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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한 십자가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애완동물 장례식장을 경영하는 나카하라는 11년 전 끔찍한 일을 당한 적이 있다. 당시 나카하라는 광고회사에서 디자인 일을 했는데, 아내 사요코와 초등학교 2학년생인 딸 마나미 이렇게 셋이서 단란하게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나카하라가 회사에 가고 아내 사요코가 장을 보기 위해 잠깐 집을 비운 사이, 도둑이 든다. 빈 집인 줄 알고 들어왔다가 마나미를 보고 놀란 도둑은 마나미의 입에 재갈을 물린 후 목 졸라 살해하고 만다.
범인은 9일만에 체포됐다. 히루카와 가즈오라는 이름의 범인은 48세였는데 6개월 전 지바 교도소에서 가석방으로 풀려났었다. 살인강도로 복역 중에 별다른 말썽을 부리지 않아 가석방된 모양이었다.
나카하라와 사요코는 범인이 당연히 사형 판결을 받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재판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처음에는 모든 죄를 순순히 시인하던 히루카와의 태도가 조금씩 변하면서였다. 그는 '소녀를 죽일 생각이 없었다', '반성하고 있다', '사죄하고 싶다' 따위의 말을 했다. 불안한 마음에 비슷한 사건들을 살펴보던 나카하라와 사요코는 절망했다. 재판부는 마치 범인을 살려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았다. 판사들은 '반성의 기미가 보인다', '갱생의 여지가 있다', '범행에 계획성이 없다', '동정할 만한 점이 있다'는 식의 단서를 달아 사형을 피해가고 있었다.
다행이 검사측과 경찰의 끈질긴 보강수사로 새로운 증거들이 발견된다. 새로운 증거들은 모두 히루카와의 살인이 계획적이었음을 나타내고 있었다. 히루카와는 사형을 언도 받는다.
그 사건 뒤, 나카하라와 사요코는 더 이상 함께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서로가 서로에게 끔찍한 기억을 상기시켰기에 어쩔 수 없이 헤어진다.
11년이 지난 지금,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형사가 나카하라를 찾아온다. 그리고 사요코가 길거리에서 칼에 찔려 사망했다고 알려준다. 범인은 곧바로 자수를 했는데 이름은 사쿠조, 나이는 68세, 무직에 혼자 산다고 했다. 나카하라는 그가 누구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단순한 강도가 아니냐는 물음에 형사는 여러가지 이상한 점이 있다고 말한다. 계획적인 범행인데 너무 빨리 자수한 점, 9시도 되지 않은 시각에 길거리에서 사람을 찌른 점 등이 이상하다고 했다. 남자의 딸이 대학병원 의사라는 점도 부자연스러웠다.
나카하라는 아내가 무엇을 하면서 살았는지 전혀 몰랐다. 헤어진 뒤 어느 순간부터 서로 연락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카하라는 사요코가 최근 무엇을 했는지 조사 한다. 사요코는 헤어진 뒤 '살인 피해자 가족 모임'에 나가 활동했고, 친구 지즈코의 도움을 받아 잡지사에 기사를 투고했다. 최근 기사는 도벽에 관한 기사였는데, 이 기사에서 나카하라는 이상한 사례를 발견한다. 도벽에 빠진 여러 명 중 제일 마지막에 실린 여성이 마음에 걸렸다.
한편, 범인 사쿠조의 사위 니시나 후미야는 어머니 다에코로부터 압박을 받고 있었다. 아내인 하나에의 아버지가 살인범임이 밝혀졌으니 집안의 명예를 위해 헤어지라는 것이었다. 하나에는 여러가지로 다에코의 마음에 안 들었다. 제대로된 교육을 받은 것 같지도 않았고, 혼전에 이미 임신을 했으며, 손자 쇼는 아들 후미야를 전혀 닮지 않았기 때문에 의심도 들었다.
이상한 점은 후미야의 태도였다. 그는 모든 일들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하나에와 헤어질 수 없다는 태도를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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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꿈 속에서 큰 잘못을 저지르는 경우가 있다. 살인을 저질렀다거나, 실수로 건물에 불을 냈다거나 하는 따위의 꿈이다. 가슴이 터질 것 같은 불안감에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어느 순간 꿈과 현실의 경계를 지나게 된다. '아... 이건 꿈이야' 하는 자각이 든 뒤에도 현실로의 안착을 미루며 그 불안감을 곱씹게 된다. 얼마나 불안했던가를 더욱 생생하게 느껴야, 내가 얼마나 안온한 현실에 발 딛고 있는지 더욱 실감할 수 있다는 듯.
어릴 때엔 잘못의 크기가 더 커보인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이고, 어른들은 절대 해결해 줄 수 없을 것이라고 지레 짐작된다. 그래서 어린애들이 내리는 결론은 대부분 자기파괴적인 결론이다.
프롤로그 이야기가 어떤 식으로든 수수께끼 풀이에 관련이 있을 것이므로 사오리와 후미야에게 뭔가 사건이 있었을 것이라는 점과, 반복해서 등장하는 '자살하기 좋은 숲'을 연결시키면 이들이 저지른 잘못은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그러므로 수수께끼 풀이 보다는 작가가 던지는 다음 질문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보는 편이 작품을 음미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십자가는 죄를 진 사람이 지는 것이다. 그런데 죄인이 지는 십자가가 '공허한 십자가'에 불과하다면 과연 의미가 있을까? 사람은 어떤 식으로 사죄해야 하는가, 그리고 그 사죄를 받아들이는 주체는 누가 되어야 하는가?
이청준의 <밀양>에서 아이를 살해한 범인이 감옥에서 신을 받아들인 후 '피해자 가족의 어떠한 복수도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온화한 얼굴로 말한다. 피해자 어머니는 절규한다. "하지만 나보다 누가 먼저 용서합니까. 내가 그를 아직 용서하지 않았는데 어느 누가 나 먼저 그를 용서하느냔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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