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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중 마음 농도
설재인 외 지음 / 든 / 2024년 9월
평점 :

20대 시절 '나'는 멜랑꼴리한 기분에 자주 휩싸였고, 나의 서사들은 온통 은유법이었다.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던 감성을 기필코 터트려야 직성이 풀렸던 '나'의 손에는 언제나 술이 들려있었다. 나처럼 술과 문학을 동시에 사랑하는 두 여자가 있다. 주종은 가리지 않지만 가성비를 따지며 희석석 소주를 즐겨 마시는 소주파 설재인 작가. 스카치나 비번에 슴슴한 안주를 곁들이길 좋아하는 양주파 이하진 작가 두 주정뱅이의 문학적 씨부럴을 담은 <취중 마음 농도>작품이다. 두 작가 술은 주제로 술을 마시며 주고받은 음주에 대한 편지들이 수록되어 있다.
문학적 설재인이 되고 싶지만 씨부럴적 설재인으로 사는 그녀의 이야기부터 살펴보자. 소설이든 글을 창작하겠다는 생각은 이십 대 후반부였다. 그전에는 음악이 있었다. 여러 밴드를 전정하였지만 밴드의 끝은 늘 좋지 않았고, 많은 경우 그녀로 인해 밴드가 깨지기도 하였다. 그 이유는 사람들로 받은 상처들을 술을 마시며 상대를 향해 모진 평가를 내뱉었기 때문이다. 사실 나에게도 이러한 시절이 있었다. 아직 잣대도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나는, 나의 잣대 위에 타인을 올려두고 숱하게 재단하려 들던 기억이 떠올라 숨고 싶어졌다. 그녀는 원물로서의 모습이 분명하게 살아있는 생선회, 붉은 육고기 등 날음식을 좋아한다. 성격이 급하지만 내항인 인 그녀는 남과 술 마시는 걸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 한때는 술에 취해 내면을 드러내었던 설재인이 천천히 자신을 바꿔가는 성장과정이 담겨 있다.
시작은 어른이다. 증명성으로 술을 마시게 된 이하진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어른에 대한 갈망이 강하였다. 작가로 데뷔하고 돈을 벌게 되면서부터 비싼 술을 마시면서 취향을 찾게 되었고, 이후로는 남들과 어울리겠며 주량을 자랑하고, 거기서 오는 치기 어린 경탄에 뿌듯하며 더 들이붓는 행동들은 사라진다. 위스키에 처음 입문한 배경은 순전히 도수 때문이었고, 술과 안주는 균형을 이뤄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느 정도 현실에 기반한 세계관을 선호하고, 음주 사유 과반은 어찌 되었든 무언가를 해소하기 위함이라 고백한다.
음주 습관과 좋아하는 안주 주종의 술도 전혀 다른 두 작가들이 주고받은 편지를 통해 타인과 거리를 좁히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또한 저자의 내면세계의 균열과 술과 함께 보낸 혹은 술을 둘러싼 인생의 어떤 부분들을 날 것이 들어있다. 자의의 상관없이 삶이 이어지는 인생의 허무와 실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듯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누구보다 애틋하고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나'를 발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