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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치-22 1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6
조지프 헬러 지음, 안정효 옮김 / 민음사 / 200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요사리안은 공군 폭격수로서 귀국에 필요한 비행 횟수를 채우기 위해 애를 쓴다. 하지만 그가 비행 횟수를 채우면 곧 귀국을 위한 비행 횟수가 상향 조정된다. 마치 아킬레스와 거북이의 경주같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 요사리안의 동료들이 처참하게 죽어 간다. 요사리안은 자신을 살해하기 위해 주변의 모든 것들이 애를 쓴다고 느낀다. 요사리안의 정신은 점점 피폐해져만 간다.
요사리안이 비행에 나서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가 '정신이상자' 판정을 받는 것이다. 그래서 요사리안은 자신이 정신이상자 임을 주장한다. 그런데 자신의 '정신이 이상함'을 논리적으로 증명할 수 있다면, 그는 '정신이상자'가 아니므로 비행에 나서야 한다. 반면, 진짜 정신이상자는 자신의 정신이 이상함을 모를 것이므로, 비행에 나서게 될 것이다. 결국 누구나 비행에 나설 수 밖에 없다. 이러한 논리적 모순, 함정을 소설에서는 '캐치 22' 라고 표현한다. 현실에 존재하지는 않지만, 모든 모순적인 상황을 만들어내는 기묘한 법 조항이다.
<캐치 22>는 전통적인 소설적인 언어와 구조로 구성되어 있지 않으므로, 처음에는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다. 작품을 관통하는 부조리한 상황은 카프카의 <성>을 읽는듯한 느낌을 준다. 질서가 없는 난장판이 계속되면서, 독자는 소설의 시대적 배경이 전쟁중이라는 것을 잠시 망각하게 된다. 그리고 근본적인 질문을 하게 된다. 이 전쟁은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이지? 전쟁의 목적이 무엇이지?
<캐치 22>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하나 하나 살펴보면, 외견상 그들 모두가 전쟁과는 전혀 무관한 일에 골몰하고 있는 것 같이 보인다. 그러나, 그들의 행동을 세밀히 살펴보면 모두가 전쟁이라는 거대한 무게에 짓눌려 비정상적인 행동을 강요당하는 듯 하다.
화이트 하프오트 추장이 사는 곳에서는 언제나 석유가 쏟아졌다. 백인들은 그래서 그가 좀 살만해 지면 그를 내쫓고 땅을 파헤쳤다. 어쩔 수 없이 추장이 이주하면, 이번에는 그곳에서 석유가 쏟아져 나왔다. 나중에는 추장이 이주를 하려고 마음 먹은 곳에, 백인들이 미리 포크레인 따위를 대동하고서 기다린다.
다네카 군의관은 낙태수술로 큰 돈을 벌어보나 했으나 전쟁이 발발하여 덜커덕 징집된다. 그는 비행을 무서워했지만 비행수당을 위해 명단만 올렸다. 어느 날, 그가 명단을 올린 비행기가 추락한다. 다네카 군의관은 전사 처리되어 미망인에게 통보된다. 미망인은 처음엔 슬펐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그가 들어놓은 생명보험의 사망보험금을 수령한다. 다네카 군의관이 자신은 멀쩡히 살아 있음을 항변하지만, 행정처리를 맡은 군인들이 너무 귀찮아서 그냥 그를 죽은 것으로 처리한다. 미망인도 나중에 그가 살았다는 편지를 받지만 다시 모든 걸 되돌리는 것도 좀 그래서 이사를 가버린다.
요사리안과 같은 천막을 쓰는 오르는 출격만 나가면 격추를 당한다. 나중에 오르가 스위스에 살아 있음이 확인된다. 오르는 격추당하는 연습 끝에 망명에 성공한 것이다.
마일로는 개당 7센트에 사온 달걀을 5센트에 팔아 이윤을 남기는 자로, 그가 구성한 신디케이트가 어느 정도의 규모인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는 심지어 독일군과도 계약을 맺었는데, 그들이 일정한 금액을 지불하자 자기 부대를 폭격한다.
헝그리 조는 그럴싸한 말로 여자를 꼬셔서 나체 사진을 촬영하는 자다. 그는 항상 자기를 신문사 기자로 사칭했는데, 실제로 그는 신문사 기자였다. 문제는 그가 촬영한 사진은 언제나 촛점이 맞지 않거나, 엉뚱한 곳을 찍는다는 것이었다.
스나크 상등병과 요사리안은 어느 날 고구마에 비누를 짓이겨 배식한다. 모두가 배탈이 난다. 중요한 점은 그 고구마를 더 달라고 모두가 아우성 쳤을 정도로 맛있었다는 사실이다.
그 외에도, 예쁜 아내와의 잠자리도 잊고 열병식에만 몰두하다가 얼떨결에 장군으로 승진하는 셰이스코프, 하녀를 강간하고 죽인 뒤에도 전쟁 중에 죽은 사람이 하녀 하나뿐이냐며 사이코패스적인 모습을 보이는 알피, 창녀를 진심으로 사랑하지만 결국 죽고 마는 네이틀리, 충성의 맹세를 시킴으로써 공산주의자들을 색출하고 군대의 기강을 확립할 수 있다고 믿어 모든 것에 두번 세번 맹세를 시키는 블랙 등이 있다.
내 생각이지만, 소설 속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마일로이다. 마일로야 말로 전쟁의 부조리함과 전쟁의 속성을 가장 명확히 드러내 주는 인물이다. 그의 유일한 관심은 신디케이트의 이윤이다. 그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 이윤을 남기고, 그 이윤을 분배한다. 누가 적인지는 전혀 관심사항이 아니다. 조건만 맞다면, 자기편에게도 폭탄을 투하한다. 그런데 그때 그가 보여주는 모습이 매우 선언적이다. 그는 자기편에게 폭격을 하면서 당황하지만, 그러면서도 어쩔 수가 없다는 태도이다. 이윤이 모든 동기를 제압하는 자본가적 속성을 이보다 더 잘 나타내 줄 수는 없을 것이다.
번역은 소설가 안정효가 했고, 작품해설에 따르면 1960년대 중반 <뉴스 위크>에는 '헬러 열풍(Heller cult)' 이라는 표현이 등장했다고 한다. 베트남 전쟁에 끌려가지 않으려는 대학생들이 요사리안이라는 이름을 박은 명찰을 붙인 군복을 입고 다녔고, "Yossarian Lives"라는 문구가 인쇄된 스티커를 자동차 범퍼에 붙이고 다니기도 했다고 한다.
오랫동안 읽으려고 벼르던 소설이었는데, 마침내 읽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어떤 작품을 읽고 싶다고 해서 읽어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여러가지 조건이 맞아야 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