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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밤의 경숙 - 2013년 제58회 현대문학상 수상소설집
김숨 외 지음 / 현대문학 / 2012년 12월
평점 :
품절
수상작은 김숨의 <그 밤의 경숙>이다. 한 밤중에 도로에서 남편과 퀵 오토바이 기사 간에 시비가 붙는다. 퀵 오토바이 기사와 맞붙었다간 남편이 크게 상할 것 같다. 경숙은 오토바이 기사에게 제발 가달라고 부탁하고, 남편은 분에 못 이겨 차를 출발시킨다. 어쩐지 남편의 차가 퀵 오토바기사를 친 것만 같다.
혼란에 빠진 경숙은 자신이 근무하는 콜센터에 대해 생각한다. 번호로 불리며 소모품 취급받는 곳, 전화를 하라고 큰애에게 스마트폰을 사줬지만 정작 자신은 아이의 전화가 아닌 그악스런 고객들의 전화만 받아야 하는 상황 등.
<그 밤의 경숙>은 김종일의 단편 <일방통행>을 떠올리게 한다. 김종일이 공포라는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소설을 써본다면 재밌을 것 같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수상작가의 선정작 <북쪽 방>은 한평생 열정 없이 지구과학을 가르치다가 정년퇴직 후 폐병을 얻어 아내에게 백안시 되는 남자의 이야기이다. 매일같이 누군가가 집 담벼락에 쇠공을 던지는 통에 몹시도 불안함을 느끼던 그는 어느 날 바깥에서 쇠공이 날아가 누군가의 머리를 깨었다는 외침을 듣는다. 아내의 목소리 같기도 하다. 아내는 우족을 사러 갔다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쇠공을 던지는 사람이 객관적인 실체인지, 아니면 유폐된 남자인지 확실치 않다. 그는 아내의 머리통을 깨부수고 싶었을까? 김숨의 소설은 이번이 처음인데, 공포를 주조로 하는 소설이라는 엉뚱한 느낌을 받는다.
김연수의 <푸른색으로 우리가 쓸 수 있는 것>은 잘 쓰여진 소설이다. 특히 초고와 관련한 이야기는 인상 깊었다.
컴퓨터는 작가에게서 초고를 빼앗아버리기 때문이다. 작가의 일이란 교정하지 않은 초고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정말 여기까지가 다인가?' 라는 질문을 던질 때 비로소 시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소설에 높은 점수를 줄 수 없는 이유는 김연수가 작가를 일반인과 엄격히 구붓짓는 태도와 과잉된 자의식 때문이다.
백가흠의 <한 박자 더 쉬고 - The Song 2> 는 비정한 소설이다. 학창시절에 '나'를 괴롭히던 엄석대 같은 존재를 커서 다시 만난다. 그는 예쁜 아내를 얻어서 교회에 다니며 잘 살고 있다. '나'는 여전히 장가도 못 가고 혼자 예술 언저리를 맴돌고 있다. 과거 기억을 떠올리다 '나'는 다니던 교회 여자애가 강간당하는 현장에 '내'가 데려다 줬었음을 떠올린다.
백가흠은 이 이야기에 일절 개입하지 않는다. 그래서 비정하다. 어설픈 권선징악도 문제지만 얘기만 던져놓고 나몰라라 하는 것도 문제가 아닌가? 에밀 졸라 정도의 거장이라면 모를까.
이장욱의 <절반 이상의 하루오>는 쿨한 이미지들의 집합으로 삶의 이면에 대해서는 거의 다가서지 못한 작품이다. 다분히 무라카미 하루키 풍의 이미지.
정찬의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는 잘 쓰인 소설이다. 침팬지가 인간의 말을 할 수 있어 글을 쓰도록 의뢰받는다는 독특한 상황 설정과, 외젠이라는 가공의 침팬지 이야기를 엮어이야기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나는 정찬의 소설이 재미있다는 생각이 든 적이 없다.
조해진의 <홍의 부고>와 최진영의 <어디쯤>은 습작 느낌이다. 기교가 부족하다는 게 아니라 작가의 내부로부터 '쓰고싶다', '써야한다' 하는 욕망이 차올라 쓰여진 소설이 아니라 '단편을 하나 써볼까' 하는 정도의 욕망에서 시작된 작위적인 글 같은 인상을 받는다는 말이다.
홍이라는 후배가 죽었는데 정작 홍이 누구인지 기억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 아버지가 가라고 해서 약도를 보고 찾아가려는데 도무지 찾지 못하겠다는 것. 두 소설은 많이 닮아 있다.
편혜영의 <비밀의 호의>에서 주인공의 동생은 어렸을 적에 사흘간 집을 나갔다 돌아왔다. 주인공은 못내 그녀가 그 사흘동안 무엇을 했는지 궁금하다. 그것만 알면 그녀의 모든 것을 알 것 같은 기분이다. 하지만 끝내 그녀가 무엇을 했는지 알 수 없었다. 시력을 잃어가는 동생을 요양원에 데려다주고 돌아오며 앞으로의 삶은 비밀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편혜영은 <철수사용설명서>에 오늘의 작가상을 준 심사위원 중 한명이다. 그래서 나는 편혜영이 왜 <철수사용설명서>에 상을 주어야 했는지가 궁금하다. 그것만 알면 소설 업계의 비밀을 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윤성희의 작품 <못생겼다고 말해줘>는 역시 윤성희 다운 작품이다. 삶의 냄새가 나지 않고 이미지만 둥둥 떠다니는.
전성태의 <배웅>은 짤막한 소품으로 우즈베키스탄으로 돌아가는 쏘냐를 배웅하는 화자의 애틋함을 그린 작품이다.
97년인가 조경란의 <식빵 굽는 시간>을 읽었을 때는 불만족 스러웠는데, <옥수수빵 구워줄까>는 나쁘지 않다. 엄마가 애지중지하던 오븐과, 엄마 밑에서 크지 못해 안쓰러운 조카들, 그리고 그런 것들과 차츰 화해하는 '나'의 모습들이 매끄럽게 배치되어 있다.
11월 1일부터 3일까지 제주도 워크숍을 다녀왔다. 오며 가며 전철과 비행기에서 읽었는데 작품 수준이 전체적으로 불만족스럽다. 그러나 제주도는 아름다웠다. 일해야 할 시간에, 일해야 하는 공간에 있지 않아도 좋은 그 상황은, 모든 것을 아름답게 보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