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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의 성 ㅣ 스토리콜렉터 51
혼다 테쓰야 지음, 김윤수 옮김 / 북로드 / 2016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여름의 초입인 7월 8일 오후. 한 소녀가 경찰서로 신변보호를 요청한다. 소녀는 고다 마야라는 이름의 17세 소녀였는데, 발견 당시 때묻은 녹색 셔츠와 터지고 얼룩이 있는 회색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얼굴과 팔에는 멍자국이 가득했다. 경찰들은 놀라서 소녀를 찬찬히 살펴보기 시작했고, 마침내 발톱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발가락과 화상을 입은 뒤 제대로 치료받지 못해 군데군데 엉겨붙은 손가락을 발견한다.
즉시 소녀의 거주지인 선코트마치다 맨션 403호로 경찰들이 급파되고, 거기서 또 한명의 여성이 발견된다. 그녀의 몰골도 소녀와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마야는 그녀를 아쓰코라고 불렀다. 경찰은 일단 아쓰코를 상해 용의자로 연행하지만, 그녀 역시 온 몸에 심한 부상을 입었다는 사실은 수수께끼였다.
조사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야가 '그들', 즉 우메키 요시오와 아쓰코가 아버지 고다 야스유키를 살해했다고 털어 놓는다. 아쓰코 역시 고다를 살해한 사실을 인정한다. 이를 뒷받침 하듯, 욕실에서는 다량의 루미놀 반응이 나온다.
이제 사라진 우메키 요시오를 잡으면 사건을 해결될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욕실 혈흔을 분석한 결과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난다. 혈흔에서는 총 다섯 사람 분의 DNA가 나왔는데, 그 중 4명은 혈연관계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게다가 유아사 메구미라는 여성의 건강보험증까지 나왔다는 것은, 그녀 역시 살해당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과연 맨션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상대편을 재빨리 파악해서 편안함과 호의를 느낄만한 캐릭터로 자신을 꾸민 뒤 시간을 두고 접근한다. 상대편과 친밀감을 높일 만한 갖가지 이벤트를 만든다. 물론 그 상대가 여자라면 성적 행위가 동반된다. 여성이 자신에게 의존하기 시작하면 질투심을 앞세워 서서히 폭력을 행사하기 시작하고, 어느 순간 폭력을 고문으로 변화시킨다. 폭력이 못 참을 지경이 되어 상대편이 경찰에 고발이라도 하면 곤란하다. 따라서 강력한 약점을 잡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부족하다. 또 다른 희생자를 끌어들이면 이 게임을 좀 더 오래 지속할 수가 있다. 희생자 수가 늘어나면, 희생자들끼리 다투게 만든다. 자신에게 가해지는 고문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희생자들은 서로를 밀고하고,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순위가 다른 희생자들보다 위에 놓이도록 노력한다. 결국 누군가 죽으면, 살인자라고 누명을 씌운다.
의식이 흐리멍텅해진지 오래인 희생자에게 남은 것은 공포 뿐이다. 하루하루를 다른 희생자보다 덜 고문당하길 바라는 것 뿐, 어떠한 이성적 사고도 불가능하다. 이제 그곳은 짐승의 소굴이다.
칠십이 넘은 노인을 고문하여 죽게 만들고, 어머니가 다섯살 난 아들을 목졸라 죽이게 하는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욕지기가 치밀었다. 소설은 말한다. 인간은 일정한 조건과 동기만 주어지면 누구나 악마가 될 수 있다고. 그리고 나는 그렇지 않다고, 그럴 리 없다고 부인한다.
하지만 이 소설은 엄연히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쓰여졌다. 일본 <기타큐슈 감금 살인사건>이 그것이다.
1996년부터 1998년 사이에 마츠나가 후토시라는 자가 오가타 준코라는 여성을 이용해 일가족 여섯명을 살해한다. 마츠나가 후토시가 저지른 범행들을 읽다 보면 - 끝까지 읽는 것이 가능하다면 - 그가 과연 인간인지 악마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이며, 일본 정부는 이 막장 범죄를 대중에게 그대로 노출시켰을 경우 큰 문제점이 발생할 것으로 판단하여 언론을 통제했을 정도라고 한다.
이 소설의 내용을 어디서 듣고 와서 나에게 재미 있을 것 같다고 사도록 꼬드긴 회사 동료 K에게 뒤늦게 나마 감자를 먹여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