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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산비호
김용 지음 / 중원문화 / 2013년 5월
평점 :
절판
오랜만에 읽는 무협지. 대학교 2학년때 여자 후배가 김용의 <영웅문>이 그렇게 재밌냐고 물은적이 있다. 뜬금없는 질문이어서 의아하게 여겼더니 치과를 한동안 다녀야 하는데 치통이 생길때마다 <영웅문>을 읽어보라고 의사가 권했다는 것이다. 여기 저기 서점을 돌아다녔지만 파는 곳이 없어서 한동안 잊고 있다가 주안역 뒤쪽의 작은 서점에서 고려원에서 펴낸 문고판을 발견하고 한 권씩 사다 읽었다. 당시만 해도 돈이 별로 없을때라 읽는 속도를 주머니 사정이 따라오지 못해 무척 안달해가며 읽었던 기억이 난다. 고려원에서 펴낸 그 <영웅문>이 사실은 해적판으로 저자 김용이 몹시 화를 냈다는 것은 한참이나 지나서 알게 되었다.
중원문화에서 2015년에 절판된 연성결, 설산비호, 벽혈검을 특별소장 한정판으로 찍어낸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주저 없이 예약 구입을 했다. 스무살때 읽었던 때의 느낌은 아니었지만 역시 재미있다.
<설산비호>는 <비호외전>보다 먼저 씌어진 소설이지만 시대는 그 뒤에 해당한다. 만 하루만의 사건인데 등장인물들의 회상이 거듭되다 보니 사실 이야기의 배경은 한 세기를 넘나들며 진행되고 장소는 중국인들이 장백산이라 부르는 백두산이다.
백두산에 군웅들이 대거 결집하는데 호비라는 사내를 저지하기 위해서이다. 이 호비라는 인물은 수수께끼의 인물인데 한 가지 확실한 점은 그가 과거 틈왕을 배신하고 한족을 오랑캐에게 팔아먹은 원수의 자손이라는 점이다. 무공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가늠하기 어려웠지만 당대의 고수가 응원군 모으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니 가공할만한 공력의 사나이임에 틀림없다.
호비가 산에 오르기 전 모인 사람들은 틈왕의 보물에 대해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낸다. 틈왕의 위사 중 무공이 빼어난 세 명의 사나이가 있었는데 이름이 각각 호(胡), 묘(苗), 범(范), 전(田) 이었다. 이 중 호씨 성을 가진 위사의 무공이 가장 빼어나 그를 '비천호리'라 불렀다. 하지만 비천호리가 틈왕을 배신하고 만다. 나머지 위사들은 이를 갈며 절치부심하여 그에게 복수할 기회만을 노린다. 그런데 세 위사가 배신자 비천호리를 만난 후 돌연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자살한 아버지를 생각하며 자손들은 다시금 배신한 신하에게 복수심을 불태운다.
후에 자살한 신하의 자손 중 묘인봉은 당대에 필적할 사람이 없는 고수가 되고, 전가의 자손은 천룡문을 세웠으며, 범가의 자손은 개방을 이끌게 된다.
시일이 흐른 어느 날 묘인봉이 비천호리의 자손을 만나게 되고 서로 자웅을 겨루게 된다. 묘인봉은 상대편의 수가 정묘하고 정후함을 알게되어 내심 감탄하고, 초식을 거듭하면 할수록 그가 대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대결은 묘인봉의 승리로 끝나고 배신자의 자손이 낳은 어린아이는 어딘가로 사라지고 만다. 그리고 이제 나타나는 호비가 당시의 어린아이가 틀림 없었다.
그런데 과거의 이야기가 거듭되면 될수록 수정이 가해진다. 당시의 목격자와 관련자들이 저마다 자신들이 알고 있는 사실을 꺼내놓기 시작하자 석연치 않은 구석이 드러나게 된 것이다. 이야기가 조금씩 수정될수록 실체적 진실이 드러나게 되고, 마침내 호비가 정상에 도착한다. 하지만 복수의 기치를 내걸었던 당대의 고수들은 이미 보물에 정신이 팔려 대결은 뒷전이다.
<설산비호>는 호비와 묘인봉의 대결을 향해 이야기를 진행시키면서도 과거의 이야기를 정교하게 직조함으로써 미스터리 소설의 외형을 취하고 있다. 또한 작가가 눈 쌓인 산 정상에서 탈출이 불가능한 상황은 만들었기 때문에 긴장과 흥미는 더욱 배가된다.
호비와 묘인봉의 대결이 누구의 승리로 끝나는지 작가는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독자가 판단할 몫으로 남겨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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