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닝커피
원재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2년 12월
평점 :
품절


주인공 '나'는 클래식을 위주로 하는 FM 라디오 채널의 DJ를 맡고 있다. 어느 날, '나'에게 한 여자가 커피를 마시자고 제안한다. 그녀는 '나'와 같은 체육관에서 운동을 했다. 남자들은 그녀에게 눈길을 빼앗겼다. 그러므로, 그녀의 제안은 '나'에게 있어 다소간의 두근거림을 선사했다.

그날 '나'는 커피를 마시고 난 뒤 아끼는 만년필을 테이블에 두고 왔고, 그것을 습득한 그녀가 다시 전화를 걸어온다.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나'와 그녀는 햇살 아래서, '아침에 만나 모닝 커피를 마시'는 사이가 된다. 

한동안 담백하고 건전한 만남을 이어가던 둘이 처음으로 영화를 본 날, 둘은 발작적으로 키스를 하게 된다. 이때를 기점으로 둘의 관계에 정념이 끼어들게 된다. '나'는 그녀를 '파랑'이라고 부르기 시작한다.


한편, '나'는 그녀와의 만남을 반복할수록 어렸을 적에 헤어진 정희 생각을 하게 된다. 정희는 정희 엄마가 교도소에서 낳았다고 했다. 행실이 올바르지 못한 정희 엄마가 춘천에서 교통사고로 죽자, 중동에 돈벌러 나갔던 정희 아버지가 한국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돌아오기로 약속한 날짜가 되어도 정희 아버지는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고,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자 마을 사람들은 정희 아버지가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정희 자매를 돌봐주던 마을 사람들의 호의가 차츰 옅어졌다. 눈이 많이 내리던 날, 정희는 동생과 함께 아버지를 찾으러 간다는 편지를 남겨놓고 마을을 떠났다. 정희가 죽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고, 그녀가 누군가에 의해 구조되어 살았다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그녀와 소년 시절에 나누었던 우정이 풋사랑이었다는 것을 나중에야 깨닫는다.


정념이 끼어든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처음에는 '나'와 파랑의 관계가 파국을 맞는다. 하지만 헤어짐은 길지 않았다. 아내가 '나'의 변화를 눈치채고 캐나다로 생각을 정리한다며 출국하면서 아내와의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는다. '나'는 그 시기에 파랑과 동거를 한다. 꿈과 같은 시간이 흐르고 아내가 귀국하는 날, '나'는 파랑과 일본에 가기로 결심한다. 공항에서 파랑과 조우하기 직전, 나는 차에 치이고 의식을 잃는다.


전화벨이 울린다. '나'는 퍼뜩 정신을 차린다. 잠깐 졸았나 보다.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마시려고 타놓았던 모닝 커피가 차갑게 식은 것 외에는.

전화를 건 사람은 그녀였다. 그녀는 '내'가 만년필을 두고 갔다고 했다. 책상을 바라보니 만년필은 단정하게 책상 위에 놓여져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이름이 뭔지, 언니가 있는지 등을 대뜸 묻는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은 김미희이고, 언니가 하나 있었는데 어렸을 적 눈 속에서 길을 잃어 사망했다고 대답한다. '나'는 언니 이름을 묻고, 그녀는 '정희'라고 답한다.

'나'는 눈물을 훔치며 그녀에게 만년필을 잃어버린 적이 없다고 답한 뒤 전화를 끊는다. 등 뒤로 잠시 잃어 버린 나의 이름을 부르는 듯이 또 전화벨이 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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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재훈의 <모닝커피>는 라디오독서실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 들었던 소설이다. 성우들이 내용을 축약하여 드라마 형식으로 재구성하여 들려주고, 작가를 평론가가 인터뷰하는 순서가 뒤따르는 식이었는데, 세종시에서 인천으로 가는 국도에서 흥미진진하게 들었던 기억이 난다. 다만, 프로그램에서는 결말 부분의 반전을 암시만 하고 들려주지 않아, 내처 궁금해 하다 읽게 되었다.

작가는 본래 시인으로 <모닝커피>는 소설로서는 처음 펴낸 작품이다. 그래서인지 시어처럼 아름다운 문장이 작품 곳곳에서 빛을 발한다. 반면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힘과 구성의 기교는 다소 부족함이 느껴진다.

소설의 결말은 여러가지로 해석할 여지를 남기는데, 이와 유사한 구성의 소설로 송하춘의 <갈퀴 나무꾼들>이 생각난다. 안정된 중년의 남성이 외도의 백일몽을 꾸는 내용이다. 불륜을 소재로 한 소설은 작가의 능력에 따라 속되게 느껴지기도하고, 그렇지 않고 담백하게 읽히기도 하는데 <모닝커피>는 정념을 개입시키면서도 어린시절 헤어진 풋사랑의 이미지를 중첩시키는데 성공하여 속되게 읽히는 것을 교묘히 피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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