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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메시스 - 복수의 여신 ㅣ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4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4년 2월
평점 :
<네메시스>는 전작 <레드브레스트>, 그리고 후속작 <데빌스 스타>와 함께 '오슬로 3부작'으로 일컬어지는 작품이다. <네메시스>는 작가가 일 년에 걸쳐 구성에 공을 들인 작품으로 두 개의 살인 사건이 중복 교차하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첫 번째 사건은 은행 강도 사건이다. 오슬로 시내의 은행에 AG3 기관총을 든 강도가 나타나 돈을 요구한다. 그는 영어로 '움직이지 말라'고 소리친 후 창구 담당인 스티네라는 여성을 통해 요구사항을 전달한다. 방범 벨이 울리면 자동으로 음성이 녹음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범인은 요구한 돈을 얻지만 창구 담당인 스티네의 머리에 총을 발사하고 도주한다. 단지 요구한 시간 내에 돈을 담지 못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해리 홀레는 베아테 뢴이라는 특이한 신참 형사와 파트너가 되어 수사를 시작한다. 베아테 뢴의 아버지는 은행 강도 사건 전문으로 유명한 형사였는데 은행 강도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 그리고 그 딸이 경찰에 자원한 것인데 그녀에게는 독특한 능력이 있었다. 바로 방추상회의 능력이 다른 사람에 비해 월등히 뛰어났던 것이다. 방추상회는 후두엽과 측두엽에 걸쳐있는 내측 후두 측두회의 다른 이름으로 얼굴 식별을 담당하는 기관이다.
베아테 뢴은 범행 현장을 찍은 비디오를 반복해서 살펴보던 중 범인이 스티네에게 총을 발사하기 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를 유지했고 서로 말을 주고 받았다는 점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발라클라바를 쓴 범인의 얼굴 형태가 스티네의 남편 트론과 흡사하다는 점도 파악한다. 홀레와 베아테는 트론에게 레브라는 형이 있고, 그 형이 은행강도 전과가 있다는 사실을 조사한 후 레브를 뒤쫓기 시작한다.
두 번째 사건은 헤리 홀레와 한 때 연인이었던 안나가 사망한 사건이다. 시체로 발견된 안나는 왼손잡이이면서도 오른손에 권총을 쥔 채 발견되었다. 그 사실을 모르는 경찰들은 안나가 자살한 것으로 사건을 종결 짓지만 해리는 그녀가 살해당했음이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녀가 살해당하기 전날 밤, 해리와 함께 있었다는 사실이다. 해리는 그날 밤의 일이 이상하게 기억나지 않았다. 그녀의 신발에서 발견된 사진을 단서로 조사하던 해리는 유력한 용의자로 아르네 알부를 지목한다. 그의 별장에서 안나의 열쇠가 발견되었고, 발견된 사진이 그의 사진첩에서 나온 것도 확실했다.
아르네 알부가 용의자로 특정된 직후 해리는 메일을 받기 시작한다. S2MN이라는 아이디는 아르네 알부가 분명해 보였다.
한편 안나의 삼촌 라스콜은 집시라는 자신의 혈통을 고귀하게 생각했다. 그는 전설적인 은행 강도였는데 한번도 경찰에 잡힌 적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경찰에 자수를 하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 라스콜은 감옥 안에 들어앉아 있으면서도 바깥에 어마어마한 연줄과 권력을 이용할 수 있었다. 그는 안나를 살해한 범인이 아르네 알부라는 추측을 듣자 마자 손을 써서 그를 살해한다.
은행 강도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 레브가 브라질에서 자살하고, 안나 살해범으로 추측되던 아르네 알부 역시 라스콜이 손을 써 살해하자 두 사건은 모두 해결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전혀 엉뚱한 결말이 전개된다.
<네메시스>는 구성에 무척 공을 들인 작품이다. 두 개의 살인 사건, 하나의 동기. 옮긴이는 요 네스뵈가 '두 개의 공을 저글링하는 곡예사처럼 별개의 두 사건을 번갈아 진행시키며 정밀한 이야기를 구축해간다'고 표현했는데 그 말이 딱 맞다.
유력한 용의자만 해도 작품 속에서 몇 차례나 바뀐다다. 은행 강도 사건에서는 트론과 레브라는 형제의 어린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 진범이 바뀌는 과정을 정밀하게 직조해낸다. 안나 사건에서는 무려 세 명의 용의자가 등장한다. 직접적인 동기를 지닌 아르네 알부, 사건 당일의 기억이 없어 스스로가 의심되는 해리 자신, 그리고 마지막 용의자인 마약상 군네루드. 그러나 그 누구도 진범은 아니라는 기막힌 구성은 독자의 허를 찌른다.
그런데 이러한 치밀한 구성이 때로는 독이 될 소지가 있다. 등장 인물들의 힘이 구성을 떠받쳐주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을 경우이다.
해리 홀레는 샘 스페이드나 필립 말로처럼 창조적이고 매력적인 인물은 아니다. 알콜 중독에, 큰 키, 집요하게 사건에 파고드는 점 등은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다. 그가 감내하는 고통의 기억 역시 다른 소설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그것과 큰 차별점이 없다.
반면 방추상회가 기이할 정도로 발달한 베아테 뢴은 다소 매력적이다. 하지만 그녀가 해리 홀레의 정적 톰 볼레르의 잘생긴 외모에 별다른 저항 없이 넘어가는 순간 그 매력이 땅바닥으로 곤두박질 친다.
작품에서 가장 매력적인 인물은 라스콜이다. 그는 내적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 없이 애를 쓰는 인물이다. 손자병법을 읽고, 체스를 두며, 집시 혈통의 원칙을 철저히 준수하는 라스콜은 <양들의 침묵>의 한니발 렉터와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