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처럼 - 우리시대의 지성 5-016 (구) 문지 스펙트럼 16
다니엘 페낙 지음, 이정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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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라는 동사는 명령법이 먹혀들지 않는다. 이를테면 '사랑하다'라든가 '꿈꾸다' 같은 동사들처럼, '읽다'는 명령문에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것이다. 물론 줄기차게 시도를 해볼 수는 있다...효과는? 전혀 없다.

 

소설가이자 교사인 다니엘 페나크는 위와 같은 재치 있는 단상으로 '책 읽기', 특히 '소설 읽기'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아이가 어렸을 적에 밤마다 부모는 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주어 아이를 모험의 세계로 인도했고, 부모 자신는 톨킨과 같은 작가가 되곤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아이도 부모도 책을 읽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삶을 살고 있다. 다만, '책은 반드시 읽어야 한다'는 명제만 남아 있다.

아이가 학교로 가서 글자를 터득하는 순간 부모는 아이가 스스로 책을 읽을 수 있는 단계로 접어들었다는 착각을 하게 되고, 그 동안 아이에게 책 읽어 주던 시간을 자신을 위해 쓰기 시작한다. 한편 아이는 학교에서 책을 읽고 거기에 대해 요약하거나 답을 해야 하는 상황에 자꾸 직면하면서 책 읽기를 의무감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어렸을 적 즐거움은 잊게 된다. 이제 책 읽기는 더 이상 '무상의 나라에서 이루어지는' 행위가 아니게 된 것이다.

 

다니엘 페나크는 책 읽기의 즐거움으로 돌아가기 위해 소리내어 책을 읽어보라고 말한다. 수업시간에 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를 반 아이들에게 한 시간 동안 소리내어 읽어주었던 일화를 이야기한다. 조금씩 전개되는 내용을 들으면서 아이들은 책의 두께나 무언가를 요약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오직 이야기의 전개와 다음 내용을 궁금해하며 책 읽기의 기쁨을 다시 맛보게 된다.

 

읽는 동안 나 역시 소리내어 책을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소설은 이야기라는 작가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감했다.

물론 이 에세이는 논문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책 읽기에 대한 작가의 견해가 책 안에서 서로 상충되기도 하고, 적절히 절충되는 경우도 있다.

책읽기가 일탈 행위이기 때문에 즐거움을 맛본다고 하면서도, 교사인 작가는 책 읽기가 언젠가는 아이가 진학을 하고 자격시험을 얻는 데에도 분명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간다고 말한다. 정말 그런가? 그것은 알 수 없는 노릇 아닌가?

특히나, 책을 읽는 것이 인간의 삶과 어떤 연관이 있는가, 아니 책을 왜 읽어야 하는가 하는 물음에 대해서는 작가 역시 즐거움 이외의 다른 견해를 제시하지는 못한다. 다만 '체호프를 읽은 사람이 읽지 않은 사람보다 좀 더 나은 삶을 살 것이다' 하는 모호한 의견을 표할 뿐이다. 얼마 전 읽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깊이에의 강요>에 실린 짧은 에세이에서도 이와 같은 의문이 나온다. 작가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을 읽었다는 기억은 나지만 그 내용에 대해 현재 기억하고 있는 것이라곤 거의 없다. 또, 다른 고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실정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책을 읽어야 한다는 말인가 하고 쥐스킨트는 스스로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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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는 누구? 귀족 탐정 피터 윔지 1
도로시 L. 세이어즈 지음, 박현주 옮김 / 시공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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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업자 팁스의 욕실에서 벌거벗은채 코안경만 쓴 시체 한 구가 발견된다. 피터 윔지 경은 사건에 흥미를 갖고 시체를 조사 하는데, 단정하게 면도와 이발을 했고 향수까지 뿌렸지만 손과 발이 육체 노동으로 거칠고 더럽다는 점을 발견한다.

한편 비슷한 시기에 피터 경의 친구이자 경찰인 파커는 레비라는 이름의 부유한 유태인 실종 사건을 수사 중이었다. 레비는 어느 날 밤 집에 들어왔다가 사라졌는데 이상한 점은 그가 잠을 자고 일어난 뒤 옷을 하나도 걸치지 않고 사라졌다는 점이다.

피터 윔지 경은 두 사건 사이에 무언가 연관성이 있을 거라는 전제 하에 레비가 사라졌을 경우 가장 이득을 보는 미국인 사업가 밀리건을 조사하지만 별다른 혐의점을 발견하지 못한다. 또한 시체가 쓰고 있던 코안경 주인에 기대를 걸었으나 그 역시 범행과는 관련이 없음이 드러난다.

피터 윔지는 창녀 한 명이 베터시 공원길을 걷던 레비를 만났다는 점에서 착안하여 두 사건의 연결 고리를 확신하고, 피터 윔지 경의 어머니가 레비의 부인과 프레크 박사의 관계를 이야기해주자 동기를 추측하여 사건을 해결한다. 프레크 박사는 자신의 범행 일체를 자백하는 편지를 피터 윔지 경에게 보낸다.

편지에 따르면 프레크 박사는 자신이 청혼했던 여성이 자신을 거절하고 레비와 결혼하자 깊은 앙심을 품는다. 긴 시간 동안 레비를 살해할 궁리를 하던 박사는 구빈원에 곧 죽어가는 사람이 레비와 비슷하게 생겼다는 것에 착안하여 레비를 살해할 결심을 한다. 그는 레비를 증권가 루머로 자신의 집에 유인하여 살해한 뒤 구빈원에서 사망한 자로 위장하기 위해 얼굴을 훼손하고, 구빈원에서 사망한 자의 시체는 마침 창문이 열려있던 건축업자 팁스의 욕조에 버린다. 그리고 우연히 기찻간에서 얻게 된 코안경을 걸쳐 놓음으로서 사건에 혼동을 주었던 것이다.

 

피터 윔지 시리즈의 첫 작품으로 후기 작품에 비하여 원숙미는 조금 떨어지는 편이다. 도로시 세이어즈는 추리소설 작가로 활동하는 한편 번역가이자 신학가로서도 명성을 떨쳤고, 옥스퍼드 학위를 취득한 최초의 여성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특히 당대 여러 작가들과 친분을 쌓았고 그런 영향이 도로시 세이어즈의 작품 속에서 인용의 현태로 종종 등장하기도 한다.

한편 그녀가 창조해 낸 귀족 탐정 피터 윔지 경은 그런 도로시 세이어즈의 반영으로 단테의 희귀판본을 수집하고 철학적이고 신학적인 식견을 갖추고 있다. 그는 인간적인 나약함과 의지적인 면모의 양면성을 보이는데 때로 전쟁 중 얻은 트라우마로 괴로워하기도 하지만 사건의 해결을 위해 의지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런 면은 피터 윔지를 좀 더 입체적이고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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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 (구) 문지 스펙트럼 28
왕멍 지음, 이욱연.유경철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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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견고한 죽

4대가 모여사는 집에서 식사를 담당한 것은 쉬 누이이고 아침은 언제나 죽과 짠지가 나온다. 고기를 채로 썰지 덩어리로 썰지, 탕을 끓일지 말지는 할아버지에게 물어서 결정하는데 그 결과에 모두들 대만족이다.

그러던 어느날 정부에서 낮잠 자는 것을 폐지하는 것을 시작으로 갖가지 개혁 개선이 시작되자 죽과 짠지를 먹는 집안의 식단에도 개선이 필요하지 않는가 하는 분위기가 생겨난다. 막내 아들과 같이 햄과 버터를 주장하는 서구파에서부터 민주를 주장하지만 현실과는 유리된 민주파, 기존 죽과 짠지를 주장하는 보수파까지 이전투구를 거듭하나 혼동만 발생했을 뿐이고 결국 모두 죽과 짠지를 다시 먹게 된다.

 

o 밤의 눈

천따이는 문화대혁명시기에 우파로 지목되어 시골로 내려가 생활하는 작가이다. 베이징에 좌담회에 참석을 위해 온 천따이는 친한 지도자 동지가 부탁한 일을 처리하기 위해 베이징에 있는 당 간부의 집을 찾아간다. 당 간부는 휴양 중이고 당 간부의 아들은 천따이에게 거만한 태도로 뇌물을 달라고 노골적으로 이야기하고, 목적을 이루지 못한 천따이는 야간 작업을 나가는 노동자들이 탄 버스에 오른다.

 

o 나비

젊은 시절 당의 간부였던 장쓰위엔에게 하이윈이라는 열여섯 먹은 미션 스쿨 학생자치회 회장이 연설을 부탁한다. 서로 사랑에 빠진 둘은 장쓰위엔이 서른, 하이윈이 열여덟인 나이에 결혼한다. 하이윈은 고등학교 졸업을 포기하였고 1950년에 둘 사이에 아이가 생긴다. 하지만 조선에서 전쟁이 발생하고 여러 중요한 일이 겹쳐 집안을 돌보지 못하는 사이 아이가 아파서 죽고 만다.

서먹해진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장쓰위엔은 하이윈을 대학에 보내고 다시 아이가 생긴다. 아이의 이름은 똥똥(冬冬)이라 짓는다. 하지만 하이윈은 대학으로 되돌아가길 원하고 그곳에서 불미스런 소문이 들려온다. 그녀가 같은 반 남학생과 좋아지낸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이윈이 1957년의 반우파투쟁에서 적발당하자 장쓰위엔은 그녀에게 '이렇게 까지 타락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면서 공적인 입장으로 대하고, 하이윈은 이혼하자고 제안한다.

하이윈과 이혼한 후 메이란이란 여성과 재혼하지만 그녀에게 장쓰위엔은 애정을 느끼지 못하고, 메이란은 합리적인 행동만 할 뿐이다. 반우파 투쟁에 앞장 서던 장쓰위엔은 어느 날 자신이 우파로 몰려 홍위병들에게 붙들려 대중들 앞에 돌림을 당하고 자신의 아들 똥똥에게 따귀를 맞는다. 메이란은 가산을 챙겨 이혼 수속을 밟는다.

장쓰위엔은 이후 똥똥이 내려가 살고 있는 산촌으로 가서 생활한다. 정식으로 재판을 받은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월급은 여전히 많이 받고 있었지만, 정식 직위는 없는 상태에서 당비를 납입하며 산촌에서 평온한 나날을 보낸다. 그리고 그곳에서 40세의 의사 치우원을 만난다. 그녀의 남편은 우파로 몰려 노동개조소에서 일하고 있다. 똥똥과의 의견 차는 여전하고 서먹서먹하다.

어느 날 자동차가 그의 집으로 와서 복직되었음을 알려준다. 9년만에 복직된 그는 부부장의 자리에까지 다시 오른다. 그리고 2년만에 산촌으로 되돌아가는 여행을 한다. 비서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보통 사람과 같이 험난한 여행을 하여 도착한 산촌에서 마을 사람들은 그를 허물없이 대한다. 똥똥과의 대화, 치우원과의 대화를 통해 장쓰위엔은 자신의 생각이 여전히 수정되어야 함을 느낀다. 그리고 임무는 완수했느냐는 부장의 물음에 "거의, 거의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하며 내일은 이전보다 더 바빠질 것임을 느낀다.

 

1934년 베이징 출신의 왕멍은 어린 시절부터 지하 당 조직의 혁명 교육을 받고 14세에 공산당에 가입, 19세에 처녀작 <청춘만세>를 발표한다. 1956년에 <조직부에 새로 온 청년>을 발표하는데 이 소설은 조직부에 새로 파견된 청년이 관료주의에 물든 조직부 간부와 갈등을 빚는다는 내용으로 1957년 반우파투쟁에서 우파로 몰리는 계기가 된다. 1976년 문화대혁명이 종결되고 1979년 복권되기까지 그는 베신장과 베이징 인근 농촌에서 노동개조를 받는다.

그는 "혁명에 충성을 바치려면 문학을 배반해야 한다. 그런데 문학을 사랑하고 문학을 하자면 혁명 진영 입장에서는 수치스러운 배반자가 된다"라는 언급을 하며 정치가이자 작가인 자신의 삶과 정체성에 대해 언급했다. 왕멍은 중국공산당 중앙위원을 지내고 중국 정부 문화부 장관을 지내다가 1989년 천안문 사태 발생 후 장관직에서 물러난다. 당시 장관 등 고위 인사들이 천안문 시위 진압을 위해 동원된 군부대를 위문하기로 했었는데 이를 거부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80년대 중국이 처한 현실을 죽과 짠지를 먹는 식습관 개선에 빗대 코믹한 필치로 그린 <견고한 죽>에 나타난 문체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스타일의 문체이다. 웃어가면서 읽었다.

자전적 내용을 통해 원래 순수하고 헌신적이었던 혁명 전사들이 정권에 참여하여 관료와 간부로 변신한 뒤 "이기적이며 냉혹하고 자아도취에 빠진 존재"로 변하는 현실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하는 <밤의 눈>과 <나비>는 대학 때 읽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후배들(아직 있다면)에게 권해주고 싶은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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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하하는 저녁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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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간 사귀어 오던 다케오가 주인공 리카에게 어느날 문득 이사하겠다고 말한다. 이유는 다른 여자에게 반했기 때문이고 그녀와 만난 것은 사흘 전인이라고 한다. 헤어진 후에도 다케오는 리카에게 며칠에 한번씩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는다. 어느 날 다케오가 이사간 집에 갔다가 여자의 신발이 있는 것을 본다. 신발 임자의 이름은 하나코, 그녀는 리카의 집을 찾아온다. 무심한 듯 하나코는 리카에게 집세의 반을 낼테니 같이 살자는 제안을 하고, 하나코의 제안에 리카는 어쩔줄을 모른다. 하지만 다음 날이 되어서도 하나코는 다른 곳으로 떠나지 않았고, 둘은 어정쩡한 상태에서 동거를 하기 시작한다.

하나코는 일자리가 없고 낮잠을 자거나 라디오를 듣거나 만화를 보거나 할 뿐이다. 문득 며칠씩 쇼난 등지에 갔다 오기도 하는데, 그럴때면 리카는 하나코를 기다리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리카는 자기 남자를 빼앗아간 하나코를 미워할 수가 없었는데 그 이유는 하나코가 누구에게 소유되지도, 누구를 소유하려고도 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았다.

어느 날 하나코가 리카에게 꼭 소개시켜주고 싶은 남자가 있다고 하여 나간 자리에서 하나코는 남동생을 소개시켜주고 남동생이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얼마 후 리카와 하나코가 다케오와 카츠야, 카츠야의 부인을 피해 쇼난으로 가서 자고 난 다음 날, 하나코는 자살한다. 유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다케오의 집으로 간 리카는 강간하듯 다케오와 관계를 맺고 자신도 15개월 전 다케오처럼 "이사할까봐"라고 내뱉는다.

 

모든 사건들은 조용조용 진행된다. 악다구니도 없고, 집착한다면서 하는 행동조차 조용조용하다. 8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함께 한 후 이별을 하면 그런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인지, 아니면 에쿠니 가오리의 세계 속 이별이 그런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 점이 맘에 들지 않고, 바로 그런 점 때문에 에쿠니 가오리의 책을 읽는다. 현실에 없을 법한 인간관계의 '조용조용함'을 느끼고 싶은 때가 가끔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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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달리아 1 밀리언셀러 클럽 53
제임스 엘로이 지음, 이종인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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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드와이트 블라이처트는 라이트 헤비급 권투선수 출신의 경관으로 뻐드렁니 덕분에 버키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선수시절 손쉬운 상대를 골라 대전했기 때문에 36전 전승의 기록을 가지고 있고, 군대 징집을 피하기 위해 경찰에 자원한다. 아버지가 나치 혐의를 받게되자 일본인 친구를 밀고하여 퇴학을 면하고 경관이 된다. 

리 블랜처드는 헤비급 권투선수였고 전적은 43승 4무 2패로 1939년 블러바드-시티즌스 은행강도 일당을 검거하는데 혁혁한 전과를 거두어 출세가 보장되었으나 은행털이범 애인과 동거를 하는 통에 발령이 취소되었고 그녀 때문에 권투를 그만두었다는 소문이 있다.

경찰 봉급 인상을 위한 시채 발행의 성공을 위해 버키 블라이처트와 리 블랜처드의 권투 시합이 기획되는데 인파이팅 스타일의 리 블랜처드는 불로, 아웃파이팅 스타일의 버키는 얼음으로 비유되어 초유의 관심을 끈다. 버키는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요양원에 모실 돈을 마련하기 위해 자신이 KO패 되는데 몽땅 돈을 걸고 경기에 임하는데, 막상 시합이 시작되자 자신의 본능에 따라 이기기 위한 경기를 한다. 최선을 다해 싸웠지만 결과적으로는 8라운드 KO패 당해 많은 돈을 따게 되고, 자신이 가고 싶었던 본부 영장국에 발령을 받게 되어 리 블랜처드와 파트너가 된다.

버키는 리와 동거중인 케이와 만나게 되는데 대화 중 자신과 리는 섹스를 하지 않는다는 알 수 없는 말을 하고 서로 호감을 갖게 된다. 리는 자신의 여동생이 어렸을 적 납치되어 마약중독 상태에서 죽었다는 얘기를 하고 버키는 리가 그 사건으로 심각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는 것을 알게 된다.

리와 버키는 리가 피의자를 협박하고 폭행하면 버키가 어르는 식의 '좋은친구-나쁜친구' 수법을 쓰는 파트너가 되었고 거리에서 존경도 받는다.

리를 영장국으로 불러들인 검사보 엘리스 로가 공화당 예비선거에서 검찰총장 후보로 출마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강간과 무장강도 및 살인으로 더글러스 '주니어' 내시라는 자의 체포 명령이 떨어진 즈음 리는 정보를 찾았다며 흑인 지역으로 버키를 데리고 가는데 그곳에서 마약 소지범들과 시비 끝에 백인 한 명과 흑인 세 명을 사살한다.

 

1947년 1월 15일, 39번가 노턴 로의 공터에서 한 여성의 시체가 발견된다. 여자의 무릎 뼈는 부러졌고 입은 양 귀까지 찢어져 있었다. 몸은 두 토막으로 분리되어 있고 장기와 자궁이 모두 들어내어져 없었을 뿐 아니라 허벅지는 삼각형 모양으로 깊게 도려내어져 있는 끔찍한 상태였다. 신문기자 한 명이 살해된 여성에게 블랙 다알리아 라는 이름을 붙인다. 리와 버키는 내시 체포조였으나 리가 시체를 본 후 여동생 생각을 떠올리며 개인적인 감정을 개입시켜 블랙 다알리아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하고, 내시가 LA를 떠난 것이 틀림없다는 메모를 제출한다. 며칠 후 시체는 엘리자베스(베티) 앤 쇼트라는 이름의 여성임이 밝혀지고 자신이 범인임을 자백하는 자들이 속출한다. 경찰은 베티의 행적을 조사하여 그녀의 남자 관계가 문란했고, 거짓말장이였으며 어떤 영화에 출연한 적이 있다는 점 등 단편적인 사실들을 알게 된다. 베티와 접촉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용의자 레드 멘리는 혐의가 없음이 밝혀지고, 검사보 엘리스 로는 범인이 잡혔을 때 높은 형량을 주어 선거에 유리한 위치를 점하기 위해 베티에 관한 더러운 소문과 그에 관련된 증거를 무시하고 가짜 자백범을 만드는 일까지 구상한다.

그러던 어느날 버키는 베티와 관련된 증거를 추적하다가 레즈비언 술집에서 메들렌 스프레이그라는 여성을 알게 되는데 그녀는 베티와 무척 닮은 여자였다. 그녀의 아버지는 부동산 재벌인 에멧 스프레이그로 베티와 만난 적이 있는 여자였다. 그녀는 버키를 집으로 초대하는데 에멧 스프레이그는 부실 자재로 집장사를 하여 재벌이 된 사나이이고 그의 아내 라모나는 약에 중독된 여자였다. 메들렌의 동생 마사는 광고업계에 일하는 상업 아티스트인데 메들렌과 버키가 관계하는 그림을 그려 보여주며 적개심을 나타낸다. 식사 후 버키와 메들렌은 모텔에서 관계를 갖고 버키는 메들렌과 관련된 증거를 상부에 보고하지 않는다.

한편 리가 잡아 넣은 드 위트가 가출옥 한다. 드 위트는 범인이 아니라고 주장해왔으며 출옥하는 즉시 리를 죽이겠다는 다짐을 거듭해 왔었다. 그리고 얼마 후 베티와 함께 창녀짓을 한 것으로 의심되는 로나라는 여성이 잡히는데 그녀의 가방에서 포르노 필름이 발견된다. 필름을 상영하자 거기에는 베티와 로나의 영상이 찍혀있었고, 영화를 찍은 곳이 멕시코의 티화나라고 자백한다. 리는 흥분하여 영사막을 부수며 난동을 부린다. 그리고 내시가 다른 곳으로 떠났다는 리의 보고와 달리 또다시 살인을 저지르고 사살당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리는 상영장에서 난동을 부린 것과 내시 건으로 상부에서 추궁당하지만 티화나 지역으로 떠나버리고 버키 역시 영화를 찍은 곳인 티화나로 간다. 버키는 티화나로 온 드 위트를 추궁하지만 그는 자신이 은행강도 사건의 범인이 아니었고 리를 죽이기 위해 티화나로 온 것도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얼마 후 멕시코 경찰인 루랄레스들에게 총격을 받아 사망한다.

사건이 소강상태에 접어들 무렵 범인으로 짐작되는 사람이 보낸 편지가 도착한다. 얼굴이 지워진 남자 사진과 일부가 뜯겨져 나간 베티의 수첩으로 수사는 다시 재개된다.

 

그리고 또 다른 자백범이 나타나는데 그의 이름은 조지프 듈레인지, 군인으로 자신이 베티와 관계를 가졌고 무면허 의사에게 그녀가 임신한 것 같다고 둘러대 달라는 부탁을 했다는 둥 섬망 상태에서 횡설수설하지만 범행 일자에는 알리바이가 있었다.

엘리스 로는 버키를 불러 자신이 다시 한번 기회를 주겠다면서 프리츠 보겔과 파트너가 되어 조사를 계속하라고 말한다. 프리츠 보겔은 엘리스 로의 지시로 알리바이가 분명치 않은 자백범 4명을 고문하고 버키는 이를 견디지 못하고 경보기를 울려 고문을 중지시킨다. 이 일로 버키는 한직으로 밀려난다. 버키는 리가 그랬듯이 블랙 다알리아에게 개인적인 감정을 개입시키고, 환영에 시달렸으며 집착하게 된다.

버키는 개인적인 조사를 계속하고 프리츠 보겔과 그의 아들 조니 보겔이 베티와 관련이 있음을 알게 된다. 프리츠 보겔은 조니 보겔의 총각 딱지를 떼어 주려 했고 우연히 베티가 창녀 짓을 하게 된 것이다. 둘은 이 사실을 은폐하였고 수사 중 자신들의 이름이 나오지 않도록 증거를 인멸한 것이다. 버키는 이 사실을 정식으로 문제 삼고 조니 보겔은 권총 자살하고 만다. 원치 않는 강제 휴가를 2주일 받은 버키는 다시 티화나로 내려가 리의 행적을 쫓는다. 리는 돈을 물 쓰듯이 썼고 루랄레스를 매수해 드 위트를 살해한 것 같았다. 그리고 난 후 리 자신도 도끼로 살해 당해 해변에 묻혀 있었다.

버키는 돌아와서 케이에게 리가 죽은 사실을 말해주고, 케이는 사건 전모를 털어 놓는다. 은행을 턴 것은 리 일당이었는데 두 명은 사살당하고 한 명은 캐나다로 도망간다. 리는 드 위트에게 범행을 뒤집어 씌웠는데 캐나다로 도망갔던 박스터 피치가 다시 나타나서 리를 협박한다. 리는 박스터 피치를 찾아가 살해하는데, 바로 버키와 함께 사살했던 네 명의 마약 소지범 중 한 명이 박스터 피치였던 것이다. 동경했던 파트너가 사실은 은행털이범이자 살인범이었고 모든 일들이 자신의 범행을 은폐하기 위한 일들이었음을 깨달은 버키는 블랙 다알리아 사건을 조사하지 않기로 결심하고 케이와 결혼한다.

 

학교 교사로 취직한 케이와 평온한 나날을 보내던 버키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블랙 다알리아 사건으로 되돌아가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리고 부부관계는 점차 엉망이 되고 만다. 홀리듯이 블랙 다알리아를 닮은 매들렌을 다시 찾은 버키는 그녀와 다시 관계를 맺기 시작한다. 케이는 사람을 시켜 버키의 행적을 조사하고 어느 날 짐을 챙겨 떠나 버린다. 다시 블랙 다알리아 사건 조사에 착수한 버키는 보스턴으로 떠나고 그곳에서 베티가 아이를 가질 수 없었다는 것과 군인을 좋아하게 된 이유를 듣는다. 그리고 횡설수설하던 듈레인지의 말에 어느 정도 사실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당시 무면허 산부인과 의사를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추적하지만 그는 알리바이가 있었다. 다른 용의자인 영화제작자 역시 혐의가 없었다. 다만 베티의 행적에서 빈 곳만을 어느 정도 매꾸었을 뿐이었다.

그러던 중 헐리우드랜드에서 랜드라는 글자를 떼어내는 공사 중 피가 낭자한 방갈로 하나가 발견되는데 그곳에서 피에 묻은 야구방망이와 고문을 기록한 일지, 해부학 책과 빅토르 위고의 책 <웃는 남자>가 나온다. 에멧 스프레이그의 친구이자 주택 관리인이고 유명한 해부학자의 아들인 조지 틸덴의 소행이었다. 그의 행적을 찾기 위해 메들렌의 집을 찾은 버키는 에멧 스프레이그와 메들렌이 추잡하게 놀아나는 장면을 목격한다. 에멧 스프레이그는 메들렌이 조지 틸덴과 라모나가 부정하여 낳은 자식이라고 말한다. 메들렌은 버키의 수사 방향에 혼선을 주기 위해 접근했던 것이었다. 조지 틸덴과 격투 끝에 그를 살해한 버키는 메들렌의 동생 마사를 만나고, 그녀가 경찰서에 베티의 수첩을 보낸 장본인임을 알게 된다.

 

모든 것이 끝났지만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에 시달리던 버키는 스프레이그 저택 부근에 사는 제인 챔버스라는 미망인과 재회하는데 거기서 입이 찢어진 광대 그림이 <웃는 남자>에서 모티프를 따온 프레데릭 야난투오노의 그림이고, 이것을 라모나에게서 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영수증의 글씨는 바로 고문일기에 적힌 그 글씨였다. 베티를 죽인 것은 조지 틸덴과 라모나 두 사람이었던 것이다. 메들렌을 뒤쫓아 대화를 엳듣던 버키는 메들렌이 리를 도끼로 죽인 여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체포된 메들렌이 버키와의 성관계를 폭로하여 버키 역시 경찰에서 파면당한다. 메들렌은 3급 고살죄 판결에 처해진다. 얼마 후 케이로 부터 편지를 받은 버키는 그녀에게 가기 위해 비행기를 탄다.

 

어머니, 스물아홉 해가 지난 지금에야 이 피 묻은 고별사를 바칩니다. 

 

이제 나는 당신을 가슴에 껴안습니다.

나의 술주정꾼, 나의 항해사,

나의 잃어버린 첫번째 보호자.

당신을 사랑하기 위하여,

나중에 다시 바라보기 위하여.

 

앤 섹스턴, <저 귀엽고 사랑스러운 것들> 중에서

 

소설의 헌사와 인용된 시이다. 제임스 엘로이의 어머니 제네바 엘로이는 그가 열 살인 1958년 살해된 후 반나의 상태로 로스엔젤레스 고등학교 근처 숲 속에서 발견되었고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고 한다. 인용된 시는 1930년대와 40년대를 살았던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외고한 내용이라고 하는데 애증이 결합된 이미지의 아버지를 용서한다는 내용이라고 한다.

 

영화를 수년 전에 보았는데 영화에 몰입할 수가 없었고 나중에는 도대체 어떤 내용인지도 정리가 되지 않았었다. 화려한 출연진과 유명 감독이 만든 최악의 영화라는 기억만 남아 있었다. 그러다가 책을 우연히 구해서 읽기 시작했는데 최근 읽은 책 중 가장 몰입했던 것 같다.

블랙 다알리아 사건은 1947년 실제 일어난 사건으로 아버지가 유력한 용의자로 조사를 받았다고 한다. 비상한 머리의 소유자이자 외과의사였던 용의자는 그러나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난다. 사건 조사 중 경찰관 4명이 사망하는 사건도 있었으나 모두 미해결로 남았다고 한다.

이 사건을 제임스 엘로이가 재구성하여 40년대 미국의 음울한 분위기를 복원해 냈다. 당시 영화계에서는 1차 세계대전 후 심리적 사회적 문제를 다룬 사색적이고 기괴한 스토리의 영화가 많이 제작되었다고 하는데, 주로 인종 문제, 알코올 중독, 정신병, 범죄 등을 많이 다루었으며 '필름 느아르'로 불리었다. 여기서 파생한 추리 소설을 '로망 누아르'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블랙 다알리아>는 전형적인 로망 느와르적 요소를 갖추고 있다.

참혹하게 살해당한 한 여성의 사건을 조사하는 주인공 버키는 조사 과정에서 자신이 살고 있는 삶의 기반이 어떠한 것인지 직시하게 되고, 인간의 어두운 본성을 목도한다.

동경하던 파트너는 은행강도에 살인범이었고, 상관들은 보신에 연연하며 사건을 덮거나 조작한다. 연인 케이는 마약과 몸을 파는 창녀 출신이였고, 메들렌은 누구에게나 몸을 주고 심지어 의붓 아버지와도 관계를 맺는다. 용의자의 다수가 군인으로 그들은 나라를 지키는 이미지가 아니라 창녀를 사거나 알코올 중독에 걸린 정신병자의 이미지로 다가온다. 어둠에 점점 발을 들이게되는 버키는 역시 밀고자의 과거를 갖고 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개인적으로 사건에 집착하던 리와 마찬가지로 블랙 다알리아의 환영에 사로잡혀 케이와의 결혼생활은 파국에 이르고 만다. 하지만 그들 개개인의 의지로 어두운 삶과 범죄를 저지른다는 느낌보다는 운명주의적인 색채가 짙다. 여기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을 케이와 메들렌이라는 대비되는 여성으로 상정하고 있기는 해도, 그들은 서로 과거와 미래를 바꾸어 놓았을 뿐인지도 모른다.

 

레이먼드 챈들러의 어두운 버전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제임스 엘로이의 소설에 푹 빠져서 보낸 일주일이었다. 좋은 작가를 알게 된 기분이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15217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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