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없는 나체들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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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가 오사카 성에서 사람들의 눈을 피해 성관계하는 동영상이 세간에 유출된다. 그 동영상에 등장하는 남녀는 '미키 & 미치' 로 불렸다. 미키는 요시다 기미코, 미치는 가타하라 미쓰루였다. 동영상은 그쪽 계열 인터넷 게시판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요시다 기미코는 사이타마현 W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신용금고 직원, 어머니는 초등학교 급식 조리사였다. 요시다 기미코는 공립학교를 거쳐 도내 사립대학을 졸업한 후 시가 현 M시의 교원 임용시험에 합격, 사회과를 가르치는 교사가 된다.

그녀는 반성하는 습관이 거의 없었고, 한가지를 꾸준히 생각하는 일도 없었다. 따라서 추상능력도 그다지 높지 않았다. 가타하라 미쓰루와의 사건이 일어나기 전 두 명의 남자와 관계를 가졌으므로 그쪽에 능숙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열한 살 경에 초경을 했고, 성기에 관해서는 무지한 편이었다. 5학년 봄 성기를 최초로 의식하였으나 미숙하게 손가락을 사용하여 통증을 느꼈고, 곧 죄의식을 느껴 그만둔다. 생리통이 심했는데 이것이 그녀의 성격에 얼마간 영향을 미쳤는지도 모른다.

사귀었던 두 명의 남자도 특이한 점은 별로 없었다. 첫 번째 남자는 촌티를 벗지 못한 군마현 출신의 대학생이었고, 두 번째 남자는 처음 부임한 학교 교사였다.


한편, 가타하라 미쓰루는 친구가 별로 없었다. 학창 시절 소지품 검사에서 공격용 너클이 튀어 나와 선생과 급우들은 그를 음울한 녀석이라고 기억했다. 여성관은 비뚤어져 있었는데 그가 여성과 관계를 맺는 방식은 대부분 전화방, 만남 사이트 등을 통해서였다. 그는 성적인 관계에서 유별나게 자존심을 세우고 싶어했다. 그가 자존심을 세우는 방식은 집요하게 여성의 클리토리스를 바이브레이터 등을 이용하여 자극하는 것이었다. 그가 자주 애용하던 DVD방 남자는 가타하라 미쓰루가 훔쳐보기, 도촬 등의 코너를 섭렵했다고 증언한다.

가타하라 미쓰루에게는 일상 생활을 하는 여성과 성교를 할 때의 여성이 동일인이라는 인식이 없었다. 그에게는 성교를 할 때의 여성만이 '가면을 벗은 진정한 여성' 이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전혀 다른 둘이 만나게 된 과정은 어땠을까? 요시다 기미코의 경우 만남 사이트에 접속하게 된 계기는 순전히 학생지도 차원이었다. 하지만 일단 만남 사이트에 '미키'라는 가명으로 가입하고 나니 호기심에 접속을 시도하게 되었고, 몇 건의 메시지를 받게 되자 조금 대담해지게 된다.

요시다 기미코가 자신의 프로필을 섹스어필하는 방향으로 고쳐 쓰자 메시지가 더 많이 날아왔고, 그 중 가장 무난한 사람과 만남을 시도한 바 그가 바로 가타하라 미쓰루였다.

가타하라 미쓰루는 요시다 기미코를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못 생겼다'고 생각하여 실망했지만, 그녀의 가슴이 크고 직업이 교사라는 사실에 점차 흥분하게 된다. 요시다 기미코 역시 자신의 진정한 모습과 '미키'는 별개라고 생각하여 '미치' 앞에서는 기꺼이 '미키'가 되고자 한다.


둘은 주 2~3회 관계를 맺었고, 그녀의 집에도 드나들게 된다. 바이브레이터와 같은 기구를 사용했음은 물론, 로프 등을 사용하기도 했다. 미치는 미키에게 젊은 시절의 아름다운 모습을 남겨두어야 한다고 설득해 사진과 동영상도 찍기 시작한다.


요시다 기미코가 자신들의 성행위 장면이 모 사이트에 게시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된 것은 우연이었다. 얼굴은 모자이크가 되어 있었지만 그녀는 내심 불쾌했다. 하지만 점차 불쾌하다는 감정이 사라짐을 느꼈다. 그녀는 자신이 그 사이트에 게시된 다른 여성들보다 풍만한 몸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하지만 역시 미치와는 이제 관계를 끊어야겠다고 생각한다. 미치가 "결혼하자"는 이야기를 꺼낸 것도  결심을 부추기는 계기가 되었다. 요시다 기미코는 미키와 자신을 분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결혼이라는 것은 그 둘을 동일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요시다 기미코는 그런 상황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녀 역시 진정한 자아와 '성적인 자아'는 엄연히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들의 엽기적인 행각은 결혼 제안 이후 조급해진 미치가 미키를 데리고 자신의 모교에서 성행위 동영상을 촬영하다 교사에게 들키자 칼을 휘둘렀다가 체포되면서 세간에 알려지게 된다.




히라노 게이치로는 75년생으로 교토대 법학부 재학 시절인 1998년 문예지 <신조>에 투고한 소설 <일식>이 게재되었다가 다음 해인 1999년 제120회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하면서 화려하게 데뷔했다.

우리나라에도 출간되었고 2000년 즈음에 사서 읽었는데 내용은 거의 기억 나지 않는다. 의고체 문장이라고 하나 번역 후에 이를 느끼기는 어려웠을 것이고, 일본 소설인데 중세 수도사 이야기가 나와서 다소 의아해 했던 기억이 있다. 

꽤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책 제목과 작가가 기억에 남는 것은 책을 빌려주었다가 돌려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책을 거의 빌려주지 않기 때문에 빌려준 책은 아주 잘 기억한다. 특이하게도 빌려준 책은 단 한 권도 돌려받지 못했다. <원미동 사람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한 줄도 너무 길다> 등등등.

<달>은 '한번 책을 산 작가의 책은 반드시 한 권 더 사서 본다'는 습관 때문에 샀던 책인데 아직도 책꽂이에 꽂혀만 있다.


<얼굴 없는 달>은 프랑수와 모리아크의 말을 인용하면서 시작된다.


마음속에 아름다운 비밀만 가득하고 암울한 비밀이 없는 인간에 대해 나는 어떤 말도 할 수 없다. 내면에 암울한 비밀을 지니지 않은 인간은 이야기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 프랑수아 모리아크


성적인 측면은 자주 어둡고 암울하게 다루어지거나 '무시의 대상' 이 된다. 성적 욕구가 무시되거나 어둡게 다루어지는 이유는 그것이 인간이 이루어낸 많은 가치있는 것들과 배치(背馳)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적당히 이성이나 법, 제도, 종교 등과 조화를 이루게 하려 해도 워낙에 성격이 다르다 보니 불가능한 것처럼 여겨진다. 동물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발버둥쳐서 이룩한 모든 것들 저변에 깔려 있는 동물적인 욕구의 음험한 냄새. 그것을 어떻게 적당히 손질하여 조화롭게 배치(配置)할 수 있는가 말이다. 그것은 법과 도덕, 종교에 필적할 만한 파괴력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성적 욕구는 가장 기본적인 욕구만 충족되면 수면 위로 부상한다. 문제는 이 욕구에 대해 정당한 대접을 해주지 않으면 비뚤어게 된다는 것이다. 비뚤어진 욕구는 '無'를 잡아 먹고 자란다. 어느 정도 자라난 그것은 숙주인 자아를 벗어나 실체를 가진 덩어리가 되고, 자아를 짓누르고, 자아를 변질시킨다. 이를 의식한 자아의 선택은 한 가지 밖에 없다. 성적 자아와 이성적 자아의 분리이다. 물론 분리는 성공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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