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스키야키 식당
배수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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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의 범위는 점점 넓어지고 그 경계는 모호해지고 개념은 다양해져서 사회가 진보하고 복잡해질수록 빈곤 또한 따라서 팽창하는 듯하다. 게다가 심지어는 점차 추상적이 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일요일의 스키야키 식당>은 배수아가 작가의 말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굉장히 오랜 기간 동안 씌여졌고 한 부분이 끝난 다음에 그것을 거의 잊어버릴 만하면 다음 부분을 시작하곤 한' 탓에 '빈곤' 이라는 것 이외에 소설들 사이에 긴밀한 연관을 갖고 있지는 않다. 그래서 하나의 소설에서 등장한 인물이 다른 이야기에서 연관을 갖고 이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전혀 별개의 소설로 독립된 장도 있다.

등장 인물들은 다소 기이하다. 그들이 빈곤을 대하는 태도는 상식적이라기 보다는 별쭝맞아 보인다. 일체의 노동을 거부한 인물로는 대학교수와 과거 부유했던 게으름뱅이 남자가 있다. 그들은 식욕 이외에 별다른 욕망이 없다. 다른 한편 현실의 삶을 극도로 절제하며 재생산을 거부하는 부부들도 있다. 그들은 아이를 낳는 순간부터 가난의 구렁텅이에 빠져들 것이라는 예감에 재생산을 거부하고 현재의 알량한 윤택함에 목을 메고 살아간다. 옷수선집을 하는 여자는 돈을 가방에 잔뜩 쌓아두고서 딸이 그 사실을 알게될까봐 두려워하며 내핍 생활을 지속한다. 

절대적 빈곤에 처하지도 않았으면서 기준을 정해 스스로 빈곤을 자처하거나 빈곤한 상태의 공포를 상상하는 사람들과, 절대적 빈곤에 처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삶이 비루하다고 느끼지 않는 부류들이 등장하여 얼핏 일관성 없어 보이지만 빈곤의 다양함이라는 측면에서 그들은 자기 역할을 해낸다.

배수아식의 번역투(혹은 과장된 희곡투) 문체는 등장인물들의 기이함과 의외성에 코믹한 성격을 더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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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엘 콜하스의 민란 부클래식 Boo Classics 15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 지음, 전대호 옮김 / 부북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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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란덴브루크에 사는 말 장수 미하엘 콜하스가 작센으로 말을 팔러 간다. 도중에 트롱카의 지주 벤첼이 소유한 성을 통과하려 하니 통행증을 내놓으라는 요구를 받는다. 지금까지 없었던 일이라 무시하려 했지만 문지기가 완강하게 버텼기에 성주와의 면담을 요구했는데, 성주 역시 검은 말 두 마리를 담보로 맡기라고 명령한다. 미하엘 콜하스는 뭔가 의심스러웠지만 어쩔 수 없이 하인에게 돈을 주고 말을 잘 보살피라고 당부한 후 드레스덴으로 간다. 드레스덴에서 미하엘 콜하스는 통행증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 말을 찾으러 간다. 트롱카로 가 보니 어이 없는 상황이 미하엘 콜하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인은 얼마 전에 매를 맞아 쫓겨났고, 두 마리의 검은 말 역시 지주의 밭일에 동원되어 혹사된 탓에 뼈만 앙상한 폐마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분노한 콜하스는 작센 선제후에게 자세한 사실을 기록하여 고소장을 제출하지만 트롱카의 지주 벤첼의 친척들이 손을 쓴 탓에 고소는 기각되고 만다. 콜하스는 분심을 이기지 못해 모든 재산을 처분하고 하인들을 무장시켜 벤첼에게 복수하고자 한다. 이를 눈치 챈 아내가 콜하스를 잘 설득하여 자신이 다시 한번 고소장을 전달시켜 보겠노라고 말한다. 하지만 아내는 고소장을 전달하기도 전에 경비병들의 창에 찍혀 숨지고 만다.

절망한 콜하스는 무장한 하인들을 이끌고 바람 같이 트롱카의 성으로 휘몰아쳐 집들을 불태우고 거주민들을 살해한다. 그가 잡지 못한 것은 벤첼 뿐이었다. 벤첼이 수녀원으로 도망갔다는 첩보가 입수되자 비텐베르크로 추격을 계속했지만 역시 한 발 늦게 도착한다. 비텐베르크에 불을 지른 콜하스가 이제 라이프치히에 입성하리라는 소문이 돈다.

이에 마르틴 루터가 콜하스를 설득하기 시작한다. 콜하스는 자신의 억울함을 루터에게 호소하였고, 루터는 콜하스가 드레스덴의 법원에 다시 고소장을 제출할 수 있도록 안전통행을 보장해주겠다는 약속을 한다. 콜하스는 루터의 제안을 받아들여 무리를 해산시킨다. 하지만 선제후의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고 콜하스는 가택 연금 상태에 처한다. 

한편 과거 무리들 중 질이 좋지 못한 나겔슈미트는 무리를 다시 규합하여 못된 짓을 일삼고 있었는데 콜하스의 상징적인 지도력이 절실했다. 그래서 나겔슈미트는 콜하스에게 자신이 콜하스를 가택 연금 상태로부터 구해줄 테니 과거 무리를 다시 지도해달라는 편지를 보낸다. 하지만 편지는 중도에 검열당하고, 콜하스는 감금되고 만다.

브란덴부르크 선제후의 호의로 콜하스가 즉각 사형에 처해지는 것은 막을 수 있었지만 재판마저 중지시킬 수는 없었다. 트롱카의 지주는 말들을 원상 회복시키고 손해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게 되고, 콜하스는 그 사건과 무관하게 인명을 살상한 죄로 사형 판결을 받는다.

판결 즈음 작센 선제후는 콜하스가 자신의 가문의 운명을 점 친 쪽지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작센 선제후는 콜하스에게 쪽지를 양도해준다면 목숨을 구해주겠다는 제안을 하지만 콜하스는 단호히 거절하며 처형대에서 죽기 전 쪽지를 삼켜버린다. 작센 선제후는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

 

작가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1777-1811)는 헤겔과 동시대 사람으로 생전에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사후에 재평가 되면서 오늘날의 독일문학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 중 한 사람으로 평가 받고 있다.

16세기를 배경으로 씌여진 <미하엘 콜하스의 민란>의 주인공 콜하스의 행동은 다소 극단적이다. 사실 콜하스가 받은 피해는 '말 두마리가 비쩍 곯았다'는, 어찌보면 사소하다고 할 수도 있는 문제였다. 이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은 피해를 더욱 확대시킨다. 아내와 충직한 하인이 살해당했고, 아이들이 고통 받았으며, 결국 자신도 죽음을 맞는다. 또 콜하스의 행동으로 트롱카와 비텐베르크의 집들이 전소되고 주민들도 많이 상한다. 

콜하스의 행동에서 어떤 계급적 저항이나 부조리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의식도 그다지 뚜렷하지는 않다. 콜하스가 원하는 것은 '법적인 정의' 였다. 그는 고소장이 기각되자 법으로부터 자신이 보호받지 못한다는 사실에 절망하여 스스로 '법의 수호자'를 자처하며 사람들을 끌어 모아 변란을 일으켰고, 루터가 정당한 법적 조치를 약속하자 순진할 정도로 빨리 사람들을 해산시킨다.

그는 정의와 복수에 집착했고, 그 점에 있어서는 뜻을 이룬다. 말 두마리는 다시 살이  올라 정상으로 돌아왔고, 작센 선제후의 운명을 점친 쪽지를 끝내 건내주지 않아 선제후를 쓰러지게 만든다. 그 대가는 자신의 목숨이었지만 콜하스는 고집스러우리만치 자신이 목표로한 '정의와 복수'를 실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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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랑은 왜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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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아랑전설은 <전설의 고향>을 통해 자주 보아오던 평범한 이야기이다. 

 

그 개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아랑의 본명은 윤정옥으로 밀양 군수의 딸이었다. 아랑을 욕보일 욕심에 통인이 그녀의 유모와 짜고서 밤중에 일을 도모하는데 아랑이 극력 저항하였다. 이에 통인이 아랑을 죽여 대밭에 버리는데, 내막을 모르는 아랑의 아버지는 아랑이 외간 남자와 내통하다 함께 도망친 것으로 알고 벼슬을 버린 후 집으로 돌아간다. 그 뒤로 밀양에 새로 부임하는 군수마다 첫날밤을 넘기지 못하고 의문의 죽음을 맞자 아무도 밀양 군수를 자임하는 자가 없었다. 조정에서는 널리 밀양 군수를 모집하였고, 이상사라는 인물이 군수직을 자청한다. 부임 첫날 밤 이상사의 면전에 아랑의 원혼이 나타나 억울한 죽음을 호소하였고, 이상사는 범인을 가려내 처벌하고 아랑의 시신을 수습하여 고이 장사지내준다. 그후로 아무 사고도 일어나지 않았다.

 

약간의 변형이 가해진 버전이 더 있는데 이를테면 아랑을 욕보인 것은 통인이 아니라 관노였다든가, 아랑이 나비로 변하여 범인의 머리 위에 앉았다든가 하는 식이다.

 

김영하는 이 아랑전설을 하나씩 뜯어보며 그 진위나 타당성을 음미해보는 한편, 현세에 또다른 이야기를 하나 꾸민 후 병치시켜 과거와 현세를 잇는 하나의 졸가리를 만들어보려 한다. 

 

아랑전설의 이야기를 재구성하는 과정은 흥미롭고 어느 정도 성공적이다. 어사를 따라온 억균이라는 주인공은 아랑을 죽인 범인이 자복한 그 날 장 100대를 맞고 절명했다는데에 의문을 품는다. 살인죄를 저질렀을지라도 즉형에 처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또 부사 두 명이 연달아 사망한 것도 수상쩍어 보였을 뿐만 아니라, 아랑의 아비가 아랑의 실종 직후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갔다는 것도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억균은 끈질긴 추적을 통해 아랑이 전임 부사 윤관의 여식이 아니라 호방의 딸이자 윤관의 첩이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아랑이 다른 남자와 눈이 맞은데 분개한 윤관은 아랑은 살해한 후 고향으로 돌아가버렸다. 문제는 윤관이 다스리던 시기에 국둔전 치수에 요긴한 보가 무너졌다는데 있었다. 조정에 보고한다면 막대한 손실을 족징으로 메워야할 판이었기에 호방 등은 시간을 벌기 위해 신임 부사들을 독살하고 아랑전설을 만들어낸 것이다.

 

사뭇 그럴싸한 재담과 기지로 과거의 전설을 이성과 합리의 잣대를 들이대 개작하는데 성공했찌만, 병치되는 또 다른 이야기가 애매하다. 소설을 쓰다가 이제는 번역을 하는 주인공과 복잡한 가정사를 뒤로한 미용실 아가씨의 동거 이야기는 옛 이야기와 자연스럽게 병치되지 못하고 버성기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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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민호 2018-09-18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전 과거의 이야기가 현실로 이어지는 것에 너무 흥미진진했던ㄷㄷ
 
런던 대로
켄 브루언 지음, 박현주 옮김 / 시공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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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먹고 일으킨 폭력 사건 때문에 감옥에 수감된 미첼은 조기 가석방을 거절하고 3년이라는 형기를 꼬박 채운 후 출소한다. 미첼은 친구 노턴이 마련해 준 그럴싸한 아파트에 기거하게 된다. 노턴에게 빚을 갚지 못한 누군가가 빼앗긴 아파트였다.

출소하자마자 또다시 범죄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 마뜩치 않았던 미첼은 우연한 계기로 은퇴한 여배우 릴리언의 저택에 잡역부로 취직하게 된다. 릴리언은 이제 60이 다 된 여배우였으나 잘 관리받은 덕택에 팽팽한 몸매를 간직하고 있었고, 미첼은 그녀에게 육체적인 매력을 느낀다. 릴리언의 저택에는 조던이라는 집사가 있었는데, 이 집사는 조금 수상쩍은 인물이었다. 조던은 릴리언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보였고, 해고된 잡역부에게 거리낌 없이 폭력을 행사했으며, 범죄의 냄새가 나는 일들에 대해서도 그다지 거부감을 보이지 않았다.

한편, 노턴은 미첼에게 자신이 하고 있는 수금 업무에 동참해줄 것을 요구한다. 미첼은 단번에 손을 씻고 범죄 세계로부터 멀어지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노턴을 따라다닌다. 이 과정에서 이슬람 연합과 잘못 엮여 여섯 명에게 린치를 당한다. 하지만 노턴의 보스 간트는 이 사건으로 미첼을 높이 평가하여 자신의 조직에 미첼을 영입하고자 한다. 그리고 미첼의 신뢰를 얻기 위해 한 가지 비밀을 알려준다. 미첼은 자신이 만취해 폭행 사건을 일으켜 감옥에 갔다고 알고 있었지만 사실 폭력을 휘두른 것은 노턴이었고 미첼은 인사불성이 되어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모든 것은 노턴이 뒤집어 씌운 것이었다.

하지만 미첼은 이제 와서 노턴에게 복수하고, 간트의 수족이 될 생각은 없었다. 게다가 간트는 릴리언 소유의 '실버고스트'를 훔쳐와 충성을 보이라고 요구했기 때문에 제안을 거절한다. 간트는 앙심을 품고 미첼에게 위협을 가하기 시작한다.

미첼의 동생이 기르던 개가 목이 잘리고, 노턴의 시체가 릴리언의 집에 내걸린다. 조던은 우호적인 태도로 미첼을 돕고, 둘은 간트를 해치운다.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고 생각한 순간, 미첼의 연인 애슬링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조던의 방을 뒤진 미첼은 간트가 벌인 짓들의 대부분이 조던의 짓임을 알게 된다. 조던은 미첼이 릴리언의 곁을 떠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이 모든 일들을 꾸민 것이다. 미첼은 조던에게 총을 발사한 후 릴리언에게 총구를 들이댄다.

 

빌리 와일더 감독의 1950년 작품 <선셋 대로>를 아일랜드 출신 켄 브루언이 하드보일드 느와루 소설로 재탄생 시킨 작품이다. 문체는 레이먼드 챈들러를 다소 모방한 흔적은 보이지만 매력적이고, 사건의 전개도 간결하면서 품위있다. 특히나 범죄소설과 시에서 인용한 다양한 문구들 덕택에 미첼이 밋밋한 인물이 아닌 복합적 인물로 비춰진다. 윌리엄 모나한 감독이 <런던 대로>를 원작으로 2010년에 다시 영화화 했는데 주연은 콜린 파렐, 키이라 나이틀리가 맡았다. 내용은 상당 부분 원작에서 수정되었다고 하는데 언젠가 한번 기회가 되면 봐야겠다.

작가의 또 다른 작품을 읽어보고 싶어 인터넷을 뒤져 봣지만 우리말로 번역된 것은 이 책 밖에 없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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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호 품목의 경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47
토머스 핀천 지음, 김성곤 옮김 / 민음사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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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어느 여름 날 오후, 에디파 마스 부인이 터퍼웨이 파티에 갔다 와 보니 편지가 한 통 와 있었다. 편지에는 에디파가 피어스 인버라리티의 유산 관리인으로 위촉되었다는 내용이 씌어 있었다. 피어스 인버라리티는 과거 에디파와 사귀었던 사람인데 부동산계의 거물이었다.

피어스와 관계를 정리한 에디파는 웬델 무초 마스라는 사람과 결혼했는데, 무초는 현재 KCUF방송국에서 디스크자키로 일했지만, 과거에는 중고차를 판매했었다. 중고차를 판매하는 동안 지나친 신념 때문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기에 현재 직업으로 전직한 것이었다.

에디파 마스는 자신이 유언 집행인으로 선정되어 어떤 중개나 완충 역할을 한 후에는 다시 고립되리라는 예감을 받았다. 그녀는 힐라리어스라는 정신과 의사의 도움을 받고 있었는데, 힐라리어스는 브릿지 프로젝트라는 마약효과 실험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가 주는 이상한 약을 받아먹지는 않았지만, 에디파는 자신이 라푼첼과 같이 어떤 탑 안에 갇혀 제한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고 느꼈다. 레메디오스 바로의 <지구의 덮개를 수놓으며>라는 그림과 같이.

 

2장

 

에디파는 키너릿 어몽 더 파인스를 떠나 샌나르시소로 간다.  에코라는 모텔에 묵게 된 에디파는 그곳에서 유산공동관리인인 메츠거라는 변호사를 만나는데, 메츠거는 과거 자신이 배우였다고 했다.

때마침 TV에서는 메츠거가 출연한 영화를 하고 있었다. 메츠거는 '스트립 보티첼리'라는 게임을 하자고 제안했는데, 질문 하나에 대해 옷 하나를 벗는 게임이었다. 에디파는 화장실로 가서 더 이상 껴입을 수 없을 만큼 옷을 잔뜩 껴입고 내기에 응한다. TV에서 방송되는 메츠거의 영화는 어느 순간부터 앞뒤가 뒤죽박죽이 되어 있었고, 에디파는 옷을 모두 벗어던진 후 메츠거와 정사를 벌인다.

 

3장

 

에디파는 메츠거와 함께 스코프라는 술집으로 간다. 그곳에서 마이크 펄로피언이라는 남자를 만나는데 피터 팬귀드 협회의 일원이라고 했다. 스코프에는 요요다인이라는 우주 항공사 기업 사람들이 주로 출입했는데 이곳 화장실에서 에디파는 약음기가 달린 나팔 표시를 보게 된다. 그리고 어떤 사내가 우편물을 나누어주는 것을 보게 되는데 이는 미합중국 우편제도가 아니라 요요다인의 내부 우편제도라고 했다. 나팔 표시는 트리스테로라는 지하 우편 제도의 상징이었고, 나중에 W.A.S.T.E.라는 알 수 없는 약자도 보게 된다.

에코 모텔의 마일스 등과 바다로 가게 된 에디파는 그곳에서 마니 디 프레소라는 또다른 변호사를 만나게 된다. 그는 총 가진 추적자에게 쫓기고 있었는데, 프레소의 말에 의하면 추적자들은 자신에게 소송을 의뢰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리고 꽤나 기이한 이야기를 하나 듣는데 그것은 비콘스필드의 필터에 관한 이야기였다. 담배에 쓰이는 필터가 사실은 사람의 뼈를 갈아 만들었다는 것인데, 그것과 관련한 소송 이야기였다. 이와 관련한 연극이 있었는데 제목은 <전령의 비극 The Courier's Tragedy>였다. 이 연극에서 에디파는 트리스테로라는 말을 다시 듣게 되는데, 연극에서 트리스테로는 검은 옷을 입고 출몰하는 공포의 암살단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연극이 끝나고 에디파는 연출자인 랜돌프 드리블레트를 만나 트리스테로라는 말이 씌여 있는 대본을 보여달라고 요청한다. 랜돌프는 원본은 이미 사라졌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은 보급판을 다시 복사한 판본이라고 했다.

 

4장

 

에디파는 이제 피어스 인버라리티가 유언장을 통해 죽음 뒤에 오는 무언가를 남겨 생명을 불어 넣어주길 바란것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화장실의 나팔 기호 밑에 "내가 세상을 투영할 수 있을까?"라고 써 넣는다.

에디파는 커비라는 사람을 통해 스탠리 코텍스라는 남자를 만나게 된다. 스탠리 코텍스는 '나파스티스 머신'이라는 기계를 가지고 에디파에게 엔트로피와 맥스웰의 수호정령에 대해 이야기해준다. 그에 따르면 특별한 감성을 가진 사람은 빠른 분자와 느린 분자를 구분할 수 있고 운동이 이어질 수 있도록 만들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에디파가 맥스웰의 그림을 계속 쳐다봤지만 변화는 없었다.

한편 에디파는 <전령의 비극> 원본을 찾기 위해 계속 노력하여 <제커비언의 복수극>이라는 책을 입수한다. 하지만 입수한 책에는 1687년도판을 참고하라고 써 있었고, <포드, 웹스터, 터너, 휘핑거 희곡집>이라는 또 다른 책을 참고해야만 했다. 책에는 웰스 파고 앤드 컴퍼니라든가 툰과 탁시스의 우편 제도 라든가 하는 말이 씌여 있었다. 결국 트리스테로는 툰과 탁시스에게 공식 우편제도의 지위를 빼앗겨 지하로 잠적한 비정규 우편제도의 명칭이었음을 알게 된다. 또한 많은 위조 우표들에 트리스테로와 관련한 상징들이 있음도 알게 되었고, 가장 최근에 마초에게서 받은 편지에도 "모든 음란 우편물은 Potsmaster에게 보고하라"는 잘못 인쇄된 문구가 씌여 있음을 기억해낸다.

 

5장

 

버클리로 간 에디파는 랙턴 출판사와 창고를 뒤져 또다른 판본을 입수하는데 판본마다 씌여 있는 글이 조금씩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또 판본에 대한 권위자 에모리 보츠 교수도 만나는데 그곳의 대학 풍경은 에디파가 겪었던 대학 문화와는 사뭇 다른 개방적인 모습이었다.

이제 에디파는 트리스테로에 관한 몇가지 사실을 정리할 수 있었다. 유럽에서 툰과 탁시스 우편제도와 대결한 트리스테로의 상징은 약음기를 단 나팔이고, 1853년 이전 특정시기에 미국에 등장하였으며, 검은옷 입은 무법자나 인디언으로 가장하여 포니 익스프레스, 웰스 앤드 파고 컴퍼니 등 공식 우편제도와 맞섰던 조직이다. 또한, 현재는 기묘한 성적 취향을 가진 사람들과 맥스웰의 수호 정령의 존재를 믿는 발명가들 사이의 정보소통 수단으로 캘리포니아에 살아남아 있다는 것.

에디파는 이제 자신의 주변 곳곳에서 트리스테로의 상징들을 본다. 약음기를 단 나팔, W.A.S.T.E., 그런 것들이 훨씬 많이 눈에 띄게 된 것이다. 어느 날인가는 멕시코 출신의 무정부주의자 헤수스 아라발(Jesus Arrival)도 만나 트리스테로에 대해 좀 더 알게된다.

트리스테로를 추적하던 에디파는 힐라리어스를 만나러 갔는데 의사는 미쳐서 장총을 난사하고 있었다.

 

6장

 

메츠거가 서지의 애인과 함께 도망가자 그의 유산 집행권은 다른 곳으로 이전된다. 자프의 헌책방이 불탔지만, 바로 옆의 나치 휘장을 파는 가게는 멀쩡하게 외양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제 에디파는 자신과 관련있는 남자들이 모두 사라져버렸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메츠거는 15살 여자와 도망갔고, 정신과 의사는 이스라엘인들이 자신을 추적한다며 미쳐버렸고, 남편은 LSD에 절어 버렸고, 랜디는 태평양에 투신해 자살해 버렸다. 트리스테로의 실체는 점점 미궁 속으로 빠지는 것 같았다.

스코프로 돌아가 마이크 플로피언을 만난 에디파는 이 모든 것이 인버라리티가 죽기 전 꾸며 놓은 속임수는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리고 그곳에서 W.A.S.T.E.가 We Awaits Silent Tristero's Empire의 약자임을 알게 된다.

이제 에디파는 젱기스 코헨으로부터 인버라리티의 우표가 경매에 부쳐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우표 속에는 위조 우표도 포함되어 있었고, 실제로 수상쩍은 남자가 그 우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음도 알게 된다. 만일 누군가가 그 우표를 입찰하러 나타난다면 그 사람은 틀림 없이 트리스테로와 관련된 사람이고, 트리스테로는 실제하고 있다는 것이 밝혀질 것이었다. 에디파는 의자 뒤로 기대 앉아 49호 품목의 경매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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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곤 교수의 번역과 해설 모두 신뢰할만 했기에 포스트모더니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진지하게 읽었다. 만약 부실한 번역과 해설이었다면 전혀 다른 이해에 도달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우체국에 다닌 덕에 우편법과 관련한 역사적인 사실을 검토하는 수업을 들은 적이 있는데 소설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수많은 상징들과 의미들은 김성곤 교수의 해설로 대신한다. 

 

<제49호 품목의 경매>는 진보주의 운동이 한창이던 1960년대 미국 대학생들을 매료시켰던 대표적 소설로 매트릭스 이론, 정보시스템 이론, 포스트휴머니즘, 포스트모더니즘 소설의 원조로 알려져 있다. 포스트휴머니즘은 인간 중심의 르네상스 휴머니즘을 반성하고, 인간의 유한성을 인정하며,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자는 문예사조로서, 생태주의 및 인간과 기계의 조화인 사이보그에 관심을 갖는다.

소설은 발표 당시 큰 인기를 끌어 대학생들이 책상과 화장실에 약음기가 달린 나팔을 그리는 것이 유행이었고, 이 기호는 소외 계층의 억눌린 목소리와 세계 파멸을 경고하는 상징이 되었다.

W.A.S.T.E.는 '우리는 조용한 트리스테로 제국을 기다린다 We Awaits Silent Tristero's Empire' 라는 뜻인데, 지배문화가 폐기물로 취급하는 소외 계층이 새로운 세상의 도래를 기다린다는 의미도 있고, 엔트로피 이론과 관련해 인류 문명의 절멸을 경고하는 의미도 들어있다. 핀천은 현대사회를 인간 사이의 교류가 단절되어 엔트로피가 극에 달한 닫힌 체계로 보고, 파멸을 피하기 위해서는 열린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트리스테로는 슬픔과 비밀을 뜻하는 단어로 소설이 나온 이후 지배 문화에서 소외당하고 상속권을 박탈당한 계층을 지칭하는 대명사가 되었다. 트리스테로는 정부의 공식적인 우편제도를 거부하고 자신들만의 은밀한 우편제도를 통해 교류하며 공식적인 우표가 아닌 위조우표를 사용한다. 이는 진정한 소통을 위한 상징적 행동이다.

<제49호 품목의 경매>에서 에디파는 미국 사회가 외부 세계와 교류하지 않는 닫힌 사회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녀가 알고 믿어온 사실이 사실은 허구였고, 진실은 따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핀천의 이 소설은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 매튜 펄의 <단테클럽>,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 등에도 많은 영향을 끼치는데 <장미의 이름>에 등장하는 열림과 닫힘의 모티프, 원전과 복사본 문제, 금단의 지식, 성녀와 창녀의 구분, 해체 등은 모두 <브이를 찾아서>와 <제49호 품목의 경매>와 맥을 같이 한다.

 

이 소설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주요 명제들, 즉 중심과 주변, 정통과 비정통성, 진실과 허위, 다양성과 획일성, 포용과 배제, 이분법의 타파, 커뮤니케이션 이론, 엔트로피 이론, 과거로의 여행 모티프 등 거의 모든 측면에서 접근이 가능한 작품이다. 그러나 이 모든 주제들은 궁극적으로 '열림과 닫힘' 모티프로 집약될 수 있다.

포스트모더니즘 계열의 작가들은 자신들 소설의 특징을 '열린 결말을 지닌 열린 소설'로 생각한다. 이는 저자가 독점적으로 결론을 내리거나 독자를 계도하는 시대가 끝났음을 의미하며, 해석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놓는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 소설에서 닫힘은 곧 죽음을, 열림은 곧 삶을 의미한다. 물론 열림은 혼란을 일으킨다. 그러나 이 혼란은 일시적일 뿐, 곧 나름대로의 질서와 리듬이 생겨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열림이 궁극적으로 우리의 생존에 필수적이고 삶을 풍요롭게 하는 다양성을 가져다 준다는 점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에디파는 여성이다. 남성이 경직되고 닫힌 체계를 상징한다면 여성은 유연하고 열린 체계를 상징한다. 에디파가 여행 중 만나는 남자들의 이름이 '펄로피언(나팔관)'과 '코텍스(일회용 생리대)' 임은 에디파의 정신적 수태 과정을 상징하고, '에디파(Oedipa)'라는 이름도 '오이디푸스(Oedipus)'의 여성 이름이다. '마스(Mass)'라는 그녀의 성은 '정형이 없는 덩어리(mass)'를 의미한다.

라푼첼은 그녀가 반공과 냉전 이데올로기가 초래한 이분법적 가치관과 배타주의에 사로잡혀 있음을 뜻하고, 터퍼웨이 파티에 참석한 것도 밀폐용기라는 점에서 이와 비슷한 의미를 지닌다. 또, 비정규상행위라는 이중의 의미도 갖는다.

에디파는 열린 체계를 발견하기 위해 닫힌 체계인 샌나르시소로 들어간다. '나르시소'는 나르시소스를 가리킨다. 에코 모텔 역시 나르시소스를 사모하다가 목소리만 남아 메아리가 된 에코를 뜻한다.

1장에서 에디파는 메츠거가 등장하는 텔레비전 화면을 보는데 방송되는 순서가 뒤죽박죽인 점을 보여줌으로서 역사적 사실도 편집과 삭제가 가능하다는 것을, 그 안에 등장하는 인물과 현실의 인물을 동시에 보여줌으로서 현실과 허구의 경계가 모호함을 보여준다. 에디파는 남자와 스트립 보티첼리 게임을 하기 전 겹겹으로 옷을 껴입음으로서 닫힌 체계 속에 안주하려 하는 심리상태를 보이지만, 곧 옷을 다 벗고 정사를 벌임으로서 자유롭게 열린 체계 속으로 탐색을 하기 시작한다.

다음 장에서 에디파는 내부우편제도를 알게 되는데 이는 교육받은 진리 외에 또 다른 진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됨을 의미한다. 스코프는 인식의 경계가 확장됨을 뜻하고, 수많은 판본의 책들은 신성하고 절대적인 진리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엔트로피가 극에 달하는 이유가 그것을 구성하는 분자가 동질화되었기 때문이라는 과학적 사실을 통해 모든 것이 동질화 되면 결국 운동을 정지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한 닫힌 체계는 파국으로 치닫게 되므로 열린 체계를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젱기스 코헨은 징기스칸의 패러디이며, 우표는 인간 교류의 상징이다. 우표는 정부가 통제하고 독점하는데 이는 인간 교류의 통제를 의미한다. 따라서 위조 우표를 만드는 것은 자유로운 교류를 뜻하게 된다.헤수스 아라발은 말 그대로 Jesus Arrival이다.

소설은 완벽한 숫자 7이 아닌 불완전한 숫자 6에서 끝이 난다. 이는 소설이 열린 형식으로 끝이 남을 의미하며, 49 역시 오순절 전일, 사십구재 등 운명 결정 직전의 숫자이다.

에디파는 트리스테로가 존재한다는 증거에 가까이 다가가면 갈수록 더욱 모호한 느낌을 받는다. 왜냐면 트리스테로라는 것 역시 절대 진리가 아닌 한 확실한 깨달음으로 다가올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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