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시절
찰스 디킨스 지음, 장남수 옮김 / 창비 / 200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코크타운의 스톤 로지에 사는 토머스 그래드그라인드는 철저한 공리주의자로,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교육 체계를 수립하고 이에 따라 자녀와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가 숭배하는 것은 숫자와 통계였다. 상상력이나 유희 따위는 인류 행복에 전혀 도움 되지 않는 불필요한 것이었으므로, 철저히 배격했다.

그에게는 두 자녀가 있었는데, 첫째는 딸인 루이자였고, 둘째는 아들인 톰이었다. 루이자와 톰 역시 여느 아이들처럼 호기심이 있었고, 따라서 곡마단 공연 따위를 구경하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그래드그라인드의 지속적인 훈육 때문에 아이들의 호기심들은 점차 사그라들었다. 문제는 그런 호기심이 사그라들면서, 그들의 마음 속 중요한 어떤 것도 함께 사라져 버렸다는 점이다.


한편, 그래드그라인드는 학교에서 씨실리아(씨씨) 주프라는 학생을 데려다 키운다. 씨씨의 아버지는 곡마단에서 일했는데, 전성기가 지나 인기가 떨어지자 씨씨를 버려둔 채 메리렉즈라는 이름의 개와 함께 줄행랑을 친다. 그가 도망가는 날, 씨씨를 따돌리기 위해 몸이 아프니 상처에 바를 기름을 사오라고 시켰는데, 씨씨는 아버지가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라 믿고 그 기름을 소중히 간직한다.

어쨌든, 그런 연유로 혼자 된 씨씨를 그래드그라인드는 데려다 키우며 교육 시켰다. 하지만 그녀는 그래드그라인드의 바람대로 공리주의자가 되지는 못한다. 다만, 그녀의 본 바탕이 깨끗했으므로 착하게 성장했다.


루이자의 나이가 차자, 그래드그라인드는 그녀에게 자신의 친구 바운더비에게 시집가는 것이 어떠냐고 권한다. 엄청난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그 결혼은 성사된다. 그래드그라인드는 통계적으로 그 정도 나이 차의 결혼은 얼마든지 있었다는 산술적 이유로, 루이자는 목석같은 여성으로 자라나 상대방이 누구든 상관이 없었으므로, 톰의 경우는 매형 될 바운더비를 통해 잇속을 챙길 욕심으로 동의한 것이다.

그렇다면 루이자가 시집갈 바운더비는 어떤 사람인가? 그의 말에 따르면, 그는 어렸을 적에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뒤 온갖 고생을 다한 뒤 결국 자수성가한 사람이었다. 그는 수중에 엄청난 부를 거머쥔 은행가였고, 사상적으로는 그래드그라인드와 거의 유사한 입장을 취했다. 다만 그래드그라인드에게서는 다소 품위가 엿보이는 반면, 바운더비에게서는 그러한 품위가 전혀 엿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때때로 역겨운 행동을 한다는 점이 다르다면 다른 점일까? 바운더비는 과거 봉건사회의 지배계급에 속했으나 지금은 몰락한 스파짓 부인을 비서 겸 집사로 삼아 자신의 계급적 성공을 한껏 누리며 거칠 것 없는 태도로 살았다.


별다른 변화 없이 살아가는 이들에게 한 사람의 손님이 찾아 온다. 바로 하트하우스라는, 잘생기고, 다소 사기성 농후한 젊은이였다. 그는 사람들의 특성을 파악한 뒤,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행동에 돌입한다. 그는 스파짓 부인과 바운더비의 환심을 샀고, 톰의 약점을 파악하여 그를 자신의 영향력 아래 두려 했다. 또한, 루이자의 외모가 아름다운 것을 보고 욕망을 느껴 그녀를 부추겼다.

그의 계획은 차질없이 진행되는 듯 했다. 하지만, 이를 눈치챈 스파짓 부인이 하트하우스와 루이자의 밀회현장을 잡기 위해 미행 하면서 긴장이 고조된다.

비가 억수같이 퍼붓던 날, 스파짓 부인의 예상대로 하트하우스가 루이자에게 온갖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며 유혹해댄다. 스파짓 부인은 자신의 예감이 적중된 데 기뻐하며 계속 그들을 미행한다. 하지만 악천후 때문에 이들을 중간에서 놓치고 만다.

사실, 루이자의 상태는 생각보다 심각한 것이었다. 그녀는 하트하우스의 온갖 밀어에도 불구하고 거의 마음에 동요를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밀어 덕분에 자신의 마음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녀는 하트하우스를 따라가지 않고 친정 집으로 돌아가 아버지 그래드그라인드에게 자신의 상태를 설명한다. 그래드그라인드는 딸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공리주의적인 이상이, 생명이 있는 인간에게는 기계적으로 적용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절망한다. 게다가 최근 바운더비의 은행에 든 도둑이 사실은 자신의 아들 톰이었다는 것까지 알게 되자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루이자는 씨씨의 간호로 점차 회복하지만, 그녀의 결혼생활은 파탄에 이른다.


선량한 노동자 스티븐 블랙풀이 톰의 계략으로 인해 도둑으로 몰려 사망하고, 그와 함께 은행 앞을 서성이던 노파가 바운더비의 노모 페글러부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바운더비는 자신이 자수성가한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멀쩡히 살아있는 어머니를 죽었다며 사기를 쳐온 것이었다.


그래드그라인드는 스티븐 블랙풀의 누명을 벗겨주기 위해 자신의 아들 톰이 범인이라는 사실을 인쇄하여 거리에 붙이고 다녔다. 어느 날, 씨씨의 아버지와 함께 사라졌던 개 메리렉즈가 돌아오지만 사람들은 씨씨가 슬퍼할 것을 염려해 이 사실을 알리지 않는다. 톰은 외국으로 도망쳤다가 사랑하는 누나를 끝내 보지 못한 채 열병으로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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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중 루이자가 씨씨 주프에게 학교 수업을 잘 따라가고 있는 지 묻는 대목이 나온다. 루이자는 씨씨에게 선생님의 질문에 잘 대답했는지 묻고, 씨씨는 자신이 자꾸 틀린 답을 말했다며 울먹인다.


"선생님이 자, 이 학급이 하나의 국가라고 가정하자. 이 국가에 오천만 파운드의 돈이 있다면 이 국가가 부유한 나라가 아니냐? 20번 여학생. 이 국가가 부유한 나라이고 너는 부자나라에 사는 게 아니냐? 하고 물었어요."

"뭐라고 대답했니?" 루이자가 물었다.

"루이자 아가씨, 모르겠다고 했어요. 누가 돈을 갖고 있는지, 그리고 그중 얼마라도 제 돈인지 아닌지를 모른다면 부유한 나라인지 아닌지, 제가 부자나라에 사는지 아닌지 알 수 없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이 교실이 커다란 도시라고 가정하자, 시민이 백만명인데 일년에 스물다섯명만이 길에서 굶어죽는다, 그렇다면 그 비율에 대한 너의 의견은 무엇이냐? 하고 물었어요. 저는......굶어죽는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들이 백만명이든, 백만명의 백만배이든 마찬가지로 견디기 힘든 일이라고 말했어요."


"해난사고에 대한 통계자료가 있다고 했어요. 십만명의 선원......중 오백명만이 익사했거나 불에 타 죽었다는 거에요. 그리고 몇 퍼센트가 죽은거냐고 물었어요." 이때 씨씨는 ... 심하게 흐느꼈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어요. 죽은 사람의 친척들과 친구들에게는-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한 거에요......"


1854년에 연재되기 시작한 소설에서(당시엔 연재소설이 획기적인 발상이었다) 나오는 대화가, 150년도 더 지난 오늘날에도 되풀이된다.


그(자본가)들은 일하는 아이들을 공부시키라는 요구를 받았을 때도 파산했고, 작업장을 조사하기 위해 감독관이 지명되었을 때도 파산했으며, 그 감독관이 노동자들을 기계로 다치게 하는 일이 과연 정당한지 의심스럽다고 말했을 때도 파산했다. 항상 그렇게 많은 연기를 내뿜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는 암시를 받았을 때는 완전히 파산했다.....(자본가들은) 부당한 간섭을 받는다고 느낄 때마다 - 즉 완전히 자유방임으로 놓아두지 않고 행동의 결과에 책임을 묻겠다는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 공장주는 반드시 "차라리 재산을 대서양에 처넣겠다"는 끔찍한 협박을 가했다.


5%의 주식도 소유하지 않은 자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기업을 지배한다.

그 기업을 처음 설립한 사람은 적산을 싼 값에 불하받아 '자본의 본원적 축적'을 대신했다.

그의 아들은 2조원이 넘는 돈을 차명 관리하고도 실형을 살지 않았고,

최고권력자는 그에게서 40억원(혹은 플러스 알파)을 받아 사면복권이라는 면죄부를 내려주었다. 

아들은 횡령한 돈으로 매입한 별장에서 성매수를 하며 노익장을 과시하다 긴 동면에 들어갔다.

그의 동면은 매우 편리한 기능이 있었는데, 그 기업이 어떤 죄를 저질러도 '그가 했다'고만 하면 만사 OK가 되는 기능이었다.

창립자의 손자는 모든 것은 '아버지가 했다!' 고 되뇌었다.

살아있는 사람에게는 죄가 없다. 죽은자와, 죽으려는 자가 나쁘다. 

손자도 물론 법원을 들락거렸다. 5%도 안되는 주식으로 기업을 지배하려다 보니 국민들이 투자한 주식의 값을 후려쳐서 합병을 해야했다. 돈을 아끼는 것이 뭐가 나쁜가? 판사는 손자가 기업을 물려받을 이유가 없다(현안이 없다)고 했다. (뭐라고?)

국민들이 들끓자, 댓글부대들이 이렇게 댓글을 달았다.

"해외로 공장 다 옮기면 그때 정신 차릴래!"

"국민기업 망하는 꼴 볼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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