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성의 증명 동서 미스터리 북스 159
모리무라 세이치 지음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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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데 현에서도 가장 인구 밀도가 낮은 지역인 가키노기 촌에서 전 주민이 살해 당하는 엽기적인 사건이 일어난다. 다섯 가구의 주민 11명 전원이 도끼에 찍혀 사망하였고, 오치 미사코라는 외부인 여성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녀는 하시로 시에서 전화 교환원으로 일하다가 휴가를 받아 가키노기 촌 인근으로 여행을 왔다가 변을 당한 것이었다. 범인으로 추정되는 자는 무슨 이유인지 나가이 요리코라는 어린 여자아이만은 살해하지 않고 데리고 갔는데 이 아이는 며칠 뒤 다른 부락에서 발견된다. 하지만 요리코는 충격 때문에 기억상실증에 걸려 범인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했다.

수사본부는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염두에 두고 수사를 펼쳐 가지만 사건은 점점 오리무중에 빠지고 만다. 빈궁한 부락이라서 훔칠 것도 없었고, 훔쳤다 할지라도 대량 살인을 해야할 이유는 없어 보였다. 오치 미사코라는 여성을 살해하는 것이 본래 목적이었다고 가정해도 나머지 주민을 몰살시켰다는 것은 부자연스러웠다.

그 때 수사본부에서 새로운 가설이 하나 제기된다. 오치 미사코에게는 오치 도모코라는 동생이 있는데 미사코와 얼굴이 매우 흡사했다. 따라서 범인이 미사코와 도모코를 혼동한 것은 아닌가 하는 가설이었다. 이에 기타노 형사가 하시로 시에 파견되어 도모코 주변에서 탐색을 시작한다.


그 즈음 나타난 자가 아지사와 다케시라는 사나이였다. 그는 히시이 생명 하시로 지점의 외무사원이었다. 아지사와는 천애 고아가 된 요리코를 양녀로 맞아들여 함께 생활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밤중에 도모코를 범하려는 수상쩍은 사내들과 격투를 벌여 그녀를 구해주게 된다. 이 일이 계기가 되어 아지사와와 도모코는 사귀게 된다.

하지만 도모코는 어쩐지 아지사와의 등장이 부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어느 날 야쿠자들이 행패를 부리는 자리에서 아지사와가 슬그머니 피해 버렸기 때문이다. 자신을 구출해줄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기에 어쩌면 지난 번 사건도 조작된 연극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하지만 이런 도모코의 의심은 어떤 사건을 계기로 풀리게 된다.


하시로 시는 다소 기묘한 형태의 지배 구조를 갖고 있었다. 하시로 시의 시장은 오바 잇세라는 자였는데 그는 막대한 부를 이용하여 정치 권력을 틀어쥐었고, 나카도 다스케라는 자를 정점으로 하는 야쿠자 조직도 은밀히 지원하고 있었다. 또한 하시로 시의 경찰도 오바 잇세의 사병화된지 오래였다.

이런 하시로 시의 부정한 권력에 대항한 것이 바로 도모코의 아버지였다. 그는 '하시로 신보'라는 신문을 창간하여 오바 잇세의 부정을 폭로하곤 했다. 하지만 그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오바 잇세는 '하시로 신보'에서 심지 굳은 기자들을 모조리 쫓아 낸 후 자신의 기관지화 시켜 버린다. 도모코가 하시로 신보에 입사했을 때는 이미 이런 작업이 모두 완료된 후였고, 그녀가 사명감을 갖고 기사를 쓰려 해도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다시 도모코가 아지사와에게 의심을 하게 된 시점으로 돌아가서, 그 시기에 한 건의 교통사고가 발생한다. 야쿠자의 중간 간부인 이자키 데루오라는 사내가 아내 아케미를 태우고 드라이브를 하다가 연못으로 추락한 사건이었다. 그의 진술에 따르면 자신은 연못으로 추락하는 과정에서 차에서 튕겨나와 간신히 목숨을 건졌지만 아내는 차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그대로 물 속으로 쳐박혔다는 것인데, 그 연못은 예전부터 사람이 빠지면 소용돌이에 휘말려 시체가 떠오르지 않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하시로 경찰서는 시체가 발견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이자키 데루오의 아내가 사망했다는 증명원을 내주었고 이자키 데루오는 엄청난 보험금을 수취하게 된다. 이 보험을 판매한 사람이 바로 아지사와였다. 아지사와는 이자키 데루오가 아내를 살해한 후 어딘가에 감추어두고 교통사고를 위장한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이에 신문기자인 도모코와 함께 사건을 조사하게 된다. 도모코는 정의감에 불타 조사에 혼신의 힘을 다하는 아지사와를 보며 한때 나마 품었던 의심을 거두어 들인다.

둘은 하시로 경찰서에 유치되어 있는 사고 차량의 주위에 널려 있는 흙더미를 조사하다가 시멘트 조각을 발견한다. 아케미의 시체는 최근 제방 공사가 진행중인 곳에 유기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커 보였다. 게다가 제방 공사장 주변을 조사하던 아지사와와 도모코는 오바 잇세가 제방 주변의 막대한 땅을 헐값에 사들인 후 골프장을 건설하려는 계획도 간파하게 된다.

도모코는 예전 아버지의 심복인 우라카와 등을 설득해 오바 잇세의 비행을 폭로하는 기사를 내보내기로 한다. 하지만 그날 밤, 우라카와의 시도가 오바 잇세의 심복에게 들통 나 기사는 나가지 못하고 도모코는 낯선 자들에게 윤간 당한 후 교살당하고 만다. 하시로 서에서는 오바 잇세와의 관계 때문에 아지사와가 눈엣 가시 였으므로 그에게 도모코 살해 혐의를 들씌우려 든다. 


이런 사정은 가키노기촌 대량 살인사건의 수사본부에도 전해지게 된다. 이와데 현 경찰서에서는 자신들이 점찍은 용의자가 하시로 경찰서에 엉뚱한 사건으로 잡혀 가는 그림이 못마땅했다. 그래서 덫을 치고 제방을 감시하여 아케미의 시체를 파내는 이자키를 현행범으로 체포하고 아지사와에게 쏠린 하시로 경찰서의 시선을 분산시킨다. 하시로시 경찰서는 체면을 구겼고, 야쿠자와의 연계설이 대두되어 수사과장은 파면 당한다.


아지사와는 그런 사정은 별도로 도모코를 살해한 범인을 찾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아지사와는 사건 현장에서 도모코의 능욕에 사용된 가지를 단서로 '광견'이라는 폭주족들 중 범인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범인들은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아지사와를 겁 주려다 큰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폭주족 중 한 명이 아지사와에게 사로 잡혀 모든 것을 실토하고 만 것이다. 가자미라는 이 폭주족은 자신들의 대장이 오바 잇세의 삼남 오바 나리아키이고 그들이 도모코를 윤간한 후 살해한 사실을 모두 고백한다. 

이런 사정을 알게 된 오바 잇세는 나카도를 시켜 병원에 있는 가자미를 살해하고 거짓 증인을 내세워 아지사와가 범인이라고 사건을 조작한다. 아지사와는 쫓기는 신세가 되어 요리코와 함께 몸을 피하지만 하시로 시 어느 곳에도 숨을 수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아지사와는 가자미의 부친에게 전화를 거는 모험을 단행한다. 아지사와는 자신이 진범이 아니라며 그간의 상황을 모두 설명한다. 가자미의 부친은 아지사와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 그를 숨겨준다.

가자미의 모친이 나리아키에게 전화를 걸어 가자미가 남긴 편지가 있다고 말하자 나리아키는 소스라치게 놀란다. 가자미의 부모는 나리아키가 범인이라는 아지사와의 말이 사실임을 깨닫는다. 가자미의 집에 편지를 받으러 온 나리아키를 아지사와가 납치해 가지 밭으로 데려간다. 그리고 나리아키에게 끊임 없이 가지를 먹인다.

마침내 '광견' 맴버들이 가지 밭으로 쫓아와 아지사와를 에워싼다. 아지사와가 '광견' 맴버들과 정신 없이 싸우는 그 때 기타노 형사가 아지사와에게 도끼를 던져준다. 아지사와는 손에 익은 무기라는 듯 정신 없이 도끼를 휘둘러 광견 맴버들을 살해하기 시작한다. 기타노 형사는 아지사와가 가키노기 촌 대량 살인사건의 진범임이 증명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광경을 본 요리코가 기억을 되찾는다. 요리코는 아지사와가 바로 아버지를 죽인 사람이라고 부르짖는다.


얼마 후 재판에서 아지사와는 형법 제39조에 따라 책임이 기각되어 정신위생법 제29조에 따라 정신병원에 입원 조치된다. 그의 머리 속에서 배추 등을 썩게 만드는 연부병의 원인인 에르니어 균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아지사와에게 흉기를 건내준 기타노 역시 혈액과 골수에서 에르니어 균이 검출된다.

가키노기 촌의 대량 살인 사건의 범인은 요리코의 아버지였고 그 역시 에르니어 균에 감염된 상태였다. 에르니어 균 때문에 정신 착란이 된 요리코의 아버지가 마을 사람들을 살육하였고, 아지사와는 요리코의 아버지를 살해한 것이다.


1969년도 <고층의 사각지대>로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등단한 모리무라 세이치는 '본격 미스터리'의 거장 요코미조 세이시, '사회파 미스터리'의 거장 마쓰모토 세이초 이후 등장한 제3세대로 분류된다. 초기에는 본격 미스터리 계열의 작품을 썼지만 점차 사회파 계열의 문제 의식을 작품 속에 녹여 내어 때로는 사회파 작가로 분류되기도 한다.

증명 시리즈 3부작 중 가장 기묘한 작품인 <야성의 증명>은 가상의 적을 살해하도록 훈련 받은 자위대 대원 아지사와를 통해 야성에 대해 탐구한 작품이다. 작품의 문제 의식을 극한 까지 밀어 붙이다 보니 결말 부분은 아지사와가 야성을 드러내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이때문에 명쾌한 해결을 바라는 독자들로부터 '뒷맛이 씁쓸한 결말'이라는 비판도 많이 제기된 작품이다.

1978년 사토 준야 감독, 다카쿠라 켄 주연으로 영화화 되기도 했는데 체제에 반대하는 세력이나  적군파 등을 암살하기 위해 극한의 훈련을 받은 자위대 대원 아지사와에 초점을 맞춰 진행된다. 영문 제목은 Never Give Up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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