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저녁
정찬 지음 / 문학동네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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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리는 날, 거리에 쓰러진 채 발견된 시체에서 청소부가 은십자가 목걸이를 습득한다. 목걸이에는 '빈첸시오'라는 이름이 세겨져 있었다. 청소부는 성당에 다니는 아내에게 목걸이를 선물하지만, 그녀는 남의 목걸이를 지니는 것이 마음에 걸려 신부에게 사실대로 말한 후 목걸이의 처분을 맡긴다. 그리고 목걸이의 본래 임자인 또 다른 '빈첸시오' 가 나타난다.


사망한 빈첸시오의 본래 이름은 황인후였다. 그의 어머니는 신부와 상간하여 인후를 낳았는데, 전해 듣기로 신부는 인후의 어머니로부터 아이를 건내받은 직후 아이를 내팽개쳤다고 했다. 그때의 사고 때문인지 인후는 간질을 알았다. 이 질병으로 인하여 인후는 신부가 되는 꿈을 접어야 했다.

인후가 사촌의 별장에서 강혜경을 만난 것은 우연이었지만, 둘은 운명과도 같은 사랑에 빠진다. 혜경의 집에서는 반대가 심했지만 둘 사이에 아기가 생기자 혜경의 어머니는 조금 누그러진다. 하지만 아이는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죽고 만다. 혜경의 집에 내려오는 유전병이었다. 인후는 자신의 목숨을 내놓겠다며 하느님에게 간구했지만 기도가 응답받지 못하자 심한 절망감에 빠져 수도원을 전전하며 자신을 학대한다.

마침내 자신의 아버지 빈첸시오 신부가 책임자로 있는 수도원으로 간 인후는 자신이 하느님에 대해 오해하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하느님은 기도에 응답하는 신이 아니라 함께 슬퍼하는 신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 역시 인후를 내친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된다. 아버지 빈첸시오 신부로부터 은십자가와 세례명 빈첸시오를 받은 인후는 예수님과 닮은 삶을 살다가 추운 겨울에 객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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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첸시오는 세 분이 있었다. 한분은 성 빈첸시오 페 레리오 사제 증거자로 중세기의 위대했던 설교자이고, 다른 한분은 성 빈첸시오 순교자이다. 마지막 한분은 '너희가 여기 형제 중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 라는 주님의 말씀을 가장 완전하게 실천하신 성 빈첸시오 아 바울로 증거자이다. 소설 속에서 인후는 세번째 빈첸시오이다.


소설보다 흥미로운 것은 문학평론가 김주연의 글이다.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이 벌어졌을 때 기독교인들은 하나의 곤란한 질문을 받게 된다. '학살의 시기, 도대체 하느님은 어디에 계셨느냐'는 질문이 그것이다. 만약 하느님이 계시다면 어떻게 그같은 사건이 일어날 수 있었겠는가? 어떻게 그와 같은 일이 신의 묵인 혹은 방조 아래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이 질문에 대해 기독교인들은 난처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에 신학자 불트만(Rudolf Karl Bultmann)이 '하느님의 눈물론'을 들고 나왔다. 아우슈비츠의 가스실에서 수백만 명의 유태인들이 죽어갈 때 하느님은 너무 슬퍼 울고 계셨다는 주장이다.


정찬의 소설은 이 불트만의 이론을 모티프로 하여 전개되는데, 사실 하느님의 눈물론에 관한 소설은 엔도 슈사쿠의 <침묵>에서 너무나 훌륭히 다루어진 주제라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었다. 작가는 '시간의 무게'를 견디는 소설을 쓰고 싶다고 밝혔으나, 다소 진부한 주제와 도식적인 전개로 성공하진 못한 것 같다.

 

http://blog.naver.com/rainsky94/2211332930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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