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번째 배심원
아시베 다쿠 지음, 김수현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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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작가 지망생인 다카미 료이치에게 편집자 후나이 신이 접근하여 기이한 제안을 한다.


자진해서 누명을 쓰고 경찰에 잡혀 들어간 뒤 혹독한 취조를 받고 살인범 취급을 받는다. 그리고 재판 직전 누명을 벗을 수 있는 증거를 제출하여 무죄방면된 뒤 한편의 훌륭한 논픽션을 써낸다.


다카미 료이치는 존 하워드 그리핀의 <블랙 라이크 미 - 흑인이 된 백인 이야기>나 엘리아 카잔 감독의 영화 <신사협정>과 같은 작품을 자신이 쓸 수 있는 기회가 왔다고 믿는다. 게다가 다카미에게는 매스컴에 의해 잔인한게 난도질 당한 경험도 있었다.

다카미의 아버지 미쓰오키는 약간 이름이 알려진 정신과 의사이자 임상심리학자였다. 평온한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미쓰오키가 최면요법을 실행한 젊은 여성이 '강간을 당했다'고 주장한다. 매스컴은 무죄추정의 원칙 따위는 개나 주라는 태도를 취하며 미쓰오키를 집요하게 괴롭혔고, 결국 미쓰오키는 자살하고 만다. 나중에 그의 결백이 밝혀졌지만 매스컴은 미쓰오키의 명예를 회복해 주는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다카미 료이치는 자신이 논픽션 작업에 참가해 훌륭한 작품을 써낸다면 아버지의 사건으로 생긴 울분도 풀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얼마 뒤, 다카미 료이치는 후나이 신의 시나리오에 따라 가짜 살인범이 되기 위한 작업에 참가한다. 후나이신은 다카미 료이치의 피에 방사선을 조사하고 조혈모세포를 이식하는 등의 복잡한 작업을 거쳐 그의 DNA 구조를 바꾸겠다고 했다. 그리고 일단의 무리들에게 살인 현장으로 보이는 장면을 목격하도록 유도해 목격자를 확보한 뒤 경찰이 자연스럽게 다카미 료이치를 유력 용의자로 추적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계획은 차질없이 진행되어 드디어 다카미는 경찰에게 체포된다. 경찰은 다카미를 용의자가 아닌 살인범으로 취급하고, 혹독한 취조가 이어진다. 마침내 다카미의 정신이 서서히 무너지고, 다카미는 후나이 신과 자신의 계획을 발설하며 무죄를 주장한다.

하지만 어떻게 된 일일까? 후나이 신은 행방불명이 되고, 가짜 살인 사건 과는 전혀 무관한 과거의 살인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게다가 당시 살해당한 여성의 몸에서 발견된 체액의 DNA가 다카미의 그것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결과가 발표된다. 무죄를 증명해줄 장치들이 모두 제거되어 버린 지금, 이제 다카미는 살인범으로 처형받게 되었다.

유일하게 믿을 것은 일본에서 다시 시행되게 된 배심원 제도. 그러나 그 배심원 제도는 과연 다카미를 누명에서 벗겨줄 것인가? 게다가 배심원 제도를 무력화 시키려 하는 기득권 세력들의 노림수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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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다시 배심원 제도가 시행된다는 가정 하에 쓰여진 소설인데 전달하려는 바도 명확하고 사건도 자못 흥미진진하다. 특히 최근 우리 사회에서 벌어진 검찰들의 부패와 전관 예우와 관련해서 꽤 많은 시사점을 던져 주고 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전관이 벌어들인 수임료가 불과 몇 년 사이에 몇백 억원에 달했다'는 놀라운 뉴스가 보도 되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했는가' 하는 의문에 대한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전관이 변호사가 되어 사건을 맡으면 구속을 불구속으로, 유죄를 무죄로 만들어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관 예우를 위해 검찰들은 가급적 현직에 있을 때 불구속 수사 보다는 구속 수사를 남발한다고 한다. 자신들의 미래, 즉 전관들이 구속을 불구속으로 만들어 줄 수 있는 여지를 위해서라도 그렇게 권력을 남용하는 것이 여러모로 이득이라는 것이다. 

의사나 검사들 처럼 쉬운 말을 어렵게 하는 집단도 없다. 의사가 영어로 처방전에 끊임없이 악필로 끄적이는 것은 단지 기침, 콧물, 가래 같은 단순한 단어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처방전에 알기 어려운 말을 끄적인다. 검찰들의 공소장에는 언제 통용된 것인지도 알 수가 없는 해괴한 한자 조어들을 가득 사용해 문장을 만들어 낸다. 그 문장들은 뜻이 이어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문법에도 맞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한 용어를 쓴다. 

이들은 자신들만의 어려운 코드를 통해 사람들을 통제하고자 한다. 전문가들만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자신들이 하고 있다는 거짓된 생각을 사람들에게 심어주면 자신들이 벌어 들이는 막대한 돈이 정당화 된다고 믿는 듯 하다.

그런데 전문성은 많은 헛점을 갖게 마련이다. 전문성의 영역에서 그들끼리만 교류하다 보면 일반인의 정서와는 무관한 판단을 당연하다고 오인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또 과학적으로 틀림없어 보이는 사실도 통계의 오류에 불과할 때도 있다.

작가는 이 점을 철저히 파고 들어 DNA 판별법이 과연 '인간지문'과 같은 수식어를 달고 무오류를 주장할 수 있는지 의문을 던진다. 또한 배심원 제도를 통해 일반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재판 결과야 말로 보다 오류 없는 판결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배심원 제도는 전혀 다른 양상의 재판장 풍경을 연출한다. 검사는 더 이상 자신들만 아는 알쏭달쏭한 논리와 단어로 대충 재판을 끌어갈 수가 없다. 일반인이 알아들을 수 있고 납득할 수 있는 수준에서, 그들을 설득하여 '의심할 여지 없이' 유죄임을 입증해 내야 한다. 만약에 '의심할 여지'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그것은 유죄가 아닌 무죄가 될 것이다.


다카미는 결국 유죄가 되어도, 무죄가 되어도 좋은 희생양에 불과했다. 유죄 판결을 받으면 배심원 제도를 반대하는 세력들은 다카미가 무죄라는 증거를 내놓으며 '배심원 제도가 무고한 사람을 살인범으로 만들었다'고 떠들 작정이었다. 한편, 무죄 판결을 받으면 이번에는 거꾸로 다른 사건에서 유죄임을 입증하는 증거가 준비되어 있었다. 

이러한 딜레마를 배심원들은 유죄 판결을 내린 후, '판결 전에 사건 현장을 가보았기 때문에 판결 자체가 무효'라고 선언함으로써 슬기롭게 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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