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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년생 소년 ㅣ 랜덤소설선 4
문순태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5월
평점 :
절판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쳐 오던 문귀남은 정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연구실을 차분히 정리하고 정년 이후의 삶을 궁리하던 그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53년만에 듣는 친구의 목소리. 박수돌은 1951년 2월을 마지막으로 마을에서 사라졌었다. 수돌은 자신의 배다른 동생 수천의 소식을 알아봐 달라고 하더니 곧 다시 연락하겠다며 전화를 끊어버린다. 걸려온 전화로 다시 걸어보니 <하나원>이었다. 그렇다면 수돌은 당시 북으로 넘어갔다가 이제 탈북하여 남으로 내려온 것일까.
귀남은 대학 이발관으로 가서 필식을 만난다. 귀남과 필식, 그리고 수돌은 한 동네에서 자란 친구였다. 필식은 수돌이와 엮여 봤자 좋은 꼴 못 볼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러면서도 둘은 옛날 함께 자란 고향을 다시 찾아간다.
전쟁이 나자 똑똑하다는 평을 받던 젊은애들이 많이 산으로 올라갔다. 그 아이들이 무장을 했고, 경찰 가족에게 해꼬지를 했다. 그러자 경찰과 군인들이 몰려와 공비토벌의 미명 하에 마을주민을 학살한다.
마을이 소개되고, 빈 마을로 피난을 가는 와중에 주민들이 하나 둘 죽어간다. 그 와중에 귀남과 두 살 차이 나는 순자고모도 불 타 죽는다. 귀남은 순자고모를 통해 처음으로 이성에 관심을 갖게 되었던 터라 그녀의 죽음이 사무쳤다.
할머니가 아버지의 첩이 가져다준 음식을 달게 먹고 돌아가신다. 귀남을 몹시 아껴주던 할머니마저 돌아가시자 귀남은 서럽기 그지 없었다.
그런 혼란한 와중에 가장 친했던 친구 수돌이가 산으로 간다. 얼마 뒤, 수돌이는 살아있는 사람으로부터 금이빨을 뽑아내어 귀남에게 우정의 징표라며 건내준다. 그 순간, 귀남은 수돌이가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아버지와 마을 주민들은 백아산으로 가면 형편이 나아질 줄 알았지만 막상 가보니 그곳 역시 죽음과 삶의 줄타기를 해야하는 지옥이었다.
고향을 둘러본 귀남이 필식에게 전쟁 때 왜 수돌이를 따라 백아산에 갔는지, 총을 쏴봤는지, 사람을 죽였는지 등을 물어본다. 필식은 이상하게도 총을 갖게 된 후부터 더 무서워졌노라고 말한다. 둘은 예전 피난갔던 곳이 어디가 어딘지 분간을 못하고 돌아오는 길에 어렸을 적 배웠던 노래를 부른다.
여행을 끝내고 돌아온 뒤, 귀남은 수돌이의 전화를 기다린다. 하지만 수돌은 전화를 해오지 않았고, 하나원은 그가 이미 퇴원했음을 알려온다. 귀남은 수돌이를 만나 그가 꿈꾸어온 세상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걸어서 하늘까지>가 읽고 싶어서 인터넷 서점을 뒤졌는데 절판이다. 그래서 작가의 다른 책을 집어들었다.
다분히 자전적인 소설 같은데, 소설적 완성도 측면에서는 높은 점수를 주기가 어렵다. 작가의 역량이 모자라다거나, 불성실했다거나 그런 이유 같지는 않다. 과거의 강렬했던 경험을 소설로 풀어내는 작업이 너무 힘들어서 급히 마무리했다는 느낌. 그런 인상을 받는다.
커트 보네거트는 <제5도살장>을 쓰는데 20년이 걸렸다. 그는 <제5도살장>을 공상과학소설 형식으로 풀어냈는데, 리얼리즘 형식으로는 자신의 경험과 마주하기가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작품 속에서 귀남이 아버지와 나누던 대화가 인상 깊어 적어 둔다.
"만약에 말이다. 만약에 너한테, 힘이 센 두 친구가 있는디, 서로 자기 편이 되라고 헌다면 너는 어쩌겄냐?"
아버지의 물음에 나는 선뜻 대답을 못하고 잠시 미적거렸다.
"너라면 어찌했겄냐?"
"힘이 더 센 친구 편이 되지요 뭐."
"그렇게 되면 다른 친구가 너를 가만두겄냐?"
"안 그러면...... 아무 편도 안 되면 쓰겄네요."
"그것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맘대로 누구 편이 될 수 없으니 고민이제. 아무 편도 안 들어도 세상이 가만 놔두지 않는단다.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다."
누군가의 편을 들었다는 이유로 학살당하고, 아무 편도 들지 않았다고 총살하는 야만의 시대를 다시 글로 기록하기가 오죽 힘들었겠는가? 소설에서 종종 보이는 공백은 그런 아픔 때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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