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는 기억한다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59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근희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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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을 쓰는 올리버 부인이 문인회에 참석했다가 자신을 버튼콕스 부인이라고 소개하는 여성을 만난다. 그녀는 올리버 부인의 대녀(代女)인 실리아 래븐스크로프트 이야기를 불쑥 꺼내며 과거에 대해 묻는다.

실리아 래븐스크로프트의 부모는 십여년 전에 불행한 사건으로 사망했는데, 사망 원인에 대해서는 명확히 밝혀진 바가 없다. 그녀의 아버지인 엘리스테어와 어머니인 마거릿은 총에 맞아 사망했는데, 그 둘 사이에는 권총이 놓여져 있었다. 권총에는 두 명 모두의 지문이 묻어 있었기 때문에 누가 누구를 쏜 것인지는 판명할 수가 없었다. 지금 버튼콕스 부인은 그때의 사건을 이야기하며 누가 누구를 쏜 것인지 올리버 부인은 혹시 알고 있지 않느냐고 질문해온 것이다. 버튼콕스 부인은 실리아가 자신의 아들인 데스몬드와 결혼할 예정인 바, 과거의 일을 확실히 해 두지 않으면 안된다며 물은 것이지만 올리버 부인은 몹시 무례한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던 중 "코끼리는 무척 기억력이 좋아 모든 것을 기억한다"는 말을 듣게 되고, 호기심이 이에 더해지자 과거의 사건을 조사해보고 싶어진다. 올리버 부인은 포와로에게 도움을 청하고 둘은 과거를 기억하고 있는 코끼리에 관해 조사를 시작한다.

올리버 부인과 포와로는 엘리스테어와 마거릿을 아는 사람들을 조사하던 중 아래와 같은 사실들을 알아낸다.

 

  - 마거릿은 죽기 전 4개의 가발을 남기고 죽는다

  - 마거릿에게는 쌍둥이 언니인 도로시아가 있었다

  - 엘리스테어는 처음엔 도로시아와 약혼했으나 이후 동생 마거릿과 결혼한다

  - 도로시아는 정신 이상 징후를 보였고, 그녀의 소행으로 짐작되는 유아 살해(미수) 사건이 있었다

  - 도로시아는 마거릿이 죽기 얼마 전 몽유병 증세로 절벽을 걷다가 떨어져 죽는다

  - 마거릿은 죽기 전 얼마 동안 몹시 불안한 증세를 보였다

  - 마거릿은 죽기 얼마 전 기르던 개에게 물리는 일이 있었다

  - 마거릿의 가정부는 몹시 눈이 좋지 않았다

  - 데스몬드는 실리아와 어렸을 때 알던 사이였다

  - 데스몬드의 어머니 버튼콕스 부인은 친어머니가 아니다

  - 데스몬드의 친어머니는 데스몬드에게 스물 다섯이 되면 찾을 수 있는 신탁유산을 남겼다

 

포와로는 먼저 데스몬드의 어머니인 버튼콕스 부인이 과거의 일을 캐고 다니는 이유는, 데스몬드가 스물 다섯이 되면 찾을 수 있는 신탁유산이 탐이 나서였다는 것을 알아낸다. 만약 데스몬드가 결혼을 하게 된다면 유언장을 고쳐 써서 유산 상속인을 아내로 변경할 것이 분명했으므로, 과거의 추문을 들추어 실리아로부터 데스몬드의 마음이 멀어지게 할 속셈이었던 것이다.

다음으로 도로시아의 정신병적인 증상을 알게된 엘리스테어가 마음을 동생쪽으로 돌려 마거릿과 결혼하자 도로시아는 쌍둥이 동생을 증오하였고, 이런 증오와 정신병적인 증세가 겹쳐 동생 마거릿을 절벽에서 밀어 사망케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마거릿은 죽어가는 와중에도 엘리스테어에게 언니를 경찰에 고발하지 말 것을 호소했고, 엘리스테어는 마거릿의 시체를 도로시아의 시체로 위장하고 도로시아를 마거릿처럼 꾸며 몇 주간 지내다가 도로시아를 총으로 쏘아 죽이고 자신도 자살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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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의 작품 해설에 의하면 <코끼리는 기억한다>는 몇 가지 오류를 드러낸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먼저 올리버부인을 1939년에 처음 만난 것으로 되어 있지만, 실은 1936년에 발표된 <테이블 위의 카드>에서 처음 만났다고 한다. 또, 마거릿이 35~36세에 죽었고 그 후 12~14년이 지났으니 올리버 부인의 현재 나이는 50세 정도여야 하는데, 1936년의 <테이블 위의 카드>에서의 올리버 부인은 15~19세 정도여야 하지만 중년 여인으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소설에서 나는 수작을 기대하지 않는다. 반면 졸작도 아직까지는 만나보지 못했다. 그저 중상이나 중중을 기대하고 읽는데, 그런 '기대 없음'이 의외로 편안한 독서를 제공해준다. <코끼리는 기억한다>는 사실 미스터리에 익숙한 독자라면 언니의 존재가 등장함과 동시에 트릭을 눈치챌 정도로 구성은 느슨하다. 특히나, 개가 마거릿을 물었다는 대목에서는 독자가 눈치 채지 않기가 더 어려울지도 모른다.

크리스티는 올리버 부인으로 하여금 "코끼리는 기억할 수 있어요. 하지만 우린 인간이에요. 자비롭게도 우리 인간은 잊어버릴 수가 있죠." 라고 말하게 한다. 나는 인간이 잊어버리는 쪽보다는 왜곡하는 쪽을 선호한다고 생각한다. 기억의 미화와 덧칠은 언제나 우리가 생각하는 수준을 능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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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초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8
한수산 지음 / 민음사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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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바람이 찬 이월 하순, 잠시 단체를 떠났던 윤재가 돌아온다. 그는 일월곡예단 초창기 시절부터 마술을 해왔는데, 돈을 보고 약장수를 따라 나서는 다른 마술사들과 달리 자기 재주를 높이 사는 곳에서만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다시 돌아온 노쇠한 윤재를 하명 등은 반갑게 맞아주면서도 노년에 이으러서까지 단체를 떠나지 못하는 그의 모습에서 자신들의 미래를 보는 것만 같았다. 공중그네를 타는 하명은 윤재를 아버지처럼 생각하였고, 하명은 어느덧 청년이 된 윤재의 모습에 놀란다.

겨울 동안 써커스는 남쪽 지방을 도는데 농사를 짓는 관객들이 봄부터 가을까지는 농사일로 바쁘기 때문이기도 했고, 아무래도 추운 동안은 좀 따뜻한 지방을 도는게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단원들은 공연을 하는 재주꾼과 장비를 맡는 후견으로 구분되는데, 일정 수준 이상의 손님이 들면 일당을 받지만 어느 수준 이하일 때는 반일당, 혹은 담뱃값밖에 받지 못할 때도 있었다.

줄을 타는 지혜와 하명이 좋아 지내면서 둘은 단원들의 눈을 피해 남몰래 만난다. 하지만  자신들이 앞으로 어떻게 될 지 몰라 괴로워한다. 배운 재주로 써커스를 하여 돈은 번다지만 결혼을 한다 해도 일정한 거처 없이 떠돌아다닐 일이 걱정이었고, 단체 내에서 가정을 이룬 선배들의 모습을 볼 때 자신들도 그와 같이 될 것이 걱정되었다. 그렇다고 사회로 나가자니 기술도, 기반도 없는 상태에서 영 자신이 없었다.

남자쪽 집안에서 '써커스하는 여자는 창녀만도 못하다'는 반대에 어쩔 수 없이 헤어져 혼자서 석이를 키우는 석이엄마에게 일 년에 두 번 남자가 찾아온다. 그들은 석이라는 끈을 매개로 여름과 겨울 두 번을 만난다.

석이 엄마가 남자를 만나기 위해 방을 비운 사이 수상한 그림자가 지혜의 방을 침입하고 그녀의 몸을 버려 놓는다. 지혜는 아무에게도 말을 못하고 혼자서 끙끙 앓으며 하명을 피하기 시작한다. 그날부터 지혜는 칼을 품고 다시 침입할 남자를 기다리는데, 어느날 밤 윤재가 여자 숙소에서 뛰어나오는 남자와 부딪힌다. 윤재의 손에는 피가 묻어 있었다. 다음 날 지혜가 타던 줄이 끊어져 크게 다치고, 윤재는 줄에 장난질을 친 자는 바로 규오라고 지목한다. 규오의 손은 상처를 입고 있었다. 단원들은 규오에게 몰매를 주고, 얼마 후 병원에 입원해있던 지혜가 홀연히 사라진다. 하명은 술과 여자로 한동안 세월을 죽인다.

단체를 잠시 떠났던 난쟁이 칠룡이가 돌아오고, 써커스는 잠시 활기를 되찾는듯 했다. 하지만 텔레비전과 쇼에 밀려 인기는 예전과 같지 못했고 단장인 준표가 풍을 맞아 쓰러지기까지 한다. 준표의 동생 광표가 단장직을 떠맡는데, 그는 단체의 생리를 잘 몰랐고 전에 노가다판에서 사람 다루듯이 단체 사람을 다루려 했다. 욕심이 많은 그는 사사건건 총무인 명수와 대립했는데, 표를 판 돈을 속여 일당을 온전히 주지 않거나 돈이 궁한 단원에게 이자놀이를 하여 종속시키려 한다. 그만 두는 단원 대신 자기에게 충성할 단원을 모집하여 결국 단체는 둘로 갈리고 만다.

윤재가 쓰러진 준표를 찾아가 좋안던 시절을 이야기하고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지혜를 만난다. 지혜는 술집에서 손님들 앞에서 재주를 보여주며 돈을 벌고 있었다. 윤재의 꾸짖음에 지혜는 '고무신이 잘 팔렸다고 고무신만 팔아야 된다는 법이 어디 있느냐. 사람들이 구두를 신으니 구두를 팔아야 한다'고 항변하고, 윤재는 적당한 답변을 못한 채 단체로 돌아온다. 얼마 후 쇠약해진 몸을 추스리지 못하고 윤재가 사망한다. 명수는 총무직을 그만두고, 하명 등은 광표에 대항해 들고 일어났다가 새로운 단원들에 밀려 단체를 떠난다. 석이를 아버지에게 넘겨주고 술로 세월하던 석이엄마가 어느 날 술에 취해 붙인 성냥불이 의상에 옮겨 붙어 써커스 천막이 모두 불에 타버린다. 하명과 연희, 칠룡은 버스정류장에서 이야기를 나눈 후 각자의 길을 떠난다.

 

 한수산은 <부초>를 쓰기 위해 곡예단을 2년간 쫓아다니며 소재를 분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초>가 시작될 무렵 텔레비전의 보급이 확산되자 사람들이 볼거리를 어렵지 않게 취할 수 있게 되었고, 이와 함께 써커스의 호시절은 끝나고 있었다.

"돈이 있으면 강아지도 멍사장"이 된 시절에 배운 것은 재주밖에 없고, 뒤늦게 사회에 뛰어들 깜냥도 되지 못하는 단체 사람들은 좋았던 옛날을 되풀이해 이야기하며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외면한다. 하지만 시대의 조류는 단체를 비껴가지 않는다. 과거를 대표하는 인물인 단장 준표는 풍을 맞고 윤재는 쓸쓸한 죽음을 맞는다. 지혜는 단체를 나가 '더 잘팔리는 상품'으로 자신을 개조하고, 돈으로 사람을 다루는 광표는 끝내 하명 등을 몰아낸다.

 

"난 우리가 무대 위에 있고 남들은 다 구경꾼이라고 생각했었지......그건 잘못이야......사람들이란 저마다 있는 힘을 다해서 살아간다는 거야. 못난 놈도 제딴에는 자기가 가진 거 남김없이 다 털어서 살고 있다는 걸 이제야 알겠어. 그래......이 세상 바닥도 써커스 바닥이나 똑같아......어디엘 가 있는 내가 디디고 있는 땅이 무대가 아니겠어......(256-25p)

 

단체를 나와 어디로 갈지 모르는 상황에서 내뱉는 하명의 이 말은 <고리오 영감>에서 라스티냐크가 "자, 이제 파리와 나, 우리 둘의 대결이다"하고 외치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소재에 대한 기초적으로 정확해 보이는 연구를 바탕으로, 등장하는 인물들이 저마다 안에서 솟아나오는 인간적 필연성을 어김없이 현실의 큰 상황속에 뚜렷이 자리잡게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풍속의 한 제시이자, 자기 삶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바르게 풀어나가려는 모든 사람들에게 공감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낸 성과가 뚜렷하다"

 

오늘의 작가상 수상 이유에서 발췌한 이 글을 읽으며, 35년의 세월 저쪽에서 소설이 갖는 의미는 무엇이었던가 생각해본다. 소설을 쓰기 위해 그 삶을 직접 경험해보던 장인적인 과정이 근래에는 말재간으로 대치되어 가는 듯 하다. 1977년 제1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인 <부초>와 2011년 제35회 수상작 <철수사용설명서>가 같은 문학상 수상작이라는 사실은, 일월곡예단의 쇠망사를 보는 듯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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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코 너구리 타이완 현대소설선 1
리앙 외 지음, 김양수 옮김 / 한걸음더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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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흰 코 너구리 - 정칭원(鄭淸文)  

 

화자인 '나'는 20년 만에 대학동창을 만났는데 그는 말 조각품을 판매하고 있었다. 말조각상을 수집하고 있었기 때문에 여러가지 조각품을 둘러보는데, 유독 한 조각품이 눈길을 끈다. '나'는 친구에게 절름발이 말을 조각한 장인을 만나게 해달라고 한다.

장인은 60여세가 된 사나이였는데 '나'에게 타이베이 근교의 쥬전(舊鎭) 지역을 아느냐고 묻는다. '나'는 그의 미간에서 코까지 흰 반점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를 기억해낸다.

장인의 이름은 쩡지샹(曾吉祥)으로 소학교 졸업 후 타이베이의 삼촌 식당에서 일을 한다. 그는 자신의 코에 흰 반점이 있는 것 때문에 도박꾼들에게 놀림을 받자 경찰에 밀고했다가 린치를 당한다. 이 사건으로 사람은 업신여기는 부류와 업신 당하는 부류가 있다고 생각하고, 경찰서 소사로 취직한 후 정식 경찰 시험을 본다.

일본이 미국에 선전 포고를 하던 시점에 쩡지샹은 우위란(吳玉蘭)과 결혼한다. 위란의 집에서는 일본식 결혼을 하는 것에 반대했지만 지샹은 내지인과 같은 충성심을 보이기 위해 일본식으로 결혼하고, 황민화 운동에도 적극 동참하고자 한다. 하지만 일본이 패전하자 상황은 급변하여 쩡지샹은 도주하고 위란은 사람들 앞에서 용서를 빈다. 도망친 지샹은 본가로 도망치지만 아버지는 뜻밖에도 일본식 예식을 치룬 자신을 아들로 여기지 않는다. 그리고 두 달 후 위란이 장티푸스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지샹은 자신을 위해 사람들 앞에서 대신 용서를 빌어준 위란을 생각하며 자신이 저지른 민족반역 행위를 부끄러워 한다. 지샹은 사람들이 일본인을 다리 넷 달린 개라 부르고, 그 일본인의 주구(走狗)를 다리 셋 달린 놈이라고 불렀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쥬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때부터 고통과 수치심을 띤 절름발이 말을 조각한다.

지샹은 뒷다리가 이미 부러진 말 조각상을 '나'에게 선물하지만, 모든 이야기를 들은 '나'는 말을 슬그머니 놓고 친구를 데리고 말 없이 그곳을 나온다.

 

o 정조대를 찬 마귀 - 리앙(李昻)

 

그녀는 "입법위원"으로 평범한 중학교 음악선생이었다. 그녀의 남편은 의회에서 "대포"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는데 '대검거'로 15년형을 받고 투옥이 되었다. 남편의 구명에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으로 그녀는 평범한 삶을 버리고 "입법위원"이 되었는데, 실상 구명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고 두 명의 아이들은 "폭도", "죄수"의 자식으로 차별을 받아 결국 이민을 가게 된다. 그는 "국민대회 대표"로 반체제 잡지 편집일을 하는 동료이다.

둘은 "블랙리스트"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유럽으로 간다. 독제자가 사망하면서 "블랙리스트"는 헐거워지고, 회의는 단체관광과 명목상의 회의 일정으로 진행된다. 그녀는 우연히 사진 한 장을 보게 되는데 그 사진 속의 남성의 허리는 가느다란 끈이 묶여 있고, 중요한 부위는 화살표로 가리워져 있었다. 그녀는 그에게 화살표가 무엇인지 물었고, 그는 사진이 악마이고 화살표는 악마의 꼬리라고 말한다. 별 의미 없었던 질문과 답변은 그녀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그녀는 자신이 어떤면에서 대검거 이후 성장이 멎어버렸다고 느낀다. 남편과 사랑과 성(性), 그리고 가정과 결혼생활 모두를 잃었고 현재 맡은 배역만을 할 뿐이라고 자각한다. 그리고 그가 그녀에게 은방울꽃을 사서 선물로 주자 꽃의 관능에 취해 잠을 설친다.

독재자의 죽음으로 남편의 감형 가능성이 높아지지만 남편은 자신은 원래부터 무죄이므로 감형이나 가석방이 아닌 무죄방면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아직까지 비민주적인 정부는 남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는 그녀에게 타이완이 민주화가 되면 모든 것이 붕괴되어 과거의 희생마저 의미 없는 것이 될까봐 두렵다고 말한다. 돌아가기 전날 그들은 사진에서 본 마귀의 조각상을 실제로 발견한다. 그는 마귀가 정조대를 찬 것같이 보인다면서 "마귀는 정조대를 차면 아무것도 못하게 되는 것 아닌가......" 하는 말을 한다.

만약 반체제쪽에 가까운 여류작가가 이런 내용을 글로 쓴다면 대체 정조대를 찬 마귀는 그인지, 그녀인지 물을 것이다.

 

o 내 친구 손목시계 - 위엔저성(袁哲生)

 

어린시절 '나'는 슈차이(秀才)와 함께 편지를 부치러 가곤 했다. 슈차이는 사오수이꺼우(燒水溝)에서 손목시계를 찬 몇 안되는 소수에 속했다. '나'와 슈차이는 항상 집배원 오는 시간 맞추기 내기를 했는데 번번히 내가 승리했다. 슈차이는 자신이 시계가 있음에도 매번 지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나'는 청력이 비상해서 집배원의 오토바이 소리를 듣고 맞추기 때문이었다. 집배원은 슈차이의 편지를 번번히 돌려주었는데 집배원은 슈차이가 쓴 것과 같은 주소는 타이완 섬에 없다고 했다.

할아버지가 점을 보러 가셨는데 점쟁이는 11월 19일과 29일에 대지진이 일어나 타이완 섬이 가라앉을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집에서 놀라운 청력으로 이것을 듣고 지진이 나는 그림을 그린다. 할아버지는 점쟁이 말에 불안하던 차에 '나'의 그림에 더욱 놀라 그림을 찢어버리고 손목시계를 산다. 손목시계의 초침이 느리게 움직여 60번 움직이면 한 시간이 지나기 때문에 마치 시간이 더디 가는 것처럼 느껴졌으므로 할아버지는 진정되었다. 옆집 훠옌쯔씨도 시계를 사고 싶었으나 아주머니 반대로 못 사자 한 시간에 한 번씩 할아버지에게 시간을 물어보았고, 그 시간이 얼추 맞았기 때문에 할아버지는 시계가 없는 훠옌쯔가 시간을 아는 것이 불로소득으로 돈을 벌어가는 것처럼 약이 오른다.

11월 16일부터 사흘간 지진이 계속되자 할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피난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기차길에 사람이 모여있었고, 그곳에 오토바이가 넘어져있고 슈차이의 시신이 있었다. 집배원은 슈차이에게 우체국 편지를 기차가 싣고 간다고 알려주었고, 슈차이는 기차를 기다리다가 사고를 당한 것 같았다. 둘만이 아는 비밀 장소에서 손목시계를 발견한 '나'는 슈차이가 시계를 나한테 주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시계를 차지는 않았지만 왠지 청력이 예전만 못한 것 처럼 느껴진다.

'나'는 어릴 적 그 시절을 그리워하며 사실 우리 모두의 몸 속에는 손목시계가 있어, 스스로 평온하기만 하면, 그 "째깍째깍" 소리들이 조금도 주저없이 앞으로 내달리는걸 분명히 들을 수 있다고 슈차이에게 얘기해주고 싶다.

 

o 푸른 말 - 차이이쥔(蔡逸君)

 

썬(森)은 매일같이 통근 기차를 타고 뻔한 풍경을 보고, 똑같은 차 안의 승객들과 마주치며 살아간다. 그는 승객들이 사람이 아니라 사물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러던 어느 날 기차에서 잠을 자던 썬은 부드러운 남색 실크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자를 만나고, 잠시 후 푸른 말이 플랫폼을 거니는 광경을 본다. 진짜인지 가짜인지 분간할 수 없었지만 말에 대한 환상은 썬이 내려야 할 정류장을 지나치게 만들었고 몇 년 동안의 조용하고 규칙적이던 생활이 흐트러지려 한다.

썬은 정신을 차리고 푸른 말 따위는 잊어버린 후 늦잠을 자서 지각했다고 말하기로 하고 열차에서 내린다. 하지만 가방을 두고 왔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열차를 바꿔 타려 하는데, 아까 보았던 여자를 다시 만난다. 썬은 그 여자와 같은 기차를 타게 되고 차장의 차표 검사로 당황하는 썬에게 여자는 차비를 빌려준다. 썬은 여자가 내리자 뒤따라 내려 그녀의 집까지 찾아간다. 여자는 썬을 알고 있다는 듯이 행동했지만 썬이 자신을 안다면 이름을 말해보라고 하자 엉뚱한 이름을 대고, 그제서야 썬이 자신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썬은 여자의 집을 나오지만 길을 잃고 놀이공원으로 가게 된다. 그곳에서 회전목마들의 부서진 잔해를 보게된다. 열차의 기적소리를 듣고 다시 기차를 타고 종점으로 간 썬은 유실물센터에서 자신의 가방을 찾는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가방은 오늘 잊어버린 것 같지 않게 먼지가 쌓여 있고, 역무원은 그 가방이 썬의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가방 안에서 나온 지갑에는 여자가 말한 남자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돌아가는 마지막 열차는 사고가 나는데 경찰에게 열차장은 푸른 말을 보았다고 말한다. 썬은 미소를 지으며 차문을 뛰쳐나와 세찬 바람이 부는 광야를 질주한다.

 

o 대통령의 자판기 - 황판(黃凡)

 

주인공 뤄쓰(羅思)는 이름 때문에 "나사"라는 뜻의 뤄쓰(螺絲)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뤄쓰는 이렇다할 직업도 없이 미용실에 근무하는 여자친구 쑤쑤(素素)의 방에 얹혀 지내던 어느 날, 담배를 사러 자판기에 갔다가 동전이 부족해 뜻을 이루지 못했는데 그때 개가 대문에 오줌을 누는 것을 보고 저렇게 계속 오줌을 눈다면 대문에 구멍이 나버리겠다고 생각한다. 이에 착안하여 뤄쓰가 자판기에 물을 부으니 동전 십여개가 쏟아져 나오고, 집에 돌아온 쑤쑤에게 이 사실을 알려준다. 하지만 쑤쑤는 남의 것을 정직하지 못한 방법으로 편취했다며 사소한 일에 커다란 "정의감"을 보인다.

다음 날 쑤쑤는 친구 샤오위(小渝)의 남자친구가 검거되면서 샤오위에게 블랙스타 권총을 남겼다면서 권총을 처분하는 일에 도움을 주라고 부탁한다. 뤄쓰는 막상 승낙은 했지만 버리러 가던 길에 겁에 질리고 자기도 모르게 경찰에 밀고하고 만다. 쑤쑤가 뤄쓰를 친구를 팔아먹었다며 탓하자 뤄쓰는 쑤쑤를 때리며 '아무리 가난해도 법을 어길 수는 없다면서 돈 몇 푼 빼낸 나를 욕해 놓고 이제는 증거인멸을 도와주라는거냐'고 욕을 해댄다. 뜻밖에도 쑤쑤는 뤄쓰가 자기를 버릴까봐 두려워하며 용서를 빈다.

그 즈음 뤄쓰는 집으로 전화를 했다가 아버지가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집으로 돌아간 뤄쓰는 타이베이에서 뭘 하느냐는 엄마의 물음에 자기도 모르게 자판기 사업을 한다고 말한다. 거짓말이었지만 말하는 사이 꽤나 괜찮은 사업으로 여겨졌고, 쑤쑤와 더불어 '나가요' 언니들의 돈까지 끌어모아 자판기 사업을 시작한다. 뤄쓰는 나이든 노인이 인사를 하면 대통령이 노인들을 못 본체 하지 못할 것이라는 아이디어를 이용해 조깅하던 대통령과 자신이 설치한 자판기 앞에서 사진을 찍고 이를 광고에 이용한다. 자판기 사업은 날로 번창했는데, 시국이 어수선해지면서 시위대들이 자판기에 붙어있는 대통령의 사진을 곱게 보지 않았고 뤄쓰는 자판기를 지키기 위해 애를 쓴다. 하지만 돌격대원으로 보이는 시위대 일원이 대통령 사진을 떼어내 내팽개치며 사진을 밟아 대통령과 관계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라고 강요하고 사진을 밟는 뤄쓰는 발바닥에 아픔을 느낀다.

얼마 후 쑤쑤가 집에 돌아와 대통령이 사임했다고 알려주자 뤄쓰는 자판기 사진을 마돈나 사진으로 바꾸기 위해 밖으로 나간다.

 

o 티벳의 연인 - 장잉타이(張瀛太)

 

주인공 '나'는 티벳으로 여행을 갔다가 그곳에서 '니마'라는 남자를 만난다. 그의 본래 이름은 한잉으로 텐진에서 출생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 2년간 일을 하고, 집에서 대학 가라고 준 돈을 가지고 19살 많은 여자와 멀리 도망을 쳤다. 4년의 시간을 떠돌면서 온갖 일을 다 한 후에 집으로 돌아가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1년간 한다. 직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아 유화를 그리거나 시를 썼다. 그 후로 티벳에 온 후에 '니마'라는 이름으로 살아간다.

'나'와 '니마'는 티벳의 원초적인 자연 속에서 서로 사랑하지만 이제 와서는 서로가 함께 했었던 일이 진짜였는지, '니마'는 끊임 없이 변하는 어떤 것이었는지 아니면 실존하는 사람이었는지도 의심스럽다. 어느 날 '니마'가 '나'를 떠나고 '나'는 티벳으로 여행을 계속한다. '나'는 그를 언제 어디서 봤는지 기억은 못하지만, '나'의 탐험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느낀다.

 

o 나를 지휘하라 - 우진파(吳錦發)

 

아껀은 매달 두세차례 들르는 호텔로 가서 여자를 부른 후 회상에 잠긴다.

아껀은 신문기자로 얼마 전 편집국장과 사장으로부터 압력을 받았다. 그들은 특정 회사에 대해 안 좋은 기사를 쓸 것을 주문하였으나 아껀은 자기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자 니우 주임이 아껀을 따로 불러내 압력을 가했다. 니우 주임은 전 이사장의 측근으로 "남을 지휘하려면 자기의 지휘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을 하며 소신 있게 행동하던 자였다. 그러나 사장이 바뀌자 언제 그랬냐는 듯 자신에게 피해가 오지 않도록 처신하라며 얼굴을 바꿨다. 주문한 대로 기사를 쓰지 않자 사측에서는 아껀에게 회사 주식을 팔고 그만둘 것을 종용한다. 아껀은 니우 주임의 얼굴에 사표를 집어던지고 호텔로 간다. 그는 호텔에서 자신이 여자를 '지휘'하겠다고 생각한다.

여자가 들어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카운터에서 경찰의 임시검문이 실시된다는 전화가 걸려 온다. 여자가 화장실에 숨어 있는 동안 임시검문이 끝나지만 여자가 배변하는 모습을 본 아껀은 흥이 가시고 만다. 여자는 분위기를 다시 북돋워 보기 위해 아껀에게 자신의 '지휘'에 따르기만 하면 된다고 말한다. 이 말에 아껀은 흥분하여 여자와 다투게 되고 급기야 종업원이 방으로 들어와 싸움을 말린다. 아껀은 되는대로 돈을 집어던지고 비상계단을 따라 내려온다. 계단은 지옥 끝까지 이어지는 것 같다.

 

o 금발 변색 사건 - 우진파(吳錦發)

 

여작가 뉴젠타이는 어느 날 자고 일어나서 자신의 머리카락이 온통 금발로 변한 것을 발견한다. 그녀는 자신이 몽유병에 걸린게 아닌가 생각했지만 집 안 어디에서도 염색약은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러자 자신이 인격 해리(解離) 증상일 가능성은 없는지 생각해 본다.

그녀는 미국에 유학을 갔다가 그곳에서 정신병에 걸린 경험이 있었다. 타이완의 권위주의적인 문화에 익숙한 그녀에게 미국의 문화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학생이 교수에게 비판을 하며 공개사과를 요구하는 모습 등에 충격받은 그녀는 환청을 듣기 시작하고, 정신분열 증세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지금의 남편 Peter를 만나 정신과 치료를 받고 곧 회복이 된다.

타이완에 교수 자리를 얻게 되어 돌아온 그녀는 신문에 칼럼을 투고하기 시작하는데 이것이 큰 반향을 일으킨다. 대학생들은 그녀의 칼럼을 읽고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키우고, 부조리한 타이완의 질서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하지만 보수 언론은 그녀를 창녀, 양놈 똘마니, 음모분자로 몰아부친다. 그런 와중에 머리카락이 노랗게 변하자 그녀는 칼럼 쓰기는 물론 수업 하러 나가는 것조차 포기한다. 그리고 아이를 끌어안은채 새벽에 목놓아 크게 울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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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은 청일전쟁의 결과로 1895년 부터 무려 50년간 일제 강점기를 거치다가 1945년에 광복을 맞고, 1949년에 패전한 국민당 정부가 남하하여 국민당 독재 시기를 거친다. 40년간 계엄령이 지속되다가 1987년에야 해제되었다고 하는데, 그 궤적이 여러모로 남한과 흡사하다.

하지만 대만 하면 기억나는 것은 남한이 중국과 수교하기 위해 외교를 단절했던 사건과 영화 두 편이 거의 전부이다. 그 외에 뭐가 있나 기억을 떠올려보려 해도 중소기업, 컴퓨터 부품, 야구, 그런 단편적인 인상밖에 없다. 그만큼 대만에 대한 관심은 한정적이었다.

차이밍량 감독의 <애정만세>는 1994년도에 보았다. <씨네21>이라는 잡지를 동아리에서 구독했었는데 거기 롱테이크신이 소개되어 비디오방에서 봤다. 부동산업자인 여자와 묘자리를 파는 남자, 그리고 옷을 파는 남자 세 명이 한 집에 기거한다. 합의하에 기거하는 것은 아니고 남자는 여자가 없는 사이 몰래 숨어들어 산다. 대사는 어이 없을 만큼 적고, 마지막 즈음 여자가 우는 롱테이크신은 관객을 끝내 여자의 감정 속으로 우겨 넣는다. 보고 나서 느낀 허탈함과 단절감은 오랫동안 생각이 났다.

2010년에는 뉴청쩌 감독의 <맹갑>을 보았는데, 대만 애들은 저렇게 살고 저렇게 노는가 싶은 정도의 기억만 있다.

<목어소리>를 함께 샀다. 쉽사리 손이 갈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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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게 - 제144회 나오키상 수상작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신이치네 가족은 아버지의 회사가 도산하자 가마쿠라에 있는 할아버지 집으로 이사를 간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가 암으로 돌아가시고, 할아버지 쇼조의 연금과 엄마의 아르바이트 월급으로 근근히 살아간다. 학교에서는 간사이 지방에서 전학 온 하루야만이 유일한 친구이다. 하루야의 아버지는 술을 마시면 하루야를 폭행하거나 굶기곤 했다.

둘은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외따로 지냈는데, 어느 날 산 속 호젓한 곳에서 웅덩이를 발견한다. 둘은 그곳에서 소라게를 가지고 놀기 시작한다. 소라게를 라이터불로 지져 소라게가 딱지에서 나오게 한 후 불로 태워 소원을 비는 것이다. 처음 소원을 빈 날 신이치는 하루야에게 돈을 가지고 싶다고 말한다. 하루야는 500엔을 주웠다며 신이치의 소원을 소라검님이 들어주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신이치는 하루야가 자신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500엔을 주운 것처럼 꾸민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얼마 후에는 신이치의 책상에 못된 편지를 넣는 것으로 짐작되는 아이가 등교 중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그 역시 하루야가 저지른 일이라 생각한다.

신이치와 같은 반에는 나루미라는 여자아이가 있다. 나루미의 어머니는 할아버지 쇼조의 배를 탔다가 사고로 사망한다. 신이치는 어느 날 엄마 스미에가 낯선 남자와 차에 타고 있는 것을 목격하는데, 그 차는 나루미 아버지의 차였다. 신이치는 그 날 이후로 엄마를 원망한다.

나루미가 산 속 웅덩이에 함께 가기 시작한 후로 신이치의 책상에는 야비한 내용의 편지가 더 자주 날아든다. 나루미는 처음에 하루야와 서먹서먹했으나 곧 하루야와 더 친하게 지내게 된다. 나루미 역시 신이치의 엄마와 자기 아버지가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도 한 가지 이유였다. 신이치는 자신도 모르게 하루야를 미워하기 시작하고, 셋이 만나면 표정이 어색해지는 것을 느낀다. 

셋이서 소라검님에게 소원을 빈 다음 날 하루야가 결석한다. 팔이 부러져 붕대를 감고 온 하루야는 교통사고를 당했다면서 신이치에게 '소원이 이루어져서 좋겠다'며 비아냥댄다. 신이치는 반박하지 못한다.

우연히 손에 넣은 나루미 아버지의 자동차에 숨어 들어간 날, 신이치는 엄마와 나루미의 아버지가 모텔에 들어가는 것을 보게 된다. 모두를 어색하게 대하던 신이치는 그 일이 있었던 다음 날 무척 쾌활하게 행동한다. 그리고 하루야를 설득해 둘만 산에 올라간다.

산에서 신이치는 하루야에게 묻는다. 야비한 편지, 재미있었느냐고. 그동안 신이치의 책상에 편지를 넣었던 것은 하루야였다. 팔이 부러져 공책을 한 손으로 찢지 못해 가위로 오려낸 것을 눈치챈 것이었다. 하루야는 친구는 신이치 뿐이었는데 자신도 왜 그런 짓을 했는지 모르겠다며 눈물을 흘린다. 신이치는 소라검님을 불태우며 소원을 빈다. 소원은 나루미 아버지가 죽는 것이었다. 신이치의 소원이 이뤄지고 난 다음에는 하루야의 소원을 들어주어야 한다. 하루야의 아버지는 죽을 것이었다.

신이치는 웅덩이에 놓아둔 칼과 자동차키가 사라진 것을 실제로 보고 자신의 소원이 이뤄지는 것에 대해 극도의 공포를 느낀다. 나루미 아버지의 차에는 이미 하루야가 타 있을 것이었다. 신이치는 자전거를 타고 나루미 아버지의 차를 따라 잡아 가로막는다. 자동차는 급정거 하지만 결국 신이치는 온 몸에 상처를 입는다.

할아버지 쇼조가 뇌출혈로 사망하고, 신이치네 가족은 엄마의 처가집 쪽으로 이사를 가게 된다. 하루야는 신이치가 구해준 칼을 들고 자신의 아버지에게 덤벼들었고, 아버지가 겁에 질린 모습을 본 후 더 이상의 폭력은 행사하지 못할 것이라 느낀다. 신이치는 하루야가 실제 그날 차에 탔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미스터리 작가로서의 캐리어도 만만치 않은 미치오 슈스케가 미스터리 장르를 벗어난 소설을 썼고, 나오키상을 수상했다. 아이들의 마음 깊은 곳까지 세밀히 추척하면서 인간이기에 가질 수 밖에 없는 나약함과 공포를 손에 잡힐 듯 형상화해냈다. <섀도우>를 읽으면서, 이런 표현이 가능하다면, 작가는 기교파에 속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달과 게>는 우직한 태도로 써내려갔고, '트릭이란 면에 의존하지 않고 승부할 수 있다는 자신이 생겼다'는 작가의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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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유도원도
최인호 지음 / 열림원 / 2002년 10월
평점 :
일시품절


개로왕의 원래 이름은 여경(餘慶)으로 우리 나라 역사상 가장 황음(荒淫)에 빠졌던 왕 중 한 명이다. 그는 어느 날 꿈속에서 절세의 미인을 만나는데 꿈에서 깨어난 후에도 여인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었다. 여경은 화공을 불러 여인의 모습을 똑같이 그리도록 한 후 여인과 닮은 사람이 있으면 왕궁으로 불러들이도록 하여 음행을 일삼았다.

도미(都彌)는 본래 마한 사람으로 작은 부락의 우두머리인 읍차(邑借)였고, 아랑(娥浪)이라는 이름의 아리따운 아내가 있었다. 어느날 여경에게 바칠 여인을 물색하던 체찰사(體察使)가 아랑을 보고 이를 여경에게 고한다. 여경은 아랑이 자신의 꿈속에 나타났던 여인과 똑같이 생겼음을 알고 그녀를 취하고자 한다.

체찰사의 간교를 듣고 그럴싸하게 여긴 여경은 도미의 부락으로 사냥을 나간다. 그곳에서 여경은 짐짓 살(煞)을 맞은 것처럼 꾸민 후 아랑의 손가락을 베어낸 피를 받아 먹고 회생하는 연극을 한다. 자신을 구해준 공을 치하한다는 명목으로 도미를 궁으로 불러들인 여경은 도미를 꾀어 바둑을 두는데 첫 판은 짐짓 져준 후 노기를 띠며 둘째 판에 아랑을 걸고 내기 바둑을 두도록 분위기를 몰아 간다. 바둑을 이긴 여경은 아랑을 궁인(宮人)으로 삼겠다 선언하는데, 도미는 자신의 아내 아랑이 절대 마음을 고쳐먹을 사람이 아니라 말한다. 이에 여경은 아랑이 마음을 고쳐먹고 자신에게 몸을 허락한다면 도미의 두 눈을 빼어 장님을 만들 것이고, 그렇지 않고 아내로서의 정절을 지킨다면 큰 상을 내리고 살려주겠다고 말한다.

아랑은 여경의 청을 거절할 경우 도미가 죽게될 것을 두려워 자신의 비자(婢子)로 하여금 여경을 대신 모시도록 하되 불을 어둡게 하고 말소리를 내지 않음으로서 아랑 자신이 동침한 것처럼 속인다. 속치마에 매달린 향낭(香囊)을 취한 여경은 도미에게 보란듯이 자신의 뜻을 이뤘음을 자랑하지만, 냄새를 맡아본 도미는 여경이 다른 여자를 취하였다며 웃고 만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여경은 도미의 두 눈을 도려내고 배에 태워 멀리 떠내려보낸다. 아랑은 도미가 탄 배를 먼 발치에서 지켜본 후 모든 것을 체념하였는데, 어느 날 도미를 태우고 갔던 배가 다시 아랑의 눈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아랑은 도미가 타고 떠난 배를 자기도 모르게 타고 흘러가는 강물에 몸을 내맡기는데 한 섬에 다다르게 된다. 그곳에는 자신이 그토록 찾아 헤메이던 남편이 피리를 불고 있었다.

둘은 외딴 섬에서 풀뿌리를 캐어 먹으며 하루하루를 연명한다. 어느 날 아랑은 자신의 아리따운 얼굴 때문에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하여 얼굴에 일부러 상처를 내고 상처 사이에 흑감탕을 문질러 흉측한 얼굴로 만든다.

둘은 고구려로 흘러 들어간다. 그곳에서 도미는 피리를 불고 때로 아랑은 피리에 맞춰 춤을 추었다. 춤을 추면서 아랑은 노래를 불렀는데 사람들은 그 노래를 아랑의 이름을 따서 아랑가(阿郞歌)라 불렀다. 어느 날부터인가 부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다만 어떤 어부가 그들이 배를 타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고 하는데, 도미는 맹인이 아니라 화모(花帽)를 쓴 늠름한 사람이었고 아랑 역시 병든 노파의 모습이 아니라 눈부시게 아름다운 모습이었다고 전한다.

여경은 자신이 도미의 눈을 뺀 날로부터 칠 년 뒤에 고구려 군사의 공격을 받아 아차산성 밑으로 압송되어 살해된다.

 

우리나라 설화 중에서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하나쯤 빌려와 낡은 고서화를 보는 듯한 고졸한 느낌의 소설을 쓰고 싶었다는 작가 최인호의 변과 달리, 소설은 진부하다. 그저 <삼국사기>에 나온 이야기에 약간의 살을 붙였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느낌이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16157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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