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제 너는 노땡큐 - 세상에 대들 용기 없는 사람이 뒤돌아 날리는 메롱
이윤용 지음 / 수카 / 2019년 2월
평점 :

주변에 지인들은 너 정도면 착하지. 내 주변에서 네가 제일 착해.라는 말을 연거푸 수도 없이 들으며 30년생을 살아왔다. 싸움에서 이겨본 적 거의 없다. 나의 논리력이 부족했을 수도 있고 그보다 심각한 건 싸울 때조차도 나를 공격해오는 상황 앞에서도 나는 생각이 많다는 점이다.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싫은 소리. 혹은 타인이 상처받을만한 이야기들은 당사를 앞에 두고 잘 내뱉지 않는다. 누군가 나에게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 갇혀 있다고 말해준 적도 있었지만 그냥 내 안에 형성된 하나의 성향이었다. 그 성향은 색안경을 낀 사람들의 무심한 말이다, 주변의 날선 시선들을 극도로 예민하게 만들기도 했다.
해외에서 살아본 적 없는 서울 토박이로, 용기 없어 사고 못 치는 순둥이로, 라디오가 좋아 열에 매달리는 일벌레로 살다가, 세상의 쓴맛과 인간관계의 독한 맛을 경험하고 이제는 흐트러진 날라리로 살고 싶은 싱글 여성"
나와 성향의 비슷한 결을 지닌 작가님이다, <생겨요 어느날> 작품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다. 나보다 나이는 훨씬 많으나 미혼 여성이라는 점과 맞물려 결혼에 대한 인식 이야기보따리를 통한 가치관들. 개인적으로 <저는 괜찮습니다만> 작품을 읽으면서 "20대는 서툴렀고 30대는 불안했지만 어느새 삶이 조금씩 다정해지기 시작했다."라는 문장을 좋아하기도 했다. 2019년 2월 다산북스에서 주최하는 서평단을 통해 <이제 너는 노땡큐> 작품을 만났다, 그녀의 작품 세계의 코드는 웃음과 짠함이다. 그래서 그녀의 책을 읽다 보면 피식 웃게 되거나 찔끔 눈물이 날지도 모른다. 이번 작품도 역시 방송작가라는 직업의 이로운 점들이 작품 속에 가미되어 담백하면서도 맛깔스럽게 풀어나간다.
생각해보면 그런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편의대로 얼굴색을 바꾸고, 순서의 원칙을 바꾸고, 내 감정을 늪으로 바꾸는 사람! 자기 기분 내키는 대로 신나게 하하 호호 웃다가도 뭐하나 자기 맘대로 안 됐다 싶으면 버럭 화를 내고 돌아서는 사람! 그리고 다음엔 또 아무렇지도 않은 듯 상냥한 얼굴로 나를 맞이하겠지. 그러면서 그들은 스스로를 이렇게 칭한다."대신 난 뒤끝이 없잖아." 근데 어쩌지 난 뒤끝이 있거든.(P15-16)
슬픔을 길게 가지지 않고 끊는 단단함. 또다시 슬퍼지더라도 잠시 동안 잊는 단순함 이런 감정의 단절은 얼마나 현명한가! 그리하여 나도 감정 단절을 위해 '절감(切感)의 의자를 만들었다. 그곳에 앉으면, 슬프건 억울하건 짜증나건 모든 일을 생각 말아야 하는 아만의 규칙 의자. 자, 이제 의자에 앉아 숨을 크게 들이마셔보자. 흡! 그리고 끊어버리는 거다. 세상이 내게 준 슬픔 따위. 나는 '잠시'행복할 권리가 있으므로. (P36-37)
이번 작품의 부제는 "마음 휴지통을 비우기로 했습니다." 억울해도 잘 따지지 못하는 성격의 저자는 스스로 할 수 있는 최고의 복수는 상처 준 사람들을 향한 감정을 아무도 모르게 삭제해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저자는 자신의 뜻대로 상대를 움직이려는 사람을 삭제했으며, 걱정으로 포장된 타인의 무례함을 삭제하기도 한다. 또한 나와 다르다고 험담하고 다니는 친구의 번호를 삭제한다. 나보다 내 돈의 안부를 궁금해했던 친구를 삭제했으며 문자로 내 위치를 염탐하는 남자를 삭제하기도 한다.
나는 내가 본 많은 사람들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기로 했다. 내가 그들을 잘못 읽어 오독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기에 (P113)
저자는 반대로 헌담의 길을 제시하는 구글 지도 같은 언니의 카톡을 저장했으며, 타인의 방식을 삭제하고 내 방식을 저장한다. 또한 유연한 능구렁이가 되는 법을 저장하고, 큰 교훈이 된 후배의 질책을 저장한다. 함부로 내 인생에 끼어들어 나를 흔드는 사람들에게 속 시원하게 "이제 너는 노땡큐"라고 외쳤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고, 생활 반경을 넓혀가기 시작하면서 세상에는 참으로 다양한 인간의 종이 있다는 것을 인지했다. 특히 사사건건 남일에 개입을 하려는 사람들과 자기의 존재와 위치를 상대방을 펌 함으로써 과시하려는 사람들 때문에 마음에 상이 맺히기도 했다. 참는 것이 미덕인 시대는 지나갔다. 이 책을 통해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와 울분들이 위안이 되는 느낌을 받았으며 나 역시도 무례한 사람들을 향해 이제 너는 노땡큐라고 외칠 수 있고. 삭제해버리는 단단한 내공과 맷집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