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민경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9월
평점 :
절판


어렸을 적부터 경찰이 되는 것이 꿈이었던 히라노 미즈호. 경찰학교를 마친 뒤 몽타주를 그려 용의자를 특정하는 업무를 맡게 된 히라노는 자신이 하는 일에 자긍심을 느낀다. 하지만 현실은 히라노가 생각하듯 흘러가지 않는다.

남성 중심의 권위적인 경찰 조직에서 '여경이 몽타주를 그려 범인을 검거했다'는 그럴싸한 홍보를 위해 히라노에게 이미 잡힌 범인의 얼굴을 보고 그림을 그릴 것을 명령한 것이다. 이 사건으로 조직과 불화를 겪은 히라노는 홍보부서로 좌천되어 일러스트 따위를 그리며 범인 체포와는 무관한 업무를 맡게 된다.


신문사에서 12년간 기자로 활동하던 요코야마 히데오는 1991년 <루팡의 소식>으로 제9회 산토리미스터리대상 가작을 수상하며 데뷔한 뒤, 1998년 <그늘의 계절>로 제5회 마츠모토세이초상을, 2000년에 <동기>로 제53회 일본추리작가협회 대상을 수상한다. 나오키 상 후보로도 오르지만 한 심사위원이 '현실성 결여'를 문제 삼아 논쟁을 일으키자 '작품과 무관한 비평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수상을 거부해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


<얼굴>은 여경인 히라노 미즈호가 남성 중심의 권위적인 경찰 조직에서 신념을 펼쳐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그린 소설로, 섬세한 수수께끼 풀이도 훌륭하지만 등장인물들의 인간적인 한계와 그때문에 빚어지는 안타까운 사건들이 잘 어우러져 있어 미스터리에 관심이 없는 독자라도 매력을 느낄만한 작품이다.


<마녀사냥>에서는 미모의 여기자와 불륜관계에 있는 경찰이 수사기밀을 누설하는 이야기이고, <결별의 봄>은 히라노가 홍보부에서 수사1과 범죄피해자지원대책실로 발령 받아 '무엇이든 상담 전화' 담당자가 되어 겪는 이야기이다. 한 여성이 자신이 '불에 타 죽을 것이다' 라며 하소연하는데, 히라노가 침착하게 대응해 사건을 해결한다.

<의혹의 데생>에서는 히라노의 후임으로 몽타주를 맡은 미우라 마나미의 이야기이다. 히라노는 미우라가 자신과 같은 전철을 밟고 있다는 것을 알고 상관에게 항의하지만, 정작 미우라는 '질투하지 말라'며 쏘아 붙인다. 작자미상의 '오래된 우물을 들여다보는 여자' 그림이 액자구성으로 삽입되어 있는데, 자신을 버리고 간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심정에 대한 가슴아픈 이야기이다.

<공범자>는 경찰이 벌인 모의 은행 강도 훈련에서 진짜인 줄 겁을 먹고 오줌을 싸는 바람에 동료들에게 왕따를 당해 결국 자살하고 마는 이야기가, <마음의 총구>에서는 여경에게 총기소지 허가가 내려진 직후 총기를 탈취당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같은 과 직원이 상을 당해 기차 타고 서울 가면서 읽었다. 20년만에 도착한 신촌 세브란스 병원 부근은 어디가 어딘지 모르게 바뀌어 있었다. 문득 그레이스 백화점 앞에서 쫓겨 한참을 도망가다 숨었던 어느 집 보일러실 생각이 났다. 그때 함께 도망쳤던 사람들 대부분과 이제는 연락이 되지 않는다. 연락이 되더라도, 더 이상 그때 그 사람들이 아니다. 나 역시 마찬가지일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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