌다. 그 인터뷰가 유증으로 남을 것을 예상하지 못했으나 앞날에 대해 묻는 질문에, "마지막 과업은 완수되었다"로 답변한 그의 대담도 함께 실리게 되었다.
삶의 끝을 조심스레 기다리고, 기억을 되살려 삶을 재구성하며 침묵 속에 삶의 온전함을 맡긴다. 정치적, 문학적 신념이 이루어낸 쾌거를 다시금 살펴본다. 익숙하지 않은 유럽 작가들의 생애를 다 짚어볼 수는 없으나 책 말미에 수록된 <작가 정보>를 통해 19인의 약력을 살펴볼 수 있다. 그 외에도 거론된 용어나 작가들은 주석을 통해 책 하단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다.
'유리판 너머에, 셀로판지 아래에, 당신의 마지막 여름이 남아 있다. 달콤하고 무의미한,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여름이.' _필립 라킨 (본문 발췌) 내가 누구인지 돌아보는 시간, 삶의 참 뜻이 살아가는 것이라 말한 '루트 퀼뤼거'의 말로 마지막 장을 덮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