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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주가의 결심 - 2018 한경신춘문예 당선작
은모든 지음 / 은행나무 / 2018년 5월
평점 :

어린 시절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귀가한 아빠의 손가락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검은 봉지를 나는 매일 마주하곤 했다. 검은 봉지에는 초록색 소주 한 병이 들려져 있었다. 두드득 두드득 소주병이 개봉된다. 소주병 안에 들어있는 액체들이 투명한 유리잔으로 찰랑찰랑 쿨럭쿨럭 소리를 내며 옮겨지는 과정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런 아빠의 모습에 나는 난색을 표하기도 했다. 직장생활 11 년차 이젠 아빠의 손가락이 아닌 나의 손가락에 검은색 비닐봉지가 매달려 있는 상황을 마주하게 되었다. 이 책의 주인공인 주희 그녀는 술 애호가이기에 "술주희"라는 별명을 지니게 된다. 나 역시도 술을 소처럼 먹는다고 해서 소미라이 라는 별명을 들어본 적이 있어 책 속에 등장하는 술주희가 반가웠다. 주희와 마찬가지로 술을 좋아하고 술이라면 주종을 가지리 않고, 좋아하는 편이다. 책 속에서 여러 종류의 술이 등장할 때마다 입맛을 다시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책은 2018년 한경 신춘문예 당선된 작품 <애주가의 결심> 은모든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1981년 서울 출생으로서 동덕여대 문예 창작학과를 졸업했다.
"독하지만 때로는 속절없이 부드럽게 스며들기도 하는 세상의 모든 술에게 바칩니다."라고 시작되는 애주가의 결심의 줄거리를 살펴보면 푸드트럭의 경영악화로 인해 무일푼이 된 주희 이 선배의 집에서 모임이 있던 날 난생 처음으로 필름이 끊기는 현상을 경험한다. 주희는 만취된 상태에서 트위터에 글을 작성하게 되고 , 글을 보게 된 사촌언니였던 우경으로부터 연락을 받게 된다. 사촌언니 우경은 주희에게 복층구조도 되어있던 2층의 다락방을 내어주고, 두 사람의 동거 생활을 시작한다. 주희는 백수다. 매일 같이 구직 사이트를 뒤진다. 친구에게 소개받은 사무실은 면접도 보기 전에 회사 사정으로 인해 퇴짜를 맞는다. 한편 사촌언니 우경은 독서모임에서 만난 미스터 썸머를 짝사랑하고 있었다. 미스터 썸머는 이자카야를 운영하고 있다. 주희는 우경과 미스터 썸머의 데이트에 동행하기도 한다. 술을 먹을 때마다 주희는 사촌언니 우경에게 술을 권했지만 계속해서 술을 거부한 우경 우경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을까? 우연히 주희는 이 선배의 집에서 모임을 하던 날 대화가 잘통하던 배짱이라는 사람을 다시 만나게 된다. 그들은 그렇게 같은 망원동 주민으로서 술친구를 동맹하면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책을 읽고 나서 이 책을 술로 비유하자면 시원한 소주 같았다. 소주를 먹다 보면 유난히 어떤 날은 달게 느껴지고, 어떤 날을 씁씁한 맛이 입안에 감돌 때가 있다. 위태로운 청춘들에게 이 책은 재미있고, 위로가 되어주고 유쾌하지만 또 다른 이면에는 씁쓸하면서 공허해지는 느낌을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중에 무일푼이고, 고시원에서 생활한 주희를 보면서 현재 우리나라의 실업률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게 된다. 실업률은 계속해서 역대 최고를 갱신하고 있다. 대학의 정규과정까지 이수한 젊은이들이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 것은 과연 개인적인 능력이 부족한 것인가? 아니면 경제의 문제인가? 아무도 전조도 없이 해고 통보를 받은 "예정" 하지만 예정은 퇴직금을 받기 위해 고용노동부에 민원을 넣고, 목요일마다 독촉의 전화를 이를 악물고 걸어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다. 예정을 보면서 예전에 나도 퇴직금 문제로 노동부에 신고했던 일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애주가의 결심>에서는 50여 가지가 넘는 술이 등장한다. 아마 작가님은 이 책을 통해 다양한 술 종류 만큼이나 각자에게 주어진 다양한 삶의 애환을 가지고 사는 고달픈 청춘들에게 술잔을 주고받으며 한 잔의 위로를 건네주고 있었다.
▶ 밑줄긋기

나라는 존재가 무한히 작게 느껴져 허둥대던 기억이 내게도 있었다. 이럴 바에는 아무도 모르게 사라져버리고 싶다는 충동으로 범벅이 된 기분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때 나는 허겁지겁 술을 마시고 취기에 기대 실실거리며 그 순간을 넘겼다. 하지만 엉망으로 취한 뒤에도 그 생각만이 머릿속에 가득하다면, 술잔을 들 기력조차 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었다. 부정적인 연상이 머릿속을 휘저었다. 더는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 나는 두 눈을 질끈 감고 애써 잠을 청했다.

활력이 넘치는 웃음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는 그들이 함께 웃는 시간의 유효기간에 대해 몽상했다. 몇 해 뒤에는, 혹은 고작 일이 년이 지난 뒤에는 지금 한자리에 모여서 웃고 있는 사람들의 관계가 소원해져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순간이 그들의 인생에서 오래도록 기억하게 될 추억으로 남을지도 모르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누군가의 인생에서 가장 즐거운 한때를 스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시각에 따라 절대적으로도 볼 수 없고, 상대적으로도 볼 수 있는 어떠한 갭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배짱은 스스로 느끼기에도 어떤 날은 노력으로 따라잡을 수 있을 것처럼 느껴지는 그 차이가 결정적인 순간에 벽처럼 눈앞을 가로막는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