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물을 헤치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8
아이리스 머독 지음, 유종호 옮김 / 민음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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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런던에서 시작되는 이 이야기의 주인공 제이크 도너휴는 프랑스 통속 소설을 번역하며 겨우 끼니를 잇는 자로, 적당한 직장을 잡아 안정적인 생계를 꾸려갈 의지가 전혀 없는 인물이다. 지금까지는 맥덜린이라는 아가씨의 집에 기식하며 그럭저럭 지내왔지만 어느 날 갑자기 퇴거 통보를 받게 되자 잠시 당황했지만 곧 또 다른 아가씨가 일자리를 제의한다. 그녀의 이름은 새디였고 유명한 영화배우였다. 새디는 최근에 영화제작자가 치근대 귀찮은 상황이라며 자신의 집에 살면서 보디가드 역할을 맡아달라고 했다. 그러나 제이크는 곧 영화제작자의 정체를 알고 혼란에 빠지고 만다.

제이크는 한 때 감기약 투약 실험에 참가해 용돈 벌이를 했는데 그 때 휴고라는 인물을 만났다. 휴고와 이런 저런 주제를 가지고 토론을 벌인 제이크는 그의 사람됨과 사상에 저도 모르게 매혹이 되어 나중에 <말문을 막는 것>이라는 책을 펴낸다. 하지만 야심차게 써낸 이 책은 실패작으로 판명되고 만다. 거의 팔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그 책에 담긴 사상의 정수는 오롯이 휴고의 것이었기에 제이크는 그에게 약간의 미안함도 느끼고 있던 차라 휴고와 다시 대면할 용기가 없었고 그를 슬슬 피해다녔다. 그런데 지금 새디를 쫓아 다니는 파렴치한 자가 휴고라고 하니 제이크는 어안이 벙벙할 뿐이었다. 휴고는 부친의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아 남부러울 것 없는 부자였고 사상과 인품도 훌륭하다고 생각했으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한편, 새디의 언니이자 가수인 애너는 과거에 제이크와 사귀다 헤어진 여자였다. 애너에게 부탁받은 이후로 애너를 떠올린 제이크는 급작스럽게 애너에 대한 사랑이 다시금 솟구치는 것을 느낀다. 실험적인 극장을 운영하던 애너와 다시금 좋은 관계를 맺어보려 했지만 애너는 곧 파리로 떠나버리고, 제이크는 애너를 찾기 위해 맥덜린이 제안한 각본가직도 검토해볼 겸 파리로 건너간다. 하지만 자신이 번역하던 통속 프랑스 소설가가 콩쿠르 상을 수상했다는 사실에 자극받은 제이크는 막대한 급료를 뿌리친 채 진지한 작가의 길로 들어서기 위해 런던으로 되돌아온다. 그리고 철학자 데이브의 조언에 따라 멀쩡한 일자리를 구하기로 결심하고 병원 잡역부가 된다. 그리고 그 병원에서 시위에 참가했다가 크게 다친 휴고를 다시 만난다.

휴고와 이야기하던 중 제이크는 자신의 크나큰 착각을 깨닫게 된다. 지금까지 자신이 생각해왔던 것과는 전혀 다르게 자신이 사랑한 애너는 휴고를 사랑했고, 휴고는 새디를 사랑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휴고를 한밤중에 병원에서 탈출 시킨 제이크는 다른 병원에 잡역부로 취직할 결심을 하고, 휴고는 자신의 전재산을 좌파 운동가 레프티에게 남긴 후 시계수리공이 되기 위해 길을 떠난다.

 

여러가지 소소한 사건들이 펼쳐지는 이 소설은 자기 본위로 세상을 이해하고 해석하던 얼치기 문인 제이크가 실제의 이면에 자리잡은 진실과 하나 하나 대면해 가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아이리스 머독은 자아 중심적인 실존적 세계관에 반대하여 사람 사이의 관계와 우연에 주목한다. 그리하여 진실은 관계 속에서만 증명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상념과 피안속의 삶이 아닌, 진짜 살아있는 일상의 삶이 중요함을 항변하고 있다.

 

옮긴이 유종호에 의하면 휴고는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을 연상시킨다고 한다. 오스트리아 산업계 거물의 아들로 태어나 부유한 환경에서 성장한 점, 1911년에 영국에 건너와 러셀 밑에서 철학을 수학했으나 1차 세계 대전 중 오스트리아 군으로 복무하다가 톨스토이의 영향을 받아 금욕주의적 생활에 헌신한 점, 재산을 모두 나눠준 뒤 초등학교 교사, 건축사, 수도원 정원사로 일했다는 점. 그리고 1920년 후반에 슈릭을 비롯한 빈 서클 구성원들이 비트겐슈타인을 찾아내어 철학으로 다시 돌아간 뒤 1939년에 케임브리지 대학교 철학 교수 직을 맡게 되지만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병원의 잡역부가 되어 의약 연구소에서 일한 점 등이 그렇다고 한다.

 

한달쯤 전에 읽은 책인데 이제서야 독서일기를 쓴다. 이직은 아니지만 근무지를 옮기게 되어 세종시로 내려오게 되었다. 정신적인 여유도 없었고, 인터넷도 연결이 안되어 있어 주말에 영화일기만 끄적거리곤 했다.

처음이 아닌데도 새로운 근무지에 적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새로운 사람, 새로운 업무, 새로운 거처... 새롭다는 것이 낯설음과 어색함을 동반하여 중압감으로 작용한다. 할달여가 지났고, 큰 문제가 없다면 이곳에서 8~9년은 더 지내야 한다. 열심히 살아야겠다.

 

http://blog.naver.com/rainsky94/220422347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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