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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막연함에 속았다
권다예 지음 / 다독임북스 / 2019년 6월
평점 :

권다예 작가의 <나는 막연함에 속았다>작품의 키워드는 막연함이다. 막연함이란 갈피를 잡을 수 없게 아득하거나, 뚜렷하지 못하고 어렴풋한 상태를 나타내는 말이다. 타고난 그녀의 성격은 무감각한 사람이었지만 믿었던 사람의 아주 짧은 몇 마디에 상처를 받아 마음속 트라우마로 자리 잡는다. 이후 그녀는 예민한 사람으로 변해간다. 나도 어린 시절의 '나'와 현재의 '나'의 성격은 정반대가 되었다. 현재의 나는 무척이나 예민한 편에 속하는 사람이다. 그로 인해 무슨 일이든 더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고, 그냥 웃어넘길 일조차 진지하게 임하게 된다. 특히 타인이 나에게 건네는 농담을 농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정색을 하고 있는 나를 보며 머쓱해 한다. 책을 통해 동지를 만나서 반가웠다. 그녀는 예민한 성격으로 인해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았을 때에도, 주었을 때에도, 멍청한 짓을 했을 때에도 항상 유난스럽게 아파하고, 두려워하고, 기뻐했다. 이유 없이 모든 것이 막연하기만 했던 삶의 멈칫하던 순간을 일기처럼 기록하고 사적인 생각들을 첨가했다.
이 작품은 일상에서 스치는 소소한 갈등으로 인해 생긴 감정들을 다룬다. 누군가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것, 자신의 불편함을 감수하고 함께 하는 사람이 편해질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비롯된 행동들이 누군가에게 당연한 사람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그녀는 당황하기 시작한다. 이후 그녀는 스스로 갑옷을 찾아 입고, 단단한 벽 하나를 세운다. 친구가 많은 사람들을 부러워했다는 고백, 존재감을 부각시키며 헤쳐나가야 할 때, 혹은 그에 실패했을 때, 내 몸 곳곳에 패배감이 묻어있다 느껴질 때 그로 인해 쓸모없는 존재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 도망치고 싶고 동굴 같은 곳에 몸을 숨기고 싶다는 고백. '나보다 많이 앎' 때문에 선생님을 참 좋은 사람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들이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나쁜 부분을 캐치해서 판단할까 봐 그래서 결국 자신을 싫어하게 될까 봐. 다가가지 못하는 어른 공포증을 여전히 겪고 있다는 내밀한 고백들 앞에서 그녀의 인간미를 발견할 수 있다.
독일에서 가장 중요한 실존주의자 야스퍼스는 "현대사회에서 인간이 처한 상황을 통해 불안의 조건을 주체화 한다" 말하고. 실존주의 창시자 키에르케고르는 "인간이기 때문에 불안하다라"라는 이야기를 했다. 나의 나이가 서른이 넘고, 책을 미치듯이 읽기 시작한 시점부터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 무너지고 붕괴되면서 시시때때로 혼돈이 찾아왔고 나의 텐션도 들쑥날쑥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 내가 고민했던 생각들, 힘들어했던 부분들, 그 당시 내가 지닌 감정들과 일맥상통하는 부분들이 많았고. 그로 인해 한 권의 나의 일기장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어쩌면 우리는 평생을 막연함이라는 감정과 싸울 수밖에 없다. 저자는 막연함이라는 감정과 싸워 이기는 기술이나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들을 솔직 담백하게 고백하며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말한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은 20대 후반 여성에서 30대 초반 여성에게 추천해주고 싶다.

P192
그렇게 당연하게 방치해두었던 나를, 과거 속에 존재하고 있는 어린 나를, 구석에 몸을 웅크린 채 숨죽여 울고 있는 어린 나를 뒤늦게 발견하게 되었다. 한없이 처량한 모습으로 내 앞에 앉아있는, 너를 내가 이렇게까지 많은 상처를 주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P226
내가 칭찬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칭찬을 받으면 왠지 모르게 표정이나 몸이 굳는 이유는 아마 내가 반응했던 모습으로 나를 판단하던 누군가의 모습 때문이라 짐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