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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 투 더 언더그라운드 - 제12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서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1부>
한 사내가 지하철에서 깨어난다. 그는 자신이 누구이고, 어디로 가고 있었는지 생각 나지 않는다. 지갑을 열자 10달러 짜리 지폐 3장과 신용카드, 사진 몇 장이 나온다. 신용카드에 찍혀 있는 'KIM HA JIN'이라는 이름이 낯설다. 사진에는 아내인 듯한 여인과 아들로 추정되는 아이가 찍혀 있다. 하지만 그것도 추측일 뿐이다. 사내는 자신이 기억상실증에 걸렸다고 생각한다.
그는 지하철 역을 벗어나 지상으로 나가려하지만, 햇빛을 보기만 하면 정신을 잃는다. 그리고 어딘가 상처를 입은 채 다시 지하철에서 깨어나길 반복한다.
지하철에서 키보드로 폴카를 연주하는 앤디의 도움으로 사내는 한국인이 모여사는 곳에 전단지를 붙인다. 얼마 뒤 앤디에게 어떤 여자가 전화를 걸어온다. 자동응답기에 남겨진 그녀의 말에 의하면, 자신의 남편은 3개월 전에 죽었다고 했다. 앤디는 사내에게 언제 음식을 먹었는지, 용변을 본 기억이 있는지 묻는다. 사내는 자신이 이미 죽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지상으로 한 발 내딛는다. 또다시 앞이 새하얗게 변하고 땅바닥에 쓰러진다.
<2부>
사내는 선배의 말만 믿고 미국으로 이주했다. 닷컴버블 때문에 컴퓨터 비슷한 것만 만지작거려도 돈이 되던 시기였고, 사내는 프로그래머였다. 아내 미라는 법률을 공부해 변호사가 되겠다고 했다.
얼마 뒤 버블이 붕괴되었고, 사내는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아내 미라는 뱃속의 아이가 미국에서 태어나 시민권자가 되게 하고 싶었다. 그리고 법률을 공부해 변호사가 되겠다고도 했다.
LA에서 친척이 있는 뉴욕으로 이사온 뒤 사내는 프로그래머 직업을 버리고 당장 돈이 되는 목수가 된다. 아내는 억척스럽게 공부에 매진하더니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다. 하지만 둘 사이는 예전같지 않았다. 대화가 뜸해졌고, 아내는 사내에게 서먹한 태도를 취했다.
얼마 뒤 사내는 우연히 아내를 지하철에서 만나고, 어떤 예감 때문에 그녀를 미행한다. 그리고 알게 된 사실은 그녀가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지 못했고, 생계를 꾸리기 위해 안마시술소에 다니기 시작했으며, 백인남성과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것이었다.
사내는 자신이 알게 된 사실을 아내에게 얘기하지 못했다. 하지만 아내가 사내에게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면서 왜 아무 말도 하지 않는지 채근한다. 관계는 파국을 향해 치닫는다.
사내가 주택 수리를 하던 도중 축이 되는 기둥을 건드려 건물이 붕괴한다. 붕괴 직전에 사내는 지하철역과 연결된 터널로 몸을 날린다.
<3부>
사내가 몸을 날린 터널은 뉴욕의 지하철역에 연결되어 있었다. 뉴욕의 지하철에는 지도에 나오지 않은 지역이 광범위하게 존재했다. 사내는 그런 지역 중 한 군데로 간 것이었다.
이미 그곳에 거주하던 에이프릴과 의사 폴이 사내의 상처를 치료해준다. 에이프릴은 천인형을 끼고 다녔는데, 그녀는 인형을 자신의 잃어버린 딸 스텔라라고 생각했다. 의사 폴이 주는 약은 마약이었는데 중독성이 강했다. 약을 먹지 못하면 12시간을 고통 속에서 보내야 했다. 폴은 그 '언더그라운드'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싶어했다. 그래서 여러가지 계명들을 만들어 냈고, 마약으로 사람들을 조종하고자 했다.
프레디라는 소년이 사내를 돕는다. 몇 차례 실패 끝에 사내는 아들 민규에게 이메일을 보내는데 성공하고, 언더그라운드에서 탈출한다. 민규와 코니아일랜드에서 재회하지만 경찰이 사내에게 총을 발사한다. 부상당한 사내가 마술에 참가한다. 마술사는 가장 행복했던 시기로 보내주겠다고 했다.
사내는 아내 미라와 코니아일랜드에 와있다. 뱃속의 아이 이름을 민규라고 짓기로 하며 행복해한다. 사내는 자꾸만 잠이 온다. 미라의 어깨에 기대어 잠을 청한다. 사내는 자신이 가진 모든 기억이 사라져버리는 것만 같다. 이상하게 눈꺼풀이 무거워져서 뜰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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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서 지상의 이야기는 2부이다. 지상의 이야기는 사실에 근거하여 시간 순서대로 구성되어 있다.
2부를 간략히 정리해보면, ① 사내(김하진)과 아내 미라가 미국으로 이민을 간다 ② 사내와 미라는 둘 다 자신의 꿈을 실현시키지 못하고 좌절한다 ③ 사내는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고 막연하게 생각할 뿐 아내를 설득하지 않는다 ④ 반면 아내가 변호사에 합격했다는 사실은 아무런 의심없이 받아들인다 ⑤ 아내 미라는 변호사에 합격했다고 거짓말 한 뒤 안마시술소에 나가 돈을 벌며 바람을 피운다 ⑥ 이런 사실에 절망한 사내는 공사현장에서 아무 생각 없이 주축이 되는 기둥을 도끼로 찍는다 ⑦ 이 때문에 집이 무너져 내린다.
주인공 사내는 현실에서 이미 실패했다. 그가 도피한 공간이 언더그라운드인데, 언더그라운드는 현실의 도피처가 되는 유토피아가 아니다. 그곳은 중독에 의한 망각만 존재하는 디스토피아이다.
이 이야기가 공포스러운것은, 주인공 사내가 언더그라운드를 벗어나 현실로 다시 되돌아오려 한다는 점이다. 그는 이미 실패, 혹은 사망했을지도 모르는 곳으로 다시 오고 싶어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구원받기 위해서는 자신이 실패한 분야를 상징하는 노트북을 이용해야 한다.
2부인 현실을 중심으로 1부와 3부가 순서를 달리해도 이야기가 되고, 무한 반복될 수도 있게 구성해 놓은 소설은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재기발랄함이 엿보인다. 일요일 숙직의 지루한 시간을 덕분에 잘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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