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초상
그레이엄 그린 / 동문사 / 1992년 3월
평점 :
품절


1904년 영국 남부 버크햄스테드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그레이엄 그린은 아버지가 교장으로 있는 버크햄스테드 스쿨에 입학한다. 하지만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다가 열여섯 살이 되던 해에는 자퇴사유서를 남긴 채 학교에서 도망친다. 가족들은 그의 일탈 행위에 큰 충격을 받았고 6개월간 정신과 치료를 받게 하는데, 그때 그레이엄 그린을 담당한 의사가 글쓰기를 권하였다고 한다.

18세에는 공산당에 입당하지만 6주만에 탈퇴하고, 옥스퍼드 졸업 후에는 카톨릭으로 개종한다. 런던 타임즈에서 잠시 근무하다 1929년 <내부의 나>를 발표하면서 작가로 데뷔한다.

그레이엄 그린은 스스로 자신의 작품을 본격소설과 대중소설로 구분지었는데, 본격소설에서는 신과 종교, 그리고 인간 본성 등의 철학적 주제를 탐구하였고 대중소설에서는 스릴과 서스펜스가 넘치는 스파이 소설류를 발표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경계가 모호했기 때문에 스파이 소설에서도 그만의 독특한 통찰력이 엿보이는 작품이 많았다.


<기억의 초상, 원제 The Captain and the Enemy>은 1988년 10월에 발표된 작품이다. 작가가 1991년 4월에 사망했기 때문에 이 작품이 그레이엄 그린이 발표한 마지막 작품이다.


작품의 내용은 다소 기이하다. 열두 살 때 자칭 아버지의 친구가 학교로 '나'를 찾아온다. 그는 아버지와 게임을 해서 이겼기 때문에 '나'를 데리러 왔다는 알 수 없는 말을 한다. '나'는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나'에게 전혀 신경 쓰지 않았기 때문에 이모와 살고 있었다. '나'는 당시의 삶이 만족스럽지 않았기 때문에 기꺼이 '아버지의 친구'라는 대위를 따라 나선다. 대위는 철거 직전의 허름한 건물 지하실로 '나'를 데려가서 리자라는 여인에게 소개하며 그녀를 어머니라고 부르도록 시킨다. '나'는 영문도 모르고 대위가 시키는 대로 했지만 그다지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에 따르면, 리자는 '나'의 아버지가 몸을 버려 놓은 후 차 버린 여자였다. '나'의 아버지는 임신한 리자를 윽박질러 유산하도록 만들었는데, 그때의 후유증으로 리자는 아이를 낳을 수 없게 된다. 그 즈음 '대위'가 리자를 만나 한 눈에 반한다. '대위'는 이런저런 사기 행각으로 먹고 살았는데, 리자에게만은 듬직한 사람이 되고자 노력했다. '나'를 아버지에게서 빼앗아 리자에게 데려간 것도 말하자면 그런 노력의 일환이었는데, '대위'는 사기를 쳐서 먹고 살았기 때문에 리자 곁에 오래 머물 수가 없었고, 언제 잡혀갈지도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리자는 아이를 무척 원했으므로 '나'를 아버지에게서 빼앗아 리자에게 데려 가 아들처럼 키우게 하면 외로움을 덜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그 뒤로 리자와 '나'는 '대위'를 기다리는 생활을 한다. 대위는 이런 저런 사건들을 일으켜 경찰의 추적을 당하면서도 리자와 나에게 비교적 충실히 생활비를 보내온다.

'내'가 성년이 된 후의 어느 날, 대위가 파나마로 건너 갔다면서 큰 액수의 수표를 보내온다. '나'는 이미 성년이 되어 리자를 떠난 지 오래였고, 리자는 최근 교통사고가 나서 사망한 뒤였다. '나'는 이런 사실을 숨기고 대위를 만나러 파나마로 떠난다. 한동안은 대위에게 리자가 죽은 사실을 숨길 수 있었지만 결국은 모든 사실이 들통난다. 대위는 리자가 죽었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그의 삶도 끝났다는 듯 모든 것을 챙겨 비행기에 폭탄을 가득 싣고 가다가 소모사와 군부에 의해 격추 당한다. '나' 역시 공항으로 가는 길에 사고를 당한다. 모든 사고의 뒤에는 CIA와 결탁한 것으로 의심되는 퀴글리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하지만 리자와 내가 지난 세월 동안 의지해 온 사람은 바로 이 거짓말쟁이에다 사기꾼이라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그는 단 한 번도 우리를 실망시킨 적이 없었다. 나는 아버지라는 존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고 그런 것 없이도 잘 지내왔다고 믿었다. 그러나 내가 아버지라고 상상하는 바에 가장 가까운 존재는 바로 대위였다.


이 문구는 왠지 브레히트의 <코카서스의 백묵원> 에 삽입된 이야기를 떠오르게 한다. 

 

http://blog.naver.com/rainsky94/220777115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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