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몽
황석영 지음 / 창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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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이 차례로 무너지던 1995년 무렵을 일단 정치적으로는 형식적 민주주의 시대의 출발로, 경제적으로는 개발독재가 종언을 고하면서 한국 자본주의가 스스로 재생산구조를 갖추게 되는 시기로, 그리고 문화적으로는 사회 변혁에 대한 열정으로 지식인의 머릿속에서만 형성되어온 민중이 걷잡을 수 없는 소비사회의 적나라한 대중으로 휩쓸려들면서 욕망에 얽혀가는 시대였다고 생각한다.


소설은 삼풍백화점이 무너지면서 시작된다. 총 다섯 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졌는데, 백화점에 매몰된 박선녀라는 이름의 룸싸롱 마담, 일본군대에 충성을 다하다가 해방 후에는 미군에 충성을 다하면서 한몫 잡는 김진, 청와대의 강남 개발 계획에 맞춰 모래땅을 몇바퀴씩 돌리며 땅값을 뻥튀기 해 한 몫 챙기는 심남수, 광주에서 주먹으로 일어나 서울 조폭계를 평정해 한 시대를 풍미하는 홍양태와 강은촌, 그리고 지금은 성남이 된 광주 단지에 집 한 칸을 마련하기 위해 천막을 치고 애를 쓰는 부부와 그들의 딸 임정아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어느 시점에서인가 서로를 잠깐씩 스쳐 간다. 그들의 에피소드를 담담히 읽어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 삼풍백화점이 무너지면서 마치 한국사회가 파국을 맞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든다. 


95년도는 묵시록 같은 한 해였다. 그 해, 동아리 신입생 중에 서초동에 사는 친구가 가입을 했다. 게다가 그 친구의 아버지는 국방부 고위간부였다. 흔치 않은 일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그 후배는 우리 동아리의 이름을 잘 못 알고 있었다. 역사 동아리인줄로 알고 가입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왠일인지 제대로 된 이름을 알고도 탈퇴 하지는 않았다. 

그 해 어느 날, 뉴스에서 분홍색 백화점이 거짓말처럼 무너지는 장면이 방송 되었다. 그 친구는 다급하게 집에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가 가끔 가는 백화점이라고 했다. 다행히 어머니는 집에 계셨다.

그런데, 그런 경험을 하니까 뉴스 속 백화점이 매우 가까운 곳에 있는 건물처럼 느껴졌다. 그 뒤로 다리도 무너지고 대구에서 가스도 폭발했다. 발전만 외치면서 대충대충 덮어 왔던 것들이 한계에 다달아 여기 저기서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얼마 전에  우리나라 재벌들이 형성된 과정이 서양의 역사와 어떻게 다른지 독특한 견해를 들을 수 있었다.

서양의 부르조아지는 자유로운 노동력을 얻기 위해 봉건지주 및 왕권에 맞서 혁명을 일으켰고, 피의 혁명을 통해 '자유'와 '평등'을 쟁취했기 때문에 이러한 이념에 실천적이고 역사적인 성격이 깃들어 있는 반면, 우리나라 재벌들은 일제시대 때 땅부자가 별다른 저항 없이 부패한 정권과 결탁하여 독점 재벌이 되었기 때문에, 부르주아적 의식이 온전히 뿌리내리지 못하고 봉건지주적 양태를 종종 보인다는 것이다. 예전의 사회구성체 논쟁이 얼핏 떠오르면서 약간의 반발도 들었지만, 일견 공감가는 대목도 있었다.


교육부 관료가 '민중은 개, 돼지'라고 발언했다고 한다. 그 역시 '개, 돼지' 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을 텐데도, 상부구조의 수호자를 자처하다 보니 의식은 재벌의 그것을 탑재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 관료는 발언 직후 자신을 쉴드 쳐주는 자들이 없다는 데에 매우 당혹해 하며 자신 역시 '개, 돼지' 였음을 자각했을 것이다.


황석영의 소설을 읽으면 항상 착찹한 심사가 한동안 먼지를 일으킨다. 그래서 일정 주기가 되면 그의 소설을 찾게 된다. 착찹해 하며 살아야 하는 세상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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