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릅나무 밑의 욕망 범우희곡선 19
유진 오닐 지음, 신정옥 옮김 / 범우사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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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프레임 캐봇은 뉴잉글랜드의 농부로 향년 75세이다. 그의 슬하에는 시미언, 피터, 에벤 삼형제가 있는데 시미언과 피터는 첫번째 부인이 낳은 자식이고 에벤은 두번째 부인의 소생이다. 삼형제는 캐봇의 권위에 짓눌려 평생을 농사일만 했다.

어느 날 캐봇이 서부로 여행을 떠나자 에벤이 두 형들에게 솔깃한 제안을 한다. 아버지가 감추어둔 돈을 형들에게 건내며 서부로 금을 찾아 떠나라고 권한 것이다. 형들이 에벤의 말을 옳게 여겨 서부로 떠난 직후 캐봇은 서른다섯살의 에비 퍼트남을 새 아내로 얻어 집으로 돌아온다.

에비는 농장에 도착하자마자 자신이 농장을 소유할 욕심을 드러내고 에벤은 돌아가신 어머니가 피땀 흘려 일군 농장을 가로채려는 에비에게 적개심을 드러낸다. 하지만 에비는 에벤에게 욕정을 느꼈기에 그를 유혹하기 시작한다. 에벤은 헛되이 저항하지만 곧 에비와 정을 통한다. 둘은 캐봇의 눈을 피해 관계를 지속한다.

얼마 후 에비가 아이를 베고, 캐봇은 그 아이가 자신의 아이라고 굳게 믿고 몹시 기뻐한다. 캐봇은 의기양양하게 에벤에게 농장 전부를 새로 태어난 아이에게 물려줄 것이고 나약하기 짝이 없는 에벤에게는 한자락의 땅도 물려주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옥신각신 하던 중 캐봇이 내뱉은 한마디가 비극의 씨앗이 된다.

에비가 에벤을 유혹하려 하다가 잘 되지 않았던 시기에 에비가 심술이 나서 캐봇에게 했던 말이 있었다. 그녀는 캐봇에게 '에벤이 농장이 탐이 나서 자신에게 집적이지만 아이만 낳게 되면 그를 내쫓아 버리겠다' 고 말했던 것이다.

이 말에 분개한 에벤이 에비에게 몹시 해대고, 에비는 자신의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아이를 살해하고 만다. 에벤은 보안관을 불러 에비와 함께 체포된다.


<느릅나무 밑의 욕망>의 배경은 1850년으로 당시에도 충격적인 내용이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에벤은 대단히 문제적 인물이다. 그는 아버지인 캐봇을 부정하고, 어머니인 에비와 관계를 맺는다. 에벤이 새어머니가 오기 직전 형들에게 돈을 주어 서부로 보내는 행동은 어찌 보면 어머니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상대를 주변에서 없애는 포석으로 해석된다. 에벤은 그 후 짐짓 에비의 유혹에 저항하는 듯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에비와 육체 관계를 맺는다.

에벤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장면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작품 속에서 이십대의 에벤과 칠십대의 캐봇이 난투극을 벌이는데 승리자는 노구의 캐봇이다. 이는 매우 상징적이다. 아버지와 아들은 어머니를 사이에 둔 연적 관계인데 아들은 이미 패자로서 세상에 태어난다. '소유 욕망'의 관점에서만 봤을 때 어머니는 이미 아버지에게 속해있는 것이다. 이 필패의 운명을 역전시킬 수 있는 단 하나의 상황은 어머니가 사망하고 아버지가 얻은 새어머니를 아들이 가로채는 경우밖에 없다. 유진 오닐은 그렇게 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긴다. 승리한 아들 에벤과 에비 사이에 아들이 생기면 또다른 경쟁자가 생기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에비가 아이를 살해한 뒤 '죽이고 말았다'고 했을 때 에벤은 '아버지를 죽였느냐'고 묻지만 에비는 '왜 그 생각을 하지 못했지?'라고 통탄한다. 에비의 머리가 나빠서 그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이 아니다. 에비는 에벤의 경쟁자를 살해하는 것만이 자신의 사랑을 입증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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